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1화 _ 울지마, 바보야 ]
“어어어어...!!”
횡당보도를 건너는 기태에게 돌진해 오는 트럭.
황급히 피하며 인도로 오르려하는 기태를 마치 쫓아오기라도 하듯 트럭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뭐...뭐야!? 음주운전...!?"
[ 끼이이이익!!! ]
줄기차게 기태를 향하는 듯 했던 트럭은 횡단보도의 절반이상을 지나서야 바퀴 끄는 소리와 함께 멈추어 섰다.
다행히 큰 사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기태는 뒷걸음질을 하다 횡단보도의 끝에 겨우 걸친 채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야...!”
잠깐의 정적...
겨우 멈추어 선 트럭의 바퀴에서는 도로와의 마찰로 역겨운 고무타는 냄새와 함께 거무튀튀한 연기가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창피함해서 인지 미안해서 인지 운전사는 핸들을 잡고 머리를 파묻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겨우 흐트러진 정신을 바로잡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 기태.
곧 툭툭 옷을 털며 일어나 트럭의 운전석으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거 봐요!!! 미쳤어요? 뭐 잘했다고 머릴 쳐 박고 있어? 빨리 안 나와요? 당신 이거 사람 죽일 뻔한 거야!! 빨리 나와!!”
기태의 호통에 서서히 창문을 연 운전자.
운전자는 기태의 눈도 못 마주치며 사과를 해대기 시작했다.
“죄...죄송합니다. 제가 깜짝 존 거 같아요... 어...어디 다치신데 없나요?”
“아니, 이 양반이!! 뭐? 깜빡 존 거 같아요?? 사람 나자빠지는 거 보고 어디 다친데 없냐고 물어? 당연히 다...”
기태가 다짜고짜 창문으로 가 확인한 이 운전사...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얼굴...?
기태는 더 가까이 다가가 운전자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
세월은 흘렀어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
아니, 끔찍한 지긋지긋함에 잊혀 질 수 없는 낯짝.
자신이 학교에서 뛰쳐나오던 바로 그날 있었던 글 합평에서 이마에 핏대를 올려가며 싸웠던, 소현과 후배들에게도 독설을 퍼부어 악명을 떨쳤다던 그 녀석이었다.
“야!! 너 만식이 아니냐!?”
세월이 지났다고 해봐야 6, 7년 남짓, 그래봐야 아직 30대 초반 밖에 안되었을 자신의 동기이건만,
만식은 폭삭 늙어 영락없는 아저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누구...?”
사고 처리 보상 때문인지 걱정을 산더미처럼 안은 채, 얼굴을 들지 못하던 운전자는 불리워진 자신의 이름에 화들짝 놀라며 기태를 올려다보았다.
“너... 혹시 한기태??”
“참, 나 요새 무슨 일이야...때려 친 학교 학우들을 이러고 계속 만나냐...”
대학 시절 라이벌로, 합평할 때마다 늘 서로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던 두 사람.
만식이라는 이 남자는, 이 전부터 기태에게 쌓이어 왔던 ‘학교제도’라는 불만들을 뻥 터뜨리게 해준 도화선과도 같은 녀석이었다.
만식과의 다툼을 끝으로 학교를 뛰쳐나온 셈이었으니...
이 원수 같은 녀석을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왜 인지 반갑다고 해야 할까.
기태는 다시 한 번 먼지 묻은 엉덩이를 툭툭 털어내고는 아무 말 없이 만식이 탄 트럭의 조수석 문을 열어 다짜고짜 들어와 앉았다.
“너...뭐야, 기태... 맞아? 여긴 왜...올라타는 거야?”
“어쭈? 너 사람 죽일 뻔 해 놓고, 아는 사람 이라고 지금 은근슬쩍 넘어갈 생각이냐? 저 앞에 경찰서 가 임마!!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병원을 가던 지, 어딜 가던지 가해자는 피해자 말을 들어야지!!”
자신의 지은 죄 때문인지 우물쭈물하는 만식.
계속 기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 빵빵빵!!! ]
신호가 바뀐 후, 뒤에선 차들이 몰려오며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빨리 출발 해! 임마!! 도로교통 방해하지 말고!!”
“...!”
만식은 어쩌지 못하고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운전해가며 계속해서 옆자리의 기태를 의식하는 만식이라는 청년.
조수석에 앉은 기태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만식에게 입을 열었다.
***
프랑스 아를의 밤 골목.
