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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Sep 01. 2017

우연히, 그곳에서...<49화>

[ 49화 _ 로맨티스트 유전자 ]

                

"그만 꾸물거리고 나옵시다!!"

숙소 골목에서 큰 길로 이어지는 동네 빵집 앞.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자동차를 대동해 대기하던 세현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해인을 재촉 했다.

슬슬 완전한 모습을 갖추어 가는 '연인'으로서의 공식적인 첫 데이트.

'유럽에서의 데이트'라 하면 꽤나 호화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근방에서 거주하는 세현과 해인으로선 그저 근교 나들이에 불과 했다.

한 주 동안 서로 열심히 산 보상이기도 한 셈이었다.

"미안해요. 좀 늦었죠..."

뭔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오느라 뒤뚱대는 해인.
세현은 차에서 버선발로 뛰쳐나가 해인의 짐을 들어 주었다.

"응? 이것들, 다 뭐예요?"

"아...저번 소풍 땐 세현씨가 간식거리 다 준비 했었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와우, 뭘 이렇게 잔뜩...!"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건지, 다른 때보다 훨씬 화사한 모습의 해인. 세현의 입가에도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해인이 들고 온 간식 거리를 받아 뒷좌석에 놓아두고, 나란히 차에 올라 타 출발을 앞둔 두 사람.

"자, 이제...갑시다!!"

"근데, 우리 어디 가요?"

전혀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투로 여유롭게 시동을 걸며 세현이 대답했다.

"오늘 우리는, 「마르세유」에 갈 거예요!!"




**




"아저씨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전 날, 세현이 일 하는 카페. 
이 날 따라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어떻게 갔는 지도 모르게 지나간 하루였다.

한창 바쁜 때는 넘긴 오후 시간대, 세현은 레스토랑 사장 아저씨를 찾았다.

"후우...!! 그래, 오늘 왜 이렇게 바쁜거야...!
이제 좀 앉아 쉬자...!!"
 
그제야 여유를 찾은 레스토랑의 귀퉁이 테이블에 마주앉은 세현과 사장 아저씨.

"그래, 뭐 재미난 일이라도 있니?"

"예, 아저씨 저... 그...
해인씨랑 사귀기로 했어요. 아시죠? 저번에 제가 쓴 소설 그림 그렸던, 저 작업실에서 일하는 한국 아가씨...!"

주인 아저씨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투로 무덤덤하게 받아쳤다.

"그래? 잘됐네... 근데 너 정도되는 외모에 능력이면 더 빠르게 사귈 수 있었던 거 아니니? 그 아가씨 쑥맥이라더니, 그것 때문에 고전을 좀 했나... 돌아가는 폼새가 어째 그럴 것 같더라니...!"

"아,  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아저씨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세현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제 사귀는 사람하고 데이트 해야 되니까 주말 마다 좀 놀겠습니다! 사정 좀 봐주십쇼!! 이 말 하려는 거지??"

"네? 아...뭐...꼭 그런... 데이트를... 그냥 말씀 드려야겠다 싶어서요."

아저씨는 장난스럽게 씩 웃어 보이며 품 안에 차키를 던져 주며 말했다.

"뭐 어렵니? 자, 저번처럼 같이 어디 놀러나 갔다 와!! 주말에 어디 갈 생각이긴 했지? 당장 내일인데, 어디 갈 지는 정했어??"

"옛, 가...감사해요...!! 근데 갈 데는 아직 못 정했네요."

"첫 데이트다 이거지...? 음... 남프랑스에서 갈 데라..."

아저씨는 곰곰이 생각하다, 순간, 조금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바뀌어 세현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달라진 분위기, 세현은 무언가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전혀 이런 분위기가 연출될 만한 상황이 아니었거늘, 갑작스레 굳어진 듯한 아저씨의 표정에 세현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동안, 그 심각한 표정으로 초점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던 아저씨는 세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얘기는... 아마 너한테 해준 사람이 아직 없을 테지..."

"예? 무슨..."

"너 '마르세유'라고 아니? 내일 거기 한 번 가봐!"

"예, 알죠...! 유명한 관광지인데...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근데 뭔가 다른 사정이라도... 있나요? 왜, 갑자기..."

주인 아저씨는 괜한 헛기침으로 잠시 시간을 끌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현이, 너...어머니에 대해 혹시 뭐 들은 것 있니?"

