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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Aug 22. 2017

우연히, 그곳에서...<46화>

[ 46화 _ 어디서 꼬랑지를 흔들어!? ]


조용한 화가들의 작업실 문 앞.

작업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화가들은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 각자 돌아가는 시간 역시 일정치 않았다.

해인이 출근하는 이른 아침 시간대엔 보통 아무도 와 있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전 날의 어두운 여운으로 묘한 긴장감을 가진 채, 작업실로 내딛는 이 날 아침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어젯밤.
나름의 배려였던 건지, 더 큰 싸움으로 번지기 전 해인을 돌려보내긴 했었지만, 자신이 돌아가고 난 후 분노에 찬 장정 네 사람이 맞붙었다면 무슨 일이라도 생겼음직하던 분위기.

해인은 혹시나 작업하던 그림이 훼손되었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몸싸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나 하는 우려에 작업실 내부를 꼼꼼히 둘러보았다.

“에휴...”

다행히 어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작업실의 내부. 작가들의 그림들은 각자 완성도가 더 올라가 있을 뿐, 해인이 상상하던 트러블까지는 이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작가들의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는 해인.

카와모토를 필두로 다른 화가들의 배려 덕에 자신이 이곳에서의 이른 정착이 가능했던 만큼, 가능하면 조금 더 이곳에서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제발 별일 아니었으면...

겸사겸사 작업실의 청소를 마친 해인은 이내 책상에 앉아 어제 문제가 되었었던 갤러리와의 계약 내용 및 액수의 수치들을 꼼꼼히 다시 체크했다.

[RRRRRR~~!!]

고요하던 작업실에 전화가 울렸다.
그림을 전시하는 시즌 이외에는 잘 걸려오는 일이 없었는데. 더군다나 이 시간에는.

“예, 작업실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아를 시내 ㅇㅇ갤러리인데요, 혹시 카와모토씨 계십니까?”

“카와모토씨요? 아,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아마 어제 늦게까지 작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 예...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고 하세요.”

‘안 그래도 갤러리 수수료 문제 때문에 시끄러운 마당에 왜 갤러리에서 카와모토씨를 따로 찾는 거지?’

전화를 끊은 해인은 더 깊어진 고민을 안고 어찌해야할 지, 일단은 알려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카와모토 개인 번호로 연락을 했다.

[ 카와모토씨, 안녕하세요. 조금 전ㅇㅇ갤러리로부터 카와모토씨 찾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다른 쓸데없는 추측 없이 그저 일어난 사실 그대로만 전달한 해인. 한 시간이 가까워서야 카와모토로부터 알겠다는 답변이 도착했다.   

[ 끼이이익 ]

그리고 잠시 후, 큰 발자국 소리와 함께 작업실로 들어오기 시작한 화가들. 모두같이 들어왔지만 카와모토와 안톤 만은 보이지 않았다.

“아, 해인씨 계셨네요, 어젠 미안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지난 번에도 몇 번 그런 적 있는 것 같은데... 해인씨 놀라겠다...”

“아, 아니에요... 어떻게 잘 풀리셨나 모르겠네요... 음... 그런데, 제가 맡아서 하고 있는 일과도 연관이 있어보여 여쭤보고 싶은데요... 혹시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이제껏 작업실 화가들이 그림과 함께 각자 맡아왔었던 계약이나 홍보, 금전과 관련된 업무를 자신이 대신하고 있는 만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는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에 해인이 먼저 물었다.

마침 전 날에 왜인지 적대자로서 취급되던 카와모토와 안톤이 없는 상황이라 다른 진실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꺼내본 질문이었다.

막상 질문을 꺼내고 나니 해인은 이곳에 왔던 초기에 잠깐 들은 듯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 카와모토씨가 여기 건물주와 친분이 있어 조금 저렴하게 사용한다고 했었나...’

“음...뭐 가끔씩 있어왔던 일이에요. 해인씨도 벌써 두서너 번은 경험했겠지만...”

“한 일 년쯤 됐죠... 여기 같이 있은 지... 화가들에게 아를이란 동네는 정말 꿈같은 장소라 다들 오고 싶어하죠... 해인씨도 느꼈겠지만 아를은 예술을 부르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잖아요.”

화가들은 안 물어봤으면 큰일이었겠다 싶을 정도로 줄줄이 앞다투어 얘기를 해대기 시작했다.

