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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Sep 29. 2017

우연히, 그곳에서...<57화>

[ 57화 _ 뭐야, 이 상황...?? 진짜야?? ]


“해인씨 그림, 팔렸어요!! 축하해요!!”

이미 갤러리로부터 같은 사실을 전해 들었던 해인은 밝은 미소를 머금으며 봉투를 건내는 카와모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의심이 깊어져만 가는 이 남자, 저 미소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고...고맙습니다. 다 도와주신 덕분이예요...”

갤러리 관계자와 세현에게 직접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해인의 그림을 구매한 사람이 세현은 아님이 분명하긴 한데...

“저... 카와모토씨. 혹시... 제 그림 사갔다는 사람에 대해 아시나요?”

“그림 구매해 간 사람이요? 저야 모르죠...! 저는 그냥 갤러리에서 대금 받아 전달만 해드리는 걸요, 누군지는 갤러리에 물어봐야 될 것 같은데요...?"

카와모토는 해인에게 다가와 이제까지와 조금은 다른 톤의, 뭔가 사무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이제까지 여기 사무일을 쭉 맡아 주셨으니 더 잘 아시겠지만, 갤러리 수수료는... 이렇고 해인씨가 받아야 할 금액은...이 정도예요."

이미 다 알고 있는 갤러리로부터의 전달사항이나 조항들.

카와모토는 굳이 요목조목  따져가며 설명을 이어갔지만, 풀리지 않은 그 의문이 계속 신경 쓰여 해인은 좀처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 해인씨는 명백한 프로 화가예요!! 축하해요!! 그래서... 말인데, 저번에 제가 얘기 했던 거는 생각하고 있나요?"



충분히 예상은 가능했던 이야기 전개이긴 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카와모토 답지 않게 직접적인 의견을 너무 바로 쏘아 붙이는 듯한 태도에 해인은 살짝 주눅이 들었다.

모든 상황을 파악한 해인이었지만, 괜스레 시간을 끌며 대답을 연기했다.

“얘기...요? 무슨 얘기요...?”

“우리 화실에, 정식 화가로 들어오는 거요, 뭐, 쭉 있어 와서 아시겠지만 새로운 절차나 따로 복잡한 과정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냥 늘 나오듯이 나와서 우리랑 같이 그림 그리면...”


세현에게도 상담하며 계속해서 고심 중이었거늘, 이렇게 갑작스런 결정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니...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은근한 독촉에 해인은 짧은 시간에 고민을 마무리해야 했다.

처음, 아무 것도 모르는 이 화가 지망생을 이곳의 사무원으로 받아주어, 근무 외 시간에 작업을 허락해 주었던 고마운 화실 사람들. 그 대가로 적게나마 생계유지를 위한 돈도 벌어가며 이 자리에서 여러 조언들과 함께 그림 실력도 늘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근무 외의 시간에 단지 “취미”로서 허락되었던 그림 작업 시간이 "본업"이 되어버리면 여러 가지로 달라져야 할 사항들을 감수해야만 했다.

사무직원에서, 임대료, 사용료 등을 같이 내며 작업하는 '직업 화가' 그룹의 한 일원으로서.

'어쩌다 그림이 한 번 팔리긴 한 모양이지만... 아직 영 자신이 없는데...'

한국을 떠나오면서부터 그저 막연하게,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하며 욕심 부리지 않고 지내왔다. 

안팎으로 불안한 요소들이 종종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림 작업만을 생각한다면,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좋은 환경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가 제안 같은 것을 떠나, 자신의 그림을 누군가가 구매해 갔다는 사실이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얼떨떨하죠? 진짜로 자기 그림이 팔렸다는 생각하니까...?”

자신들 역시도 그런 과정을 겪었었다는 듯,
옆에 있던 안톤이 해인에게 말을 걸었다.

해인은 생각을 들킨 듯 흠칫 놀랐지만, 이내 진정하고 한숨을 크게 쉬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예... 그렇기도 하죠...음... 저... 그... 카와모토씨 제안 말인데...잠깐만 유보해도 될까요... 전 아직 화가라 불리기엔 너무 부족해서요.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고...”

“아...그래요? 그럼 뭐 독촉할 수는 없는...데요.”

카와모토는 옆의 안톤과 알 수 없는 눈빛을 교환하며 해인에게 들리지 않게 뭐라 뭐라 속삭인 후, 해인에게 말했다.

“저희... 화실이 뭐 유명하거나 대단한 그룹은 아니라, 거창하게 캐스팅하는 느낌은 아니지만, 아시다시피, 얼마 전에 한 친구도 나가기도 했고 계속 운영해 나가는데 좀 힘든 건 사실이네요... 