"예? 어...머니요?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타이밍에, 아무런 추억거리도 떠오르지 않던 어머니 얘기라니. 
세현은 순간, 온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네 아버지는 말이야... 네 어머니를 잊지 못해 여기서 계속 머물려고 했던 거야... 특히 마르세유... 마르세유의 조그마한 섬 근처에 너희 어머니 유골 뿌려 드린 거... 혹시 아니? 너 아주 어렸을 땐데..."

"예!!?? 어머니 유골을...??"
 
오후 내내 바빠 이리저리 움직이며 쌓인 피로마저 잊게 할 만한 충격적인 사실.

그저 해인과의 알콩달콩한 연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세현은, 아저씨의 예상치 못한 카운터 펀치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너희 아버지는 말야, 이 동네에서 너희 어머니를 만났어. 물론 내가 그때부터 네 아버질 알았던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말해 주신거예요?"

"그래, 넌 잘 모르겠지만... 너희 아버진 정말, 지독하게도 낭만주의자 였어... 우리끼리 술만 먹으면 매일 그 얘기 해대는 통에 아주 지겹도록 들었지...!"

증오로 가득해 아예 관심을 두려 하지 않던 본인의 탓도 있지만, 부모님에 관련한 얘기를 30년을 넘게 산 지금 시점에야 듣게 된다는 것,

썩 개운한 기분만은 아니었다.

"내가 네 아버지 만난 건 너 어릴 때, 여기 잠깐 있던 그때부터니까... 그래, 그리고 그 때 여기서 네 아버지가 집필하던 소설 [ 그들만의 세상 ]도 결국엔... 먼저 간 네 엄마를 그리워 하면서 썼던 거야...!!"

"...!!"

"뭐 그만큼 간절함을 담아 썼으니 그게 전해진 건진 모르지만... 어쨋든 그 소설은 히트를 쳤잖니. "

전혀 알지 못했던, 진실들이 공개되어갔다.
세현은 예상치도 못한 충격적인 진실에 골이 지끈지끈 아파 올 지경이었다.

"네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거니 기억은 어느 정도 있겠지만... 네 아버지, 어땠었니?"

"예? 어떻다는 건... 뭐 말수도 없이 항상 차분하고 조용하셨었죠..."

언젠가는 해주어야 했을 이야기였다며 아저씨는 평소 모습 답지 않게 진지한 모습이었다.

"네 아버진 말야, 힘든 시기에 네 어머니한테 잘 못해줬던 게 너무 죄스러웠던 거야... 그리고는 뒤늦게 그렇게 성공한 게 오히려 미안했던 거지..."

"......"

세현은 기억을 더듬어 이 곳에서 아버지와 보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늘 뭔가 만족치 않은 표정으로 아쉬움 가득한 애정만을 보여 주었던 아버지. 세현은 어린 맘에 그저 자기 입장에서만 아버지를 판단했었다.

"기억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네 아버지가 너랑 여기 같이 있을 때, 제일 많이 다니던 데가 마르세유야. 아마, 거기서 네 어머니랑 추억이 많았던 모양이지..."

"저랑요? 아를에서 계시지 않았나요? 소설도 여기서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내면서 소설 쓰고 한 곳은 아를이 맞는데 외출하면 주로 마르세유 쪽으로 많이 했지... 좀 있어봐서 알겠지만, 솔직히 여기가 그렇게 볼 게 많고 그러 동넨 아니잖아? 살긴 좋아도..."



마르세유.
자주 갔었다곤 하지만 어렸기 때문인 건지, 남아있는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어머니와도 깊게 연관된 장소 였다는...

"왜... 아버지는 어머니 유골을 마르세유에 뿌린 건가요?"

" 그 얘기만 나오면 네 아버지, 맨날 감상에 젖어드는 통에 자세히 듣지는 못했는데, 아마 네 어머니와 뭔가 있는 데라 그러지 않았겠니? 뭐 유언... 같은 걸 수도 있고..."

알지 못했던 가족의 이야기와 함께 세현은 마르세유라는 도시가 몹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예, 아저씨... 그럼 해인씨랑 같이 마르세유에 가 볼께요...!!"

"음, 그래, 자고 올거지? 숙박정보 필요하면 미리 말하고...내가 요 동네 20년이야! 정보하난 또..."

"예??!! 아니요, 아니요...!!"

"뭐야, 다 큰 남녀가 뭐 거리낄 게 뭐있어?
사귄다며? 보기보다 고리타분하다...? 젊은 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아저씨에게 세현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이번이 첫 데이트 인걸요, 뭐...사실... 사귄다곤 하지만 아직까지 좀 조심스러운 것도 있어요."