“카와모토는 일본사람이잖아요? 우린 여기 출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 사람들이고... 우리들 중에선 안톤이 제일 먼저 카와모토를 만나 여기서 같이 그림 그릴 걸 제안했었어요.“

“처음엔... 뭐랄까, 아무래도 멀리 떨어진 나라의 동양인이기도 하고, 좀 어색한 게 없지 않았어요.
근데 어떻게 친분이 있다는 건지, 이 건물 주인하고도 잘 안다고 임대료를 저렴하게 해서 작업할 수 있다는 거예요. 뭐, 먼저 카와모토를 알았던 안톤이 좀 부추긴 것도 있었고...”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증언(?)을 틈 타 해인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안톤씨하고 카와모토씨는 원래부터 친한 사이였나요? 그럼?”

“음...얼핏 듣기론... 안톤이 일본에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나게 된 사이라고 들었어요. 카와모토가 일본인이긴 하지만 워낙에 프랑스어를 잘하는 친구라 소통에 별 무리가 없었다죠.”

예상대로, 카와모토와 안톤은 다른 화가들에 비해 더 긴밀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있는 모양이었다.

화가들 역시도 그 둘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느낌.

“어떻게됐든, 고맙죠... 아는 사람이 엮여있다고 해도 동양 사람이 유럽에서 유럽인들을 도와준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저희가 주로 이용하는 갤러리 쪽 사람하고도 카와모토는 좀 친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나름 저희도 많이 혜택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카와모토에게...”

“혜택이라면... 어떤 식으로...”

화가들은 쭈뼛대며 서로 눈치를 보는 듯 했지만, 이미 얘기가 나와 버린 터에 숨길 것 뭐 있냐 라는 식으로 모두 눈앞의 해인에게 털어 놓았다.

“해인씨 일 해오면서 느꼈겠지만 우린 거의 카와모토가 소개해준 갤러리하고 많이 일을 해요.
근데 알아보면 볼 수록 수수료 면에서 다른 데랑 비교할 때, 좀 많이 떼어가는 느낌이더라고요.

이건...추측이지만 아무래도 그 갤러리하고 카와모토하고 뭔가 얘기 된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저희들 의견이에요.”

“아...”

자신들이 손해 보는 구석이 있어도 시작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작업실이나 갤러리와의 연계 등, 많은 공을 세운 카와모토에게 다른 별 말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그러고 보면 이 작업실 내에서 다른 이들은 별 말 없이 따라주는 경우가 많았고, 그 가운데에 카와모토는 항상 리더의 역을 자처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가정이 있다는 이들 화가들로선 혹시나 이 연결고리가 끊어져 다시 생계 걱정을 해야 할 것이 두려워 그저 카와모토의 방침을 따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트러블 없이 좋기만 한 집단이야 있겠냐만은,
해인은 알면 알아갈수록 이 집단 속 트러블의 형태가 잡혀가는 듯 했다.

뭔가 불안감이 보이기 시작한 이 그룹.
본의 아니게 화가들의 쏟아진 불만사항을 접수하게 된 해인으로선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부러 떠올리지 않으려 사무 일에 전념하는 척 해보았지만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화가들의 정보를 관리하는 일이었기에 완전히 따로 떼어서는 생각 할 수 없었다.

[ 세현씨... 저기 혹시, 점심시간에 잠깐 시간 돼요? ]

해인은 자기도 모르게 별 생각 없이 세현에게 문자를 보내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도착한 세현의 답변.

[ 오, 해인씨...! 몇 시간 전에도 봐놓곤 아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구나, 내가...!! ]

[ ...그런 거 아니고요...!! 잠깐 물어볼 것도 있고 해서 그래요, 시간 돼요!? 안돼요!? ]

[ 음...레스토랑의 점심 때는 제일 바쁠 때라...! 점심시간 조금 피한 3시 정도? 괜찮아요!! 손님들이 나를 그렇게 찾아서 내가 우리 해인 씨한테 집중할 수가 없는 시간이라... ]

[ 쳇, 웃겨...!! 알았어요!! 그럼 3시 정도에 갈께요!! ]

[ 아니!!! 퉁명스럽게 오빠한테 웃기고 있다니?!]

[ 됐어요!! 일 합시다!! 참 나...!! ]

자기 혼자 고민하기엔 버겁다고 여겼을까,
자연스럽게 생각나 연락해 버린 세현과 약속을 잡았다.

