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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Sep 26. 2017

우연히, 그곳에서...<56화>

[ 제56화 _ 자꾸 헷갈리게 할 거야?! ]


“저기 말야, 임씨...!! 공모전... 발표 날 가까워지지 않았어?”



국제적 규모인 공모전에 소설 제출 후, 이제 거의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시점.

출품 후에는 다 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내라던 레스토랑 아저씨의 말대로 그저 까맣게 잊었던 건지.

아니면 공모전 이후 더 가까워진 해인과의 시간 때문에 아예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지, 세현은 그저 무덤덤한 태도였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 다른 것 때문에 영 정신이 팔렸어서...!!”

“정신이 어디에 팔려? 글쟁이가 글에 정신을 팔고 살아야지...!”

세현은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해인의 머리를 장난 스럽게 꾹 누르며 말했다.

“어디에 팔리긴!? 당신이 사갔으면서!"

“어머! 사긴 내가 그걸 왜 사!! 팔린 사람이 잘못이지...!!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암튼!! 슬슬 가까워 온 거 같으니까 신경 좀 써! 작가씨!”

제출 당시 해인과의 시너지에 큰 기대를 가졌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기성 작가와도 맞붙는 공모전이었던 만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역시도 세현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발표야 날 때 되면 나는 거고...!  기대는 제출일 당일만 하기로 했었던 거 기억 안나? 은근 엄청 신경 쓰이나 보다? 해인이...”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이제 발표가 임박했는데, 너무 무덤덤한 거 아냐? 조바심 좀 내는 척이라도 하지... 아님, 안 그런 척 연기를 잘하는 건가...”

“생각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걱정해야 할 건 내 눈앞의 커피가 떨어졌는데 커피를 한 잔 더 시켜야 할까... 하는 정도?"

“쳇, 뭐 그런 걸 가지고... 까짓 거 시켜요!"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해인이 꺼낸 공모전 얘기에도 세현은 별다른 반응 없이 무심하게 눈을 감으며 작게 속삭였다.

“공모전 결과도 중요하긴 한데, 나한텐 준비하던 과정이 더 신났었어서 어떻게 되던 별로 상관 없을 것 같아. 벌써 잊은 거 아니지? 그 날도..."

“그 날?”


무수히 같이 보낸 날들 중 세현이 어떤 날을 얘기하고 싶었던 건지 해인은 단번에 알아챘다.

아비뇽의 출판사에 직접 작품 제출을 하고 밤 늦게 해인을 만났던 제출일. 원형경기장 내, 한눈에 아를의 전경이 보이는 명당자리에서 세현이 고백을 했던 바로 그...

두 사람의 지금을 있게 만든 날이기도 했지만 해인에게는 더욱 더 또렷이 기억 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을 담아보려 준비하던 그림이 이미 완성되어 집 한 구석에 장식이 되어 있었으니.

“뭐, 원래부터 공모전 노리고 썼던 글도 아니었고... 그냥 운, 때가 맞아 냈던 건데 뭘... 기대되는 건 해인이 그림 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지..."

“내 덕을 본다고...?"

“그래! 혹시나 이런 공모전에서 그림 좋다고 뽑혀,  주목 받으면 좋잖아? 시작부터 훨훨 날 수 있게 될 지도...!!"


세현과의 콜라보로 공모전 출품 후, 겉으로 얘기하긴 창피해 머릿속으로만 늘 해오던 생각.
비로소 세현이 입 밖으로 꺼내어 주자 해인은 자신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막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지나 보다...! 풋..."

"아, 아니...내가 뭘...!"

"자, 우리 그림쟁이씨... 요즘 작업은 잘 되어가고  계십니까? 하긴, 쉬는 날에도 이렇게 잘생긴 남친을 멀찌감치에서 그리기만 하고 있는 거 보면... 더 가까이와도 되는데..!!"

[ 퍽!! ]

"아얏! 왜 때렷!?"

"가까이 와도 된데서 스킨십 한번 했는데 왜? 더 가까이 가줘?"

"쳇...!"

“휴우... 사실 그림이야 뭐 맨날 하던 데로 하고는 있으니 늘고 있는 진 모르겠지만... 요새 작업실 분위기가 좀 더 안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신경은 쓰여..."

“왜? 무슨 일 있어? 카와모토 자식이 또 윽박지르고 그래 막?”

해인은 이 작은 동네에서, 혹시라도 누가 듣지는 않을 까 하는 불안에 슬쩍 주변 눈치를 살피고는 세현에게 속삭였다.

“음... 사실, 요즘 작업실서 받는 급여도 좀 줄기도 했고...”

“급여가? 왜? 일이 적어진 건 아닐 거 아냐?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미리 얘기를 할 것이지!!”

