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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라면을 끓였다

by 테두리e

어느 밤, 라면을 끓였다.



어느 밤, 라면을 끓였다.

텔레비전 가득

빠알간 국물에 진탕 빠져 허우적대는 라면을 보다가
화면을 뚫고 나온 보글보글 소리는

온 집 안을 홀린다.


하루 중, 최고의 위기가 왔다.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먹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거라면... 어떨까
무탈한 하루 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니다.

야식으로 라면이란
행여 소화가 안될까

아침이면 얼굴이 허연 수국 같을까
MSG의 습격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 할 지도



그런 잠깐의 일탈로 설레임을 느낄 수 있다면
긴 세월을 버틸 수 있는 무언가의 좋은 기억이 있다면



기다린다, 겨우내도록
벚꽃은 만개했다.

남쪽에서 부터 꽃바람을 일으키더니
동네 어귀에, 굽이 굽이 도로에.
1년에 고작 3주

봄비가 시도때도 없이 흩날리면

그나마 그 시간도 못 즐길
그것도 모자라 꽃망울을 퍼뜨리기 전 부터

노래로 예찬을 하는

그 짧은 벚꽃의 시간과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하는 건


그 좋았던 기억을 약간 가지고

힘들 수 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티는 것
사는 게 그런 건가
잠들기 전,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이

야식으로 먹는 라면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충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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