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3: 손가락 덧셈을 멈춘 날

아이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

by 박물관가는엄마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는 『자연의 패턴』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학적 ‘사물(thing)’은 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이다. 그러나 수학적 과정 역시 추상이다. (...) 실제로 나는 ‘2’라는 수가 실질적인 사물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보기를 들 수 있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사람들은 수를 마치 ‘실물’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숫자도 ‘과정’이고 그 과정은 ‘물체화’를 통해 머릿속에서 작동된다고.


예컨대, 낙타 두 마리에게 1번, 2번 번호를 붙이는 순간,

우리는 숫자를 사물이 아닌 개념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이 대목을 읽고 깊은 감동을 느꼈다.

‘수학은 추상이지만, 인간은 추상을 다루기 위해 반드시 물체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아이가 숫자를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고 구체적이다.


손가락 덧셈이 멈췄을 때

며칠 전, 아이가 더는 손가락으로 덧셈을 하지 않는 걸 알아차렸다.
어딘지 서운했다.
그동안 그는 모든 손가락을 동원해 과일을 더하고, 자동차를 세어가며 숫자와 싸워왔다.
무려 6개월을 넘게 손가락 덧셈을 하더니, 이제는 종이에 적힌 기호만 보고 문제를 척척 풀어낸다.


그 모습이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손가락을 접고 펴며 익혔던 그 수의 과정이 이제는 머릿속에서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다는 것.



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는 그것을 ‘보았다’


나는 손가락 덧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부모다.
다행히도 이런 관점을 잘 정리해 준 기사가 있다.


<구구단 빨리 떼면 수학 영재? 손가락 덧셈하는 애에 밀린다>
중앙일보 헬로페어런츠


기사에서는 말한다.

계산기처럼 빠른 연산보다, 깊이 있는 사고가 더 중요하다.

저학년 때는 구체적인 조작물을 통해 연산의 원리를 깨우쳐야 한다.

손가락으로 더하고 빼는 것은 원리를 체화하는 과정이다.

결국 이 과정이 끝나면, 연산 속도는 자연스럽게 붙는다.


이 모든 설명이 내 아이에게서 고스란히 일어났다.
그의 손가락은 연산기의 버튼이 아니라, 개념을 조작하는 물리적 언어였던 셈이다.


낭만이 있는 수학

나는 ‘수학을 낭만적으로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엄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수학적 사고 과정을 상상하며, 그 안에서 무언가가 추상에서 구체로, 다시 구체에서 추상으로 왕복하는 걸 느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오늘 휘의 머릿속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복잡하고 뒤죽박죽이던 수의 흐름이, 어느새 심플한 숫자로 정리되어 나왔다.
그 안에는 수학의 철학이 있고, 배움의 시간이 있고, 어느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있었다.


수학은 숫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 나는 그걸 아이를 통해 배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단상 2: 시간의 리듬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