“아냐, 아냐!! 쉿!! 목소리 줄여!! 사정이 있어보여 내가 그러자고 한 것도 있어...”

해인은 반사적으로 세현을 자제시키며 주변을 살폈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한 듯 세현은 공격적으로 해인에게 물었다.

“사정? 괜히 너 그림 그리는 시간 점점 많아지는 것 같으니까 트집 잡으려는 거 아니야? 자기네 일 도와주고 있는 건 생각 안하고... 그것도 처음부터 그쪽에서 먼저 제안 했던 거잖아..! 월급도 쥐꼬리만큼 받는 걸로 시작했다면서...!?"

“트집... 그런 것 까진 잘 모르겠는데... 최근에 같이 그림 그리던 화가들 중 한 명이 탈퇴를 했어.

그래서 뭐 재정적으로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뭐 이래저래 나도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니까, 내가 그래도 염치는 있는 여자다!!"

“탈퇴? 매일 티격태격한다더니, 결국엔 하나 튕겨져 나간 모양이네... 뭣 때문에 나간거야? 싸우고 나간거지?"

해인의 이야기에, 보다 진지한 얼굴로 사건을 요목조목 짚어 보려는 세현.

해인은 조심스럽게 남은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최근 들어 다툼이 전보다 잦아지기는 했어. 계속해서 얘기 나왔었던 임대료, 수수료가 이상하네 어쩌네 하면서... 뭐, 사실 그것 때문에 싸운 거 같긴 한데..."

“급여 줄은 것도 문제지만... 작업할 때도 많이 불편하겠다... 막 눈치주고 그럴 지도...”

“음...대놓고 막 그렇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같은 공간안에서 그릴 때는 눈치가 좀 보이지... 사무일을 주로 한다고 해도 결국 저녁시간에 그림 그리게 되면 작업실을 같이 사용하게 되는 셈이니까...”

세현은 가뜩이나 늘 걱정을 달고 사는 해인의 한층 더한 근심을 보았다.

당장 나오라고 하고 싶지만, 문제는 작업이 가능한 ‘공간’만이 아니라, 그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세현이기에 아직까지도 다른 대책이 없는 것은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끙... 전에도 참고 견디라고 얘기하긴 했었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괜찮아, 뭘 자꾸 해주려고 해? 내 문젠데 내가 알아서 하는 거지...! 근데 진짜로 좀 고민 되는 건 따로 있는데...”

“또 있어? 해인이 너 진짜 이럴래? 왜 이렇게 숨겨둔 고민이 많아? 내가 다 해결해 줘버릴 테다 아주...!”

“쳇! 숨겨둔 게 아니라... 어제 들은 얘기라 따끈따끈하다 못해 뜨거워서 인제 얘기 하는거다!
멍청아!”

세현은 귀를 쫑긋 세우고 해인의 입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놓고 얘기한 건 아닌데... 카와모토씨가 정식으로 자기네 화실에 화가로 들어와 줬으면 하는 눈치를 주는 것 같아서...”

“가만, 정식으로 화실에 들어오는 거 라면... 매일 보는 것만으로도 지겹다는 그 임대료, 수수료 전쟁에 참전하란 얘기잖아? 전에 없던 사무 시스템 다 만들어 놨더니, 지금 해인이 하는 일은 없어도 된다 이건가!?”

“...너무 과격하게 말하지는 마... 근데... 진짜 그런 의미인가...?"

“월급주면서 일 시키던 사람을, 이제부턴 돈 내면서 그림 그리라고 꼬득이는 거잖아? 잠깐...!"

세현은 잠시 멈칫하여 눈알을 돌려대며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해인이 너... 저번에 화실 화가들 하고 같이 갤러리에 전시 시작했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랬지...! 아직 팔렸단 소린 안 들리지만...”

늘 해인에게만 전해듣던 카와모토의 이미지.
그리고 이 전에 세현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악인] 카와모토라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법도 ...

특히 해인이 갤러리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 상황이라면, 다른 입장을 취하기는 충분해 보였다.

세현은 우선 뒤에서 개인적으로 좀 더 철저하게 조사를 해 해인에게는 미리 근심을 주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흠...! 해인이... 네 그림 전시되어 있다는 갤러리가 어디랬지...?!”

“뭐야, 심각한 듯이 무게는 다 잡더니... 저번에 가르쳐 줬잖아!! 보고 왔다며!!”

“아 봤지, 봤지!! 그림은 알아도 갤러리는 헷갈릴 수도 있는 거 아냐? 너무 뭐라 그러지 말아...”

“무슨 생각이야? 또 뭐, 도와주네 하면서 뒤에서 막 그림 사주고 그러기만 해봐!! 내가 아주...”

