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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Sep 08. 2017

우연히, 그곳에서...<51화>

[ 제51화 _ "고마워요" _ 1부 마감 ]


"응?? 이거 갑자기 왜 멈추지? 지금... 엄청 높이 올라와 있는데...!!"

세현과 해인이 마르세유의 관람차에 올라 타 피로한 몸을 쉬이고 있을 즈음, 약간의 불안함이 있기는 했지만, 순조롭게 돌아가는가 싶던 관람차는 갑작스런 굉음과 함께 서서히 속도가 줄어 이내 멈추고 말았다.

꼼짝없이 공중에 떠있는 상황, 갑작스런 정지에 해인은 몹시 놀랐다. 타기 전 이 기구의 직원들로부터 이런 상황에 대한 별다른 주의나 설명도 듣지 못했는데.

확실히 뭔가 일이 생기긴 한 듯, 저 멀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관리실 직원들 역시도 몹시 분주해진 모양새였다.

그제서야 위쪽 공기의 싸늘함에 정신이 번쩍 든 건 지, 해인은 몸을 파르르 떨며 세현에게 말했다.

“호...혹시 고장 났나...??”

“에이, 잠깐 뭐 착오가 있나보죠. 그냥 편하게 있어요, 편하게...!!”

“이 높이에서 어떻게 편할 수가 있냐!! 
지금 저 밑 시설 관리하는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거 안보여요?”

“음... 보인다...!  되게 바빠 보이는데요?”

“참, 나...!! 그걸 보고도 왜 이렇게 태평한 거예요? 세현씬 안 무서워요?”

세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좌석의 뒤편으로 가볍게 몸을 기대며 해인을 안심시켰다.

“해인씨 이리 와서 앉아요...!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뭐, 우리가 허둥댄다고 해결 될 일 아니잖아요? 좋네, 분위기도...! 원래 이거 두 바퀴만 돌면 내려야 되는 거라는데, 더 오래있고 좋지 뭐...!!”

생각해보니 틀린 것 하나 없는 세현의 말에 해인은 묘하게 설득된 듯, 별말없이 입술만 비죽대며 맞은 편 좌석에 슬며시 다시 앉았다.

해인이 어정쩡한 자세로 걸터앉자마자 세현은 해인의 옆자리로 재빠르게 자리를 이동했다.

“웃차!!”

“아잇!! 세현씨 흔들지 말아요!! 관람차도 멈춘 마당에 불안하게 시리...!!! 우리 지금 제일 꼭대기에 있다고요!!”

“그쵸? 우리 지금 마르세유 꼭대기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거예요!!”

해인의 불안을 장난으로 맞받아친 세현. 
해인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한숨을 지어보였다.

관람차의 화려하던 조명마저 반쯤 꺼진 채 운행이 완전히 멈춘 상태.

세현은 해인의 옆에 콕 붙어 깍지 낀 손을 잡고,
들었다 놓았다하는 손장난을 해대며 말했다.

“해인씨 조금 아까 갔던 섬... 어땠어요?”

“말해 뭐해... 내가 살면서 봤던 풍경들 중 최고였어요...!! 어떻게 저런 섬이 실존할 수 있는 건지...!!” 

"그렇죠? 예뻤죠?"

"에잇, 작가란 사람이 표현이 너무 단순한 거 아냐? 
예쁘다는 한마디로 끝날 장소가 아니었는데!!"  

프리울 섬 얘기가 나오자 다시금 감동에 젖어들기 시작한 건지, 해인은 휴대폰을 꺼내 무수히 찍어둔 사진을 훑어보곤 다시 사진 속 장소로 이동이라도 한 듯, 감상에 빠진 미소를 머금었다.

세현 역시도 해인의 그 모습에 뿌듯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우연찮게 이 마르세유의 꼭대기 위치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 지금, 저쪽 멀리, 그저 불빛 만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프리울 섬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해인씨, 해인씨는...돌아가신 아버지 기억나요? 어릴 때 돌아...가셨 댔죠? 그럼... 어머니한테 뭐 들었던 거 있어요?”

“엣,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가족 얘길...??”

“그냥...요...! 만나 뵌 적 없었데도 궁금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섬 사진을 계속해서 찾아보다가 갑작스런 세현의 질문에 생각에 잠긴 해인. 차분하게 생각을 더듬어가며 이내 말을 꺼냈다.

“뭐, 어렸을 때 엄마한테 많이 물어보긴 했죠,
그래도 뭐 들은 것만으로 아나요? 그냥 그렇겠거니 하는 거지... 나중엔 엄마도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근데 가끔은...”

“음? 가끔은...?”

“원망스럽죠. 아빠가 계속 있었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그럼...어디에 모셨어요? 납골당이라던가...
가끔 찾아는 가죠?”

유독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무심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해인.

“엄마만 가끔 어디 갔다 온다 하곤 슬쩍 다녀오고 그러나 봐요... 무슨 이유에선지 나랑 동생한텐 같이 가잔 말도 안하더라고요. 어디에 모셨는지도 몰라요...! 에잇, 근데 이 좋은 풍경 앞에서 그런 슬픈 얘기해야 되요?”

