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곳에서...<40화>

[ 제40화 _ 투명인간의 연애관찰기 ]

by youtoo


"소현아...!!"

원래부터 자신의 팬임을 자처하며 먼저 말도 걸어주었었던...

이 후에 공모전과 관련해서 자주 연락이 오고가기도 했던 소현도 기태에게 뭔가 선배 이상의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걸까,

기태를 맞이하는 소현의 얼굴은 몹시 밝았다.

"잘... 어??"

기태는 소현의 꽤나 가까운 앞까지 다가와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왜인지 소현과 시선이 맞추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소현의 미소가 향하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았다.

"어, 소현아!! 오면 연락한 댔잖아, 왜 나와 있어!?"

"어차피 볼 텐데, 좀 미리 보러 나왔지~"

자신의 뒤편에서 천천히 출판사 쪽으로 다가오는 정장을 빼입은 한 훈남.

'아...?..'


이번에도 멋대로 머릿속에 그려지고 말았던,
끝은 늘 아름답지 않았던 습관적 망상.

두근거림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버린 것을 괜스레 후회하며, 그 자리에 멈추어 두 사람의 행각을 지켜보았다.

미소를 머금은 채 가볍게 포옹하며 반갑게 남자를 맞이하는 소현.

행복해 보이는 표정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금새 알아챌 수 있었다.

가볍게 스킨십을 나누며 이야기를 하는 저 앞의 남녀.

불과 몇 시간 전에 자신과 했던 약속을 잊지는 않았을 테니, 아마도 만나기 전 잠깐의 틈새 시간을 이용해 찾아온 애인을 맞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후우... 왔다고 언제 말을 해야 되는 거야...기다려?'

우물쭈물하던 기태는 이것저것 생각하다 자신도 모르게 성큼성큼 그들 앞으로 가까이 갔다.

"앗, 기태 선배님 오셨어요? "

"어, 응...!"

깍듯하게 기태에게 인사하는 소현.
옆에 있던 남자 역시도 기태를 바라보며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기태 작가님이시죠?
저, 소현이 남자친구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구나.

혹시나 하던 망상이 깨어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게 된 소현의...남자친구라는 녀석.

소현은 기태의 표정에서 뭔가를 느꼈던 건지,
다급하게 나서서 상황설명을 시작했다.

"아...! 선배님, 남자친구한테도 선배님 얘기 많이 했었는데요.

출판사 앞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오늘 선배님 오신다 했더니 무작정 뵙고 싶다고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왔네요!!"

"아, 그래?"

'놀고 있네, 다짜고짜 찾아왔다는 사람을 버선발로 나가 맞이하고 있냐? 끌어안고 난리도 아니더만...!'

뭔가 뒤틀린 듯한 표정의 기태에게 자신을 소현의 남자친구라 소개한 이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자 친구한테 꽤 오래 전 부터 얘기 듣고 작가님 책도 읽었습니다. 오늘 책도 가져왔는데 싸인 부탁 드려도 될 지요?"

"예... 뭐...아 일단, 준비한 글 제출부터 하고 오려고요."

"예, 선배님 건물 2층이구요. 신규 사업부실에 들어가시면 공모전 제출처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께요."

두 사람을 뒤로하고 건물로 진입한 기태,
뒤통수가 저릿해 올만큼 뒤의 연인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출하고 나오는 것을 기다리겠다고는 했지만 망상을 벗어난 현실에서의 소현은 지금 자신이 아닌,

남자친구와 노닥거리고 있음이 눈에 선했기에...

"작품 제출 하러 왔습니다."

담당자에게 찾아가 말을 건 기태. 이미 그의 앞에는 무수한 경쟁 작들이 쌓이어 있었다.

"온라인 제출도 하셨죠? 그 때 전달받으셨던 접수번호 확인해주세요."

"10573 입니다"

"예...10573...! 음 한기태씨? 예, 접수 됐습니다. 앞쪽에 작품 놓아주세요."

조심스레 꺼내어 다소곳이 소설을 올려놓았건만,
나오면서 뒤돌아보니 담당자들은 제출되어진 원고들을 거친 손놀림으로 정리해대고 있었다.

관리자들의 일처리가 맘에 들지 않아 한 마디를 할까 하다 참은 기태,

어찌되었건 제출을 마쳐 나름 뿌듯한 기분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니, 어쩌면 자신이 더 늦게 나오기를 바라며 연인과 노닥거리고 있을 소현을 향해 밖으로 나왔다.