“나도 뭐 그 정도 센스는 있다 뭐!! 생각 같아선 당장에 사들이고 싶긴 하지만... 내가 사면 의미가 없는 걸 테니...”

“그래!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글이나 써! 잘 되어가고 있는 거 맞지? 장편...?”

해인에게 앞으로의 글과 삽입할 그림에 공동작업을 제시했었던 세현. 
 
벌써 몇 년동안을 이어진 집필, 거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장편 소설 때문에 제안했던 것이기도 했지만, 글의 완성작은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인제 거의 다 됐어!! 조만간 공개할 테니... 일러스트 준비나 해두세요! 음... 그리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진 모르지만 고민 혼자 하지 좀 마! 알았어?"

게슴츠레 세현을 쳐다보며 새침한 얼굴을 하는 해인.

느긋하게 일상의 이야기를 즐기며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아를의 거리로 나아갔다.



*




“네? 제 그림이 팔렸다고요? 언제요?”

다음 날 오전, 작업실 데스크에서 사무를 보던 해인은 갤러리 관련 업무를 보다 전화가 걸려온 갤러리 직원에게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

“예... 이해인 화가님...작품, 어제 한 오후 5시 경에 어느 분이 사가셨습니다.”

“아, 갑작스럽네요...! 어떤 분인지...알 수 있나요?”

“구매하신 분이 알리지 말아달라고 하시던데요. 이해인씨 같은 경우, 아직 저희 쪽 갤러리하고 연결된 개설 구좌가 없는 관계로 대금은 ㅇㅇ화실 대표로 카와모토씨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초창기에 그렇게 하셨었어요.”

“아... 저, 구매자 분 인상착의라도...알 수 있나요? 혹시 젊은 남자라거나...동양인이라거나...”

“판매 당시에 제가 있던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 화실에서 적용한 저희 갤러리 수수료 떼고 카와모토씨한테 세부사항들 전달했으니 연락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당부를 해두었건만, 설마 첫 작품 구매자랍시고 세현이 구매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계좌가 없으면 방문을 하라 해서 직접 받으면 될 일이지, 누구를 통해 전달한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긴가? 유럽은 그렇게도 하나...

이게 바로 그 화실의 다른 화가들이 자신에게 답답함을 토로할 때의 심정이었는 지, 해인은 슬슬 죄여오는 걱정에 혼란에 빠져갔다.

[ 임씨! 바른대로 말해!! 혹시 내 그림 사갔어? 나 진짜 화낸다!! 이건 그림쟁이 자존심 문제야!! ]

해인은 안절부절하다 세현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해인의 다급함을 알 리 없는 세현은 일하느라 바로 답을 하지 못하다가 30분여가 지났을 무렵에야 확인하고 답장을 보냈다.

[ 오! 그림 팔렸어? 축하해!! 근데 진짜 나 아니다!! 언제 팔렸다는데? ]

[ 어제 오후 5시... ] 

[ 그럼 알리바이가 확실하네!! 어제 오후 5시에 난 이해인이란 여자랑 브런치 카페에서 수다 떨고 있었습니다요!! 이해인씨 옆에 있으면 물어봐라!! 나 그림도 막 그려줬다!! 그림 보여달라고 해봐! ]

[ 그러네... 그럼 누구야... ]

[ 축하해야 할 일 아니야? 첫 번째 그림 팔린 건데... 근데 왜 이렇게 문자에서 근심이 묻어나와? ]

[ 쾅! ]

대부분 해인이 혼자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던 오전 시간대에 무슨 일인지, 안톤과 카와모토가 작업실로 들어왔다.

왠지모를 부담감을 느껴서 였을 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해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 해인씨...! 일하고 있었네요... 이 놈의 문짝을 수리를 하던지 해야지...원...!!”

해인은 급하게 세현과의 문자를 정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어온 두 화가를 맞이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일까, 늘 보는 사람들인데도 동공에 지진이라도 온 듯, 시선을 돌려대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의 해인.

그런 해인의 불안에는 아랑곳없이, 카와모토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했다.

“해인씨!! 진짜 기쁜 소식이 하나 있어요!! 혹시 갤러리로부터 연락 받았어요?”

이거...아는 척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신의 표정연기가 서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해인으로서는, 감추면 더 어색해질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아, 아....그... 혹시 제 그림...”

“아, 이런, 한 발 늦었네...!! 갤러리에서 연락 받았나 보구나!! 해인씨 그림 팔렸어요!! 이거 해인씨 그림 대금!!!”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환한 미소를 하고 해인을 바라보는 카와모토. 

“아..그...렇겠죠...”

해인은 경직된 미소로 카와모토와 안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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