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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Sep 12. 2017

우연히, 그곳에서...<52화>

[ 이미 넌 나보다 앞서 있는 걸...! < 2부시작 > ]


일본의 한 번화가

이곳 역시도 5개월여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엇, 오늘따라 얼굴이 밝네요.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주기적으로 일본의 창업지원센터를 찾으며 자신의 현재 상황과 창업 가능여부를 점검해 오던 아영.

늘 아영에게 상담을 해주던 중년의 직원은 다소곳이 앉은 아영의 표정을 읽은 듯 밝게 말을 걸었다.

“아? 그래요? 음... 왜 그러지? 별 일 없는데...”

"참 꾸준하기도 하다. 아영씨...! 벌써 우리 알게 된 지 4년이에요! 워낙에 서로 얘기도 많이 하다보니까, 아영씨 표정 변화를 내가 다 꾀고 있다니까! 분명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거죠...!”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했었는지, 입술을 비죽거리던 아영은 이내 입을 열었다.

“자금이... 거의 모인 것 같아요. 사업 시작하는데 필요하다던 정도까지는...!"

“오...! 축하해요!! 그것 봐!! 내 눈이 정확하잖아...! 어쩐지 여기 다니기 시작한 이래 얼굴이 제일 밝다 했어...!"

자신도 무언가 뿌듯한 마음 이었는지 그제서야 활짝 웃어 보이는 아영.

“자, 그럼 본격적으로 아영 사장님 개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요...?”

사업에 관련된 업무뿐 아니라 때때로 일본 생활의 푸념과 함께 이래저래 큰 도움을 받아왔던 이곳. 

창업지원센터의 직원은 마치 딸에게 과외를 시켜주듯 요목조목 상황을 따져가며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지금 아영씨는 취업비자로 체류하고 있는 건데... 사업체를 운영하려거든 투자 경영 비자를 받아야 해요. 주식회사나 합동회사법인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자금은 준비 되었다니까... 직원 2명 이상 채용할 규모가 되어야 해요. 당연히 아영 씨가 대표가 되는 거죠?”

“예? 예. 그렇죠...!”

직원은 분주하게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무언가를 조사하더니 계속 말했다.

“아무래도 아영씨가 일본기준으론 외국인이라 절차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네요.”

일본이라는 나라 안에서, 스타트업의 비용으로 일정 이상의 금액이 필요하다 하여 몇 년에 걸쳐 무작정 돈만 마련 했건만, 

아무래도 외국인이 일본 땅에서 홀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데에는 자격 및 필요한 서류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음, 혹시... 같이 동업할 현지인 이라던가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럼 좀 절차가 단축될 수는 있는데...”

같이 할 현지인이라... 아영은 순간, 자신이 한창 돈 버느라 혈안이 되어있을 시기에 만났던 전 남자친구 크리스가 떠올랐다.

죽이 척척 잘 맞는 영혼의 관계? 
그 때에는 정말 미래를 약속하며 공동으로 무언가 할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었는데...

어찌됐건 지금 아영 옆에 제일 가깝게 붙어다니는 현지인이라면...

‘야마다? 아니 아니!!! 내가 뭔 생각하는 거야!!? 
그 찐따같은 자식을...!'

“어, 없네요, 하하 잘 아시면서...!! 복잡해도 혼자 하는 거죠 뭐...!"

“뭐 얘기 많이 들었으니까 혼자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혹시 몰라서... 현지인 동반자가 있으면 그 사람 명의로 법인 만들어 비자 신청하고 나중에 이전 받으면 조금 간단하거든..."

[부르르르르~]

한창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을 즈음. 아영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다름 아닌 야마다였다. 

하필 역시나 좋지는 않은 이미지이지만, 머릿속에 막 떠오르고 있던 순간에 어떻게 알고 전화를 준 건지...

"여보세요? 너 뭔데 자꾸 전화질이야!? 요샌 뭐 알아내 오는 것도 없는 주제에...!"

"아, 아영씨...! 꽤 오래간만인데 너무 매몰찬 거 아니야...?"

상담 직원은 아영의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전화에 대고 틱틱대고 있는 아영을 보고 씩 웃으며 얘기했다.

"아영씨. 일단 오늘 상담은 여기까지 해도 될 거 같아요. 이만 해산하죠. 전화 편하게 해요.
그리고 누군지는 몰라도 따뜻하게 좀 대해줘, 하핫...!"

