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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Feb 20. 2024

옷, 너를 살 때의 희열이란

희열에 관한 고찰

방의 한쪽 벽면을 꽉 채우고 있는 붙박이장을 3개 가지고 있다.

 

5분의 4, 3분의 1, 5분의 4


각 붙박이장에서 내 옷이 차지하는 면적이다. 가족 중 붙박이장의 지분이 꽤 높은 편이다. 그러고도 방구석을 점령하고 있는 행거에 그 계절에 맞는 '제철옷'들은 '앞으로 나란히'를 외치는 운동장 꼬맹이들처럼 일렬로   정렬되어 있다.


어느 붙박이장에는 10년 전, 애정하는 브랜드의 옷들이  그 풍채를 뽐내며 장롱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한 번씩 장롱 문을 열 때마다 '그래 내겐 너네들이 있지. 내가 레트로 감성에 빠질 때마다 니들로 기분을 낼 테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이런 생각으로 든든해진다.


어느 붙박이장에는 일 년에 두어 번 입을까 말까 하는 '치마'들이 숨 쉬고 있다. 레이스 치마, 검정 스팽글 치마, 초록 주름 스커트, 어린 날의 감성이 느껴지는  청치마.  물론 일 년에 몇 번 입지도 않았으니 엄청 새 거다. 아나바다 장터에 치마들을 들고나갔더니 불티나게 팔려서 완판을 했다. 내가 우아해지고 싶을 때, 스커트를 입고 구두를 신고 진주 목걸이를 하고, 그렇게 변신을 시도한다.


어느 붙박이장의 서랍을 열었을 뿐인데 다양한 계절별 청바지가 활짝 반긴다. 진한 색 나팔 청바지, 연한 색의 통이 큰 청바지, 블랙진 청바지. 나는 청바지를 정말 좋아한다. 동네 친구가 노가리에 맥주 한잔 하자고 연락 오면 밤마실 나갈 때, 친구들과 근교 벚꽃놀이를 갈 때, 맨투맨 티셔츠에 청바지 하나 툭 걸치고 흰색 운동화를 신으면 10년은 젊어진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옷은 역시나, '새 옷'이다.

어떻게 새 옷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백화점을 누비며 "여기서부터 저~~ 기 까지  다 결재하게요!!!" 이렇게 외치며 밤새 쇼핑하는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은 조금 허탈하기까지 하다. 현실에서도 새 옷을 결재하는 희열에 녹아보고 싶지만 현실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나는 옷을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옷이 보이면 사는 편이다. 체형이 아담한 사이즈라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프리사이즈가 제대로 맞다. 옷을 좋아하다 보니 옷을 보는 안목, 옷의 가격대, 나를 빛낼 수 있는 옷 스타일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한눈에 봐도 독특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을 착용했을 때 편안하기까지 하면 해저 밑바닥 보물을 찾은 유레카의 순간이다. 이것은 완벽한 희열이다.


기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내게 맞는 옷을 착장하고 가방과 신발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나가면 내 기분까지 덩달아 몽글몽글해지는 것 같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마법을 부려줄 것만 같다.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한 옷이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기분까지 다운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 옷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작가들은 자신을  글로서 나타내고, 화가는 영감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듯이, 일상생활에서 나 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행위예술이다. 매일 옷장 앞에서 치르는  '희열의 의식'은 하루를 충만하게 해 준다. 내가 옷을 사지 않는다면 마음도 몸도 진짜 늙어버린 그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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