소현과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는 처음에 품은 기대와는 달리 우려가 앞섰다.

넘볼 수 없는 것은 아예 쳐다도 보지 말라는 의미였는지, 떡하니 나타난 남자친구의 존재라니.

기태는 왠지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밖으로 통하는 문을 나섰다.

"작가님, 오늘 소현이랑 식사 같이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외람되지만 저도 같이 동행해도 될까요? 순수하게 팬으로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팬을 자처하며 기태의 팬 사인회에 참가하고 싶어서 인지,

자기 여자 친구가 외간남자랑 둘이 만남에 불안해서 지켜보러 왔음인지 모를 남자친구의 동행.

이 자식, 존재 자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요. 같이 해요. 이번 공모전 관련해서 제가 소현이한테 도움 받은 게 많았어요. 이제 제출도 완료한 마당에 감사 인사 겸, 얘기나 더 할까 해서 마련한 자리였어요."

"감사합니다.!!"

'연애는 나 없을 때 해!!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눈앞에서 이상한 짓거리하기만 해봐..!!'


내려놓았다.
어쩔 수 없이 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소현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 순간부터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음에도 기태는 영 상황이 편치 않았다.

애초부터 쓸데없는 망상을 시작해서 사서고생이었다. 실상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세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기태는 처음에는 소현과의 단독 만남을 위해 예약을 해두었던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같이 이동했다.

“아, 여기...! 회사 근처라 저도 가끔 오는 곳이에요. 선배님도 잘 아는 곳인가요?”


전혀 모른다. 그저 근처에 유명한 식당이라고 검색만 해봤을 뿐.

“아, 뭐...한두 번 정도...? 와봤던 데야 괜찮더라고...!”

우여곡절 끝에 음식을 시킨 세 사람의 이야기는 의외로 점점 깊이 있게 이어져 갔다.

“여자 친구가 작가님 얘기를 정말 많이 해요.
이미 잘 아시겠지만, 학교 때 굉장하셨던 분이었다고... 현업 작가로서 책도 여러 권 내신 학교의 자랑이라고...”

“예? 아니에요...! 무슨 학교의 자랑씩이나...
제가 싫어서 때려 치고 나온 학교에 별 미련도 없는 걸요. 전업 작가지만, 아직 히트작도 딱히 없는, 대단치도 않은 작가인데요. 뭘...”

“아,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만나 뵈면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예? 뭔가요?”

“혹시 ‘임세현’이라고 알고 계시죠?”

몹시 놀란 기태.
옛 학교 후배의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어떻게 세현을 알고 있는 건지, 아직까지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작가지망생인 것을...

“예? 예...아...세현이요, 뭐...좀 알죠...”

이미 연인들 간에는 이야기가 오고 간 이 후였었는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소현은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거들었다.

“기태 선배님,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었죠? [그들만의 세상] 작가의 아들이 작가를 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그거 사실 제 남자 친구한테 들었던 거예요!!”

“응? 그 얘기를 남자 친구 분한테 들었다고?
어... 세현이랑 따로 어떻게 아는 분이신지...”

“아, 저한테는 상사셨죠. 임세현 주임님.
그 분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세현 주임님은 몇 년 전에 관두긴 하셨지만...”

“세현이 하고... 직장동료였단 말입니까?”

보란 듯이 아버지와 다른 인생으로 성공하겠다며 대학 졸업과 동시에 세현이 어렵게 입사했던 국내에서 가장 큰 금융기업.

그때까지만 해도 기태는 세현과 절친한 사이었다.

가끔 만나서 듣던 회사 이야기, 직원들 이야기...
아직까지도 기억이 남아있는 듯 했다.

어쩌면 그 때의 이야기 속에 소현의 남자친구라는 사람도 끼여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무슨 맘을 먹었는지, 어느새 인가부터 세현은 작가를 꿈꾸며 그 좋다는 회사를 관두려 했었고 기태는 필사적으로 뜯어 말렸었다.

친구로서의 걱정...이라기 보다 라이벌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컸음이 분명했지만.

세현이 다니던 회사는 이 전에 다른 친구들하고의 술자리에서도 거론 됐었던,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고연봉의 신의 직장이라 불리우는 곳 이었다.

