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는 『자연의 패턴』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학적 ‘사물(thing)’은 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추상이다. 그러나 수학적 과정 역시 추상이다. (...) 실제로 나는 ‘2’라는 수가 실질적인 사물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보기를 들 수 있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사람들은 수를 마치 ‘실물’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숫자도 ‘과정’이고 그 과정은 ‘물체화’를 통해 머릿속에서 작동된다고.
예컨대, 낙타 두 마리에게 1번, 2번 번호를 붙이는 순간,
우리는 숫자를 사물이 아닌 개념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이 대목을 읽고 깊은 감동을 느꼈다.
‘수학은 추상이지만, 인간은 추상을 다루기 위해 반드시 물체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아이가 숫자를 이해하는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고 구체적이다.
며칠 전, 아이가 더는 손가락으로 덧셈을 하지 않는 걸 알아차렸다.
어딘지 서운했다.
그동안 그는 모든 손가락을 동원해 과일을 더하고, 자동차를 세어가며 숫자와 싸워왔다.
무려 6개월을 넘게 손가락 덧셈을 하더니, 이제는 종이에 적힌 기호만 보고 문제를 척척 풀어낸다.
그 모습이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손가락을 접고 펴며 익혔던 그 수의 과정이 이제는 머릿속에서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다는 것.
나는 손가락 덧셈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부모다.
다행히도 이런 관점을 잘 정리해 준 기사가 있다.
<구구단 빨리 떼면 수학 영재? 손가락 덧셈하는 애에 밀린다>
중앙일보 헬로페어런츠
기사에서는 말한다.
계산기처럼 빠른 연산보다, 깊이 있는 사고가 더 중요하다.
저학년 때는 구체적인 조작물을 통해 연산의 원리를 깨우쳐야 한다.
손가락으로 더하고 빼는 것은 원리를 체화하는 과정이다.
결국 이 과정이 끝나면, 연산 속도는 자연스럽게 붙는다.
이 모든 설명이 내 아이에게서 고스란히 일어났다.
그의 손가락은 연산기의 버튼이 아니라, 개념을 조작하는 물리적 언어였던 셈이다.
나는 ‘수학을 낭만적으로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엄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수학적 사고 과정을 상상하며, 그 안에서 무언가가 추상에서 구체로, 다시 구체에서 추상으로 왕복하는 걸 느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오늘 휘의 머릿속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복잡하고 뒤죽박죽이던 수의 흐름이, 어느새 심플한 숫자로 정리되어 나왔다.
그 안에는 수학의 철학이 있고, 배움의 시간이 있고, 어느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있었다.
수학은 숫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 나는 그걸 아이를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