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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Aug 11. 2017

우연히, 그곳에서...<43화>

[ 43화 _  잘 들 논다, 아주... 에휴... ]

            

"야!! 너 요즘 통 진전이 없다? 생일 밥도 같이 먹어주고 그랬으면 수사에 더 박차를 가해야 되는 거 아니냐?!!"



세현과의 오랜 통화를 마친 아영.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받고 있는 듯 했지만, 사실 눈 앞에는 정보 교류차 만난 야마다가 같이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길고도 길었던 아영의 통화가 끝나길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던 야마다,

"아... 알아보고 있다고!! 근데 그 에릭슨 친구라는 친구도 지금 어디 갔는지 연락이 안되는 걸 어떻게 해..."

속 터지게... 누구누군 자기들만의 세계 만들며 바다 건너 꽁냥꽁냥 풋풋한 연애 기운 풍기고 있는데, 자신은 보람도 없는 전 남친 수사나 하는 신세라니...

더군다나 눈앞에는 이 찌질한 오타쿠 자식...

아영 자신도 피해자였지만, 더한 피해사례를 호소해가며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눈앞의 
이 처량한 남자를 보고 있자면, 크리스를 향한 복수심이 몇 배는 더 커지는 듯 했다.

"그러니까, 다시 조합해 보자...! 누락된 정보 있으면 중간에 체크해 줘봐...크리..."

[ 부르르르르르 ]

뭐야, 또? 
아영의 폰으로 걸려온, 이번에는... 해인의 전화.

"아, 나... 이것들은 꼭 같은 시간에 이렇게 전활 해... 누가 같은 데 있는 거 모를 까봐..."

아영은 자신의 정리된 추리 노트를 야마다에게 떠다 넘기며 해인의 전화를 받았다.

"야, 야마다! 너 이거 보면서 계속 궁리나 더 하고 있어!!"

왜인지 전화기 너머로 한참을 말이 없다가 조심스레 입을 연 해인.

"여보...세요? 아영아..."

"그래, 이것아!! 전화를 했으면 먼저 말을 꺼내야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잘 있었어??"

"아, 그럼...! 나야 특별한 일 없지... 아... 근데... 저번에 내가 너한테 전화해서 무슨 얘기 했었니?"

지난 번, 시공을 초월한 주사로 어쩐지 전화기 너머로 와인 향이 풍기더라니, 설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 지 전혀 기억도 못하고 있는 건가...

"음... 막... 비밀이라고 엄청 강조하면서, 세현이 글에 그림 작업을 같이 하게 됐다고 얘기했지... 나는 자나깨나 외국남자 조심을 강조했고... 기억이 나기는 하니? 이것아...!"

"아...그거라면 기억 나... 그거 말고는 뭐 다른 말... 했던 건 없지?"

이미 세현에게 전해들어 해인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 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아영으로선 달리 더 궁금할 것도 없었지만,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김에, 이 어리숙한 친구를 한번 도발해 보기로 했다. 


"음, 너 세현이 얘기도 했었어...!!"

"내...내가 세현씨 얘기를...??!!"

화들짝 놀라며 미끼를 제대로 문 듯한 해인.

"그래...! 자, 다 알고 있으니까, 맨정신일 때 한번 더 얘기나 해보시지? 세현이가 어떻다고..?"

전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영이 콕 찝어 세현의 얘기를 거론하는 걸 보니, 자신이 뭔가 말을 하기는 했었는 모양.

순진하게도,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투로 도발하는 아영에게 해인은 빼도 박도 못한 채, 이실직고 하기 시작했다.

"휴우... 그...그래...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세현씨가... 바로 코앞에 산다고 했잖아? 그러니 뭐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지, 뭐... 일하는 레스토랑이 우리 작업실하고 같은 방향이기도 하고..."

구구절절 스토리가 시작되고, 같은 '사실'을 해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얘기할지 아영은 흥미롭게 지켜 보았다.

"배려심 있게 잘해주고... 장난 많이 치긴 하지만 자기 일도 열심히 하면서 확실한 자기 고집도 있는 편이고...얘기도 많이 하다보니..."

"음... 가랑비에 옷 젖듯...?"

"아니...뭐... 그... 그냥... 좋은 사람이고, 참 사람 편안하게 해주는 구나 싶었는데, 어느 날, 단편소설을 썼다며 보여주는 거야... 보고 고칠 데를 말해 달라고... 뭐, 솔직히 나는 소설같은 거 잘 볼 줄도 모르는데..."

“소설을 보여줬다고? 그래서?”