"남녀관계, 까짓 거 뭐, 좋으면 그만인거지. 새삼 조심스러울 건 또 뭐야... 어떤 게?"

세현은 생각을 조금 가다듬은 후 아저씨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정식으로 사귀자 하기 이 전에도... 여기저기에서 마주치며 해인씨랑은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정말 우연스럽게도 자주 만나게 되면서 이어져 온 인연... 같았거든요. 근데 사정 듣다 보니까, 너무 힘든 결정으로 여기까지 왔고, 절실한 게 느껴진달까요."

"하긴, 여행이면 몰라도, 생활하면서 뭔가를 해가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

"그렇죠... 그래서 얘기 할 때고 보면, 사귀잔 거 받아 들이기는 했어도, 이 여자한테 우선 순위가 지금은 저 일 수가 없는 거예요. 연애라는 감정조차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느낌이랄까..."

"음... 뭐 바라던 게 있으면 다른 데는 갈팡질팡 할 수는 있지. 그래서 조심스럽고..."

"네... 그래서 일단은... 저도 해야 하는 게 있고, 이 여자한텐 그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인식시킬 수 있을 때까진 보호자같이 옆에 있어주면 어떨까 해요."

"풋, 누가 그 아버지 아들 아니랄까봐... 암튼 잘 해봐...! 그거야 뭐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하는 거니...근데 정말 숙박 정보 필요없어?"

예상보다 깊은 부분까지 들어온 아저씨와의 이야기. 세현은 이제서야 알게 된 그런 의미있는 장소에 해인과 같이 갈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




"마르세유? 왜 거기 가요?"

"여기 오기 전에 프로방스 지역 여행 책자는 한번 쯤 뒤져 봤을 거 아니예요? 보통 남 프랑스 여행 
1, 2 순위로 마르세유가 나옵디다! 아를에선 드라이브로 다녀올 수도 있는 거린데, 못 갈건 또 무어냣!?"

"하긴, 그렇긴 하네... '왜 거기예요'는 좀 그랬네."

"인정도 잘해, 귀엽게 시리...!!"

해인을 태운 차는 서서히 아를 시내를 빠져나가 항구도시 마르세유로 향했다.

전 날, 막연하게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내용을 아저씨에게 말로써 표현해서 였을까, 해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보다 더 명확해져 있는 듯 했다.

"참, 해인씨, 여행 좋아해요?"

"응? 여행이라... 뭐, 여행 싫어하는 사람 있겠어요?"

"오, 많이 다녔었나본데, 어디 가봤어요?"

"음, 일본... 프랑스..."

"......"

세현은 힐끔 조수석에 앉은 해인을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이번이... 처음 나온 듯...!"

"아, 아니에요...! 많이 싸돌아다니긴 했어요... 해외는 아니지만...”

"내 앞에선 거짓말 안 해도 돼요...! 뭘 새삼스럽게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부끄럽다고...!"

"부끄러운 건...아니고...!! 뭐 나도 여행 많이 다녔다는 친구들 얘기 맨날 들어서, 안가봤어도 알 데는 다 알아요 뭐..."

세현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해인에게 이야기 했다.

"아영이 보러 일본 갔다가, 나 만나러 프랑스까지 왔다면... 충분해요...! 이제부터 같이 다니면 되는 거지. 여기가 유럽인데 뭐가 더 필요해?!!"

해인은 뭔가 표정을 들키기 싫은 건지,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두런두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중해가 연결 된 항구도시, 마르세유의 근교를 한 시간 가량 달렸을까.

곳곳에 작은 마을과 해변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마을들이었지만,
느껴지는 감동은 결코 작지 않았다.

어쩐지 옆에서 한동안 말이 없더라니, 그 절경에 푹 빠져 있는 이 여자는 차창 밖 구경에 이미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세현은 해인을 위해 일부러 속도를 늦추었다.
한창 해변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즐기던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까시스' 라는 마을에 다다랐다.

아를이 고전의 모습을 한 한적한 시골동네라면 이 곳 까시스는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규모의 무척이나 밝은 분위기를 한 휴양지였다. 

'이 근처를... 몇 번이나 아버지랑 왔었다고?'

세현은 다시 한 번 과거를 더듬어 보았지만, 어릴 적 이런 밝은 분위기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자, 여기서 잠깐 내려 구경 좀 할까요...?”

"옷, 나도 여기 너무 예뻐서 잠깐 내리자고 하려 했었는데...!!"

"내가 다 알지, 다 알아...!! 아 맞다. 해인씨, 
혹시 말이에요..."

"에??"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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