다정한 모습으로 손을 꼭 잡은 채 어둠과 조명이 섞인 밤거리를 거닐던 세현과 해인.
그들은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그나마 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카페의 야외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세현은 해인에게 잠시 기다리라 하곤 가게에 들어가 커피 두 잔을 사들고 나와 테이블에 놓자 가만히 받아들고 말없이 홀짝 홀짝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해인.
“해인씨!! 또 틈만 나면 긴장 타고 있네!! 뭘 눈치를 봐요!! 이제 늠름한 남자친구가 옆에 있는데!!"
“쳇, 나...남자친구는 무슨... 그리고 긴장 안 해요! 내가 왜...!!"
“그런가... 근데 왜 이렇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그래!! 너무 매력적인 남자 옆이라 그런가..."
"쳇!!!"
조금은 쑥스러웠는지 테이블을 툭툭 치며 괜스레 뻘쭘한 동작으로 무마해 보려는 해인.
세현은 그런 해인을 온화한 미소로 쳐다보았다.
“해인씨, 여기 기억나요?”
“여기? 어디요? 이 카페? 아니면 이 광장?”
“역시, 기억력도 별로 안 좋구나.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있는데...!!”
이 남자, 또 놀려먹으려는 모양이다.
해인은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이 곳의 정체가 무엇인지, 세현의 입에서 먼저 나오기 전에 혼자서 열심히 떠올려 보려 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도 무수히도 지나쳐 갔었던 이 광장. 시청과 분수대...
이곳에서 눈앞의 세현과 어떤 일이 있었더라...
“모르죠? 여기 온... 첫날, 아니 다음 날 정도인데. 난 여기 딱 앉아서 한가로이 쉬고 있었죠...!”
“...뭐...였지...”
“음 그래, 역시 남프랑스의 이 한가로운 마을에서 동양인은 잘 찾아보기 힘들군...! 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
“저 쪽에서 어떤 쪼그만 동양 여자가 얼굴이 막 사색이 되어가지고 막 다리를 비비꼬면서 이쪽으로 오는 거야...!! 이쪽저쪽 막 두리번 거리면서...”
“아...앗!!!”
“뭐야, 저 여자... 낯이 좀 익은데...? 하면서 내가 불렀죠.”
“젠장...”
“해인씨!!! 오줌 마려워요!!!?? 이쪽으로 와요!!
화장실 여깄지롱!!”
“쳇!!! 뭐... 그런 걸 기억하고 있고 난리야!! 에헤이!! 그리고 그렇게 부르진 않았어요!! 그때!!”
세현은 그때의 일이 떠오른 듯 혼자 킬킬대며 웃었다.
“웃지 마요!! 자기는 뭐 화장실 안가나!!?”
“신기하죠? 훗, 그때 그 SHE를 하던 여자를 내가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왜 화장실도 못찾아 헤매는 여자 좋아하고 그래?"
"그때처럼 내가 찾아주려고 그런다!! 이렇게!!
이 여자야!!"
해인은 옅은 웃음기를 서서히 없애며 가슴 속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 모르겠어요... 대단한 척 하면서 집 뛰쳐나와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아직도 매일이 불안해요, 난.
어떻게 보면 믿고 지지해주는 아영이 하나 의지해서 결심이 섰던 건데, 그만큼 열정이 못 받쳐 주는 건 아닌가 하고... 아영인 꿋꿋이 자기 일 해 나가잖아요."
"나와서 어디까지 가는 게 목표인진 잘 모르겠지만...해인씬 아영이랑 뭐가 달라요?
좀 늦은 거? 아직 30도 안됐으면서..."
"불안하죠...! 확신이 없는 걸...!"
세현은 테이블 맞은 켠에 마주앉은 해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미약한 힘이나마, 확신을 드릴 수 있다면, 얘기하나 하고 싶은데요...!"
“뭐...뭔데요?”
세현은 해인의 코앞까지 다가가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나랑 같이 가요. 앞으로...!”
“엥? 어딜...?”
“나는 작가 지망생이에요. 해인 씨는 화가 지망생,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인거고. 아직 미완성인건 똑같지만, 이번 우리 공모전처럼, 앞으로도 계속 같이 하자고요...!!”
“저...정말요? 나랑?”
살며시 해인의 손을 잡고 테이블에 같이 올려놓은 세현.
