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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Sep 22. 2017

 우연히, 그곳에서...<55화>

[ 제55화 _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


"사실... 좀 더 가까워 질...뻔 했었어..."

느닷없는 만식의 폭로. 
기태는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뭐? 가까워지면 진 거지, 질 뻔 했다는 건 또 뭐냐?"

만식은 소현의 얘기가 나오고 부터 급격하게 자신없이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분명 뭔가 말하기 창피한 해프닝이 있음을 간파하고 기태는 살살 만식의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흥, 네놈처럼 일상적으로 막말을 내뱉어대는 캐릭터가 여자한테라고 다정다감할 리가 있나! 또 생각나는 대로 지껄여 울리기나 했겠지!!"

"아, 아냐!! 소현이는..."

슬슬 미끼를 문 듯한 만식.
기태는 더 심하게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네 놈이 잘난 척하며 떠들어 댈 때 상대방 애들 표정 한번이라도 의식한 적 있냐?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놈이면 계속 그렇게 못했을 텐데..."

"나...나도 알아,  임마!! 그래도 그렇게라도 튀지 않으면 내가 눈길을 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걸 어떻게 하냐!!?"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듣고자 했을 뿐이던 기태는 점점 드러나는 사실 앞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뭐야? 눈길을 끌고 싶어서 였다고?"

"너...넌 그때 이성엔 별 관심이 없어보였지만... 소현이 좋다고 쫓아다니던 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냐?!"

"소현이가...? 그 정도 였나...? 난 별로 관심이 없었어서...하긴, 남자 놈들 예쁜 애들이라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으니..."

"원래 누가 봐도 예쁜 애들보다 그냥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예쁘장한 애들한테 남자들이 더 몰리기 마련이다!

남자놈들, 얼마나 꼴 같지 않은 애들이 많았는 줄 아냐? 대학생이란 것들이 외제 차 몰고 와서는 나 돈 많네 하며 으스대고, 선물 공세에, 구애에... 

그런 애들 하고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데, 내 분야에서라도 당당하게 보이기라도 하려는 입장 이해가 안돼냐!?"

"뭐야? 다른 남자들하고 비교를 당하네 어쩌네 하는 거 보니, 소현이랑 사귀고 싶기라도 했었는 모양이네?"

"그래 임마!! 고백도 했었다!!"

"엣!!!??"

당시로선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소현은 왜 고백까지 했었다던 이 남자를 그저 합평에서 막말을 해대던 '찐따 선배'로만 얘기 했었을까. 

학창시절의 그 악독한 ‘합평악마’의 이미지조차도 소현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알고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냥 부정해 버리고만 싶었던 것인지.

“네가 고백...!? 전혀 생각해 본적도 없는 일이라 그런가, 참... 다 지난 얘기 듣는 데 이렇게 흥미진진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고백하니까 뭐라디?”

여기까지 얘기한 마당에 숨겨서 무엇 하겠냐는 표정으로 이내 만식은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후우... 처음엔... 아주 전혀 눈치도 못했었다는 투로 놀라는 척 하더니,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아니, 대뜸 고백한다고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 아니냐? 합평에서도 완전 진상을 떨어놓고, 또 그걸 지식 자랑했다고 뿌듯해하고 있는 놈한테!?”

“아...아니야!! 합평 끝나고도 내가 혹시 기분이 상했었는지 물어보며 얼마나 뒤에서 챙겨줬었다고...!!”

“와, 이 자식 갖은 똘아이 짓거리는 다하고 다녔었네...! 그렇게 격하게 진상을 떨어 사람들 기분 다 잡치게 만들어 놓고 뒤에 가서 특정인한테 샐샐 거렸단 말이야? 

진짜 대책 없다. 너란 놈...!! 나도 같이 진상 떨었던 사람 입장에서 창피하다, 창피해...!! 그거, 임마! 다가오는 애들 널렸으니까 그냥 넣어두고 관리하는 거야! 어장관리가 별건 줄 아냐?!"

“그래!! 뭐 어장관리 한다고 치고, 생각해 봐라! 임마! 어디만 나갔다 하면 하나 둘씩 생겨나는 남정네들한테, 내가 이길 방법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데 어떻게 할 거야!? 

뭐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야, 금방 뽀록 날 거, 억지로 빚을 내서 돈 많은 척이라도 했어야 됐냐!? 네놈은...!! 얼마나 모범적인 연애를 해왔기에 그렇게 개 무시를 하나 네놈 얘기나 좀 들어보자!!”


생각해보니, 자신의 이전 연애를 모티브로 소설을 썼던 것 까지 겹치는 두 사람. 여기까지 들은 마당에 자신의 이야기를 안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태는 최대한 좋았을 때만을 떠올리며 전 여자 친구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임마, 우리 같은 작가들은... 일반적인 연애를 꿈꾸는 여자들은 정상적으로 대해주기가 어렵잖아, 난 그런 거 이해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났다. 창작의 영역을 존중해줄 수 있는...!!"