작업실 내의 화가들은 해인에게 기나긴 하소연을 마치고, 자신들 자리로 복귀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야기의 중심 카와모토와 안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작업실에 와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타나 작업실의 전 멤버가 뭉치면 어떤 분위기를 연출할지 아직까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지만, 해인은 일단 세현과 만나기 위해 외부 일 핑계를 대고 빠져 나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에 근접했을 무렵, 멀찌감치 보이는 세현은 야외 테라스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아를에서 그 보기 힘들다는 동양 여성들...!

멀리서 보기에도, 멀끔한 세현에게 수작을 부리려는 동양여성들의 작태를 목격할 수 있었다.

‘저것들, 여행 왔으면 조용히 관광지나 돌 것이지, 어디 남자한테 꼬랑지를 흔들고 있어...’

크게 웃어대기도 하고 장난을 쳐 보기도 하는 여자들...

가만히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한 결과, 들리는 언어는 한국어임이 분명했다.

손님이 누구이건 친절한 미소와 따뜻한 말투로 응대하던 세현. 이 상황에도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저 한국 여성들은 그 모습에 착각에 빠져 저러고 꼬랑지를 살랑대고 있었을 것...!

꽤나 적극적으로, 품 안에서 총을 꺼내들 듯 세현에게 핸드폰을 들이미는 한국 여성들.

쐐기를 박으려는 행동의 직전이었다.
해인은 눈이 동그래 진 채로 서둘러 레스토랑으로 뛰었다.

뭐라 외치고는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까지는...
빠르게 움직이며 시선은 세현에게 고정한 상태. 아직 도착까진 거리가 좀 있는데...

손사래를 치며 거절의 제스처를 취하는 세현.
손동작이 몹시도 자연스러운 게 저 정도면 거의 거절의 달인이라 보일 정도.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씩씩대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해인의 기척을 느낀 세현.  

마침 눈앞까지 다가온 해인의 손을 훽 가로채 손님들 앞으로 끌어당긴 후 뜬금없이 소개가 이어졌다.

“죄송해요!! 저 여자 친구 있거든요...!! 얘에요. 여기서 같이 살아요... 지금”

소개를 할 생각이었으면 미리 귀뜸을 좀 해주던가.

자기도 모르는 조바심에 죽으라 서두른 탓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 헥... 헥... 헥... 여, 여아 친구 아..이에요... 가치 살긴 뭘 살...!! ”

다리가 풀려 자기 몸도 못 가누는 해인의 입을 틀어막고 손님에게 미소를 보이는 세현.

“아, 아쉽다!! 외국에서 훈남 만나 두근댔는데!! 알았어요!! 되게 낭만적이다... 이런 데에서...!"

낯선 남자한테 핸드폰을 들이댈 만큼 쿨한 여성들이여서 었을까. 여자 친구 소개했더니 바로 포기해 주는 한국 여성 손님들.

역시 이 남자, 거절의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농익은 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풋, 해인씨, 뭐예요...? 저쪽부터 막 뛰어오던데...? 또 화장실 급해요? 화장실은 이쪽입니다, 손님...!!”

“아, 아니에요!! 뛰어 오긴 누가 뛰어 와!!”

조금은 한적해진 3시경,
세현은 가게 다른 직원들에게 잠시 이야기 하고 해인을 레스토랑의 바깥쪽으로 인도했다.

“보자, 보자...! 남자친구 누구한테 뺏길 새랴 그냥 죽으라고 뛰어 왔구나? 감동은 감동이네...!!”

“아이씨!! 장난치지 말라고!!”

세현의 가슴팍을 가격한 해인.

“억! 헤헤...힘 좀 더 길러요...이래갖고 어디 남친 지키겠어? 근데 무슨 일이에요? 낮부터...? 무슨 할 말 있댔죠?”

세현의 장난에 잠시 말려들었던 해인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세현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 카와모토씨 관해서 얘기 할게 좀 있는데요."

"엣, 그 색...아니, 걔는 또 왜요? 뭐라고 해요?"

"아뇨, 그냥 요즘 화가들 사이에서 트러블... 같은 게 좀 자주 생기거든요, 근데 항상 중심에 카와모토씨가 있어서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오늘 다른 분한테 사정을 좀 들었어요."

"그거 봐, 내가 처음부터 그 자식 별로 맘에 안들었다니까...!"

해인은 오전 중에 다른 화가들로부터 전해들은 카와모토에 대한 정보를 세현에게 모두 얘기했다.

이에 분개하려는 세현을 가로막으며 해인은 자신의 진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이기적일 수도 있는데, 제일 큰 걱정은 말이예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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