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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Sep 19. 2017

우연히, 그곳에서...<54화>

[ 제54화 _ 혹시 너네 그렇고 그런 사이...?? ]


"까뫼... 우리나라에 책이 한 권 들어와 있기는 한데...!!"

공모전 주최인 출판사에 근무하는 학교 후배 소현의 밀고(?)덕에 자신의 작품을 심사한 심사위원을 알아낸 기태.

결과를 기다리는 시점에, 이제 와 심사위원을 알아낸다 한들 달라질 건 없었지만, 

제출한 시험지의 답이라도 맞춰보고 싶었던 듯, 기태는 자신을 채점해 준 선생님의 정보를 찾아보려 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 재고가 남았다는 서점으로 이동해 그리 어렵지 않게 책을 찾아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한 기태.

"무겁다...무거워..."


늘 자신의 작품은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다루어 현재의 트렌드에서 벗어난 것 같다는 비판을 받아왔었다.

그래서 이번 공모전 만큼은 현실 모티브의, 조금은 가볍게 쓴다는 생각으로 써보았는데, 하필 심사를 맡았다는 양반이 이렇게 무거운 글을 쓰는 스타일일 줄이야...

그저 가능성 확인을 위함이었을까, 기태는 다소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책을 다 읽지도 않고 서점을 나왔다. 

복잡했다. 또 시작된 기태의 초조함에서 나온 쓸데없는 행동들. 이젠 나쁜 버릇이 되어 있는 듯 했다.

이런 소모적인 짓거리를 할 바에 차라리 누구든 수다를 나눌 상대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흐음...”

의미 없이 뒤적이기 시작한 핸드폰 통화 명단에서 찾은 대상은 수개월 전, 갑작스런 교통사고와도 같이, 아니 실제 일어났던 교통사고로 몇 년 만에 다시 만났던 만식이었다.

“아, 정말... 하다하다 사람이 없어서...”

잠시 망설이던 기태는 될 데로 되라는 식으로 통화버튼을 눌러버렸다.

“여보세요? 기태...? 너... 웬일이냐?”

“음...뭐, 그냥... 별건 아니고... 답답해서 걸어봤다...”

“쳇, 답답해서 찾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거냐? 영광스러워해야 하는 건지... 참, 네 놈 어떻게 살아 왔을지 빤히 보인다...!!”

교통사고로 재회했던 몇 달 전의 그 때와는 달리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듯, 다시 예전 말투로 돌아와 버린 듯한 만식.

“너도 참, 싸가지는 여전하구나...! 그래, 임마...! 답답한데 만날 사람은 없고 수다 떨 상대도 없어서 전화했다!! 재수 없는 시절 말투로 돌아 간 김에 시간 좀 내라 너...!”

“뭐? 만나자고? 무슨...”

“연락처 먼저 준 거 네놈 쪽이다. 멍청아! 뭘 신기해 하고 앉았어? 술이나 한 잔 해!! 일 끝나면 몇 시야?”

만식의 말을 끊고 강제로 약속을 잡아버린 기태. 

딱히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공모전, 집필, 그리고 현재의 주변인들까지 모두 포함해, 귀찮은 설명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는 만식뿐이었다.

“쳇, 막무가내네, 아주...!!”

툴툴대면서도 만식은 약속을 승낙했다. 

하늘엔 어둠이 깔리고, 거리엔 온통 네온사인들이 수놓여 진 밤 시간이나 돼서야 두 사람은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뭐냐, 왜 보자고 한 거야? 한기태?”

“야, 눈깔에 힘 좀 빼고 다녀라... 잔뜩 겉멋만 들어서는... 그냥 심심해서 불렀다고...!!"

두 사람은 근처 대학가의 한 북적대는 술집으로 발을 옮겼다.

“야, 뭐 시끄럽게 이런 델 왔어? 대학교 때도 이런 데에선 안 놀았는데!!”

소란스러운 분위기. 옆에서 불만을 얘기하는 만식의 투덜거림을 그냥 무시해 버린채 기태는 가게의 한 구석 자리에 앉았다.

만식 역시 어색함에 주변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며 얼떨결에 따라 앉았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오래간만에 이런 상황을 맞이한 두 사람, 막상 눈앞에 마주하니 말 꺼내기가 불편했는지 한참을 말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잠시 뒤, 기태는 술기운의 도움으로 겨우 입을 떼었다.

"너, 소설 공모전... 작품 냈다 그랬지?"

"흥, 결국 그거군...! 왜 그 얘기 안나오나 했다... 전에 얘기 했잖아! 나도 준비 중이었다고...! 너도 당연히 냈을 거 아냐?!"

