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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Aug 15. 2017

우연히, 그곳에서...<44화>

44화 _ 지겹디 지겨운 연결고리...!!


"저기 말이야, 아영씨...!"


야마다는 가만히 무언가 생각하다 아영에게 다가와  얘기했다.


"크리스라는 남자 말야... 혹시 뭐 다른 외국어를 할 줄 안다던가, 그런 거 없었어?"


가만히 크리스와의 기억을 떠올려 보는 아영.


서로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존중해 준다는, 나름 멋지게만 여겼던 연애 방침이 이럴 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던 건 지, 그의 특이점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끙... 잘 모르겠다. 뭐 일단 나도 그땐 일본어 잘 못할 때라...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쳇, 그래도 몇 년은 사귀었다면서 이렇게 가진 정보가 없냐... 사귄 거 맞아??"


간만에 기세등등하게 핀잔을 주는 야마다.

그렇지만 아영으로선 지적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었다.


그저 느낌 따라, 스타일 따라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하고자 하는 주의였기에 오히려 남들과는 다른 그 패턴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시기였다.


"음... 아영씨, 나 지금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말야...!"


"응?? 뭔데?!"


"처음 크리스 소개 받을 때 전화로 한 대화였지만 두 사람 얘기하던 언어가 영어는 아니었던 것 같아...!”


“뭐? 당연히 에릭슨인가 그 놈이 일본말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더니만... 둘이 그럼 다른 외국어로 소통 했단 거야? 불어? 스페인어?”


“그게... 잘 기억이 안나... 근데 호주에서 만나 영어로 얘기할 때도 에릭슨 발음이 본토 영어는 아니었었거든. 그럼...유럽 중에서도 영국은 아니지 않을까..."

 

서로 바쁜 일상 때문에 깊이있는 접근을 하지 못하다 간만에 서로 떠오르는 기억을 공유해 가며  점점 좁혀가는 수사망.  


“저기, 아영씨. 아영씨,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지금... 유럽에 있다는 친구들 있댔지? 좀 전까지 막 전화하던 친구들도 그 사람들 맞지?”


“그런데?”


“나중에... 우리 정보 좀 더 좁혀지거든 그 친구들 좀 이용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기엔...”


[ 퍽!!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나게 얻어맞는 야마다. 아영은 단호하게 야마다에게 소리쳤다.


“미친놈아!! 걔네들도 바빠서 지금 가끔씩 연락하는 판에, 걔들은 무슨 특파원인 줄 아냐? 그리고, 유럽이 무슨 너네집 앞 동네인 줄 알아?

어딘 줄 알고 이름하나 가지고 유럽 가 있단 애들을 이용하자고 해? 너 임마! 지금 신주쿠에 가서 [야마다]란 이름 가진 애들 찾아봐라! 몇 시간 안걸려 한 트럭은 나올 걸?!”


어이 없는 제안에 말도 되지 않는다며 부정은 했지만 아영 역시도 딱히 명쾌한 해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정말 유럽에 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쫓아가 잡을 수 있을 지...


지구 끝까지라도 쫓겠노라 처음엔 생각했지만,

그러기 위해 이곳에서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니, 이래저래 부담이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무엇보다 그것으로 인해 크리스에게 빼앗긴 돈과 시간, 감정들이 더더욱 낭비되는 것 일 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억울하기 짝이 없이도...






***






한국.

도로 한복판에서 대학시절 앙숙이었던 만식과 맞닥뜨렸던 기태.


횡단보도에서 졸음운전으로 기태에게 돌진해 교통사고를 낼 뻔 했던 만식은,


얄 짤 없이 조수석에 기태를 태우고, 가만히 시키는 대로 차를 몰고 있는 중이었다.


“한기태... 너 아까 도로에서 넘어지던데, 어디 많이 다친 거냐?”


“네놈 미숙 운전때문에 피하다 넘어진 건데,

남의 얘기 하듯이 ‘넘어지던데' 라니... 잠깐 졸았다더니, 아직도 꿈나라냐?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상황판단 안돼? 정신 차려!! 임마! 지금 교통사고 상황이야. 넌 가해자고!!”


“......”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멋적은 표정으로 살짝 살짝 눈치를 보는 만식.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오로지 정면만을 주시하고 있다.


조수석의 기태는 그런 만식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기태가 참여했던 학교에서의 마지막 합평 후,

6, 7년이 지났지만 그 후론 한 번도 본 적 없던 만식.


