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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Aug 08. 2017

우연히, 그곳에서...<42화>

[ 제42화 _ 약속, 도장, 그리고 키스 ]

"해인씨, 나요..."

한걸음씩 같이 걸어가며,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는 듯한 해인과 세현. 

그 간 얼마나 서럽게 살아왔던 건지, 세현의 품에서 한참을 울어 눈이 퉁퉁 부은 해인의 머리카락를 옆으로 쓸어 넘겨주며 세현이 얘기했다.

"소설가가 되야겠다고 생각하던 순간부터 꼭 써야겠다고 생각한 글이 있어요. 이건 아버지 소설 읽던 순간부터 떠오르던 거 였는데..."

아직까지도 제정신을 찾지 못한 듯, 멍하니 있던 해인은 말없이 세현을 바라보았다.

"장편이예요. 다른 글도 이것 저것 써가면서 같이 준비해오던 건데, 벌써 3년이 넘었네요. 거기 매달린지..."

"자...장편이요?? 그거...좀 어려운 거 아니예요? 아무리 책 많이 읽고 그랬더라도 정작 쓰려면 막막할텐데..."

"왜 아니겠어요... 소설가 준비만 꼬박 4년차인데 그 절반 이상을 매달려도 아직 완성이 보이지도 않는 걸요...이것저것 공부할 게 많기도 했고..."

공원에서 집까지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울고 난 후 조금 으슬으슬함을 느껴서 인지 파르르 떠는 해인에게 세현은 자신의 셔츠를 벗어 주며 말했다.

"자, 그래서 말인데...!! 해인씨하고 나하고 같이 할 공동 작품, 그 두번째는...!!"

"...??"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이 장편 소설로 갑시다!!"

해인은 화들짝 놀라 세현의 얼굴을 재차 확인하였다.

"에?? 장편을요?? 진심이예요??"

"왜요? 부담돼요?"

"아, 아니...뭐 부담도 부담이고..."

세현의 눈에는 또 순진하게 이것저것 계산하느라 머리를 굴리며 잡 생각으로 가득한 해인이 들어왔다.

"아직, 완성도 안됐어요. 해인씬 작업실에서 다른 그림으로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면 돼요. 
뭐 벌써부터 쫄아 가지고...!!"

"안 쫄았거든요!? 그냥...생각 좀 한 거예요!! 합시다, 해!! 한번 했는데 두 번 못할 건 뭐야!!"

세현은 해인을 잡은 손을 살포시 가슴까지 들어올려 손가락을 하나 둘 펴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엄지 손가락도 들어 서로 맞대며,

"오케이...! 자 그럼...약속 한 거예요!? 새끼손가락 이건 계약... 그리고 이쪽 건, 도장이니까 다른 말하기 없깁니다!"

"뭐야, 유치하게!! 약속, 도장...이 드립이 언제적 농담이예요? 작가란 사람이 트렌드 떨어지긴...!"

"어허...! 어디 트렌트 세터 남친을 올드맨 취급하는거예요? 연인끼리의 
이, 선 약속 후 도장은요...! 그 유치한 드립을 뛰어넘는 의미가 담겨있는 거 몰라요?"

"에? 뭐...뭔데요??"

"이봐, 모르잖아...! 자 요거, 요 도장 찍은 자세로 5초 이상을 있어야 돼요. 가만히... 여기에 딱 집중하는거야. 

어때요? 맥박 느껴지죠? 서로 맥박이 느껴질 정도로 길게 잡고 있다는 건 그만큼 더 마음을 담는다는..."


"쳇, 이 사기꾼 같으니...어디, 말이나 못하면...!!"


해인은 또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세현을 쏘아 보았다. 

해인의 그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장난스레 모른 채 하며 걷다 어느덧 숙소 앞에 도착한 두 사람.

"자, 그럼... 해인씨 잘 들어가요...!! 다시 말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들, 내일 날 밝으면 현실로 돌아오는 꿈 아니예요...!! 우리는 이제..."

세현은 둘이 맞잡은 손을 들어 해인에게 새삼 각인 시켜주었다. 미묘하게 미소 지으면서도 아직 실감이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의 해인. 

세현은 쭉 해인과 눈을 맞추다 떠오른 다른 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털었다.

"그런 들여보내기 아쉽다는 눈빛 자꾸 보내면 나 못 참아요!!"

"아...아니, 내가 언제요!! 소설  좀 쓰더니 정말 소설 쓰고 있어!!"

세현은 해인의 양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절대로 자기 욕심만 채우자고 여자 대하는 그런 남자는 되지 않을께요. 그러니 해인씬 이제부턴 확실하게 내 뮤즈가 되어 주는 거예요! 알았죠?"

과감하게 다가가 그러나 부드럽게 세현은 해인의 볼에 키스를 남겼다.

해인은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허둥대며 얼굴을 붉혔다.

"차...참 나... 이런 말을 참, 천연덕스럽게 잘도 해..."

"들어가요, 해인씨...! 잘자고!!"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해인을 들여보내는 세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저 미소...