엔딩이 정해진 이야기일지라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연이 다르니 뭔가 다르게 느껴졌던 걸까.

아영은 재미난 드라마라도 보듯 더 흥을 돋우며 이야기를 재촉했다.

“근데 소설을 보니까 고칠 부분 찾는 건 둘째 치고, 그냥 막 뭔가 이미지가 떠올라 그려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세현씨 몰래 그렸어. 

근데 나중에 어쩌다가 공모전에 같이 출품하자는 얘기가 나와서... 그걸...같이 쓰게 된거지 뭐..."


“에헤, 소설, 그림... 그런 거 말고 좀...! 그런 거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재미있는 얘기들 있잖아!?”

자신이 술김에 저지른 듯한 말실수를 무마하려 횡설수설하던 해인은 아영의 낚시에 제대로 낚이기라도 한 듯, 

분명 세현과의 일화는 그 사건 뒤에 벌어진 일이건만, 제대로 속아 넘어간 해인은 앞뒤 시기마저도 헷갈린 채 말을 꺼냈다.


“아....그... 세현씨가...나 좋다고...앞으로도 작업도 계속 같이 하고 싶다고...”

“뭐? 너한테 얘기를 벌써 했단 말야?”

세현에게 듣기엔 아직 혼자 좋아 끙끙 앓고 있는 줄 알았더니, 벌써 당사자한테 고백까지 한 상황이었다니. 

아영은 순간 세현을 너무 우습게 본 사실을 반성했다. 

생각해보니 누구 좋아서 끙끙 앓는 건 자신의 눈앞의 저 야마다 같은 놈이나 할 듯한 행동인 것을...

“역시...임세현이, 거칠 게 없구나... 추진력 하난...! 그래서, 넌 기분이 어때?”
 
“잘...모르겠어... 내가 자신이 없는 거지 뭐... 세현씨가 싫다기 보다...”

[ 저기...아영씨, 통화 좀 그만하면 안돼? 같이 얘기해야... ]

한창 해인과 이야기를 하던 중 옆에서 불쑥 끼어들어 속삭이는 야마다. 

아영은 순간, 미간이 훅 찌푸러지며 해인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 퍽퍽퍽!! ]

해인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뭔가 후드러 패는 듯한 소리... 책상이 넘어지고 남자의 곡소리까지 들려왔다. 

“아, 아영아...!! 무슨 일 있어? 지금 누...누구랑 같이 있는 거야??”

일련의 액션 후, 약간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영은 다시 핸드폰을 잡았다.

“후우... 아니야...!! 자식이 건방지게 어딜 껴들고 있어...!! 아냐, 아냐!! 계속 얘기해. 그러니까 너도 세현이가... 싫지는 않다 이거 아냐? 하긴, 뭐 어지간해서 싫어할 여자 있을까...”

“아, 음? 음..."

“엉? 뭐야, 난 아냐! 뭘 상상하는거야?? 난 그냥 친구라니까!! 몇 번 말했구만, 사람 말을 이래 못 믿어!! 그러니까 이렇게 편하게 연락하지...! 난 지쳐서 연애 같은 거 이제 안 해!! 

여기도 나 좋다는 애들이 널려있는데도 지금 내가 다 까는 중인데 뭔 소리야! 임세현 고것은 나한텐 눈길 한번 안 주던걸 뭐! 여자가 자존심이 있지 말야...!!”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이렇게나 매력적인 여성이건만, 연애를 안한다라...

순간, 해인은 이전에 세현과의 얘기 중에 나왔던 아영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둘 사이에 공통인맥이 아영이란 것을 알게 되던 때에 세현이 얘기해 주었던, 아픔을 지녔다는 아영의 과거.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느라 잠시 멈칫한 뒤, 해인은 아영에게 말을 꺼냈다.

“...음, 아영이 너 혹시 옛날에 무슨 안 좋을 일... 있었니? 이제까지 친구라고 해놓곤 너한테 너무 무관심 했던 거 같기도 하고...나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얘기하기 불편한 거면 말 안해줘도 돼...!"

“과거 안 좋은 일? 아, 남자 말이구나... 세현이 이놈이 또 쏘삭거려 놨나보네... 아이구...”

“남자?”

아영은 한 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크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해인에게 들려주었다. 

몇 년간 일과 병행하며 그를 쫓아오고 있는 현재와, 우연히 피해자 신분으로 만나 공조수사를 벌이고 있는 눈앞의 야마다의 이야기까지. 