세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나... 어머니 안 계신 거 얘기했었나요? 해인씨랑 비슷하게 어렸을 때에 돌아가셨고...”

"에? 어머니...도 안 계세요? 아버지 돌아가신 건 아는데... 더 어렸을 때라면..."

"해인씨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랑 비슷하다고 봐야죠. 나도 아무 기억이 없으니..."

해인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현의 다른 과거사를 듣고 뭔가 멍했다. 

유명작가의 아들로, 생각해 보아도 꽤나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창작욕을 좇아 이곳까지 와 있는 건데, 어머니까지 안 계신다니... 

항상 자신의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이 남자의 인생은 어쩌면 예상보다 더 불행했을 지 몰랐다. 

해인은 언뜻언뜻 눈에 들어오던 세현의 고독을 떠올렸다. 

"미안해요, 몰랐어요... 근데 정말 나랑 비슷하네요... 그럼 세현씨는 어머니 모신 곳에 자주 가요?"


"내 생각엔..."

세현은 품 안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섬에서 해인과 같이 찍은 사진을 해인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오늘... 한번 처음으로 뵙고 온 것 같네요."

해인은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세현이 내민 휴대폰 속 사진을 바라보았다.

프리울 섬에서 한 해안가를 배경으로 찍었던 세현과 자신의 첫 번째 사진. 

분명 자신들 이 외에는 아무도 없는데, 이걸 갑자기 왜...

“어머니 모신 곳 보여주려던 거 아니었어요? 
이 사진이 아닌 것 같은데...이건 아까 그..."

“사실 이제까지는 실제로 어머니한테 가본 적 한번도 없었어요. 여기라는데..."

"여기? 이 섬 말이예요??"

해인은 다시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여전히 자신들 이외엔 해변과 하늘 밖에는 보이지 않는 사진  속의 모습.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 유골을 아마도 이 섬의 어느 해안가에 뿌렸다네요. 나도 어제 아저씨한테서 처음 들은 거지만. 아, 그 레스토랑 아저씨가 아버지 친구 분인 거 몰랐죠?"

“예!?? 아..! 그랬구나...친구분이셨구나... 
근데, 어머니 유골을 그 해안가에 뿌려드렸다고요? 우리...좀 전에 다녀 온 거기 말이에요?” 

세현은 눈앞 먼 곳에서 불빛만으로 반짝이고 있는 프리울 섬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데요... 지독하게도 로맨티스트였다던 아버지가 아마도 결혼 초기에 어머니랑 무슨 약속 같은 걸 했던 모양이겠죠? 병이 있으셨다니... 추억 가득한 저 곳에 있고 싶다고 했거나...”

해인은 슬픈 가족사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세현의 눈치를 보았다. 

“...기분이 어땠어요? 그거 처음 들었을 때? 그래서 그렇게 물가를 유심히 봤었구나...”

“음? 어머니가 저기 계시다는 거? 솔직히 벌써 20년도 더 된 얘기라 그런 지 별로 감흥은 없네요. 
해인씨는 어떨 거 같아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계시다는 곳을 몇 십 년이나 지나서 찾아간다면...” 

해인은 별 망설임 없이 답했다.

“흠... 별로 달라질 것 없겠죠... 아빠라는 기억 자체가 없으니... 오히려 원망하면서 미워하기만 하고...”

“그쵸? 해인씨도... 내가 이렇게 별 감흥 없는 거, 잘못되거나 그런 거 아니겠죠?”

해인은 말없이 잡고 있던 세현의 손에 다른 손마저도 같이 꼭 잡아주었다.

세현은 어깨에 둘렀던 자신의 팔로 해인의 머리를 가볍게 누르며 장난스럽게 이야기 했다.

“잘 좀 해줘요 , 나 해인씨 밖에 없는 거 알았으면...”

해인은 세현의 몸 쪽으로 더 가깝게 기대며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하아... 좋다... 이러고 시간이 멈췄으면...”



[ 끼이이이익 ]

순간 관람차의 중앙부에서 조금 전과 같은 굉음을 내며 서서히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입이... 방정인가...풋...바로 시간이 다시 가네요...! 말하기가 무섭다...!!”

관람 차에서 내리자 직원들은 일일이 머리를 숙여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불편을 끼친 점을 사과했다. 

그 사이 뭔가 더 돈독해진 듯한 두 사람. 
세현은 다만 관람차가 멈춘 시간이 더 길지 못했음을 사과 받아야 할 판이었다.

종일을 간식으로만 때우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식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나른해 진 듯, 말수도 줄고 힘이 더 빠진 듯한 해인. 

세현은 더 지치기 전에 해인을 조심스럽게 데리고 차로 이동했다.

“허어, 걸으면서 조는 사람 또 처음 봤네...!!
자, 차까지 다 왔습니다. 피곤하죠? 얼른 앉아서 한 숨 자요...!”

