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루 옥수수에 담긴 마음 하나
*이 글은, 좋은 때 좋은 것을 나눌 줄 아시는 지인 분의 이야기를
1편(살구빛 마음을 나눈 날)과 2편으로 나누어 담은 기록입니다.
살구를 나누며 배운 마음의 온기.
그 따뜻함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전, 그분은 또다시
두 손 가득 마음을 안고 찾아오셨다.
이번에는,
잘 익은 흑찰옥수수 한 자루.
강원도 홍천.
그분의 친척 어르신께서 밭에서 갓 수확한 옥수수를
가마솥에 정성껏 삶아주셨다고 하셨다.
이 무더운 여름,
땡볕 아래 가마솥 앞에서 수고하셨을 생각을 하니
그저 받아먹는 것이 송구스럽고, 고마웠다.
게다가 주말이었고,
고속도로도 붐볐을 텐데
그 정성을 고스란히 품은 채
그 마음을 우리에게까지 나눠주시다니.
나는 또 한 번,
따뜻한 마음에 더한 감동을 건네받은 셈이었다.
옥수수는 무려 45개였다.
“이걸 다 어떻게 먹지?”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얼굴들이 있었다.
내게 마음을 전해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 마음을 건네고 싶어졌다.
그래서 옥수수를 한 봉지씩 나눠 담아
좋은 때 나눠 먹을 생각에 부지런히 전하기 시작했다.
“밭에서 딴 걸 바로 가마솥에 삶은 옥수수예요.
정말 쫄깃하고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고생하신 분들의 이야기도 함께 곁들였다.
그날,
누군가는 반가운 얼굴로 받았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옥수수를 먹으며
“이런 맛, 진짜 오랜만이네. 예전에 시골에서 먹던 맛이야.”
하며 웃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어르신 한 분은
옥수수를 잠깐 바라보시더니,
“요즘에도 흑찰옥수수가 나오네.
이 귀한 걸 나한테까지 줄 게 있어.
어유, 고마워서 어쩐데.”
하시며 아주 반가워하셨다.
그 웃음이 꼭,
옥수수 한 알 한 알에 스며든 여름 햇살 같았다.
따뜻하고, 오래 남는 미소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흑찰옥수수는 구워 먹으면 더 맛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남은 옥수수 몇 개를 꺼내 프라이팬을 달궜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옥수수.
그 특유의 고소한 향이 집 안 가득 퍼졌다.
잘 익은 옥수수에 구수한 불향이 더해지자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알갱이의 쫀득함과 풍성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톡톡 터졌다.
이 맛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눠 먹은 옥수수를 맛본 어떤 이는
너무 맛있다며 이렇게 물었다.
“혹시… 그 옥수수 주문도 받아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어떡하죠. 사실 그 옥수수는 파는 게 아니라,
식구들끼리 나눠 먹으려고 농사지으신 거래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그 물음이 주는 따뜻함이 오래 남았다.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그 마음을 또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는 진심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정성껏 삶은 옥수수 하나에는
그저 나누는 것 이상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나에게 도착한 마음은
그 자체로도 이미 귀하고 소중하지만
그 마음을 머무르게 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건넬 수 있을 때,
그 진심은 더 멀리, 더 깊이 퍼져간다는 것도.
살구에서 시작된 마음이
옥수수를 타고,
그리고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와 “맛있다”는 말들 사이로
조용히 흘러갔다.
아마 마음이라는 건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무르기보다,
머물다 또 흘러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씩 나누고,
따뜻하게 돌려주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 마음도
조금씩 익어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