만나고 싶지도, 만나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악연임에 분명했다.

마지막의 좋지 않았던 기억에, 당연히 서로를 찾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었지만,


이런 얼토당토 않은 상황에서 다시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뒤에는 짐이 잔뜩 실린 납품 차량을 타고, 회사명이 적힌 용역 조끼를 입고 있는 것으로도,


지금 만식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정도는 금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모습과 과거 학생 시절의 그.


목에 핏대를 세우며 문학적으로 자신과 대립하던 때의 모습과 겹쳐져, 기태는 무언가 안타까운 느낌까지 들기 시작했다.


“어...어디로 가자는 건데... 목적지는 말해야 할...”


여전히 힘 빠진 목소리로 기태에게 말을 거는 만식에게 기태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피해자랑 합의를 보자는 놈이면 어디든 이야기 할 데를 찾아야 할 것 아니냐! 어디든 들어가!! 차 안에서 얘기 할 셈이야??"


단호한 기태의 태도에 그냥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님을 느껴서 였을까, 만식은 고분고분 기태의 말을 따랐다.


차를 세우고 근처의 카페로 들어가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마주 앉게 된 두 사람.


“...이제 어떻게 할 지 얘기 좀 해줘. 많이...다친거냐? 우리 옛정도 있는데 어지간하면 일 크게 만들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부탁할게...

회사에서 곤란한 일 생기면..."



사고 낸 주제에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봐주고 싶어도 저 주둥이 때문에 더 열받겠다.

옛날 같았으면 또 물고 뜯고 난리가 났을 법한 상황.


그러나 그 때와는 달리, 지금 눈앞에 불쌍한 표정의, 완연한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만식을 보고 있자니 기태는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양아치같이 돈 뜯어내려는 놈은 아니니까

이 정도 상처 정도의 사고는 그냥 넘어간다 치고... 대신에, 지금 네놈 모습에 대해 설명은 좀 듣고 싶은데?"


기태는 몹시도 위축되어 눈치만 보고 있는 만식과 눈을 마주하며 이야기 했다.


"학교 땐 대작가 마냥 잘난 듯 떵떵거리던 놈이 지금은 뭘 하고 있는거야? 그렇게 잘나서, 애들한테 미움받아가며 악역 자처했으면 좀 있어 보이게 살아야 하는 거 아냐?"


만식은 한동안 말없이 앞에 놓인 물만 들이키며 일부러 기태의 눈을 피했다. 그러다 분을 억누르듯 이글대는 눈빛을 하고는 대답했다.


“내...내 모습이 어떻다는거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마라!! 세상 일이란 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결국에는 현실에 타협해서 살 놈이 그렇게 말을 싸가지 없게 하고 다녔냐? 얼마 전에 우리 후배라는 애 우연히 만났었는데, 아직도 네놈 얘기 나오면 치를 떨더라... 사방에 적만 만들고 살았네...아주...”


"그...그러는 넌 지금 뭐하는데?!"


"아직 잘 나가진 못하지만 난 엄연히 전업 작가다!! 알고 싶진 않았지만, 네놈 얘기 들릴 때마다 그래도 어딘가에선 그 더러운 성격 질러대면서 글 쓰고 있겠거니 했는데..."


한 번도 작가 이 외의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태로서는 분명하게 내세울 수 있는 명분.


"머...멋대로 상상하지 마!! 난 작가를 포기한 게 아니니까!! 이건 그냥 아르바이트라고!! 글은 계속 쓰고 있단 말이다!!"


"밤새 글 쓰시느라 그렇게 졸면서 일 하는거냐? 아르바이트라면 좀 소소하게 할 것이지 말야...! 너 오늘 사람 죽일 뻔 한거야!! 알아?? 감방에서 회고록 쓰고 싶냐?!"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다시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이제는 그래서는 안될 것을 인지하기라도 한 사람들 처럼 갑작스레 찾아온 침묵.


"잘... 살았냐..."


"그래...! 네놈보기 싫어 학교까지 관두고 나왔는데 그러고 나와 뭐라도 안했겠냐? 넌 학교 졸업은 했냐?"


"사실...나도 기태 너 관두고 나서 얼마 안되서 때려 쳤다."


