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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망토 영상쟁이 Nov 12. 2018

대한민국의 좌와 우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던 때였다. 차도를 건너기 위해 아무생각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하마터면 대형사고가 날 뻔 했다. 운전자는 나에게 경적을 울려대며 욕을 했고 순간 주위사람들은 모두 나를 위아래로 흘겨보면 지나갔다. 뭘 잘못했을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무심코 생각해보니 그 나라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교통체계 시스템이 반대였다. 좌우가 바뀌어 있는 교통시스템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심코 차도를 건너려했으니 비난 받아 마땅했다. 평생을 우리나라 문화에만 익숙해져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부분들이 그 나라에서 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가 맞고 너희들의 나라는 틀리다의 개념이 아니다.


상대방의 문화와 나의 문화가 다른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2017년 3월 겨울. 상대방과 자신들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집회 현장. 그 곳에 있던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 많았다. 군복을 입고 참여하신 분들도 간간히 볼 수 있었고 참가자들의 환호와 호위를 받으며 전, 현직 국회의원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들은 본인들을 애국보수라 자칭하며 우파의 선봉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 외치며 태극기를 손에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연일 사상 최대의 대규모 집회, 평화로운 집회의 타이틀과 함께 촛불로 가득한 광화문광장의 장관을 꾸준히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촛불대신 그 반대편에서 태극기로 펄럭이고 있는 바로 그 현장 한 가운데 서있었다.

      사람들은 그 집회를 태극기 집회라 불렀다.


탄핵 선고 전 태극기 집회 모습


탄핵선고가 있던 날. 나는 태극기 집회 현장으로 출발하기 전 ENG카메라 대신 6mm카메라를 챙겼다. 그동안 방송사들에게 유독 민감하게 대했던 집회참가자들 때문에 취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붙은 방송사 로고도 떼었다. 속으로는 ‘더 좋은 취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카메라에 붙은 로고를 떼어낸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부득이하게 몰래카메라를 사용하는 취재현장도 아닌 집회현장에서 나의 소속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왠지 모르게 죄 진 것 마냥 떳떳하지 못한 채로 그 현장에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현장에서 촬영기자들은 지상파, 종편 할 것 없이 본인 소속 방송사 로고를 가리거나 떼어내고 취재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소속감이 없을지언정 이 분위기를 꼭 카메라에 담겠다는 일념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집회가 시작될 때 집회 주최 측은 취재진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외쳤다.

“오늘 집회 참가 인원들은 취재진들의 촬영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위해 취재해주러 온 고마운 분들이십니다.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우리가 승리하는 날입니다!”


“와~~!탄핵반대!!!”


참가인원들은 처음에 취재진들에게 놀랍게도 호의적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주의를 경계하며 트라이포트를 펼치자 갑자기 한 분이 다가와 따뜻한 김밥을 건내주며 고생한다는 말을 건냈다. 하지만 그 따뜻한 감정들이 오래가지 않았다.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
“야! XXX들아! 기자들 다 나가! 카메라 안 치워?”


100m정도 떨어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판결이 났다. 순간 영화나 TV에서 봤던 장면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군인들이 아무 죄 없는 선량한 시민들을 폭행하듯 취재진들은 그렇게 한구석으로 몰렸고 이윽고 구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다리 위에 올라서 짧게나마 그런 폭력적인 장면을 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오래 취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몇 컷이라도 건지자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광분한 집회 참가자들의 발길질 덕분에 그만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현장은 순식간 아수라장이 됐다. 앞에서는 참가자 한 명이 사다리로 타방송사 카메라를 내리쳐 박살나 있었고 뒤에서는 선배 한 명이 카메라를 뺏기지 않으려 집회 참가자와 필사적으로 육탄방어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곳은 총칼 없는 전쟁터였다.

대학교 방송국으로 신분을 숨기고 촬영한 카메라.



 




우리는 흔히 촬영기자를 ‘영상사관’이라한다. 영상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관찰자라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가 주목하는 현장에는 늘 촬영기자들이 있어왔다. 탄핵선고 날도 마찬가지다. 그 상황이 좋고 나쁨을 떠나 분명 역사적인 날이다. 때문에 촬영기자들은 그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현장에 넘쳐났다. 카메라를 든 이유도 하나다.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서다. 오랜 시간 동안 탄핵을 반대해오며 하나로 똘똘 뭉쳤던 그들에게 탄핵선고 후의 분위기는 어떨까. 일련의 과정들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촬영기자들은 카메라에 붙은 로고마저 떼고 자신의 소속을 숨긴 채 그렇게 모여든 것이다. 그런 취재진들을 향해 폭력적인 행위를 행사한 참가자들은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박탈한 행위나 다름없다.


 



지난겨울 집회 참가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광장에 모였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바라볼 때 그 누구도 도덕적, 정치적으로 비난할 권리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집회에 참여하는 행동은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맹목적이고 폭력적인 집회는 사라져야 한다. 집회의 이유가 아무리 타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하더라도 폭력이 함께 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촛불집회와 비교해 태극기 집회에서 아쉬웠던 부분도 한 쪽은 시간이 갈수록 평화적으로 이어진 반면 다른 한 쪽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갔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의 프레임을 좌와 우의 성격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좌와 우의 사이에서 촬영기자들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기위해 광장을 수없이 누비며 겨울을 보내왔다. 모두가 평화적으로 집회가 마무리됐으면 했지만 사망자도 발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대한민국은 ‘좌와 우’라는 프레임 안에서 서로 치열하게 비판하고 견제해나가며 성장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좌, 우 서로가 자신들의 다름을 인정하며 폭력 없이 건강하게 비판해 나간다면 어떨까. 대한민국의 좌와 우는 정답이 정해진 수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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