생각해보니 이 기시감의 정체는 일본에서 처음 만나던 순간, 짐 드는 것을 도와주러 왔을 때 세현을 처음 만나 지어주던 그 훈남의 미소였다.

그 미소가 지금 이 순간으로까지 이어질 줄은...

세현의 볼 키스 때문인지 빨라진 심박수를 진정시키며, 해인은 방으로 올라왔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몹시 서툰 듯한 해인의 
이 정도의 수긍만으로 세현에게는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방으로 들어선 세현. 
방문을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벽면에 걸린 그림액자가 들어오는 세현을 맞아주었다. 

해인에게서 받은 그림 원본을 액자까지 만들어 벽면에 걸어두었던 것.

눈에 띄고, 계속 생각나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자기 전까지 어느 곳에건 해인의 흔적을 남겨두니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살았던 건지 모른다.

세현은 문득, 이야기 중에도 여러 번 거론 되었었던, 두 사람의 연결고리, 아영이 떠올랐다.

자신이 해인에게 품게 된 감정을 얘기해야 할 지... 

자신 역시도 아영한테 좋은 영향을 받기도 했었고, 해인에게도 결정적으로 큰 조력자의 역할을 해 주었다니, 

이슈가 터져 상사에게 보고를 하는 부하직원이 된 기분으로, 왠지 그대로 전달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겨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떠오른 복잡한 생각으로 잠시 망설였지만, 세현은 바로 아영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오...!! 세현이 오랜만이다..!?”

“훗, 선배님 평안하십니까?”

“쳇, 그 놈의 선배님 소리 좀... 평안 할 리가 있나... 인생은 고통이야!! 

치열하게 움직이는 것만이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지름길이지...!! 후훗... 너는 어때? 살만해? 인제 완연한 유로피언 인가...!?”

“응...! 덕분에... 요새도 많이 바빠? 지금 전화 받을 수 있니?”

여전히 밝고 쩌렁쩌렁한 아영의 목소리. 
전화 걸기 전,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던 고민을 싹 잊게 해 줄 정도로 순조롭게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일이야 뭐 늘 같은 일인데, 요새 하나 뭐 더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좀 정신이 없네...!!”

“일? 아르바이트 또 잡았어? 너 그러다 몸 상해!!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흥, 차라리 돈이나 되는 일이었으면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말야...!! 아무튼 그런 거 있어!! 글은? 어떻게 잘 써지고 있나??”

“아, 최근에 아버지 소설 출판사에서 크게 공모전을 해서 거기 출품할 글 하나 썼어...!”

“아, 알지... 그거 돌아다니다 봤다...!! 일본에서도 현수막 여기저기 붙어 있더라. 그 여파로 서점에서 너희 아버지 소설이 다시 판매 부수도 올라간 모양이던데...”

“그치? 일본에서도 시끌벅적 할 거야... 이건 뭐 전 세계 대상이니... 한국에서는 더 어마어마 하겠지...아, 기태도 참가 했으려나...”

“기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너 친구라 했었나...?”

한국에서 이미 작가를 하고 있다는 자신의 친구 기태의 이야기. 일본에서 아영과 같이 일을 하던 당시, 간혹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다.

오랜 친구이자, 자신의 선배 뻘인 작가, 한기태의 이야기. 그렇지만 그다지 관심이 없어 유심히 듣지 않던 아영은 쉽게 잊어버릴 만도 했다.

“응, 맞아...! 너한테도 한두 번 얘기한 적은 있는데, 나랑 고등학교 동창이야. 일찍부터 작가하고 있는 녀석... 그때 책 쓴 거 몇 개도 있다고 얘기했었어!”

“음...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이렇게 큰 행사인데,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도전 안하겠어..?  아, 가만...! 해인이가 그림 그렸단 게 혹시 그거야??”

세현은 깜짝 놀라며 그제서야 전화의 목적을 다시 상기했다.

“앗...!! 어... 어떻게 알고 있지? 해인 씨가 전화했었어? 오...오늘 출품했는데...”

아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무언가 들킨 듯 얼어버린 세현의 말투에 의심을 품으며 이야기 했다.

“음? 왜 이렇게 더듬어? 뭐야, 뭔 일 있어? 너 해인이 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해인이가 저번에 술 진탕 먹고 주정하듯이 전화해서는 막 얘기 했던 건데...”

카와모토랑 술 먹고 인사불성 되어 데려다 주었던 그 날이구나... 세현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척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고 아영에게 말했다.

“아니, 숨기는 게 뭐 있어...!! 그냥 네가 먼저 알고 있길래 신기해서 그런 거지...”

“그래? 음... 암튼... 나도 그 소설에 그림 보고싶다... 언제쯤 보여줄래?”

“후훗, 발표가 좀 늦어요...! 일단 사전 유출은 좀 껄끄러우니까 모집 마감 날 정도해서 보여줄게...!! 해인씨 그림이 아주 좋아...!!”

“그래? 오...기대된다...”