앞서 공격을 받기만 했던 만식은 자신의 공격 타임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소주 한 잔을 들이키고는 기태를 노려보며 이야기 했다.

“그래서...? 오래 가디? 그 연애...? 지금 심심하다고 나 불러낸 걸로만 봐선, 현재 진행형은 아니란 소리고... 같은 업계 종사자들 말고 그런 거 이해하려고 하는 애가 있기는 하냐? 그건 이해하는 게 아니라 참아주는 거야!”

한 방에 정곡을 찔려 버린 기태. 역시 이 놈의 공격력은 여전했다.

“뭐, 그렇게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얼마나 즐거웠...”

“내가 볼 때 연애를 모르는 쪽은 네놈 같은데...!! 왜 네 일하고 만날 사람하고를 같이 생각해야 되는 거냐? 작가는 직업인데, 왜 그걸 저쪽에서  이해해 줘야 되는 건데? 

일은 일이고 연애는 연애로 구분지어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냐? 결국 잘해 줄 수 없는 것에 변명 아니냐? 
괜히 작가 자존심이랍시고 연애하면서도 만나서 그 얘기나 주구장창 하고 있었을 테니, 여자도 버티다 못해 떨어져 나간 거 아냐?”

가면 갈수록 찔리는 깊이가 깊었다.
확실히 무시할 레벨의 녀석이 아니다. 

실제로 기태 소설의 소재로 쓰인 '작가의 연애패턴'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할 만한 의견.

그것을 단 한 번에 캐치해 내는 능력하고는...!

항상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상대방에겐 변명 같아서 꺼내기 싫었던 부분임에 분명했다. 

 전혀 상관없는 이 녀석이 보기에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건, 전 여자친구 본인에게는 아마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을 수도...

“그럼...너는 평범한 연애가 가능하다고 보는 거냐? 우리 같은 직업들도?”

기태는 기분이 상하는 듯 했지만 잠시 뜸을 들이다, 그래도 핵심을 콕콕 찝어 낼 줄 아는 이 녀석에게 타인들이 느끼는 시선을 들어보고자 했다.

“나도...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처럼... 뭔가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은... 확실히 대단하다면 대단한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대단한 거지!! 그럼 아니라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그걸 상대방한테 강요할 수는 없는 거 라는 거야! 아닌 말로 요즘처럼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내 거가 최고입네 하면서 자뻑해 봐야 누가 인정해주냐?”

자신처럼 학교도 때려 치웠다더니, 그 사이 뭔가 큰 전환점이라도 있었던 듯, 

만식은 잔에 가득 채워졌던 술을 한꺼번에 휙 들이키고는 그때를 회상하는 듯 했다.

“소현이 한테 고백할 때 소현이가 그러더라... 자기는 작가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그 얘긴... 나도 들었어, 그쪽으로 재능이 그리 있는 것 같지 않지만, 문학에서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고 출판사로 들어갔다면서...”

“그래, 그런 걸 인정하고 빨리 다른 길로 가려고 하는 거... 뭐, 거기까진 좋은데... 그러면서 바라보는 눈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더라. 결국은 세상의 논리에 굴복해 버렸달까...”

“세상의 논리?”

비어있던 기태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만식은 숨을 한번 삼킨 후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세상의 논리...라고 하기엔 좀 잔인할 수도 있지만, 결국 경제력이지 뭐. 너도 아까 그랬다며. 작가임을 이해해주는 여자를 찾으라고. 

상대방이 뭘 이해해야 되는 건데? 작품이 인정받기 전까진 돈 없이 살아야 되는 거? 비록 지금은 비루한 모습이지만, 창작의 기쁨을 같이 해 줄 수 있는 메리트 믿고 참고 기다려 달라고?"

“경제력...이, 다...는 아니겠지!! 
그리고 나도 그런 의미는 아니야!! 왜 돈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데!!”

“다...는 아니지, 근데 충족되지 않으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게 또 그거 아니냐? 그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계속 만나려면 상대방이 그걸 ‘참아줘야’ 하고... 참다 참다 안 되겠으면  떠나가는 거고...”

“그... 그래서, 그렇게 돈 찾아 가는 애들이 정상이란 거냐!!? 그 때까지 쌓여온 정이라든가, 이런 거 없이 그냥 훽 돌아서는 것들이 제대로 된 것들이냐는 거야!!”

만식은 약간 흥분한 듯한 기태의 얼굴을 슥 한번 쳐다보고는 기태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때까지 쌓여온 게... 정일지... 울분일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이 자식이...!!”

