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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Jul 16. 2023

짱나는악마탕탕수학쌤

왜 과제를 덜 해올까?


A는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한 번씩 머리를 뒤로 탁 젖히며 머리카락을 휙 넘길 때만, 아이 눈의 매무새가 살짝 보일 뿐이다. 귀엽고 멋있긴 하다. 내가 준 과제도 저렇게 멋있게 풀어오면 좋으련만. 눈은 안 마주쳐도 고개 숙인 정수리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숙제, 그런 게 뭐냐는 느낌이다.      


수업 1시간 전, 오늘도 톡이 울린다.

두통이 있어서 과제를 다 못했어요

과제를 못했다는 알림은 참으로 제깍 제깍 보낸다. 야단을 조금이라도 면해보겠다는 심산인 건지, 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자기만의 이유인 건지 알 수가 없다.  내 눈엔 자기 합리화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A의 문제집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반짝하고 빛나는 무언가가 A의  손가락을 감싸고 있다.  처음 보는 은색의 민무늬 반지가 손가락에서 빛을 발산하고 있다.

 " 어머 이건 뭐야? "

혹시 커플링? 여자 친구이라도 생긴 건가? 여자 친구이라.. 음.. 공부는 더 안 하겠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질문을 하고도 속으로는 모든 상황이 그 '숙제'에 꽂힌다. 나는 사교육 선생, 어쩔 수 없다.

"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황급히 손가락에서 반지를 뺀다. 아니 이 녀석  왜 이리 당황하는 거지?


여자 친구는 없다는 A의 엄마 말을 듣고 나서 조금의 안도감이 밀려왔다.  자신의 외모를  멋있게 꾸미고 싶은 가보다. 반지, 멋 내기로 기르고 있는 앞머리, 교복 소매를 정갈하게 접어 올린 매무새,  자신의 외모와는 다르게 수학을 잘해서 자기를 뽐내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일까. 수학적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이의 표정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게 된다.

시험은 다가오는데 매번 과제를 찔끔찔끔 덜해오다 못해 게으름이 한껏 도를 지나쳐 연필을 갖다 댄 흔적이 거의 없다. A는 3주 동안 55문제 밖에 풀지 않은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는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가슴팍에서 불꽃이 화르륵 일어나더니, 천천히 과제물을 집어 사정없이 바닥으로 패대기친다. 탁. 촤르륵. 출제자만 있지 풀었는 자의 흔적은 없는 과제는 이미 의미 없는 수식들이 되어 버리고 과제물들은 바닥에 배를  까디비고 누워있다. 배 속 저 밑에서부터 끌어올려낸 굵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소리를 지른다. “야!!! 또 과제를 덜 한 거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너는 내가 우습냐? 우스워? 묻고 있잖아!”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교실이 떠나갈 듯이 소리치고 윽박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에니어그램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얻고,  나는 이미 상담자이지 않던가. 상담자의 시선으로 아이를 본다.


열두 살에 처음 만나 6년이 지난 시간 동안 아이를 지켜봐 왔다. 이미 코밑으로 거뭇거뭇 수염이 돋아 올라와야 하겠지만, 수염은 솜털 수준이다. 동글동글하고 선한 눈 밑으로 볼록하고 폭신한 볼살이 이어져 있다. 볼살을 쪼물쪼물 건드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이다. 내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A와의 메신저에는 오늘도 과제를 덜 했다는 문장이 짤막한 이유와 함께 적혀있다.



아이는 왜 과제를 해 오지 않는 것일까? 과제를 덜 했다는 문자는 왜 이리 꼬박꼬박 주고 있는 것일까?


" 과제를 너무 많이 주신다니까. 다른 애들에 비해서 너무 많이 준다고! 어차피 다 못해갈 게 뻔한데 굳이 애써서 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차라리 과제를 안 하려고"


A의 엄마가 전달한 내용으로  짐작해 본다.  어쩌면 A는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렬한 아이일 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성취할 때 만이 자신의 가치가 상승한다고 믿으며 그러한 부분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어 한다.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렬하지만 목표를 이루어내지 못한 경험은 자신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고 그러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게으름과 나태를 불러왔을 것이다. 과제를 못했을 때마다 보내는 메시지도 자신의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에서 일테다.

 



'짱나는악마탕탕수학쌤'


우연히 보게 된  A의 핸드폰에 저장된 나의 닉네임이었다. 나만 못마땅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서로를 이해 못 했으리라. 내게 상식이라고 해서 A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 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사적인 교육 방침이 있다 하지만,  

'기준' 앞에는 '사람'이 있다.  


A와 나는 대화를 했다. 어쨌든 나는 사교육자인지라 발등에 불 떨어진 '시험'의 불을 꺼야 한다. A의 생각을 이해하고 나의 입장도 이야기하고 우리는 숙제분량에 대한 양을 정했다.  그렇게 손뼉을 한 번 쳐보기로 했다.


에니어그램 상담 공부는,  함께 하고 있지만 안갯속처럼 흐릿하고 꽉 막혀 있었던 우리 관계의 답답함을 조금은 걷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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