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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Sep 05. 2017

우연히, 그곳에서...<50화>

[ 제50화 _ 비밀의 섬, 그리고 두 사람...! ]



"해인씨, 혹시 말이에요, 지금 무슨 중요한 물건 가지고 있거나 그런 거 있어요?"


"중요한 물건이요? 갑자기 왜요??"




"으음...!
여권 잊어먹지... 지갑 날치기 당하지... 맨날 덜렁대니까 불안해서 그러지...!! 지금은 더 멀리 나와 있는데...!!”

"휴...! 느닷없이, 또 그 얘기예요!!? 내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라도 앞으로 뭐 잊어먹나 봐라...!!!"

툴툴대는 해인에게 세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Ok!! 그렇게 바짝 긴장하고 있어요!! 사실 여기가 말이죠, 이주민들이 많이 넘어왔다는 동네라, 도난사고가 그렇게 많데요.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해인씨 같이 청초한 여인들을 보통 메인 타겟으로 삼는다고 합디다...!!”

"흥, 누가 불면 날아가요!? 은근 작다고 디스하는 거지? 어디 백날을 불어봐라!! 내가 날아가나..!!"

"혹시 모르지...!! 그러니 안 날아가게 나랑 같이 다니면 되니까, 손 꼭 붙듭시다...!!"


툴툴대며 불만을 얘기 하면서도 세현의 충고에 신경이 쓰이기는 했는지 해인은 새삼 주섬주섬 소지품을 다시 점검했다.


마르세유의 근교, '까시스'라는 마을로 들어와 아를에서 늘 그랬듯, 천천히 거닐기 시작한 두 사람.

당연히 처음 와보는 곳이건만, 가이드 마냥 척척 길을 찾아가는 듯한 세현에게 해인이 물었다.

"어릴 때 프랑스에 살았다더니, 여기도 와 봤던 거예요? 뭐 이리 잘 알아?”

"처음은 아니긴 한데, 여긴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서 오기 전에 조사를 좀 했죠...! 내가 원래 좀 계획적인 남자라...!"

"흠... 그래도 옛날에 진짜 오래 있었긴 했나보다. 여기저기 안 가 본 데가 없단 거 보면...!"

눈부시도록 강한 햇살과 파란 하늘, 잔잔한 바람... 운 좋게도 이날은 날씨까지도 두 사람의 데이트를 도와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방의 모든 것이 새로운,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한 풍경 속, 세현과 해인은 아를에서는 볼 수 없던 해변 길과 마주했다.

온화한 날씨 덕에 홀딱 벗고 수영을 즐기는 이들과 자신들처럼 산책을 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후아...!!”

해인은 크게 기지개를 켜며 주변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만나는 순간부터 늘 고민뿐이었던, 근심쟁이 아가씨로만 보았는데,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바다의 후광 앞에서 걷고 있는 지금의 해인은 너무 밝고 화사한 모습이었다.
 
지중해의 투명할 정도로 맑은 바다와 하늘, 깎여진 암벽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자연의 모습. 

지금의 세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이해인’이라는 주인공 뒤를 받쳐주는 배경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동 내내 대자연에 빠져 황홀한 표정을 한 해인에게 방해라도 될 세랴 말을 아끼던 세현은, 느닷없이 해인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예쁘다, 해인씨...!”

“엣? 뭐예요, 뜬금없이...!!”

해인은 갑작스런 세현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괜히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렇게 밝게 웃는 거 처음 봐요...! 가만 보면... 해인씬 잘 때랑 웃을 때가 제일 예쁘구나...!”

예쁘다는데 싫다는 여자가 어디 있겠냐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해인. 

가만...근데 뭔가...찝찝한...
생각을 되짚어보다 사색이 된 해인.

“엥!? 잘 때...라니... 언제...!!!”

“새삼스럽게 뭘 그래...!! 내가 여러 번 봤는데...!!”

“무...무슨 말이에요!! 언제 우리가...!!” 

“음... 언제였는지... 맞춰 봐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해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알을 돌리기 시작했다. 

또 놀려먹을 생각인지, 하지만 세현이 지금 말하고 있는 상황...같은 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거 실망이네... 생각 안 나는 거예요? 한두 번도 아닌데...!”

“아...아니, 언제!!!”

도저히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상황, 해인은 빨리 답을 달라는 듯 다급하게 발을 동동 굴렸다.

