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는 가사도우미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요리와 청소일을 하고,
그 대가로 담배를 사고,
일을 끝내고 저녁 무렵 늘 가는 바에서
조용히 위스키 한잔을 음미하고
남자친구인 한솔과 함께 있으면
그녀는 행복하다.
부유함이나 안락함 따위를
욕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담배값이 오르고
위스키값이 오르고
세 들어 살던 방의 월세마저 오르고,
돈에 쪼들리던 한솔이
해외 근무를 떠나면서
그녀의 소박한 행복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담배도 위스키도 포기할 수 없는 그녀는
결국 방을 포기하고
한겨울의 추위 속에 거리로 나와,
잠자리를 위해 옛 친구들의 집을 전전한다.
그러다 더 이상 찾아갈 곳이 없게 되자
핸드폰도 끊긴 채
한강변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게 된다.
겨울을 대비하지 않고
소소한 삶의 여유를 즐긴 결과이다.
생필품 대신 기호품을 선택한 대가이다.
과연 담배와 위스키가 주는 행복감이
당장의 주거 불안과 불편을
상쇄할 만큼 큰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평가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는 그녀는
정말 자유로울까?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거의 강박적이고 습관적인
우월감과 열등감이 교차하는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미소는 분명 소박하고 남다른 가치관을 가진 자족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가 살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팽창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는 듯
미친 듯 달려가고 있는 고도의 자본주의사회이다.
소박한 현재에 만족하고
제자리에 머무는 삶은
허락되지 않는다.
담배값도 위스키값도 월세도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야금야금 오르며
미소의 소박한 일상을 위협하고
생존마저 위태롭게 한다.
전에 어느 책에선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일이 있다.
그것은 돈, 타인의 시선, 미래였다.
‘카르페 디엠’과 결이 비슷한 이야기이다.
미소의 삶이야말로
현재와 자신에 충실하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지 않는
소박한 삶이 아닌가?
그런데 그녀의 삶이 과연 행복할까를
의심하는 것은
너무 속물적인 시각일까?
최소한의 의식주가 해결되고
안전과 자유가 확보되어야
행복을 논할 수 있지 않을까?
돈에 대한 많은 정의들 중
도스토예프스키의
"화폐는 주조된 자유이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돈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자유,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유 등, 온갖 선택의 자유를 제공해 준다.
지나친 가난은 불편하고
인간의 존엄을 모욕하고 구속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스크린에는
한강변에 세워진 작은 텐트가
어둠 속에서 홀로
주황빛으로 빛나는 모습을
롱샷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부를 욕망하지도
가난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미소에 대한
자본주의의 엄중한 경고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
언뜻 보면 부서지기 쉽지만
동시에 뭔가 넉넉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계란 한 판'같은 미소의 이미지와 겹친다.
춥고 쓸쓸하고 취약하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동시에
홀로 어두운 세상을 향해
온기와 작은 용기와 신뢰를
송신하고 있는 미소.
부디 그녀가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사고를 당하지도 않고
아사하거나 동사하지 않고
무사히 겨울을 살아남아
한솔과 재회하기를 빈다.
병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비교하고 관심을 갈구하고
그래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sns 중독자들에게 한 번쯤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