“니가 썼단 소설 상상이 간다... 굳이 들을 필요 없겠네... 너 글 쓰는 스타일 내가 아는 걸 뭐. 술이나 마셔, 임마! 이제 와서 왜 흥분은 하고 난리래,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지나간 사랑의 아픔을 창작으로서 승화 시키려던 두 남자의 술자리는 예상에 하나도 빗나감 없이 다툼으로 번져갔다. 





***
 




프랑스 아를.

"아를"하면 떠오르는 화가, 
고흐의 알려진 명작 중 하나의 배경이 되었던 카페에서 세현은 한껏 멋들어진 자세로 글을 쓰고 있었다.

집필에 심취라도 한듯 마치 동상과도 같이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는 세현.

그러다 눈에 뭐가 들어가기라도 한 건지,
한쪽 손으로 눈을 비벼댔다.

"아이씨!! 정말, 움직이지 말라니까!!"

고흐의 그림과 같은 각도로, 카페를 배경으로 무언가 몰두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그리던 해인.

"아, 쫌! 눈이 간질간질한데 어떻게 하냐! 이런 변화 쯤 슥 넘어가야 진정한 화가지, 이 아가씨야!!"

"시끄럽고!! 내린 손 좀 안쪽으로 돌려! 아니, 그쪽 말고 반대쪽...!"

꼼짝없이 해인의 그림에 모델이 되고 만 세현.
툴툴대면서도 입가엔 옅은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잠깐, 타임, 타임!! 잠깐만 쉬면 안돼? 나 막 온몸이 저려오려고 그래...!"

"쳇, 엄살은... 자 그럼 앞으로 십분만 더...!!"

"십분...!!?? 오분으로 해줘!!"

"어허, 모델은 말이 없습니다!! 자, 십분!!"

"에잇...!!"

툴툴대지만, 심하게 말 잘 듣는 해인의 그림 모델.
예정대로 십분이 지나고 세현은 해인에게 다가와 가볍게 백허그를 했다.  

두 사람은 볼이 맞닿은 채로 해인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응시했다.

"오호...!! 잘 그렸다!! 이 모델... 누군지 너무 멋있는데!! 이런 남자 애인으로 둔 여잔 진짜 행복하겠다, 그치??"

"끙...아냐, 너무 몰두했나봐... 너무 미화시켜 버렸다. 이봐, 움직이니까 이렇잖아, 이거 싹 다 고쳐야 되겠으니까 빨리 다시 자리로 가 앉아!!"

"알았어, 알았어. 모델 별로다 별로!! 에이, 별로네...!!

"음, 별로야? 그럼 큰일인데...고쳐야 겠다, 빨리 다시 가 앉아 !! 봐, 움직이니까 별로로 그려지잖아...!!"

“쳇, 이거 뭐 이도저도 안되겠구만...!! 어떻게 해야 되는 거니? 그럼...!!”

“자 앞으로 딱 5분만 더 거기 앉아있자!! 그럼 돼!!”



5개월여가 지난 시간, 아를의 두 사람은 변함없이 툭탁대며 더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해인은 계속 그림을 연마해 가고, 세현 역시 공모전 이후로 전부터 쭉 작업 중이던 장편소설에 매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이, 임씨! 수고했어!! 자 이제 뭐 먹으러 갑시다!”

“아이 씨...! 오빠라고 좀 불러주면 안돼? ‘세현씨’에서 더 가까워진 건데, ‘임씨’라고 부르는 게 어딨어!! 어떻게 호칭이 이름에서 성이 되냐!! 뭐 이런 여친이 다 있어!!”

“으으...!! 오빠래...! 참 다른 애들은 잘도 부르더만, 난 왜 이렇게 어색하지...!!! 몰라요!! 난 내 맘대로 할래!!”

“에이... 참 당연히 오빤데 오빠소리 듣기 왜 이렇게 힘드니...!”

그림 모델로서 일을 마친 세현은 해인의 화구를 들어주며 남은 한 손으론 자연스럽게 해인의 손을 잡고 거닐었다.

이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동할 때는 서로에게 기대는 두 사람.

대부분이 서양인들뿐인 이 작은 마을에서 늘 함께 다니는 흔치않은 이 동양인 커플은 마을에서 나름 소소하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틈틈이 해인의 그림 모델이 되거나 그릴 장소를 물색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해인을 돕고 있는 세현. 당초의 다짐대로 세현은 말없이 해인의 서포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간단한 크로키로 오전시간을 같이 보낸 화가와 오늘의 모델은 간단한 브런치 가게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가벼운 식사 때마다 자주 찾아 익숙해진 이곳에서의 브런치. 

해인은 식사도중 문득 무언가 떠오르기라도 한 듯 갑자기 세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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