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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Oct 25. 2023

수학 문제는 '무아'의 행복

행복에 대해


아침부터 옷장 앞을 기웃거렸다. 이 옷을 꺼냈다 저 옷을 꺼냈다 즐거운 고민을 하는 순간이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나가볼까.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시험 준비로 정신없이 달려오다 중간고사 중 딱 하루가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쉬어가는 하루,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 이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 교보 문고를 가기로 했다. 교보 문고에 들러 하루 종일 책 구경을 하고 책을 읽는 것이다.


​​교보 문고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은 벌렁벌렁 거리고 눈빛은 반짝반짝 거리며 이 책도 들었다, 저 책도 들었다, 읽고 싶은 책 투성이에 몸 구석구석으로 엔도르핀이 밀려왔다. 가슴 뛰는 나를 발견할 때의 희열감이란 발견의 미학을 곧장 느끼는 순간이던가.


​​책은 재미로 이끌어 준다.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는 항상 수십 권의 책이 결재를 기다리고 있고 집안 여기저기에는 읽지


않은 책이 숙제 마냥 쌓여있으며, 이미 다 읽은 책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구석에 놓여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도 집에 가서 책이 읽고 싶어 시계만 쳐다볼 때도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은 어김없이 책을 든다.


​이런 나를 보고 아들은 눈을 흘긴다


"그전 책은 다 읽었어? 다 읽지도 않고 또 주문한 거야? "


아들 눈치를 보는 척 하지만 책은 또 주문되고 택배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미학을 즐긴다. 지름신이 책에 꽂혔다고나 할까.



'몰입'과 '좋아함'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좋아함'은 특정한 것을 즐겁고 재미있게 하는 상태이며 '몰입'은 깊이 파고들거나 빠지는 상태이다. 좋아함이 감정의 힐링 같은 상태라면 몰입은 세상에 '그것'과 '나'만이 오로지 존재하는 경지라는 것이다.


​일에 비유하자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면 그것은 한정적인 것에 반해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에 가치를 두며 행복을 추구한다면 행복의 양은 무한정 늘어난다.


​궁극적인 결과를 본다면 몰입의 결과는 행복의 경지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힘을 준다.


​몇 해 전까지 내게 몰입이라는 것은 없었다. 직장 내에서 테니스를 많이 치길래 잠깐 배웠지만 언제 일취월장을 할지 암담하여 그만두었고, 한 때는 퀼트 제품들이 너무 예뻐, 가지고 싶은 마음에 퀼트에 도전해 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다 지쳤다. 눈도 아프고 자세도 힘들고 숙제처럼 놓여있는 그것들이 부담스러웠다. 물에 대한 두려움 극복을 위해 동네 지인을 따라 수영을 배우러 갔지만, 일주일 다니고 그만두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과히 '호기심 천국'이었다.


​수십 년째 한 가지 취미 활동에 몰입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텔레비전과의 친밀함 조차도 콘텐츠의 식상함이 느껴져 습관처럼 그냥 틀어두는 가마 떼기처럼 별 감흥이 없었다.


​돌아 돌아보니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했던 지난한 그 투쟁의 역사가 있었으니, 그 시간을 지나 우연히 '책'이라는 대상을 찾았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보는 세상이 참으로 재미있다고 그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내 기분을 이렇게 찰떡으로 비유해 주다니. 하루 1시간 정도는 꼭 책을 펼친다. 숙제처럼 펼칠 때도 있지만 재미있는 고통인 것만은 분명하다.​​


​"자주 몰입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행복하고 더 큰 성취를 느끼면서 살아간다"라고 몰입을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중요한 한 가지에 쏟아 넣는 것이 몰입이다. 좋아하는 책 읽기에 흠뻑 빠져 시간의 흐름을 잊고 오로지 책과 나만이 연결되는 '몰입의 행복'을 느끼는 중이다. 삶에서 빛나는 소중한 한 순간이 되어줄 것이고 나에게 숨어있던 특별한 능력이 "짠~~ 내 안에 이런 게 있었어" 하며 퀀텀점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


​내가 낭독모임을 다니는 책방의 지인들은 '수학 문제 푸는' 스터디 모임을 결성했다. 다 큰 어른들이 그 지긋지긋한 수학 문제를 풀고, 그것도 스스로 결심을 했다니, 길 가는 중. 고등학생들 중 단 한 명만 붙들어도 한결같이 미쳤다고 혀를 내두르는 일이다.



그녀들은 무아를 알아가고 있다. '무아'는 어떤 일에 집중하여 마음이 온통 한 곳에 쏠려 스스로의 존재마저 망각한 상태이다.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데 '수학 문제'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수학 문제를 푸는 그 순간은 오롯이 몰입하는 순간이 되고 어느덧 머리가 맑아짐을 느끼게 되며 마음의 상쾌함은 덤이다. 수학 문제로 몰입의 행복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이승기'가 한 말이 떠오른다.


​"행복은 저축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걸 모아둔다고 해서 더 큰 행복으로 오지는 않더라고요" 나중에라는 말은 행복과 어울리지 않는다. 행복은 순간순간 찾아 떠나야 한다. 과연, 나에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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