“일본에서...오는 비행기에서 한 번...!”

“비행기...?”

“그리고 술 취해 꽐라 됐을 때 한 번...! 
아, 두 번이구나...”

“아...!”

진짜 자는 모습...말이구나...
그제서야 해인은 우려했던 상황이 아니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갑작스레 괘씸한 생각이 들어 지체 없이 세현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에라이!!”

[ 짝! ]

“아야!! 왜 때려요!!!”

“장난칠래!! 죽는다!!!”

“아니,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내 앞에서 자는 모습 본 건 그게 단데 어떻게 하라고!!”

“이런 기가 막히는 배경 앞에서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고 말야...! 이럴 때보면 아주 애야 애!!”

얻어맞은 등을 어루만지며 혼자 킥킥 웃어대는 세현. 그냥 동네주민으로 있을 때건, 사귀는 사이건 이 여자는 역시 놀려먹어야 재미 진 캐릭터이다.


은근슬쩍 삐친 듯한 해인의 손을 잡는 세현. 
해인은 씩씩거리면서 손을 뿌리치려다 이내 세현에게 가볍게 손을 잡아 채였다. 

힘주어 팔을 잡아당겨 세현의 우측 품으로 폭 파묻힌 해인, 세현은 그대로 해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알았어요, 미안해요...! 이제 장난 안칠게요...!! 
그래도 이 손 놓치면 날아가니까 꼭 붙어 있어요!"

멋진 배경 앞에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거닐다 보니 금새 돌아버린 마을의 작은 해변.

작은 항구, 작은 규모의 아기자기한 동네를 가볍게 둘러본 후, 세현과 해인은 본격적으로 마르세유에 진입했다.


규모부터 아를과는 차이가 있는 압도감. 
규모도 규모지만 항구로서 느껴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른 모습에 무척이나 신선했다.

북적한 서울을 떠나 조용한 아를의 주민이 된 지 몇 개월여 만에 다시 느끼는 북적이는 대도시의 풍경은 다소 생소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빼곡히 들어찬 고딕양식의 건물들과 활기차게 북적이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은 서울이나 일본의 번화가에서 느껴지는 번잡함과는 명백히 다른 모습.


도로의 한가운데로 지나치는 전차와 놀이 공원에서나 다닐 법한 작은 열차들, 가까이 보이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무수한 요트...

이곳은 그야말로 상상했던 ‘이국적인 유럽의 풍경’ 그대로였다.

마르세유의 대표적 명물 구항구에서는 다양한 연령과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여유롭게 길거리 예술가들의 공연을 관람 중이었다.

이 도시에서 갖게 되는 가장 큰 고민은, 제한된 시간과 체력 탓에 이 많은 즐길 거리 중,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해인과 세현은 정처 없이 거대한 번화가의 곳곳을 느낌 가는 데로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를에서는 구경하지 못했던 신선한 어시장이나 물품도 다양한 마켓 등, 정신이 팔려 해인은 행복한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었다. 

그 천진난만한 호들갑에 맞장구를 쳐주던 세현의 눈에 문득 들어온 항구 너머의 섬.

[ 마르세유의 섬 부근에 너희 어머니 유골 뿌려 드린 거 혹시 아니? ]

내내 신경은 쓰였지만, 직접 그 섬인 듯한 장소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아저씨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다시금 맴돌기 시작했다. 

“해인씨, 혹시... 배 멀미 같은 거 해요?”

“배 멀미? 글쎄, 내가 배 멀미를 하는 지 안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타본 적이 없어서...”  

“그럼... 우리 저 배 한번 타 봐요...!! 저 너머에 유명한 섬이 있다는데, 거기 가봅시다...!"

“네?! 섬에...!!"

그렇지 않아도 눈앞에 항구의 배와 새하얀 요트들이 계속해서 해인을 유혹 해대던 차였다. 

유럽에서 살고 있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할 일들 때문에 ‘언젠가’를 정하지 못했었는데,

그저 상상만 해오던 유럽을 지금 직접 경험하고 있다는 기쁨을 숨기지 못해 해인은 더더욱 신이 났다.

세현은 들떠있는 해인의 손을 꼭 잡고 페리를 타러 항구로 나아갔다. 

아저씨의 말처럼, 아버지가 어릴 적 자신을 데리고 이곳에 자주 왔었다면, 그 때에 어머니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라도 해준 적이 있지 않았을까... 