"앗, 죄송합니다. 그럼 오늘은 들어가 볼게요. 감사합니다. 이제 자주 올 거예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센터를 나온 아영. 
여전히 전화 너머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야마다와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 왜, 무슨 일인데?"

"아영씨 일 바쁜 거 아는데... 요즘에 너무 진전이 없잖아...! 빨리 잡아야지. 벌써 일 년이 가깝게 됐는데...기간 길어지면 더 불리해 질 수도 있다고...!"

"...나라고 뭐 안하고 싶어 이러고 있겠냐? 저 멀리 프랑스로 날아갔다는 잡놈들을 무슨 수로 잡아 올 거야...! 너 놀고 있으니 프랑스나 다녀오면 되겠네...!“

"놀긴 누가 놀아!! 나도 알바하면서 바쁘게 산다니까...!"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있는 힘껏 수사망을 좁혀 본 결과. 

크리스와 에릭슨이 현재 유럽 중에서도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는 높은 가능성을 알아냈던 두 사람.

그러나 초반에 희미하게 인식하던 우려대로 바다 건너 유럽까지 나가있다는 사람을 찾아낼 방법도, 찾으러 갈 여유 역시 만들어 내기는 어려웠다. 

아니, 무턱대고 찾아가기에는 아직까지도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다. 다른 도움 없이 여기까지 알아 낸 것만으로 대단하다고 여길 정도.

특히 야마다의 오타쿠스러운 집요함으로 이어진 수사가 빛을 발한 덕이 컸다.

" 역시 방법은 그거 하나 뿐이야...!!"

"뭐?"

"왜 프랑스 산다는 아영씨 친구들...!! 아영씨 전에는 질색했지만... 솔직히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 있어? 여기서 알아내기만 하면 뭐하냐!?"

이전에도 똑같은 방법을 얘기했다가 바로 구타를 당한 적이 있었던 야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다른 방법이 없다고 여긴건지, 아영도 가만히 생각해 보는 듯 했지만, 이내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아냐...! 뭐 제대로 된 정보나 주고 부탁을 하던지 해야지!! 프랑스가 무슨 작달막한 동네도 아니고...!! 그래서 또 그 얘기하려고 전화 한 거냐?!"

"나도 바보 아니다 뭐, 무턱대고 부탁하라는 게 아니라...! 나중에 때 되면 도와줄 수 있게 밑밥을 좀 깔아놓으라고 그 친구들한테...!"

“밑밥이라니...?”

“아영씨 그런 상황인거 그 친구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좀 알리고 가끔씩 걱정해 줄 수 있게 얘기 좀 자주 꺼내라고!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여기까지 온 상황에서... 좀 도움을 청해봐!!”

해인도, 세현도, 아영의 과거 해프닝을 알기는 있지만 그냥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 정도로만 전달이 되었을 뿐, 

이렇게까지 열을 올리며 찾고 있는 줄은 모르겠지.

자존심 문제도 있지만 말해봤자 뭐하겠나 싶어서 깊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었던 아영. 

그렇지만, 듣고 보니 지금 야마다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음...”

“아영씨, 그나저나 요새... 일은 잘 되어가?”

응? 늘 서로 추적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나 거친 투의 말장난만이 오고가던 야마다의 갑작스레  터져 나온 안부에 아영은 어색함을 숨기지 못했다.

“뭐, 잘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그냥 가는 데로 가는 거지...!!”

“저기, 아영씨, 혹시 말야...”

야마다는 우물쭈물대다 말을 꺼냈다.

“아영씨... 일본에서 사업하려고 하는 거...맞지? 지금도...계속 그거 준비하고 있는 거고?”

“응? 뭐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저번에... 지나가는 말로 직접 얘기 했잖아!
내가 원래 기억력이 좀 좋아... 암튼 사업을 계속 일본에서 진행하려는 거 맞는 거지...?”

갑작스레 개인적인 일로 쑥 들어오려는 야마다에게 무언가 경계심을 갖게 된 아영. 

보다 까칠한 투로 날을 세웠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당연히 잘 진행되고 있지! 근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 거야!?”

야마다는 지체없이 말을 이어갔다.

“아영씬 외국인인데... 사업 진행하려면 힘들지 않아? 뭐 어려운 거 있으면 내가 좀 도와줄게...!”