“아휴, 운전하는 사람 방해되게 조수석에 앉아서 자는 거 아니에...”

혼자 뭐라 웅얼거리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닫혀져 버린 듯한 해인의 눈꺼풀.

세현은 피식 웃으며 혹여나 깰 세랴 조심스럽게 마르세유의 시내를 빠져나와 자신들의 본거지, 아를로 향했다. 

행여나하는 흔들림마저도 조심해가며 조용히 대로로 들어와 달리기 시작해서 일까. 해인은 이내 새근대며 깊은 잠에 빠져든 듯 했다.

힐끗 옆자리에서 잠에 빠져든 해인을 쳐다보던 세현.

“역시... 해인씨는 잘 때가 예뻐...!! 오늘로 세 번째예요...!!”

도로의 가로등만이 비추어 주는, 어두컴컴한 배경을 뚫고 달려 한시간여 만에 도착한 아를. 
여전히 해인은 잠에 취해 있었다.

언제나처럼 숙소로 들어가기 전 골목의 빵가게 앞에 차를 세워 둔 세현은 가만히 해인을 지켜보았다.

“후... 옆에서 아주 꿀잠을 자는 통에 나도 졸려서 혼났네... 아주...!! 어떻게 하지...깨워야 되나...”

몇 걸음 남지 않은 숙소까지의 거리. 
달콤한 꿈나라에 빠져있는 해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잠을 깨울 수밖에 없다 판단한 세현은 서서히 해인을 흔들며 말을 걸었다.

“해인씨, 해인씨...!! 다 왔는데... 일어나 봐요!!”

“아...예?? 아아....”

잠도 잠이지만, 저녁 식사 때, 한잔만 하면 괜찮다던 와인의 여파도 있는 모양.

“또... 이런 상황이군...!!”

지난 번처럼 꽐라가 된 것까지는 아니지만, 오늘은 술기운 보다 피곤에 취해 죽 늘어진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이 어렵게 어렵게 해인을 업다시피 부축해 집 앞까지 다다른 세현.

“자, 인제...!! 잠깐만 일어나자!! 잠깐만!!”

살며시 해인을 내려놓자, 설 힘이 없던 건지 휘청대기 시작하는 해인. 세현은 혹여 해인이 넘어 질 세랴 해인을 잡았다.

그제서야 해인은 서서히 정신을 차려간 듯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 다 왔네...! 세현씨 수고 많았어요...! 
세현씨도 피곤했을 텐데...”

“해인씨 편하게 왔으면 됐어요, 지금부터 들어가 쉬면 되는 거지. 자...그럼.”

자기 것 마냥 척척 열쇠를 찾아다 해인의 현관문을 열어주는 세현. 

해인은 세현을 비몽사몽 눈을 떠 세현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려던 찰나.

세현이 양 손으로 해인의 작은 얼굴을 부드럽게 휘어 감으며 다가와 해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너무나도 부드러운 서로의 입술. 

잠이 확 달아날 정도로 아찔한 기분. 

세현의 숨결이 너무도 가깝게 느껴져 정신이 아득해지는 해인은 갑작스럽게 콩닥대기 시작한 심장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지금 느껴지는 심장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세현의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상황.

세현은 부드럽게, 마치 아슬아슬한 위치에 핀 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해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행동만으로도, 지금 세현이 얼마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서로의 숨결을 느껴가고 있는 이 찰나의 순간. 
머릿속으로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 좋아합니다, 해인씨...! ] 

물론 가장 강렬했던 고백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힘들게 살아 와 누군가에게 믿음을 잘 주지 않았던 해인이었건만,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게 살며시 가까이 다가와 지금의 순간까지 맞이하고 있는 세현.

세현이라면 분명 믿음이 가는 대상이었다. 연인보다도 더 위에서 나를 끝까지 지켜줄 것만 같은 듬직함. 

해인은 벌써부터 세현을 더 좋아하고 있던 것인지 모른다.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을 물리치고, 오직 지금의 순간만을 순수하게 느끼려 해인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어느새 해인의 팔도 세현의 허리를 타고 등까지 휘감아 살며시 끌어안고 있었다.



여전히 조용한 아를의 밤. 
한동안 떨어질 줄 모르던 두 사람의 거리는 아무도 모르게  꽤 오랫동안이나 지속되었다.

해인도, 세현도 터질 듯이 뛰기 시작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혼미한 정신에 오늘 하루 극에 달한 피로가 긴장과 함께 터져 나왔음일지. 

꼭 끌어안고 있던 해인을 보내주려는 세현. 

얼굴을 마주보고 눈을 응시하며 세현은 해인이게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

“고마워요.”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살며시 미소짓고 있던 해인도 세현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확실하게 확인받은 마음으로 점점 가까워진 두 사람.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이제까지와 같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프랑스, 아를.
각자의 꿈을 가지고 이곳을 찾은 두 남녀의 꿈은 점차 하나의 꿈이 되어갔다.


그렇게 5개월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 1부 마감 ]

< 텀없이 바로 2부 연재로 이어집니다. 꾸준한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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