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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May 19. 2023

당신은 어떤 밥인가?

라면국물과 덮밥

어쩌다 보니 수업이 빨리 끝났다.

저녁을 무엇을 먹을 지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집밥을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전기 먹는 하마 취급 당하느라 전기 코드가 사정없이 뽑혀져 있는 밥솥을 열어보니, 딱 찬밥 한 그릇 분량이 있었다. 이것도 집밥이지 뭐 하는 생각에 데우지도 않고 그냥 먹기 시작했다.


귀가한 남편이 " 그 찬밥을 먹은 거야?"하는 말에 순간 자신에게 연민이 들었다. 일 끝나고 먹은 것이 겨우 '찬밥'이라는 생각에 머물렀다.  '찬밥'의 어감은 안 좋은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찬밥 신세'는 찌그러지고 주눅들고 아싸가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니깐. 하지만 찬밥이 환영 받을 때도 있다. 바로 라면 먹을 때다. 라면 국물엔 찬밥이 제격이다. 따뜻한 밥은 비추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제일 관심있게 본 것은 친구 관계였다. 아이가 순한 성격이라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왕따' '괴롭힘' 문제에 민감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A라는 친구와 친해졌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사이가 틀어졌는지,  A는 툭툭 건드리며 장난 반, 괴롭힘 반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화부터 났다. A가 아니라 아들에게 화가 났다.


"너한테 장난을 쳐도 가만히 있으니깐 더 그러는 거잖아. 하.지.마. 라고 단호하게 말을 해야지!'


"하지마" "싫어"라는 말을 연습까지 시켰다. 아이의 상처 받았을 마음보다 그런 말을 못하고 있는 아이가 답답하다고 생각했고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화도 났었다. 그 때를 문득 생각하니 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좀 더 상처받은 마음을 먼저 알아줄 껄 하는 후회가 몰려온다.


나는 아들들에게 '라면 국물'이 되어 주고 싶다. 아들들이 인생에서 '찬밥 신세'가 되어서 돌아 올 때 마다 '따뜻한 라면 국물'이고 싶다.



수업하는 제자들에게는 '덮밥'이 되고 싶다.


아이들이 상담을 오면, 특히 엄마와 함께 왔을 때는 더 챙겨서 묻는 말이 있다.

"수학이라는 학문을 어떻게 생각해?"

수학이라는 과목에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보면 아이의 '공부 상처'를 느낄 수 있다. 이제껏 얼마나 공부에 대한 상처를 받았는지.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인지 그것부터 알아야 했다.


'수학 상처'는 '공부 상처'로 연결이 많이 되는 편이다.


'수학 상처'의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마냥 감싸줄 수는 없다. 그 이유를 아이 앞에 까발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주로 잘못된 공부 습관을 가지고 있고 여러번 번복해주지만 고치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는 경우이다. 그래서 팩트 폭격을 많이 한다.


수학을 싫어하는 지금의 모습, 그래서 어떻게 해야될지, 싫어함에도 왜 해야되는지를 오픈시켜 놓아야된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너의 상처를 감싸주기만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발전이란 것은 없으니 말이다.


덮밥에는 밥이라는 한 주제 위에 고기, 카레, 돈카츠 등의 다양함이 있다. 상처를 다 뿜어내고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서 "학창시절 수학, 힘들었지만 열심히 했어"라고 생각하며 십대의 수학을 마쳤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가 준 밥이라는 원동력 위에 누구는 고기덮밥으로, 누구는 카레 덮밥으로, 누구는 비빔밥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그런 '덮밥'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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