"냈지... 그럼...너 냈다는 거... 어떤 내용이냐?"

조심스럽게 질문한 기태를 날카롭게 쏘아보는 만식.

"그건 왜 묻는 거야? 대학 땐 소재 유출이네 뭐네 하면서 발표 전까진 자기가 뭐 쓰고 있는지 절대 밝히려고 하지도 않더니...!!"

"어차피... 발표도 코앞이라는데 서로 내용 공개해 보는 게 어떠냐? 좀 걸리는 부분도 있고 싱숭생숭해서 불렀다."

"발표라... 벌써 나올 때가 됐나...“

"그래, 제출 마감 끝나고 반년 가깝게 지났는 걸. 뭐 원래부터 규모가 어마어마했으니 시간 걸리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근데 들은 바에 따르면 다음 주 정도로 발표날 것 같다더라..."

"뭐? 다음주? 그걸 어떻게 알아? 누구한테 무슨 헛소릴 또 듣고 온 거야?“

관계자 소현에게 들었던 중요 정보. 
기태는 얘기해 놓고 아차 싶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 주최한 출판사에서 일하는 아는 후배가 한 명 있다. 그 친구한테 들었지, 아마... 너도 알 지도 모르고...”

“뭐? 날 알아? 그럼 뭐야? 우리 대학 후배라는 거야? 누군데?”

기태가 소현과 재회한 날 들었던, 소현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인상을 안겼다던 주인공. 

매번 합평 때마다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을 해대며 주변인들 자존심을 깡그리 박살 내놓았던...
그 주인공은 바로 만식이었다.

이름은 명확하게 기억 못하고 있을 지언 정. 불쾌하기 짝이 없던 합평에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직까지도 이를 득득 갈던 소현의 모습.

“주변 사람 신경도 안 쓰면서 지 주장만 빽빽 질러대던 네놈이 기억이 날란 가 모르겠다만 전소현이라고 하는 애 있다.”

“소...소현이...걔가 그 출판사에서 일 한단 말야?!"

예상 외로 크게 놀라는 만식. 기태는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말해 본 소현의 이름에 크게 반응하는 만식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소현이]? 꽤 다정스럽게 부른다? 기억이 나긴 하나 본데... 우리보다 2년 아래 후배 있잖아. 예쁘장하니 생긴...”

“너...너는!!!”

만식이 다소 흥분한 얼굴을 하고 기태의 말을 자르며 얘기를 시작했다.

“소...소현이랑 어떻게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거냐? 꽤 오래 전인데...그리고 넌 중간에 그만 뒀잖아!! 호...혹시?”

당황한 눈동자, 살짝 떨리기 시작한 말투, 불안한 시선, 이 자식 뭔가 수상하다.

기태는 달라진 만식의 모습에서 어렵지 않게 상황을 유추 해 낼 수 있었다.

“너... 뭔가 있군... 걔 좋아하기라도 한거냐?”

“아...아냐!! 그런 거...”

“똑바로 말해 임마! 아주 지가 먼저 티를 팍팍 낸 주제에 어설프게 아닌 척 하기는!!”

만식은 뭔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으로 쭈뼛대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와 얘기지만... 조금 호감이... 있던 후배였다...학년 연합 합평 때에도 꾸준히 참석하기도 했었고...”

보아하니 조금이 아닌 듯 한데...

"아니,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 합평자리에서 그렇게 막말을 했었다는거야? 이미지 관리라는 것도 모르냐?"

"아니, 그렇게 하면 지적인 뭐랄까... 아우라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해서..."

"너 연애 못해봤지? 말하는 뽐새가 아직까지 연애에 무슨 환타지를 가진 찐따같다."

"그...그래서!! 임마! 네놈이 소현이랑 어떻게 아직까지 연락하고 있는 거냐고!!??"

만식은 있는 힘껏 무게를 잡고 있다가 무언가 치부를 들키기라도 한듯,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기태에게 외쳤다.

소현이 만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빤히 알고있는 기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만식에게 대답했다.

"나 소현이랑 사귄다."

"뭐!!?? 네 까짓 게 어떻게...!!"

"말하는 거 보소... 네 까짓거라니...! 그리고 사귀는 게 뭐 별거냐? 그냥 서로 마음 맞으면 만나는 거지...!"

"아...아니, 그래도 어떻게 너 같은 놈이랑... 어떻게 된 건데!!?? 빨리 말해봐!!"

기회다 싶어 만식을 놀리기로 작정한 기태.