뜻밖의 응원인지, 도움의 손길인지. 
당황한 아영이 묘한 눈빛을 하고 야마다를 쳐다보았다.

“흥, 내가 일본인한테 한번 속지, 두 번 속냐!!?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나 잘해! 임마!! 신경 꺼!!”

항상 굽실 거리는 투이기도 했지만, 무슨 꿍꿍이인지 갑작스런 호의를 베푸려하는 야마다. 

센터 직원의 말처럼 유리한 조건으로 창업을 하는 데에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지만, 이를 득득 갈며 참고 살아온 과거의 경험은 또다른 일본인의 접근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도... 사실 아르바이트 하면서 열심히 돈 모아 자그마하게 사업해 볼 생각이라 좀 알아보고 있거든... 겸사겸사 아영씨 한 말도 생각나고 해서 좀 알아봤지..."

성격때문에 사회 생활 적응 잘 못한다더니, 결국 이 자식도 돈 벌어 사업을 벌일 생각이었나.

집요하게 파고드는 오타쿠 같은 기질 덕에 혼자서 진행해 갈 때보다 크리스 수사가 월등히 빠르게 진행되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아영은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일단 경계를 늦추지 지 않았다.

"자꾸 내 인생에 엮일 생각하지말고...!! 일단 프랑스 가 있는 내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라는 건... 좀 생각해 볼테니까 네 볼일이나 보고 있어!!"

"알았어... 그럼..."

아르바이트로 점점 쌓여가는 돈을 관리 할 때가 마음이 편하긴 했는데, 막상 써야 될 타이밍이 되자 신경써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분명 전 남친 크리스 때와는 다른 상황이란 걸 잘 알고 있건만, 도무지 열리지 않는 마음.

'뭐야, 이 자식은 근데, 복잡해지게 시리...뭘 어떻게 돕겠단 거야, 그래도 일단...얘기나 들어볼까...'

"야, 잠깐만!!"

다행히 아직 끊어지지 않은 전화 너머로 아영이 외쳤다.

"음? 왜?"

"너... 뭔 일 또 있냐? 갑자기 왜 날 돕겠단거야?"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르고 옅은 한 숨 소리와 함께 야마다가 얘기를 시작했다.

"뭐... 일이 있다고 까지 얘기하긴 그렇고... 혹시 시간 좀 돼? 전화로 얘기하긴 좀 길어질 것 같아 그러는데..."

"오늘... 어디 좀 가느라고 알바 뺐는데, 오늘 잠깐 보던가 그럼."

"알았어!! 그럼 아영씨 편한 데에서 봐!!"

예상치 못한 아영의 순순한 응답에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들떠보이는 야마다의 목소리.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 사람을 잘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리긴 했지만, 센터 직원이 '현지인의 도움' 이야기를 할 때 야마다가 떠올려지고, 

우연치 않게 딱 그 타이밍에서 전화를 준 것은 무언가 연관성이 있지 않나 싶은... 억측이 들었다.



*



신주쿠역 안 ㅇㅇ까페.
센터에서 바로 출발해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아영. 

무심결에 만남을 이 곳으로 정하긴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장소는 해인이 일본에 찾아 왔을 때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가게였다.

     
[ 얘기... 해 줬으면 좋겠어. 너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지...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

아영은 해인의 절실한 표정과 대사가 떠올라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풋, 기집애... 네가 벌써 나는 뛰어넘은 거 아냐? 
나야 뭐 그냥 돈벌려고 아둥대는 거지, 자기처럼 뭘 막 도전하고 그랬던 건 아닌데...!"

해인과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혼잣말을 하는 아영. 순간 급하게 카페 문이 열리고 헐떡대며 야마다가 들어왔다.

가게 안을 두리번 대는 야마다.
아영은 떨어진 자리에서 야마다를 지켜보며 혼잣말을 했다.

"해인아, 내 도전은 아무래도 지금 정도부터가 시작인 모양이다...!"

계속해서 갈팡질팡하며 가게 이름을 다시 확인하며 어리바리 해대고 있는 야마다. 보다못해 아영이 소리쳤다.

"여기야! 멍청아!! 맨날 먼저 만나자 하곤 늦어!!"

"아, 미...미안...!!"

야마다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영의 자리 앞으로 다가왔다.

"또 뭐야, 왜 바쁜 사람 오라가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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