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망상, 캠핑장의 낭만은 있으나 잠자리가 불편한 현실과 마주해서인지, 몸 한번 움직일 때마다 모든 뼈마디가 제각각 움직이는 것 같다. 아구구, 아이고아이고, 앉았다 일어나면 앓는 소리가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흐린 날씨, 짙누르는 저기압의 공기, 중력을 못 이기고 무너지는 눈꺼풀.
울진 덕구 온천으로 가는 길에 어느 해변가를 들렀다. 아무리 비가 와도, BTS의 '버터' 앨범 재킷 촬영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주 한산한 해변가, 비가 오지 않았다면 저 파라솔에 누운 한 컷을 찍으려고 했건만 기회는 통으로 날아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파라솔 사진만 남겨본다. 울진을 향해가는 길에서 그들의 곡 '블랙 스완'을 반복하며 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블랙 스완(Black swan)'은 검은 백조를 가리킨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나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어떤 상상'이라는 의미의 은유적 표현으로 서양에서 오래전부터 써 온 표현이다. 백조라는 단어가 이미 하얀(白, 흰 백) 의미를 갖고 있는데, 여기에 검은(黑, 검을 흑) 의미를 덧붙이면 모순이 된다.
이 곡의 해석은 '음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정으로 알게 된 예술가로서의 고백을 성숙하고 자전적인 가사를 통해 전달한다"이다.
왜 제목이 블랙 스완일까?
'검은'&'백조'가 어우러진 그 모순에 집중하게 된다.
심장이 뛰지 않는대
더는 음악을 들을 때
내 가슴을 더 떨리게 못 한다면
어쩜 이렇게 한번 죽겠지 아마
이게 나를 더 못 울린다면
어떤 노래도 와닿지 못해
소리 없는 소릴 질러
블랙스완의 가사 중에서
음악이 그들로 하여금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지만, 음악을 듣고도 더 이상 가슴이 떨리지 않게 되는 모순의 상황이 그들은 더 두려웠던 것일까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매일 글을 쓰며 몸부림치고 있지만 어느 날은 문장이 딱 맞게 쓰이지 않는 날도 있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을까. 안 쓰면 그만일 텐데. 생업도 바쁜데 말이다. 글 발행을 게을리하다 보면 브런치는 어김없이 꾸준히 하라는 알림을 준다.
글 발행을 하지 않으면 정체 모를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말이다. 숙제를 놓친 거 마냥 어떤 글을 쓸까 다시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어 무척이나 의아스러워진다.
문득 떠올려보면 제일 겁이 나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쓰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지 않고, 글을 쓰면서 도파민이 샘솟지 않는 순간을 맞닥뜨리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작업은 늘 이런 '모순'과의 전쟁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존재하게끔 끌어내어야 하는 어떤 상상과의 결과물 같은 것이다. 어쩌면 이 작업은 '모순'이 곧 버텨내는 힘이며, 순간순간 느꼈다가 또 극복해내기를 반복하는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