눈앞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하는 표정으로 어이없어 하는 만식의 표정은 정말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왜 그런 걸 알려고 하냐? 남의 연애사를 어디 꽁으로 알아내려고..."

"그...그렇잖아!! 그 날 이후 넌 학교도 관뒀었고...학교 다른 애들 하고 연락도 잘 안하던 걸로 알고 있는데...하필... 소현이랑 만난다니..."

"나한테 전혀 관심도 없던 주제에 내가 다른 애들하고 연락을 하는 지 안하는 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그건..."

"네놈이 소현이한테 환심사려했던 그 짓거리가 지금 잘 먹혔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하게 다른 사람 만나고 있다니까 억울해서 그러냐?"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투로, 만식은 이제 거의 사색이 되어가며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아니냐?! 분명히 뭔가 지적인 말투와 풍부한 지식을 드러냈으니 호감을 샀을거라고!!"

"자기 지식 자랑 하면서 남 깎아내리고, 말 험하게 하고... 합평할 때마다 너 누구 한 명씩은 울렸던 거 기억 안나냐? 그게 이기는 거야? 통쾌하디? '내 지식으로 저 새파란 애들 굴복 시켰어!' 하고?"

"그건 합평 중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소현이 포함해서 여자들은... 그런 쎈척하는 스타일 제일 싫어한다...! 이 병신아! 
그래놓고 아직까지도 사리분별 못하고 있는 지금이 더 한심하다. 여지껏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을 거 아냐?"

"소현이...가 날 싫어했다고? 그...그래서 나랑 맨날 피터지게 싸워대던 네놈한테 갔다는 거냐?"

어리 숙하기 짝이 없는 눈앞의 만식. 
소현의 핑계 덕에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질러댄 기태는 슬슬 진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네놈 반대편에서 싸우던 나를 우러러 보기는 했었다더라... 근데 나한테 오지는 않았어."

"뭐? 사귄다며!!"

"장난이야! 그냥 작품 제출하러 갔다가 만났다! 이 멍청한 놈아!!"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생각에 입으로는 험한 말을 내 뱉었지만, 기태와 소현의 관계가 농담임을 확인한 순간 만식은 자신도 모르게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뭐야, 그 표정은? 아직까지도 소현이 좋아서 마음 속으로 그리고 있었던 거야? 그 정도였어?"

"아...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 작품이..."

"작품? 작품이 뭐...? 혹시...이번에 냈다는 작품이 후배를 짝사랑한 지고지순한 괴팍한 선배 글쟁이의 이야기 였던 거냐!!?"

정곡을 찔린 건지 아무 말도 못한 채 괜스레 눈앞의 술을 한 번에 들이키는 만식. 

기태는 허탈함과 당황함에  크게 웃어 제꼈다.

"하하핫!! 이렇게 순정파인지 몰랐는데...!! 나랑 사귄다 할 때 어째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만... 근데 어떻게 하냐? 이거..."

"?? 뭐... 뭘 어떻게 해...??"

"오매불망 애타게 그리던 네 사랑, 벌써 돈 잘 버는 다른 놈이 벌써 채갔더라...!"

"뭐? 두 번이나 내가 속아 넘어갈 성 싶으냐?! 작품 제출하러 갔다가 만났다는 놈이 그런 걸 알 수 있을 리가...”

으르렁 대면서도 다시 경직되기 시작한 만식의 얼굴.

"이번은 장난 아니다. 먼저 아는 척 해 주길래... 애가 참 씩씩하고 뭐 알다시피 예쁘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좀 호감이 생길 뻔도 했는데...남자친구랑 둘이 아주 좋아 죽더라고, 눈앞에서... 그러고 보니 나 걔네 커플하고 같이 밥도 먹었다, 야...”

“저...정말이냐?”

기태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번 역시 장난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렇더라... 작가적인 열정이네 뭐네 해도... 결국 여자애들은 안정적인 남자 찾아 가는 모양일 테지. 경제적이건 뭐건, 안정이 되고 난 다음이라야 열정도 열정으로 받아들이지, 

쥐뿔도 없으면서 열정 찾으면 그냥 능력 없는 놈이 되어버리더라고, 이 나라... 참 서럽지... 그래서, 니 소설은 어떻게 전개 되는데? 짝사랑 하는 선배랑 잘되는 내용인가?”

“내 소설 얘긴... 거기까지만 하자. 뭐 그런 거라고... 근데 글에서 자꾸 다루다 보니까 소현이가 다시 생각이... 나긴 했어.”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글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건 아직도 못 잊고 있다는 거 아니냐? 그렇게 좋았냐?”

“아... 뭐 그리기만 하던 건 아니고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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