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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Aug 18. 2017

우연히, 그곳에서...<45화>

[ 45화 _ 나는 여전히 꿈이 있어...! ]

               
“안녕하세요...! 제가... 과에서 기태랑 제일 친한 친구...인데요, 지금...혹시 기태... 찾아오신 건가요?”

기태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굳이 돌아서는 세현을 쫓아온 이 남자, 만식.

수상쩍기 그지 없기도 했지만, 세현은 이내 이 사람의 의도를 알아챘다.

늘 그래왔듯, 아버지의 잔상 때문에 자신을 귀찮게 하는 무리들 중 한명임에 틀림없을 것.

그렇지만 자신이 직접 들어온 남의 학교이기에 뭐라 달리 짜증을 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세현은 만식에게 대충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예... 뭐 근처에 있다가 연락 없이 찾아와 놀래켜 주려 했는데, 없다니 어쩔 수 없죠. 그럼...수고하세요...!”

“아, 그...! 친구 분이시니까 아마 나중에라도 만나실 수는 있겠지만 기태... 아마 학교를 그만 둘 것 같습니다.”

“예??!!”

세현을 잡아두기 위해 임팩트 있는 화제를 일단 던져 둔 것이라 보기엔 너무 무지막지한 말장난.

평소 기태가 학교에 대해 호의적으로 얘기한 적이 없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다고?

“무슨...말씀이세요? 기태가 학교를 그만 둔다니...?”

나중에, 실제로 그렇게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만식의 추측이었을 뿐.

만식은 어떻게 해서든 눈앞의 이 작가 임형우씨의 아들 세현과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유혹성 헤드라인을 던져버린 차였다.

“TV...보고 알았는데, 혹시 임형우 작가의 아드님...아니십니까? 기태 얘기도 있고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작가 지망생들이라 사람을 잡아끄는 법도 꽤나 창의적이었던 건지,

예상치 못한 낚시에 제대로 걸려버린 세현은 의심 투성의 눈빛을 하면서도 기태의 이야기가 궁금해 만식을 따랐다.

학교 밖 벤치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기태 과 동기 오만식 이라고 합니다.”

이런 어색한 상황에서 통성명이라니.
세현은 기태에게 직접 들으면 될 걸 괜히 따라왔나 싶은 생각이 뒤늦게 치고 올라왔다.

“예, 예... 저는 기태 중고등학교 친구 임세현 입니다. 뭐, 다른 것보다 기태가 학교를 그만둔다니 그건 무슨 소리신지...”

그저 정황만 있을 뿐, 확실해 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만식은 순간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엄밀히 없는 얘기를 꾸며 낸 것만은 아니기에 죄책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기태 친구시니까 어느 정도 아시겠지만... 기태가 학교에 불만이 좀 많았죠...
글 쓰는 사람들이 서로 글 쓴 걸 가지고 비판해주고 의견 교환하는 걸 합평이라고 하는데요, 수업 내외적으로 합평에서 늘 기태는 좀 유별났어요. 자존감도 너무 세고... 뭐 저도 만만치는 않습니다만.”

“기태가... 좀 그쪽으로 욕심이 많기는 하죠...
그것 때문에 마찰이 많았나요? 학교에서도...
뭐 제가 보호자나 그런 건 아니니까 저한테까지 그런 얘기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뭐 항상 불만 투성이었죠. 배울 게 없다는 둥,
무슨 기준으로 좋은 글이네 안 좋은 글이네 구분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둥... 언제라도 뛰쳐나가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느낌이었는데, 오늘 합평자리에서 뭔가 빵 터져버린 느낌이에요.”

“오늘??”

기태와 가장 친하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만식은 자신과의 트러블이 화근이었다는 얘기까지는 차마 꺼내지 못했다.

어찌되었든 기태를 핑계로 어느 정도 주의를 끌 수 있게 된 이 유명 작가의 아들.

“예, 뭐 기태는 자기 인생 알아서 사는 거니까,
제가 뭐라 할 수 있는 건 없고요. 아까 그거 말고도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뭔가요?”

만식은 세현의 표정에서 귀찮음과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너무나 많은 관심으로 지쳐있는 유명인의 고뇌까지도.




**




“뭐야? 이 미친놈이 세현이 하고 무슨 얘길 한 거야?”

카페에서 과거 만식이 세현과 만났던 해프닝을 들은 기태.

자신은 모르게 뒤에서 자신과 관련된 사건이 벌어졌었다던 것에 분노를 표출했다.

“기태 너 이용해서 말을 걸었던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근데 그때 대충 느꼈어.
그 임세현이라는 사람이 뭔가 작가로서 도전할 의지가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게..."

