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올해 아흔한 살이 되셨다.
그리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
엄마는 소심하고 비활동적이고
매우 까다로운 성품으로
평생 아버지께 의존적이었다.
두 분이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도 엄마는 모든 걸 아버지께 의존하셨고 그러면서도 불만이 많으셨다.
남자라면 모든 면에서 여자를 이끌어주고
울타리가 되어주는 든든한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셨다.
아버지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하셨으나
엄마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고,
돌이켜보면 그런 아버지가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엄마는 오십 대 중반에
류머티스 관절염을 얻으셨고
꾸준히 치료를 받은 덕택에 크게
악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늘 불편과 통증을 호소하셨고
정서적으로도 매우 예민해서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건강하셔서
팔십이 넘어서도 동네 야산에
텃밭을 가꾸셨고 말씀도 없으시고
감정표현도 거의 없는 분이셨다.
그러다 팔십 대 중반쯤 위암 수술을 받으셨고 잘 회복되시는 듯했으나
수술 후유증인지 가벼운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셨다.
귀도 어두워져서 보청기를 맞춰드렸지만 적응을 못하시고 점점 대화하려는 의지를 잃으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외출을 꺼려하셨고
집안에서만 생활하시게 되었다.
오전에는 장기요양보험에서 제공하는
요양보호사가 방문해서 아침식사를
챙겨 드리고 집안일을 도왔고,
근처에 사는 언니들이 병원 출입이나
그 밖에 불편한 일이 없도록
늘 살펴 드렸다.
그즈음부터 엄마는 자신이 아버지의
보호자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를 두고는 어디에도 가지 않으려 하셨고
귀가 어두운 아버지께 이런저런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그런 상태로 오륙 년이 지나면서
아버지도 점점 엄마를 의지하게 되었고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셨다.
그러다 안타깝게도 이년 전쯤
엄마에게도 알츠하이머가 찾아왔다.
그래도 엄마는 언제나 당신이 아버지보다 훨씬 멀쩡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셨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도 않았다.
작년 말, 한 달 정도의 입원생활 끝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병상에서 오래 고생하지 않고
편안히 가셔서 다행이라고 엄마를 위로했고
엄마도 담담히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셨다.
엄마는 지난달부터 치매노인을 돌봐주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여덟 시간씩,구십이 넘은 나이에
당신 생애에 있어서
거의 처음이자 가장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고 계신다.
열 명 남짓한 노인들과 함께 손뼉 치며
노래도 하시고 건강체조도 하시고,
까만 콩과 노란 콩을 구분해서
각각 다른 접시에 누가 누가 더 빨리 담을까,
그런 게임도 하신다.
물에 잠긴 종이에서 서서히 잉크가 빠져나가듯
엄마의 모든 기억이 흐려져 사라지는 것을
우리 형제들은 망연히 지켜보고 있다.
그래도 간신히 당신 자식들의 얼굴만은
아직 놓지 않고 붙잡고 계시다.
우리는 엄마가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회생활을 하시기를 응원하고 있다.
엄마, 우리를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