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교훈

by 읽는 인간

“숙고는 시간을 필요로 하고

결단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내린 결단 뿐 아니라 우리가 내리지 않은 결단도 장부에 기록해 둔다.”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단편

<다른 남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선택과 결단은 나에게 늘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다.

외식 메뉴의 선택이나 옷, 신발, 헤어스타일을 고르는 일, 직업이나 배우자를 고르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 중요성에 관계없이 다수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하는 일은 늘 즐거움이나 기대감보다는

내게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선택을 미루거나 회피하고 심지어 누군가 대신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위에 인용한 슐링크의 글은

나의 결정 장애를 심각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 선택을 두려워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음식이나 패션 선택이 어려운 건

이렇다 할 취향과 개성이 없어서이다.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막상 내가 정말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도 모르는 황당한 상황이다.

이쯤에서, 여태껏 내 취향이 어떠한지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그래서

내 취향을 알 필요도 없고

존중받아본 적도 없는

그런 삶을 살아온 게 아닐까하는

자괴감이 든다.


좀 더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의

선택이 두려운 것은

혹여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경우

그 결과에 직면할 용기가 없어서이다.

그래서 선택을 미루고 상황이나

시간의 흐름에 맡김으로써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해 보려는 것이다.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이건 내 선택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내 책임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비겁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선택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다른 무엇에

쥐어주는 것이다.

시간이나 우연 또는 타인에게.


내 삶이 더 이상 선택하지 않고

결단하지 않은 일로 채워지고

낭비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나의 기호와 취향을

확실히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도 해보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알아갈 것이다.

더 이상 결과, 또는 실패에 집중하지 않고

나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한 두 번의 심각한 실패가

곧 나의 정체성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선택에 따르는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결과가 성공적이었는지 여부는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실수에도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도

좀 더 관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햄릿은 지나치게 신중해서,

행동해야할 순간에

그 행동이 불러올지도 모를 모든

가능한 결과를 예측하고 괴로워했다.

우유부단함이 결국

그가 결단의 과정에서 심사숙고했던

모든 실패의 가능성을 합한 것보다

더 큰 비극적 종말을 초래했다.

우리가 햄릿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이다.


내 삶이 내가 결단하지 않은 일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결단했던 일에 의해 정의되고 규정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좀 덜 신중하고

조금은 단순하고 무모한 사람이 되어도

괜찮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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