“무슨 헛소리야!! 임세현이 대학생 때면 열심히 취업 준비하면서 자기 아버지 한창 자기 입으로 씹고 다녔을 때인데...!!”

“처음엔 얘기 중에 그랬는데, 뒤늦게 아버지 책을 읽고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그러면서 말하는데... 뭐랄까 문학적인 소양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얘기 중에도 아주 물씬 풍겨 나오는 게... 그런 거 있잖아. 왜 이 사람은 결국 이 길로 들어오겠구나 하는 느낌...”

“그게 다야? 그냥 네놈 느낌만 가지고 공모전에 참여를 할 것 같다네, 어쩌네 그런 거야?
놀고 있네...! 네놈이 그렇게 망상만 가지고 사니, 성공을 못하는 거다!! 좀 현실을 봐...”

자신이 내뱉고 있는 말이건만, 마치 본인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일까, 기태는 순간, 내지르려던 말을 멈추었다.

“내가 나중에 어디서 들었는데, 그 사람 좋은 회사 들어갔다 관뒀다며? 그거 봐!! 내 말이 맞지...!
국내에 그 이상 가는 회사도 없는 마당에 샐러리맨을 포기했어? 그럼 뭣 때문일 거라 생각 하냐? 기태 너는 가까운 사이니까 더 잘 알거 아냐!?”

이다지도 통찰력이 있던 녀석이었던가,
기태는 세현의 소식이라면 오직 자신만 알고 있어야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최근엔 연락도 통 하지 않아 어디에서 뭘 하고 사는 지 알 길은 없었지만, 분명 세현이 작가가 되겠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것이 기정 사실.

늘 부정하고 있었지만 어디에 있든, 이 어마어마한 공모전에 참가해 자신과 경쟁구도에 놓일 수도 있다는 생각만은 떨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작가의 세계로 들어와 자신보다 더 잘나가게 되면 어쩌나 하는 뿌리 깊은 불안감까지도.

“만식이 넌 임마! 아직 작가 꿈 안 버렸다면서 자존심도 없냐!? 그렇게 할 거 다하다 ‘이것도 해봐야지’ 하면서 이 세계 들어오려는 놈 뭐 대단하다고 그렇게 추켜 세워주는 건데!?”

“흥, 내가 너 그런 반응일 것도 예상했었다. 임마! 어렸을 때부터 가까운 사이였으니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진 모르겠지만. 환경이 달라 환경이...!! 너 같으면 최고 연봉 준다는 회사 잘 다니다가 때려 치고 확신도 없는 이 세계로 뛰어 들어 올 수 있겠냐?”

단 한번 만났다는 주제에 왜 이렇게 팬을 자처하는 건지.

어쩌면 만식은, 기태처럼 세현과 학창시절의 친구로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드나들며 이것저것 많이 접하던 가까운 사이끼리는 느끼지 못할, 어떤 다른 부분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 이 공모전에 출품 할 거지? 물론 나도 준비 중이지만... 아마 이 사람도 틀림없이 준비하고 있을 거야...! 알다시피 전 세계 대상이다, 임마!

기태 네가 그렇게 열 올리고 임세현이란 사람 부정해 봤자, 다른 작가들이 먼저 치고 올라오면 끝 인거야!! 어차피 경쟁하는 건 누구나 똑같은 거 아니냐!?”

어렵게 사는 것 같더니, 이 녀석은 이미 현실을 받아들인 걸까.

초연하게 자기 일을 하면서 학생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만한 어른스러운 훈계를 내뱉다니.

기태는 새삼 만식이 다시 보였지만...

‘쳇, 웃기고 있네...!!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꿈은 무너지는 거야!!’

결코 순순히 납득할 리 없는 기태.
차마 겉으로는 내뱉지 못한 생각을 속으로 되뇌일 뿐이었다.

“아무튼... 사고 낸 거 미안하고... 별 탈 없이 넘어가 준 것도 고마워. 이런 식으로 떠들어 본 것도 참 오랜만이네...!!

이거 내 명함이니까 앞으로는 연락...하면서 지내자. 일 때문에 이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주머니를 뒤적이다 살짝 구겨진 듯한 명함을 건내주는 만식. 확실히 학생 때와는 달라진 느낌이었다.

커피 값을 계산하고는 훌쩍 자리를 뜬 만식.
기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카페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만식의 차를 바라볼 뿐이었다.





***





[띵동!]

프랑스 아를.
전 날 밤늦게 멘토 아영과의 통화 후 무언가 힐링이 되었음일까,

세현의 고백 멘트를 되뇌이며 달콤한 잠에 푹 빠졌던 해인은 알람소리도 듣지 못한 채 곯아 떨어져 있었다.