친했다고는 해도, 차마 남자한테 이야기하긴 부끄러워 이성인 세현에게는 말을 아꼈던 부분까지 이야기를 하게 된 아영.

해인으로선 그런 일을 겪고도 이렇듯 흔들림 없이 외국 생활을 이어가는 자신의 멘토 아영이 더더욱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근데, 크리스? 일본 사람인데 이름이 크리스야?”

“사귈 때는 별로 신경 안썼었는데, 아무래도 가명 같지...? 암튼 그 자식 쫓느라고 아까운 청춘 꽤나 낭비하고 있지...! 최근 들어 조금 더 활발하게 찾아가고는 있어, 눈앞에 이 자식 덕분인지...”

아영은 여전히 테이블 너머에서 축 쳐진 어깨로 혼자 뭐라 중얼거리고 있는 야마다를 노려보며 해인에게 이야기 했다. 

"근데, 뭐야...? 내 얘긴 됐고, 해인이 너 이렇게 갈팡질팡 하고 있는 거 보니, 세현이가 확실하게 사귀자 소리는 안한 모양이네? 얘길 꺼냈으면 책임은 져야지 말야!"

"그런 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던데..."

"음? 이것 역시 예술가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인가? 뭐 네가 알겠다면 된거고...! 암튼 잘해봐!!"

[아영씨, 전화 좀...]

한바탕 얻어 맞은 후에 멍하니 기다리던 아영 옆에 야마다가 또 끼어들며 다가와 얘기했다.

"아, 나 저 자식, 거 더럽게 귀찮게 하네... 해인아 일단 끊자. 다음에 또 연락하고...!"

"응, 그래 바쁜 거 같은데 시간 너무 뺐었네... 
아무튼 오늘 어려운 얘기 해줘서 고마워..!!"

세현에 이어 해인까지 기나 긴 통화를 마친 아영. 

계속 옆에서 찡찡대는 야마다를 구박하기는 했지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해 바로 자세를 바로 잡았다.

뭔가 혼자 끊임없이 자료를 정리 하다 아영에게 할말이 생겨난 듯 계속해서 보챘던 야마다.

"뭐 찾아낸 거 있어? 왜 자꾸 다른 용무 보는 사람 옆에서 재촉은 하고 난리야?!"

"우리 수사 얘기... 해야지...!! 아, 아영씨 그... 호주에서 만났던 에릭슨 친구 소식통도 이젠 많이 쓸 수가 없을 것 같아. 너무 자주 연락해서 그런지 내 전화를 좀 피하는 느낌이더라고..."

"멍청아!! 그러니까 적당히 사이즈 봐 가면서 했어야지!! 일방적으로 정보를 빼내야 되는 상황에서 무작정 들이대면 어떻게 하냐!!?"

"아니, 아영씨가 하도 뭐라 그러니까..."

그래도 이제까지 수집한 정보들을 모아 꼼꼼하게 한눈에 보이는 자료로 만들어 온 야마다. 

그 정리한 자료를 빨리 아영에 보여주고 싶어서 보챘던 것인지, 아영이 전화를 끊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바로 브리핑을 준비했다.

"에릭슨하고 크리스하고 지금도 같이 있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에릭슨의 동선만 따라가 보자면 현재는 자기 고향 쪽에 가 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아."

"어째서? 유학이며 뭐며 해외로 돌던 사람이라면, 시작한다는 사업도 외국에서 할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원래부터 유럽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에릭슨은 호주에서도 여기저기 예술 관련해 견학을 하러 다니는게 목적이었어. 적어도 호주에 있을 땐 사업한단 얘긴 안했으니까."


"호주에 있다가 자기네 고향으로 돌아갔던 건 맞아?"

"자기 원래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었어. 가족도 있어서... 그리고 한 반년 있다 일본에 자금 구하러 온 거 였으니... 고향 쪽에서 뭔가 일을 진행한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어? 일본에서 만나기 전 연락할 때는 항상 자기 나라라고 했었거든. 

크리스랑은 그저 비지니스 파트너 정도로 보였으니까 일본엔 돈 때문에 온 것 같고..."

"음, 그럴싸 하네... 크리스도 그렇고 남의 돈 갈취해놓고 그 일본에서 사업을 진행하진 않았겠지..."

넓디 넓은 유럽에서 '에릭슨' 찾기라... 좁혀지고 구체화되어 갈수록 일은 더 커져가는 듯 했다.

준비해온 브리핑에 대한 나쁘지 않은 평을 들은
야마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아영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영씨, 근데 저기... 혹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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