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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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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Dec 21. 2024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빌헬름 텔>을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5분 만에 끝내버렸고
더 많은 내용을 기대했던 선생님은
작품에 대해 더 말해볼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고
<빌헬름 텔>은 정치적 암살과 개인적인 테러행위를 미화하는 작품이라고 비판한다.
그 학생의 발표는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사십 분 넘게 이어진다.
지금으로부터 85년 전쯤,
독일의 한 김나지움의 독일어 시간에
일어난 일이고
발표한 학생은
<나의 인생>의 저자인 폴란드의 유명 문학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1,2학년
국어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작가의 비범함보다,
한국이라면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박사과정 세미나 수업에서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교실의 모습이
놀랍다 못해
믿기 힘들 정도이다.
그리고 무기력하고 일방적인
한국의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부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무조건 토론식 수업이
주입식 수업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학원 수업을 받느라 부족한 잠을
학교 수업 시간에 보충하거나,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잠을 쫓으며
수업을 견디고 있는
한국의 고등학교 교실보다,
85년 전 나치 치하의 독일 교실이
훨씬 행복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사십여 년 전에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때의 학교 모습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수업을 받고
밤 열 시까지 자율학습을 했다.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 수업을 받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우리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다닐 무렵이면
학교가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 견물이나 급식시설,
교육기자재 등의 하드웨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지만
수업 방법이나 교실의 모습은
큰 변화가 없었다.
게다가 사교육이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되면서
아이들의 부담은
배가되었다.
한국 청소년들의 ‘주관적인 행복지수’는 안타깝게도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꽤 오래 전부터
입시 지향적인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과 부작용에 관한
담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대적 교육철학에 입각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고
변화가 모색되었다.
교사중심의 수업에서 학생중심의 수업, 수행평가의 도입,
봉사활동과 방과후수업,
자유학기제,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의 전환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좋은 취지의 제도도
그저 입시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 갔을 뿐 우리의 교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전에 어느 때보다 치열하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더없이 무기력한,
입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유예하는 전쟁터,
그것이 현재 한국 고등학교 교실의 실상이다.
교육이 바뀌려면
먼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학벌사회이다.
좋은 학벌을 가진 엘리트들이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쳐
양심과 양식을 저버리는 모습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하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과 상식조차 무력화한다.
부모들이 자신들의 노후를 희생하면서까지 사교육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사회적 안전망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자신의 아이들이
법과 상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빚이라도 내야 하는 것이다.
사회 지도층이 특권이 아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살천하고,
학력에 따른 소득 격차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해소되고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
사회가 달라지고 교실도 달라져서
아이들이 점수와 입시의
족쇄에서 벗어나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개성을 표출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배움을 즐기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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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서사중독자입니다. 소소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쓰면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며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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