눈치 채놓곤 일부러 깊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까, 

해인과의 감정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해 놓곤, 정작 겉만 돌고 있는 느낌. 

이 때 까지도 세현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자신이 알던 아영이라면 이 정도의 단계에서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다.

“임세현이...!!”

응? 왜 이렇게 의미심장한 풀 네임을 갑자기 불러대는 거지... 

“어...엉?? 왜??”

“너는... 장난 칠 거 아니란 거 아니까 내가 믿는다... 해인이 말야...”

“응??”

예상대로 이미... 상황 파악이 끝난 투로, 
옆에서 부터 파고들어 오는 스무고개 놀이에 

세현은 긴장을 바짝 한 채 아영의 목소리에 더 집중했다. 

“쳇, 모르는 척 하기는... 내가 널 모르냐? 일본에 있는 내내 누구한테도 눈길 안주더니... 

나 같은 치명적인 매력녀 한테도 눈길 안주던 네가 먼저 누구한테 손을 내밀어? 그럼 뭐 대충 게임 끝난 거지...자, 그럼 이제부터 해명타임...!!”

어쩌면 이렇게 목소리 톤 하나 안 바뀌고 예측해낸 사실들을 바로바로 쏟아 낼 수 있는 지... 

이 여자는 어디든 수사를 통해 사건 파헤치는 일을 했어야 했다.

“자, 어서 떠들어 봐!!”

“뭐...뭘...??”

“흠... 보자... 너 글 쓰는 거야 뭐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한텐 보여 준적이 한 번도 없는데, 해인이 한테는 먼저 제안을 했던 걸 거 아냐? 글 보여주면서... 이 글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그... 그랬지... 해인씨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

“그건 그냥 [팩트]인거고... 이렇게, 모집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공개할 수 있다는, ‘극비’문서를 공개하면서 ‘같이 합시다’ 한다는 건, 

보통의 신뢰 관계 없인 할 수 없는 거거든. 그것도 오랜 기간 만나오면서 쌓인 신뢰 관계정도가 아니라면...”

“꿀꺽...”

아영의 날카로운 스무고개는 점점 진실을 향해 달려왔다. 

변명할 여지없이 파헤쳐지고 있는 상황에 세현은 이제 앞으로의 각오 정도나 얘기할 준비를 해야 할 따름이었다. 

“자, 그런데 그 '오랜 신뢰 관계'를 넘어서는 게 하나 있지.”

“뭐...뭔데?”

“Fall in LOVE 라고나...!! 영어는 잘 못하는데 발음 이게 맞나...”

“에엣....!!”

새삼 해인에게 그림을 의뢰하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니,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그 감정을 가졌었는 지 모른다.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목소리와 상황만을 조합해 결론을 내린 아영. 
이 여자, 역시 보통이 아니다...

“음... 안그래도 얘기... 하려고 했었어... 언제부터 해인씨한테 호감이 생긴 건 지는 잘 모르겠는데...”

“으흠~!”

“바로 앞집이라 자주 마주치면서 얘기하고, 그러다 알게 된 상황이 나랑 너무 비슷한 거야... 그러면서도 너무 필사적으로 열심히 사는 모습에... 끌리긴 했어. 
처음엔 뭐랄까, 같은 예술을 하는 순수한 열정에 빠져 공유하고 싶은 거 였는데... 

그리고 처음부터 그림을 의뢰했던 건 아니고, 글 보여주고 나중에서야 얘기를 꺼내 본 거였어. 그런데, 글 보여준 순간부터 벌써 그림을 그려놓았더라고... 그것도... 너무 마음에 드는 그림을...”

“음... 이건 뭔가 나는 공감할 수 없는 창작하는 사람들끼리의... 영혼의 교류... 같은 건가...”

“모르겠어, 근데... 이젠 좋아졌어. 해인씨 성장하는 거 같이 보고 싶고... 나도 그만큼 잘되고 싶고...”

아영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한 두 사람의 진전에 다소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상처 많은 애야... 해인이... 학생 때부터 어리바리 하긴 했지만, 맨날 눈치 보느라 기도 못 펴고 살고... 아마 아버지가 안 계실거야... 이래저래 고생도 많이 하고...”  

“응, 들었어... 그런 말 어렵게 꺼내서 해주더라고...”

“그렇군. 암튼...!! 이상한 소리 들려오면 넌 나한테 죽는다...!! 잘해줘 해인이 한테... 나 사실 지금 누구랑 같이 있는데 이만 끊을게! 다음에 또 연락해라..!!”

“그래, 고마워...!! 수고해...”

뭔가 후련해 진 세현. 
이제는 어느 방면에서건 완연한 조력자가 된 듯한 아영을 떠올리자 미소가 지어졌다. 

일본에서 다음 갈 길을 서두르던 아영 역시 세현과의 통화 후, 뿌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훗, 나도 그림이나 그려볼 걸 그랬나... 멋있네...임세현이... 영혼의 교류라... 크리스도 처음엔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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