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아멜리 노통브 <오후 네 시>

by 읽는 인간

OTT에서 영화 검색을 하다가 새로 올라온 <오후 네 시>라는 제목의 한국영화를 발견했다. 영화를 본 적은 없는데 왠지 제목이 낯이 익다. 책장을 둘러보니 아멜리 노통브가 쓴 같은 제목의 소설책이 있다. 노통브의 작품 중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소설책을 손에 잡으면 워낙 허겁지겁 읽어치우는 탓에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서서히 삭제되는 책이 대부분이다. 그런 내가 <오후 네 시>라는 제목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노통브의 작품과의 첫 만남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쯤 읽은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로 기발한 아이디어와 해학이 가득한 독특한 작품이다. 그 신선함에 매료되어 노통브의 작품을 대여섯 권쯤 내리읽으며 그 천재성에 감탄했고, 젊은 나이에 그렇게 개성 있는 작품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에 질투인지 선망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오후 네 시>는 은퇴 후 시골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고 하는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와, 이웃인 의사 베르나르댕과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에밀과 쥘리에트는 완벽하고 아름답고 이상적인 커플이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 이외의 다른 사람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일과 사람들, 사교생활 등 속세의 모든 것들이 그들에겐 번거로운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들은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한다. 라틴어 교사였던 에밀이 퇴직하고 조용한 시골에 집을 얻으면서 드디어 그들의 오랜 꿈이 실현된다.

그들은 모든 것, 일, 타인들, 사회, 세상의 온갖 소음들로부터 해방되어 그들만의 에덴동산에서 조용한 평화와 행복을 만끽한다.


그렇게 완벽한 일주일이 지난 후에, 마을의 유일한 이웃인

의사 베르나르댕이 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마치 그럴 권리가 있다는 듯,

매일 정확히 오후 네 시에 그들을 찾아와 두 시간을 머물다 돌아간다.

예의를 갖추지도 않고, 대화할 의지도 없고, 에밀의 어떤 질문에도

무례할 정도로 뜸을 들인 후, 불쾌하고 귀찮다는 듯 오로지 ‘그렇소’

또는 ‘아니요’로만 답하며 소파를 차지하고 앉아있을 뿐이다.

그의 방문은 곧 부부에게 고문이나 다름없는 고통이 되어 그들의 삶을 온통 지배하고,

부부의 행복한 일상은 파괴된다.

그 과정에서 부부는 이 불청객이

고의로 자신들을 괴롭히는 고약한 침입자라고 생각한다.

그를 무례하고 무감각하고 둔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함부로 판단하고,

그를 혐오하고 조롱하고 그의 삶을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실상 그는 혼자서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뚱뚱하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아내와 살고 있는 외로운 노인일 뿐이다. 그의 삶은 타인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킬 여력이 없을 만큼 절망과 무기력에 빠진 공허 그 자체이다.

에밀과 쥘리에트는 자신들은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교양 있는 지성인이라는

우월감과 자만심에 사로잡혀 베르나르댕에 대한 맹렬한 증오심을 키워간다.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자면 '타인은 지옥'인 상태에 갇히고 만 것이다.


그러다 에밀은 결국 베르나르댕을 향한 분노를 폭발시키고

그를 거칠게 밀쳐 쫓아낸다.

이를 계기로 에밀은 지난 66년 간 자신이라고 믿어왔던(친절하고 교양 있고 예의 바른) 그 사람과 작별한다.

이제 그는 누구 못지않게 거칠고 무례하고 상스러운 사람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에밀은 상대가 삶에 지치고 절망해 자신에게 죽여주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결국 그를 살해하고 만다.


우리는 살다 보면 숨어있던 자아와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다.

우리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분노로 이성을 잃거나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

또는 궁지에 몰리거나 복수심에 타오를 때,

얄팍한 피부 밑에 잠복해 있던(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낯선 어떤 것이 튀어나온다.

그것은 치졸한 겁쟁이일 수도 있고

얄팍한 이기주의자일 수도 있고

성마른 분노조절장애자일 수도 있다.

나의 내면에 얼마나 다양한 자아가 겹겹이 숨어있는지

결정적인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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