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 있는 시간을 최소한 줄이고 싶었다. 1일 1찬의 간소한 밥상이 이제는 꽤나 적응되었다. 처음에는 뭔가 밥상을 덜 차린 기분이었다. 채소와 고기가 든 찜기를 김치반찬 하나 곁들여 소스 하나만 마련해 먹는다던지, 김치 찌개나 고기 볶음을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게 두고 김 한 개 올려놓으면 푸짐하지는 않지만 끼니를 때우면 족하다 생각했다.
유년기의 안방 아랫목에는 조그마한 문이 부엌으로 통해 있었고 식사 때가 되면 그 작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의 밥상을 기다리는 시간이 늘 두근거려졌다. 문을 통해 동그란 양은 밥상이 들어올 때마다 배속 시계는 갑자기 꼬르르거리고 뒹굴거리며 한 몸이 되어있던 이불을 냅다 팽개쳐 버린다. 바로 엄마의 집밥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일단 밥상을 쓱 훑어본다. 반찬을 스캔해 본다. 동그란 밥상이 꽉 찰 정도로 푸짐했다. 하얀 김이 살살 올라오는 밥과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어우러지고 폭신폭신한 계란찜, 직접 구워서 바삭바삭한 겨울의 별미인 김, 고춧가루의 빨간 양념이 뒤덮고 있는 두부조림, 밥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에 넣으면 하루 중 행복 한 끼가 되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밥상은 가슴이 기억한다. 1일 1 찬인 내 밥상과 참 대조적이다.
관계도 엄마의 밥상이면 좋겠다.
요즈음의 관계 맺기를 인덱스 관계라고 하고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인덱스란 타인관의 관계에 색인을 붙여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현대인의 관계 맺기 방식을 의미한다. 직접만남을 떠나 오픈카톡, 소셜미디어, 메타버스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만남의 도구를 갖게 되었다. 색인 목록을 붙이듯이 관계를 관리한다.
10대, 20대, 30대를 함께 해온 소중한 인연들이 있지만 40대를 지나오며 밴드를 통해 여행메이트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메이트들과는 7~8년 이상의 친분을 쌓으며 여러 곳을 여행하고 서로의 취향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속절없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여행하는 사이는 안 맞으면 절대 못하는 일이다. 40대 시절 여행밴드의 활동은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또 다른 인덱스는 책과 글쓰기를 나누는 동네책방 커뮤니티의 동무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짧으면 짧지만 길다면 길 수도 있는 우리 동무들은 주어진 2시간 동안 아주 찐하고 풍부한 이야기들로 최선을 다해 즐길 줄 아는 사이다. 내가 행여나 책방을 못 나가면 끊어질 수도 있는 관계이지만 만나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진솔하게 나눌 줄 아니 그것만으로 족하다.
오프라인이 있다면 다양한 온라인 인덱스 관계도 있다.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글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느껴보기도 한다. 한번 보지도 못한 관계들이 어떻게 유지가 되는지 신기한 일이지만 책과 글은 묘하게 타인들을 묶어준다.
인덱스를 펼쳐 놓으니 마치 엄마의 밥상 같다. 밥과 반찬, 찌개들이 각자의 풍미를 전달하지만 어울림으로 더한 풍요로움을 주듯이 말이다.
밥은 봄처럼 짓고, 국은 여름처럼 만들고, 장은 가을같이 만들고, 술은 겨울처럼 빚으라 했으니 밥은 따뜻해야 하고, 국은 뜨거워야 하며, 장은 서늘해야 하고, 술은 차야만 한다. <규합총서: 빙허각 이 씨>에서 발췌
밥상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그 생김에 따라 지혜롭게 먹는다면 몸의 건강이 따라오듯이 인덱스 관계도 그 의미에 따라 조화롭게 배치하여 마음을 살찌우게 된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