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일이 이렇게 마음 울릴 줄이야!

밥 한 끼에 담긴 마음의 무게

by 마음키퍼

그 시절은 웃음조차 마스크 뒤에 가려져 버린 날들이었다.

거리두기, 제한된 모임, 비대면 수업, 재택근무…

자유를 위해 맞바꾼 통제의 시간 속에서,

나는 삶의 가장 기본이자 평범한 한 끼 식사로부터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뜻밖의 만남, 따뜻한 밥상,

그리고 한 사람의 친절한 말 한마디는

어둠 속 작은 등불처럼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풍경보다 따뜻한 사람의 온도가 여행의 진짜 목적지임을.


2019년 말부터 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거리 두기라는 이름 아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었다.

웃고 떠들며 함께 밥을 나누던 시간은 추억 속 풍경이 되었고,

그날 나는 그 추억을 되찾고 싶은 마음으로

익숙한 도시 강릉으로 떠났다.

강릉은 내게 숨 쉴 수 있는 도시였다.

바다 냄새가 코끝에 맴돌고, 모래사장을 따라 걷다 보면

머릿속 답답했던 생각들도 물결처럼 씻겨 내려갔다.

늘 찾던 두부 맛집이 생각났다.

솔밭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두부 한 점에 마음을 눌러 담던 기억.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1인분은 안 됩니다.”


사장님의 말은 단호했고,

비어 있는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식당에 앉을 자격이 없었다.

말 그대로 ‘문전박대’였다.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으로 낙인찍히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을 데려와 소개했던 곳이던가.

그 말을 던지는 사장님의 표정에는 정은 없었고, 규정만 있었다.

나는 말없이 나왔다.

홀로는 선택받을 수 없다는 낙담과 괘씸함에

지금의 야박한 시대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허기를 넘는 마음의 공허함이 밀려왔다.


‘식당이 손님을 선택하는 시대가 왔구나...’


문득 어느 할머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밥집에 밥 먹으러 온 손님, 밥안주면 뭘 주냐.

밥 먹으러 온 손님, 절대 그냥 내쫓지 마라.”


하시던 당부의 말씀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무치게 들려왔다.


어느새 내 마음엔 분노, 서운함, 아픔이 한 데 엉켜 있었다.

정이 뚝 떨어져 컵라면이나 먹고 말까 싶었지만,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다른 식당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한 명이예요…”


조심스레 답하자, 사장님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원래 2인 이상부터 받긴 하는데, 자리가 있으니 괜찮아요.

반찬도 1인 기준으로 맞춰 드릴게요.”


그 말 한마디에 울컥했다.

밥보다 따뜻한 정이 먼저 다가왔다. 주문한 음식의 맛도 일품이었다.

두부의 고소함, 정갈한 반찬, 부담 없는 친절…

그 밥상에서 나는 위로받을 수 있었다.

이윤 추구보다 홀로 가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주는

‘정(情)의 문화’를 지켜가는 곳이 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진짜 원한 건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사람의 마음이었음을.


그때부터 나는 여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서 따뜻한 사람을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아름다운 풍경은 풍경이 종착지가 아니라

결국엔 아름다운 사람이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지 않을까.

그렇게 따뜻함을 경험한 뒤, 여행의 나머지를 천천히 걸으며 채워나갔다.


강릉 선교장에서(사진:개인소장)

허난설헌 생가의 다홍빛 작약이 햇살 아래 환히 피어 있었고,

고택을 감싸 안은 솔바람은 긴 숨을 쉬게 해 주었다.

이어 들른 선교장에선 오래된 오르간 연주가 흘러나왔다.

조용하고 웅장한 그 소리에 가슴 한쪽이 아릿해졌다.

혼자였지만, 그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실망과 모멸감으로 얼룩졌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저 밥 한 끼를 먹고 싶었던 여정이,

나를 돌보고 사람의 따뜻함을 다시 믿게 해주는 치유의 여정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마음을 여는 법, 다시 길을 걷는 법을 이 여행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을 준비가 되었다.


에필로그: 풍경은 마음을 따라 흐른다

이후로 나는 식당을 고를 때,

“1인 가능 여부”, “브레이크 타임”, “사장님의 말투”를 본다.

이제는 맛보다 따뜻함을 먼저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잘 만든 음식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품지 못하면 그저 배만 채울 뿐이기 때문이다.

내게 ‘언제든지 지나가다 밥 먹고 가.’라고 말해주는 친한 언니가 있다.

그 언니에게 더욱 큰 고마움을 느낀다.

그 한마디가 있어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풍경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그곳에 따뜻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여행은 길 위의 풍경보다

사람 안의 풍경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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