허기진 마음 달래 줄 시원한 물김치 하나
내가 있잖아.
남들은 앞서가는 것 같은데 나는 늘 제자리 같고,
무언가 크게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초조함에
하루가 더디게 흘러갔다.
그럴 땐 속부터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든다.
오늘 그 허기진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 줄
반찬을 만들기로 했다.
그 이름도 정겨운 속배추 물김치.
밖에서 식사할 일이 잦다 보면
자연스레 집밥이 그리워진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흐트러진 틈을 타,
냉장고 속엔 여름 김치 하나 변변치 않았다.
며칠 전부터 ‘이번 주 안엔 밑반찬 좀 만들어야지!’하며
다짐하던 것이 오늘에서야 실천하게 되었다.
마트에 다녀오며 장바구니에 넣은 건,
속배추 3 포기와 깻잎 120장. 그 외 몇 가지 야채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나에겐 의미 있는 작은 시작이다.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 줄 의미 있는 시작.
어젯밤, 어떤 반찬이 좋을까를 고민했다.
요즘처럼 더운 날 가스불을 켜지 않고도 만들 수 있고,
지친 속을 편하게 달래 줄 수 있는 반찬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고른 게 속배추 물김치와 생깻잎김치였다.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국물 하나와
밥도둑처럼 입맛을 당기는 향긋한 깻잎.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위하는 한 상이란 점에서
이 반찬은 특별했다.
“오늘 웬일이야? 더운데 고생했겠네.”
반가운 듯 슬쩍 옆에서 묻는다.
“요즘 내가 너무 신경 못 썼잖아요.”
겉으로는 괜히 상대를 배려한 척 말했지만,
속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쓰는 중이었다.
사실은 쓰린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보고 싶어서였다.
며칠 전, 친한 언니는 자신이 투자한 주식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코인으로 수익을 냈고,
또 다른 친구는 땅을 사놨다고 했다.
다들 돈 벌었다는 소식이 연달아 들린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부러운 건 둘째치고
나는 왜 늘 이런가 싶어진다.
기회는 언제나 나를 비켜가고, 운은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못해 참담함이 몰려온다.
소액투자에 불과하지만
나의 주식은 70% 넘게 빠졌다가 이제 조금 회복 중이고,
집값은 더 떨어질까 불안하기만 하다.
정부 규제라도 발표되면 민감하게 출렁이는 동네.
대중의 관심에서 먼 곳인 만큼, 그 출렁임은 더 크게 다가온다.
오르고 내리는 숫자에 하루가 좌우되는 느낌.
그러면서도 아무에게 말 못 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
“설마 좋아지겠지.”
그런 희망은 오래전에 접었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의 성공담을 듣고 나면
돌아오던 입맛까지 사라질 것만 같다.
괴롭다 못해 나 자신이 한심해진다.
요즘은 걱정이 앞선다.
다들 인생 후반전을 단단히 준비하는 것 같은데
나만 허술한 느낌이다.
마음 한 구석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까지 든다.
이럴 때 옆의 이 사람은 차분하게 나를 다독인다.
늘 그 한마디로 나를 붙잡아준다고 해야 할까.
“인생, 모르는 거야.
괜한 거에 속 끓일 필요 없어. 내가 있잖아.”
그랬다.
그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위로.
당신도 마음 편치는 않을 거면서 탓하지 않고,
어설픈 조언보다 속상해하는 내 마음에 먼저
위로를 얹어주는 사람.
세상 다 가진 듯 자랑하는 소식들 앞에서
그렇게 묵직한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다.
비교에 눌려 한없이 작아졌던 내 마음도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다시 펴진다.
부러움에 궁색해질 뻔한 마음도
다시 나의 자리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눈에 띄는 성공은 없어도,
마음을 보듬어주는 관계 하나면
그 어떤 수익보다 든든한 인생이지 않을까.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엔,
시원하게 익은 속배추 물김치와 칼칼한
깻잎김치 덕분에 남부럽지 않은 한 끼를 먹게 될 것이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어쩌면 그날은, 꽤 괜찮은 오늘로 남을 것이다.
에필로그
속까지 허기질 때는 거창한 위로보다
작은 정성이 더 깊게 스며든다.
물김치 국물 한 숟갈에 마음이 풀리고,
“내가 있잖아.”하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돈다.
지금은 부족해도 괜찮다.
우리, 생각보다 잘 살고 있으니까.
(사진출처: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