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적으로 정의를 내리자면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으로 나뉘며 요즘말로 '인싸'와 '아싸'로 부른다. 학창 시절, 3월이 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늘 나를 괴롭히던 생각이 있었다. 새 교실과 새 선생님, 급우들 틈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다는 욕망과 낯섦에 대한 걱정, 두려움의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새로운 분위기에서 제일 눈에 띄는 아이들은 리더십이 있는 '인싸'친구였다.
대학 때, 과대표를 했던 친구는 신입생 환영회 자기소개에서부터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조선인은 눈썹이 희박하다'며 눈썹이 거의 없어 매일 눈썹 그리기를 한다는 개그 섞인 소갯말로 주목을 끌었다. 과대표를 자연적으로 하더니 교내 행사와 대동제 때는 예술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인재로 통했다.
하지만, '아싸'라고 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겉도는 사람이라고만 할 수 없다.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지 않지만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멋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싸'와 '아싸', 둘 중 무엇이 되는가가 중요할까. 무엇보다 자신을 잘 알고 주위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면 된다. 문제는 '인싸'가 되고 싶은 '아싸'의 심리이지 않을까. 내가 그렇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인싸가 되고 싶으며 밖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싶다. 인맥도 넓히고 싶고 아울러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는 인정욕구도 크다. 일주일 중 5일 이상을 약속을 잡고 사람 속에 있기를 즐겼다. 종교활동을 하면서 그 집단 내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로 봉사를 이 것 저 것 맡았다. 인맥도 넓히고 봉사를 많이 해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한다는 착각을 했던 것이다. 인싸이고 싶고 인싸를 부러워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잠시 멈춤 하게 한 것은 코로나 19였다. 그 시기를 거치면서 모두가 관계 속에 있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다. 관계 속에 있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소비할 수 있었다. '아싸'이든 '인싸'이든 나 자체로, 존재하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