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코 앞에 둔 캠퍼스는 스산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햇빛은 교정 곳곳에 쏟아지고 있지만 앙상한 나뭇가지만 부끄럽게 비추고 있고, 건물들은 회색빛을 더욱 발산하여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런 교정에서 유독 북적대는 곳이 있었으니, 건물들을 헤집고 가장 구석에 있는 '기숙사'였다.
남자 기숙사임에도 불구하고 몰래 들어갔다. 아담한 2인실 침대와, 책상 2개, 베란다의 작은 냉장고. 이불 커버와 책상 위 물품을 정리하고 있으니 아들에게 무언가를 주문하고 있는 남편의 목소리가 연신 들린다.
" 공유기 어떻게 사용하는지 살펴봐. 공유기가 어디 있을 텐데. 왼쪽 침대가 나으려나 오른쪽 침대가 나으려나. 먼저 온 사람이 임자야, 왼쪽 꺼해!. 침대 밑에 이 꼬부랑 털!! 우리 아들 있는 곳이라 내가 청소한다!"
그러더니, 남편은 침대를 옮기고 무릎을 굽혀 많은 꼬부랑털을 닦아내며 투덜투덜 한다.
둘째 아들이자 막둥이는 지난해 대학생이 되었다. 제주대학교에 입학하여 개강 전에 기숙사에 함께 들렀다. 1박 2일의 시간으로 내려갔다. 첫째 날 밤에 아들은 혼자 기숙사에서 자겠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 거리이지만, 처음으로 혼자 독립하는 아이가 걱정이 되고 불안한 마음인데 아들은 기대가 되는 것일까. 혼자 기숙사 방에 자겠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이튿날, 기숙사에 들러 작별을 고했다. 아들은 창문을 통해 차 안으로 삐죽이 머리를 들이 밀어준다. 밤톨 같은 머리를 쓰다듬고 매끈한 등을 팔로 감았다.
"잘 지내, 아들. 자주 연락하고"
흰색 스웨트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아들은 아직 고등학생 같은 앳된 미소를 보낸다.
큰 아들이 집을 떠났을 때는 그리 허전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기도 했고, 둘째 아들이 고등학생 때라 아직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둘째 아들까지 학업으로 집을 떠나고 나니 '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왔다. 일상을 똑같이 해내고 모임에도 나가고, 일도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마음 한편은 허전했다. 자식이 성장하여 나가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지만 심리적 상실감은 어쩔 수 없었다. '오후 4시의 엔도르핀'이 되어주던 아들의 현관문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말이다.
어떻게 상실감을 극복했을까
처음에는 상실감으로 물건을 구매했다. 예쁜 옷도 사 모으고 화장품도 택배로 받아보고 했지만 그런 부분에서 얻어지는 마음의 위안은 일시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낭독 모임과 새롭게 시작한 글쓰기 모임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책과 글쓰기로 서로를 위로하는 모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바탕 말로 쏟아내고, 글로 쏟아내고, 서로 공감하다 돌아오면 적막한 집의 분위기가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빈 둥지 증후군, 그 상실감, 진솔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만큼 잘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들은 입학하고 2주째, 여자친구가 생겼다. 1학기에 한 번 집에 올까 말까 했다. 그것도, 오라고, 제발 오라고 얘기를 해야 들르는 정도였다. 아름다운 제주 해변에서 사계절을 여행 같은 사랑을 했으리라. 1년 뒤 여자친구와 헤어졌지만 그 또한 많은 인생의 경험치가 되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이틀 뒤면 아들의 훈련소 퇴소식이다. 훈련소 생활을 보내고 자대 배치를 받기 전에 잠시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고 하니 기분이 들뜨고 꿈만 같다.
그때의 나에게 다시 말해 주고 싶다. 내가 아들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구나.. 감정을 누르려 하지 말고 허용하고 무거운 추가 매달린 듯 축 늘어져도 내가 나를 보듬어 주고 오롯이 그대로 느끼라고. 돌이켜보니, 감사하게도 극복하려고 했던 여러 시간들이 또 다른 풍요로움과 위안을 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