"...왜? 또 누구랑 한바탕 했냐? 참... 너도 단체 생활하기는 글렀다... 성격이 보통 더러워야지 말야... 나도 뭐 남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생각해 보니 만난 이래 이렇게나마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던 적도 없던 두 사람.


만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기태에게 말했다.


"사고 넘어가 준거 고마워서...대신 좋은 정보 하나 알려준다...! 너 글 계속 쓴다니까...!"


"뭐?"


누가 들을 새랴 주변의 눈치까지 한번 살피고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만식.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 있잖냐, 거기서 큰 단편 공모전 하는 거... 아냐?"


"휴우..."


좋은 정보라더니...설마, 끝...?

이미 공표되어 세상이 떠들썩한데 뭘 이제서야...


"야, 장난하냐? 그 소식이 지금 비밀이라고 나한테 알려주려는 거야? 너 어디 동굴에서 살다 나왔냐? 그냥 넘어가려 했더니 안되겠다. 경찰서 가자...!!"


"아니!! 아니!! 그게 다가 아니지!! 너라면 당연히 알 줄 알았지... 근데 내 작가적인 촉에 의하면 말야,


그 공모전에 무려 [그들만의 세상] 작가 임형우씨의 아들도 출품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야!!"


또 세현의 이야기인가... 지겹다, 지겨워...

그나저나 일면식도 없었을 세현 소식을 이 녀석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기태, 너... 그 작가 아들하고 친구 맞지? 그럼 벌써 알고 있는 사실 이려나..."


"엣?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거냐!?"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닌가 봐, 걔가 내 얘기 안하디?"


무슨 영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던 기태.

세현의 이야기는 딱히 듣고 싶지 않았지만, 이 전혀 연결 고리도 없는 녀석과 엮인 이야기라니.


"학교에서 너 합평 도중에 박차고 뛰쳐 나갔던 날, 너 찾으러 학교 주변 맴돌던 네 친구라던..

임세현... 그 사람 만났었다."


"뭐?? 네가? 네가 왜?? 전혀 알지도 못하잖아!!"




7년전 기태의 대학교 안.


기태의 과방에서는 피튀기는 합평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선배와 후배 할 거 없이 10여명이 모인 자리.


이곳에는 아직 신입생이었던 소현도 있었다.


기태와 중 고등 동창에, 대학은 다른 곳이었던 세현.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기태와 만나 사는 이야기 정도는 주고 받았었다.


이 날 역시도 세현은 마침 기태의 학교 근처를 지나가던 차에 잠시 들러 놀래켜 줄 생각이었다.


평소 같은 과 친구들끼리 자주 과방에서 합평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세현은,


없으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학교로 들어가

물어 물어 기태의 과방 쪽으로 다가갔다.


공교롭게 열혈 합평 후 기태가 학교를 뛰쳐나간

직 후에야 도착한 세현.


"저... 혹시 여기 한기태라는 학생 있나요?"


기태가 막 뛰쳐나가고 싸해진 분위기의 과방 안으로 들어온 환한 외모의 세현.  


처음 보는 낯선 이.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과방내 여학우들은 훈훈한 세현의 외모에 말을 더듬었다.


"기...기태 오빠 조금 전에 나가셨는데요..."


"예,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아, 아 놈은 전화도 안받고 어디 가 있어..."


혼잣말을 뱉으며 세현이 나가고 난 후, 과방의 한 여학우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친구들에게 외쳤다.


"아!! 혹시 방금 그 사람...!! 작가 임형우씨 아들 아니야?? 저번에 tv다큐멘터리에서 본 것 같아...!!

작가의 아들 어쩌고 하는 방송에서...!!"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진 과방.

글을 쓰는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작가의 소식에는 민감했던 모양이었다.


조금 전 기태와의 한바탕으로 열을 식히느라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던 만식은 후배 여학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과방을 뛰쳐나가 세현을 보러 갔다.


"저...저...!! 기태 친구분...!?"


애초에 약속이 아닌, 게릴라 방문이었던 만큼 이내 포기하고 갈길을 가려던 세현은 뒤에서 부르는 자신을 지칭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아, 예...! 기태랑 같은 전공이신 분인가요?"


"예...예...!! 제일 과에서 제일 친한 사이... 입니다!!"


어색하게 거짓으로 세현의 주목을 잡아 끄는 데는 성공한 만식.


조심스럽게, 그러나 성큼성큼 세현에게 다가갔다.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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