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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Oct 18. 2023

인생은 쪽팔림의 역사

수치심에 대하여

고등학교 때 나는 이과반이었다.  기억 속 그날은 중간고사 시험을 치고 맞이하는 첫 화학시간이었다. 화학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생물이나 지구과학처럼 모조리 외워 삼켜야 하는 과목보다는 매력적이었다.


지휘봉과 화학책, 출석부를 들고 화학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오셨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흰색 와이셔츠,  짙은 넥타이와 회색 정장 바지를 자주 입었던 선생님은 고리타분하고 자칫 따분하기 쉬운 화학이라는 과목을 더 따분하게 만드시는 재주가 있으셨다. 그렇지만 집중해서 듣기로 마음먹었다면 꽤 훌륭한 개념 설명을 할 줄 아시는 분이었다.


선생님은 들어오시자마자, 시험지의 문제 1번부터 아이들을 무작위로 불러내어 풀고 설명을 시키셨다. 아주 갑자기.

내가 틀린 번호는 문제 4번이었고, 제발 '4번'만은 내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바라며 가슴은 두 근 방 세근방 뛰기 시작했다. 콩닥콩닥 뛰던 심장은 급기야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불행한 예감은 늘 맞다고 누가 말했던가. 4번 문제에 그대로 꽂아 박힌 듯 내 출석번호가 불렸고, 나는 의자를 밀며 기운 없이 일어났다. 천천히 교탁 앞 칠판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풀었더라... 생각을 해봐... 아니 풀 수 있는 사람이 나오게 해서 풀리도록 해야지..!!! 무작위로 불러내고 있냐고!!... 천둥 같은 소리들이 내 머리 위에서 울리는 사이 어느덧 칠판이  코 앞에 와닿아 있었다.  분필을 들긴 들었다. 몇 글자 쓰는 듯 마는 듯했다.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은 이제 아우성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해졌다. 진공 속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분필도 내려놓은 채, 칠판 앞에서 푹 고개를 떨군 채, 왼쪽 옆에서는 선생님의 시선을 받으며, 등 뒤로는 아이들의 측은한 동정심을 느끼며 그렇게 마냥 서 있었다. 등줄기로 땀이 바짝 났다. 보다 못한 한 아이가 조그마한 종이쪽지에 문제를 풀었으리라. 선생님이 잠깐 안 보이는 사이, 그 종이쪽지는 앞으로 전해지고 전해져 칠판 앞, 숨죽여있는  내게 전해졌다. 나는 겨우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화학 선생님이 내게 큰 야단을 친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투덜거림이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그 순간 내가 느낀 '수치심'이었다.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발가 벗겨진 느낌이었다. 나는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 4번 문제 말고도 맞춘 문제는 많다는 것이다. 하필 틀린 문제에 딱 재수 없게 걸렸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학창 시절 많은 일들 중, 화학 교실 속 그 찰나의 내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일을 경험으로 여러 명이 보는 가운데 조금의 언짢은 이야기를 듣거나 지적받는 것이 늘 수치스러웠다. 어딘 가에 속시원히 틀어 놓지도 못했다. 그래서 더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준비물을 빠트려서 야단맞지 않기 위해 책가방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는 강박증 같은 습관도 생겼다.


완벽증으로 덮으려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종해야 하며 내 기준에서 모든 것이 흘러가야 하는 '완벽주의'는 나의 수치심을  커버하려고 한 최상의 도구였다.



'쪽팔려'


말이라도 내뱉었더라면 좀 나아졌을까

인생은 결국 쪽팔림의 연속이 아니던가

쪽팔리면 좀 어떤가. 하나를 넘어서면 다른 쪽팔림이 또 도사리고 있는 것을.


뭐 그냥 쪽 팔리면 쪽 팔리는 대로 사는 거지.
인간사가 원래 쪽팔림의 역사야.

태어나는 순간부터 쪽팔려
빨가벗고 태어나

                염창희 (이민기) 대사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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