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미역국

by 읽는 인간

결혼 후 친정에 가면 가장 좋은 점이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혼 전에는 엄마의 음식이 그저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친정을 떠나

따로 살게 되면서

같은 음식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주부가 되고 음식을 만들면서,

한 끼의 끼니를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번거롭고 수고로운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내 손으로 준비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이 거의 횡재라도 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결혼 후에 먹는 엄마 음식은

뭐든 새삼스럽게 맛이 있어서

친정에 갈 때마다 아주 천천히 음식을 음미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입이 짧고

소화 기능이 좋지 않아 식욕이 없었고

비쩍 말라서 엄마의 걱정거리였다.

그런 내가 갑자기 식탐을 하자,

남동생은 친정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나를 놀리곤 했다.

왜 결혼하더니 갑자기 저렇게 많이 먹느냐,

제일 많이 먹고 제일 오래 먹는다,

여기 와서 많이 먹으려고 집에서

굶고 오는 거 아니냐 등등.


이제 친정에 가도 더는

엄마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엄마는

집안일에서 손을 떼셨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로 식구들이 모이면

엄마를 대신해서 주로 언니들이 음식을 하고

내가 설거지를 하고 보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 언니들의 음식이

또 그렇게 맛있다.

그래서 동생의 놀림에도 굴하지 않고

지금도 친정에 가면

제일 늦게까지 밥상을 지킨다.


지난가을 친정에 갔을 때 큰언니가

홍합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조개류를 싫어해서

나는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이었다.

미역국은 당연히 소고기를 넣고

끓이는 건 줄 알았다.

처음 먹어본 홍합 미역국은 감동 그 자체였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심심하고

부드럽고 은은한 맛이었다.

소고기미역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고기의 고소하고 진한 감칠맛과는 달리 살짝 달착지근한 맛과

엷은 바다 냄새가

미역과 어울려서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맵고 짜고 단 음식에 무뎌진

섬세한 미각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랄까.

김치나 다른 반찬이

미역국의 풍미를 해칠까 봐

나는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고

미역국과 밥만 먹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만 내리 보다가

소박하고 섬세하고 잔잔한

독립영화에 반한 느낌이랄까?


언니에게 레시피를 얻어서 가끔

홍합 미역국을 끓인다.

다른 식구들은 먹지 않기 때문에

냉장고에 넣어 두고 나 혼자

아껴가며 먹는다.

먹으면서 생각한다.

언젠가는 저 남자 중생들도,

기름이 둥둥 뜬 소고기미역국이 아닌

홍합 미역국의 수준 높은 맛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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