“그리고 연구하고 하면 되는 거예요. 그 정도 그림 퀄리티 내는 거 보면 해인씨 초보 아니예요!! 오히려 내가 초보라면 초보지... 나도 당연히 꾸준하게 글 쓸거고... 부족하다고 생각할수록 카와모토네 작업실에서 꾸준히 갈고 닦아요. 열심히 가르쳐달라고 해요. 그 자식 아마 이제부터 말 잘들을 거야!”
“왜 말을 잘 들어요?”
“아... 그럴 일 있어요. 암튼 해인 씨를 위해 써먹을 만은 한 자식이니까,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렇게 하게 할 거예요...!!!"
해인은 세현과 잡은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나지막하게 이야기 했다.
“세현씨는...막 부정하고 그랬어도 결국은 베스트셀러 작가 임형우씨의 아들이잖아요. 그리고 어렵게 이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아마 작가로 데뷔할 수 있게 되면 세계로부터 주목을 끌게 될 거예요.
근데 나같은 아마추어랑, 뭘 믿고 같이 작업을 계속 하자고 그러는 거 에요? 이건 감정하고는 다른 문제잖아요...”
세현은 반대쪽 손으로 테이블 한쪽을 의미 없이 톡톡 건드려 가며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 이걸... 얘길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 남자 또 무슨 꿍꿍이를 안고 놀려먹으려는 건지. 해인은 일부러 궁금하지 않은 척 시선을 피했지만 이내 반사적으로 입술을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뭐.... 뭔데요...”
“일본에서 의심받고, 공항에서 싸우고, 프랑스에서 동네 주민됐는데 맨날 틱틱대고... 점점 미운 정이란 게 쌓였죠. 이해인이란 사람한테...”
“으..."
“근데, 알고 봤더니 노력파에 나랑 너무 같은 포지션인 게..! 점점 고운 정으로 바뀌어 갔달 까.
신경 쓰이고... 눈뜨고 창 열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어 보고 싶고, 근데... 감정이 생기는 만큼 걱정도 됐어요 나도...”
해인은 세현의 말로 떠오른 복잡한 여러가지 생각에 심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 버리고 여기 왔다는 사람인데, 매일 그림 그리느라 신나 있는 저 여자한테, 누가 좋아한다고 다가 가면 당연히, '누굴 좋아할 여유 없어요!' 할 것 같고...”
“음...”
“내 일도 뭔가 풀려있지 않은 상황에, 저렇게 열정 가득한 여자를 소유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알아요? 놓치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잡을 수도 없는 상황... 그런데요...”
해인은 세현의 이야기를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다.
“확신했어요. 이 여자 반드시 잡아야겠다고...!!”
“...왜요?”
“해인씨 그림이요. 해인씨 그림 때문에 그렇다고요!! 좋아하는 감정도 감정이지만...
내가 썼다는 소설 보여주고, 처음엔 내가 얘기하지도 않았을 때인데 그림 그렸던 거잖아요.”
“그건, 그렇죠...”
“근데 그 그림 보고 난 너무 좋았어요. 이건 뭔가 통하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가 끌어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난 그런 해인씨 절대 잡아야 겠다 생각했어요!!"
해인은 세현의 고백을 심각하게 듣고 있다가 갑자기 어느 부분에서 인가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가족을 위한다고 다 포기하며 살았던 해인의 이제까지의 인생.
혹시 뭐라도, 생활의 패턴에 변화가 생길 까 싶어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 역시 멋대로 제한해 두며 살아왔었다.
사실은 외로움을 숨기고 싶었다.
외부로부터는 강하게,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탈을 쓰고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해'라고 보여졌으면 했다.
결국 가장 가까운 가족을 향해 폭발한 자신의 본심. 그렇지만 항상 무섭고 두려웠다.
늘 향하고 싶었지만 머뭇거렸던, 새로 입문할 미지의 세계는 두근거렸지만 불안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목구멍까지 복받쳐 올라온 감정.
해인은 눈물이 차 올랐다.
"나... 이래도 괜찮은 건가요? 진짜..."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레 터진 해인의 울음보.
세현은 살며시 해인을 끌어안았다. 한없이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서로 한 번씩 주고 받았잖아요? 잘하고 있어요... 너무 잘해서 나 같은 놈까지 반해버리게 한 주제에...뭐라고 울고 있어, 이 딸내미야..."
해인은 마치 아빠에게 안겨 응석을 부리는 어린아이 마냥 세현을 부둥켜 안고 펑펑 울어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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