늘 듣던 알람소리는 들리지 않았거늘, 작고 짧게 들린 누군가로부터의 문자소리만 귀에 들어와 눈을 뜬 해인.

[ 아직 자는거죠...? 일어나요! 오늘도 요령피우지 말고 열심히 그림 그립시다! 오케이? ]

문자를 확인하고 반쯤 감긴 눈으로 베게에 파묻힌 채 미소를 짓는 해인.

정신도 돌아오지 않은 몽롱한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바로 답장을 보냈다.

[ 세현씨도 방금 일어나 놓고 이미 준비 다 끝낸 것처럼 얘기 하지 마요! 난 아까 일어난 걸 뭐... ]

[ 일어났다고? 그럼, 정확하게 5초 후에 창문 열어서 확인합시다, 서로...! 센다...? ]

5초? 아니 이 남자가...

[5, 4, 3, 2...]

[끼이이익!!]

이게 뭐라고...
허겁지겁 일어나 대충 머리를 만지고 후다닥 나가 창문을 열어제낀 해인.

창문 너머 세현의 방 창문은... 닫혀있었다.
속았다며 분해하는 순간.

“멍청아!! 이제 막 일어났구만, 뭘... 하핫...!!”

어디선가 들려오는 세현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세현은 이미 외출 복장을 다 갖추어 입고 밖에 나와 있었다.

해인의 창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는 세현.

“무...무슨 소리예요... 나 지금 출근 준비 거의 다 끝나 가는데...왜 벌써 나가요? 근데...”

“오늘 오전에 아저씨랑 같이 장보기로 했어요.
자, 얼른 일어나서 고 모습 고대로 거울을 봅시다.
준비가 끝나긴... 풋...!! 요거나 받아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올려다보던 세현이 해인의 방 창문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이게 뭐야 싶어 아직 덜 깬 정신에도 후다닥 받아든 해인.

인스턴트 3분 미역국.
도대체 이 남잔 이 3분 시리즈를 얼마나 더 가지고 있는 건지.

“아니, 어디 공장에서 주기적으로 이런 거 보내줘요? 여기가 유럽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안 되네... 이런 건 어디서 자꾸 나오는 거예요?”

“그것도!! 당신의 멘토 아영이가 준 거지롱!!
걔도 보니까 팬이 많아서 어딘가 이런 거 대주는 스폰서가 있는 모양이더라고...

아영이한테 받았으니 해인씨 먹여 살리는데 쓰라는 거 아닌가?  하핫...!"

“참 나, 아영이도... 근데 왜 하필 미역국이에요? 누구 생일도 아니고...”

세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며 자신도 쑥스러운지 고개를 돌려 집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며 소리쳤다.

“나도 오늘 아침에 그 같은 거 먹었는데,
우리가 연인으로 태어난 날 기념으로...!

얼른 먹고 출근 준비해요. 눈꼽 좀 떼고...! 아, 특히 그 머리는 좀 심하다...!! 갈께요. 나중에 봐요!!”

“눈꼽은...무슨...!! 참 저런 간지러운 멘트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막 할 수 있는 것도 재주는 재주야...정말...!!”

이미 멀어진 세현의 뒤에다 대고 하는 혼잣말이 되어버린 해인의 멘트.

해인은 세현에게 받은 3분 미역국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참 거창도 하다. 새로운 연인이 태어나는 날이라 미역국이야? 풋... 유치하게...’

해인은 툴툴대면서도 슬그머니 부엌에서 가 물을 끓이곤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린 듯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하아... 그나저나 이 몰골을 하고... 나 저 미역국 먹어도 되는 거냐... 세현씬 차마 이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그러고 뒤도 안돌아보고 출근 했던 건가?’

가관이다.
만진다고 만진 머리의 뒤쪽은 한없이, 사방으로 뻗쳐있고, 뜨고 있는 건가 의심이 갈 정도로 퉁퉁 부어있는 눈, 거기에 다 늘어져 어깨를 드러낸 티셔츠까지.

그러게 왜 아침댓바람부터 창문은 열라 했는지.
하긴, 속은 사람이 바보지만...

세현의 이른 기상나팔 덕에 여유를 가지고 준비시간을 번 해인.

세현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는’ 미역국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서는 순간,

달콤한 꿈에 젖어 잠시 잊고 있었던, 험악한 전날의 작업실 분위기가 생각났다.

차례대로 떠오르기 시작한, 처음 몇 달 간은 좀처럼 보지 못했던 네 화가의 무서운 얼굴들...

매일 향하는 작업실이었지만, 두려움이 느껴졌다.

[ 요령피우지 말고 그림 열심히 그립시다...]

눈뜨자 마자 받았던 세현의 문자를 그나마 위로 삼아 해인은 성큼성큼 작업실로 가까워 졌다.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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