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관하여

by 읽는 인간

몇 년 전, 아주 오랜만에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20대 중반까지 살았던 집에

가본 적이 있었다.

나는 옛날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고,

특별히 애틋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이 탓인지 언제부턴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먼저 초등학교에 갔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커다란 교문과 드넓은 운동장 대신

정말 아담한 운동장과 건물이

주말을 맞아 조용히 쉬고 있었다.

엉뚱한 곳으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고등학교로 향했다.


내가 기억하는 고등학교 앞 진입로는

사 차선 도로 정도의 넓이에

꽤 경사가 진 오르막길이었다.

책과 도시락으로 불룩한 가방을 들고

아침마다 힘겹게 올라가곤 했던

그 길도 오랜만에 가보니

진입로라고 할 것도 없는,

얼마 안 되는 거리의 좁은 길이었고

경사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학교 건물 뒤편에 있던

‘사색의 호수’라 부르던

조그만 연못은 언제 없앴는지

흔적도 없었고,

우리가 땡볕에 체력장 연습을 하고

제식훈련을 하던 운동장도

내 기억 속의 그것보다 훨씬 작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20년 가까이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은 버스가 다니는 대로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우리는 대로변에서 몇 번을 지나치고

유턴을 반복한 끝에,

간신히 그 골목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남편을 만난 건 그 집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한 후였지만

남편은 우리가 결혼한 후에 무슨 일인가로

그 집에 가본 적이 한 번 있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친정아버지와 함께

그 집에서 뭔가 가져올 것이 있어서

남편의 차를 타고 갔던 일이 생각났다.


골목길로 접어들어 왼쪽 편에 있던

우리 집을 찾으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기억과는 달리 그 골목길은

맞은편에서 다른 차가 오면

서로 비켜 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았다.

한겨울 차가운 맞바람을 맞으며

웅크리고 걸을 때나,

밤늦게 버스에서 내려 걸어갈 때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던 골목길이었다.


얼마쯤 갔을 때 남편은

우리가 집을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고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우선 골목길로 접어들어서 올라온 길이 불과 몇십 미터도 안 되었고,

왼쪽에는 우리 집과 비슷한 집도

없었다고 나는 반박했다.

그러나 남편은 차를 돌려

올라온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갔고,

잠시 후 어떤 집을 가리키며

저 집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가리킨 집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 기억 속의 그 집이 아니었다.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이

‘양옥집’이라고 부르던,

빨간 기와지붕에 외벽에는 타일을 붙인

나름 괜찮고 품위 있는 집이었다.

집의 측면으로 나있는 철제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있고

마당 오른쪽엔 작은 화단도 있었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열려 있는 대문으로 들여다본 그 집은

마당이랄 게 없이

대문을 들어서서 몇 걸음도 채 안 되는 곳에 건물이 있었고

석류나무와 앵두나무가 있었던

화단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마당이 좁아서 없앤 것 같았는데

저곳에 무슨 화단이 있었을까 싶게

좁고 변변치 않은 공간이었다.


아담하고 보기 좋던 옛집은

낡아서 함부로 기운 헌 옷처럼

무참할 정도로 초라했다.

좁은 골목길에

차를 마냥 세워둘 수도 없는 일이어서

우리는 곧바로 차를 타고 그 집을 떠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억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학교와 옛집과

내가 걸어 다녔던 길과 동네 모두가

내 기억과는 너무 달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초라했다.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삶과 세상을 겪고 늙어가는 사이에

세상의 외양이 비교할 수 없이

크고 화려해진 것이리라.

그리고 그에 따라 내 기억이 편집되고

재구성되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 20년의 추억과 함께 자리하고 있던

옛집의 쇠락한 모습을 보고

받은 충격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친정집 꿈을 꾸면,

어김없이 그 무대는 아파트가 아니고,

떠난 지 삼십 년도 더 된 그 단독 주택이다.

거기에는,

초록색 철제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있고,

마당 오른쪽의 둥근 화단에는

한가운데 키 큰 석류나무와

그 옆에 작은 앵두나무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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