어릴 적 아를에서의 부분적인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어린 탓에 잊은 것만은 아닐 텐데, 이곳에서의 기억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어머니의 유골이 뿌려졌던 섬이라 짐작되는 저 섬 너머 역시도 세현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상태.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페리로 갈 수 있다는 섬은 바로 눈앞,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 프리울 섬 ]


마르세유의 항구를 떠나면 바로 닿을 듯 했던 이 섬은, 배로 30여분이나 걸린다고 한다.

“자, 손 잡아요...!"

처음 타 보았다는 배에서 약간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해인을 잡아주며 검푸른 바다를 헤치고 도착한 꽤 큰 규모의 섬.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오는 풍경이었지만 생애 처음 보는 이 감동을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었을까, 

해인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세현은 파도에 깎인 석회암 절벽 아래,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한 해안의 에메랄드 빛 바다를 가만히 응시했다.

파도소리와 바람의 감촉 등, 한시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오감을 자극하고 있는 이곳의 풍경들 중 유독 눈길이 머무르는 어느 해안가.

세현은 꼭 붙잡은 해인의 손을 끌어 그 해안가 쪽으로 다가갔다.

"자, 해인씨...! 우리 아직 같이 찍은 사진 없잖아요. 기념비적인 우리 첫 사진의 배경은 여기로 해요!!"

배경을 확인하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해인.

[ 찰칵! ]

"보자...! 오...! 진짜 잘나왔다!!  해인씨 이거..."

"안돼...! 다시... 찍어요!!"

[ 찰칵 ]

"와!! 이건 진짜 잘..."

"다시 찍어요...!! 내가 딱 됐다 했을 때 눌러요!!"

[찰칵, 찰칵...]

몇 번이고 다시 시도 된 세현과 해인의 첫 사진.

연인의 기념 사진을 남기기 위함이라기보다 해인이 잘나온 사진을 건지기 위한 사투였다. 

"됐다!! 이걸로...!! 세현씨 다른 거는 다 지워요...! 알았죠?"

"...난 다 좋은데..."

"확!! 지우라고!!"

"아... 알았어요!!"

'풋... 맞다... 이 여자, 여권 사진도 막 사기 치는 스타일 이었지...!'

세현은 눈이 감긴 사진, 흔들린 사진 이상한 표정으로 잘못 찍힌 사진들 까지도 지우는 척하며 모두 보관해 두었다.

섬 구경을 마치고 다시 마르세유 항구로 돌아온 두 사람.

섬에 다녀온 사이 해는 이미 저물고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같은 장소이건만, 마르세유의 밤은 이곳저곳에서 쏘아 올려 진 조명으로 인해 완전한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오직 눈앞의 멋진 풍경을 쫓아다니느라 힘든 줄 모르고 마르세유의 이곳저곳을 방황한 탓인지 해인은 다리가 풀린 듯, 길 중간에 그만 풀썩 쪼그려 앉았다.

“에고고...”

“후우...진짜 많이도 걸었다... 해인씨 힘들죠? 우리 잠깐 앉아서 쉴 겸, 저거나 타고 앉아 밤 풍경 구경이나 합시다.”

세현이 가르킨 곳은 구항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낮에는 그저 구조물 같이만 보이던 큰 규모의 관람 차 였다. 

특히 다른 건물들보다도 더 화려한 조명을 쏘아대며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기력이 다 빠진 채 멈추어 선 관람 차의 한 좌석에 나란히 탑승한 두 사람. 

너무 힘들어 자기도 모르는 에휴휴... 하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사이, 관람차는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이런 가 싶을 정도로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 관람차.

방심하던 해인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고도가 올라갈수록 그 소리 역시도 잠잠해 지는 듯 했다.

점점 정점에 가깝게 이동하자 도시 전체의 모습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온 삭신은 피곤함에 욱신거리는 듯 했지만 이 볼거리 또한 놓칠 수 없었는지 좌석 창문에 꼭 붙어 집중한 채 응시하고 있는 해인. 어느 새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어져 있었다. 

[끼끼끼끼....]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며 이미 높이 올라 온 관람차. 

이 거대한 조형물의 중앙부에서 초반에 잠깐 들리다가 잠잠해지는 가 싶던 굉음이 다시 들려오며 점점 회전 속도는 줄기 시작했다.

"응?! 이거...왜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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