눈앞의 이 남자 역시 그 직장에 다니는 우수한 인재... 기태는 갑자기 그 남자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크게 달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정장을 빼 입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남자뿐 아니라 그 우수한 인재를 남자친구로 두고 옆에서 생글 생글 웃고 있는 소현이었다.

‘크리에이티브하게 일하는 작가가 멋있네, 어쩌네 하고 선배님, 선배님 찾으면서 말 걸더니,
실상 현실에서는 돈 많은 남자 찾는 거구나.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란 건가...
맞는 말이고, 올바른 선택이긴 하겠지만...
새삼, 참 잔인하구나...세상...’

잠시 동안의 행복한 망상이 깨어진 후라서 였을 까.

오랜만에 선배를 만나 호의를 베풀며, 아무것도 잘못한 것 없는 소현은 기태의 눈에 소위 돈 밝히는 속물 된장녀로 비추어져 버렸다.

마치 자신이 소재로 삼아 소설을 제출했던 전 여자 친구처럼...

“세현 주임님도 회사 관두시기 전에 가끔 기태 작가님 얘기를 저한테 하시곤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본인이 작가가 되겠다고 동료들에게 얘기를 했었던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임형우 작가님의 아드님으로 워낙에 유명했기도 했고,

자꾸 작가 친구 분 이야기 하시는 걸로 봐서 그냥 추측만 할 뿐이었죠.”

“음... 그렇군요... 저도 뭐 그렇게 친하게 자주 만나던 사이는 아니라...”

“아, 그러세요? 얘기 꺼내실 때마다 엄청 가깝게 얘기 하셨었는데, 사실 기태 작가님 책도 세현 주임님 추천으로 알게 됐었던 겁니다.”

“음...예, 아무튼 소현이, 이것저것 도와줘서 고마웠어. 신경 많이 쓴 공모전이었는데.”

“뭘요, 그냥 제가 아는 정보만 전달해 드렸던 건데요...! 선배님은 근성이 있으시니까 잘 되실 거예요. 얼른 기태 선배님 책이 저희 출판사에서 나오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사실 이 자리에서 기태는 소현에게 무슨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던 걸까.

떡하니 자리한 남자친구 때문에 그야말로 공모전 용건 이외에는 더 말을 붙이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그렇게 듣기 싫었던 세현의 소식까지 애둘러 또 접하게 될 줄이야...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며 작가로 살아가자니
그 아들의 이야기는 벗어날 수가 없던 것인지.

집필을 할 때 이외로 밖에 나와 누군가 지인을 만나기만 하면 세현의 이야기가 엮이지 않을 때가 없는 최근.

일본에서의 연락 후 소식이 끊긴지도 오래된 세현의 근황을 더 알고 싶지도 않건만,

쓸데없이 주변인들이 물어다 주는 소식에, 잊고 살고 싶어도 자꾸만 떠올려지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작가가 되겠다며 그 좋은 직장까지도 뛰쳐나가버린 세현이라면,

이 거대규모의 공모전 소식을 모를 리 없을 터,
더군다나 자신의 아버지의 책 출판사 주최이니 만큼 혹시나 따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에게는 돌아올 수 없는 혜택들, 기태는 여전히 세현이 마음에 걸렸다.

‘흥, 글 한번 써보기라도 했을까, 그래봤자 기성작가들한테는 상대가 되지 않아...!’

“선배님, 그럼 계속해서 파이팅 하시고요,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오늘 잘 먹었습니다.”

“기태작가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건필 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짧은 식사 끝에 인사 후 뒤돌아 간 이 커플.

애초에 기대하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더한 망상에 깊게 빠지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기태도 귀가했다.

저 멀리 멀어져가는 두 사람은 마치 하나가 된 것 처럼 찰싹 달라붙어,

마치 이제까지는 기태가 눈앞에 있어 눈치가 보여 숨겼던 듯한 애정행각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뭔가 더 답답해진 마음이었지만, 내려놓고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는 기태.

동네로 돌아와 집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우웅!!!]

보행신호를 받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순간, 차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트럭이 돌진을 해오기 시작했다.

“어,? 어? 뭐야!!? 미친 놈...??”

기태는 재빠르게 건너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유독 기태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기태를 노리는 듯 질주해 오는 트럭.

[ 끼이이이이이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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