물론 저희가 드리는 급여야 해인 씨가 우리 많이 도와주고 있는 것에 대한 대가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라며 서서히 압박해 들어오는 느낌, 해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일찍이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해오며 이런 종류의 그룹 내 정치에는 익숙해져 있던 해인은, 이 애둘러 말하는 문장의 요지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늘 자신이 걱정하고 있던 부분.
좋지 않은 예감은 왜 항상 맞아 떨어지는 건지...

카와모토는 지금 

‘정식으로 화가로 들어와 장소 사용하면서 사용료 낼래, 아니면 나갈래?’ 의 의미로 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거기에 당장 선택을 종용하고 있는 것.

해인은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는 본격적인 필드로 나갈 수 있기를 바라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너무 이른 시기.

이 곳에서의 생활이 정착되고부터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나날들이었고, 같은 입장으로 조금만 더 지내다 보면 자신감이 붙을 수도 있었을텐데...


해인은 문득 이곳에 처음 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방황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떠올려 보면 지금 보다도 훨씬 암담했던 그 때.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운 시기였다.

카와모토가 선뜻 내밀어 준 도움의 손길 덕에 누릴 수 있었던 생활과, 그 사이 물심양면 큰 지지가 되어주는, 지금 역시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항상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든든한 세현의 존재.

어쩌다 찾아온 행운으로 이어진 꿈같은 지금의 생활에 안주하게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욕심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일단 카와모토에게 부정의 메세지를 전했지만, 

지금 눈앞의 카와모토는 자신의 그런 응석을 받아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 긴 고민 끝에 해인은 결국 도전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저... 하...할께요...!! 화가 분들이랑 정식으로 그림 그리는 거..."

처음 해인의 고민하는 모습에 난색을 표하고 있던 카와모토는 뒤늦게 드러낸 해인의 입장표명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요? 계속 같이 하는 거죠?! 고마워요...! 우리 쪽 사정알고 얼마 전에 직접 해인씨가 받던 급여도 더 적게 받겠다고 해줬었는데... 저희 사정이 생각보다 더 많이 좋지 않네요."

 "이제까지 신세 진 것도 감사한데요 뭐... 생각해보니까 내부 사정 뻔히 알면서... 저만 욕심 부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요...”

"고마워요, 해인씨. 대신 이제부터 저희들 같이 그림 그려가면서 도울 수 있는 건 더 적극적으로 도울께요."

해인의 달라진 입장에, 옆에서 조용히 카와모토의 주장을 뒤따르고 있던 다른 화가들까지 반색하며 인사말을 거들어댔다.

명백히 한 사람의 동료 일러스트레이터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해인은 카와모토로부터 이런저런 조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다소 형식적인 절차를 통한 계약서를 작성한 후 해인은 앞으로의 변화를 준비하기 위해 일단 화실을 나왔다.

'후우...임씨한텐 일단 숨겨야겠다. 또 카와모토씨랑 막 으르렁댈라... 그나저나 여기서 돈을 벌 수가 없는 거면, 얼른 다른 데 일자리부터 구해야겠네...'

주저할 틈도 없이 달라진 현실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해인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목에 위치한 세현이 일하는 레스토랑을 지나치며 혹시라도 세현에게 들킬세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이동하는 해인.

옆으로 보여지는 레스토랑을 줄곧 의식한 채, 
앞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던 해인은 그만
지나가던 어떤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얏"





"어이쿠... 아가씨가 앞도 안보고 그렇게 무작정 걸어가면 어떻게 해?"

익숙한 한국말과 함께 살짝 휘청대는 해인을 잡아 준 건 다름 아닌 세현이 일하는 레스토랑의 주인 아저씨였다.

"죄...죄송해요... 사장님. 아, 그... 저는 그럼 일이 바빠서 이만..."

이 와중에도 세현에게 들키지 않으려 아저씨에게 가볍게 인사만을 하고 서둘러 지나쳐 가려는 해인. 

"아, 해인양 이랬나. 해인양, 지금 많이 바빠? 마침 할 얘기가 좀 있는데..."

"예? 저한테 말씀이세요? 무슨...일 이시죠?"

"잠깐 시간 되면 이리 좀 와 봐요. 세현이랑 같이 들어야 되는 얘기니까."

"아...아니 지금 저는...임씨...아니, 세현씨랑..."

"음? 뭐야? 세현이 이놈하고 벌써 싸우고 그런 거야? 아니 그렇게 죽고 못 살더니...! 이 놈이 뭐 또 잘못했어요?”

"아, 그...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그럼 지금 세현이랑 같이 만나도 되는 상황이지?
 잠깐 와요, 중요한 얘기니까...!"

전혀 예정에 없던 이끌림에 해인은 아저씨를 쫓아 레스토랑 내부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부 청소를 하던 세현은 아저씨와 함께 들어오는 해인을 맞이했다.

“어? 해인이? 왜 이 시간에 여길...?”

해인은 아저씨를 의식하며 자기도 알 수 없다는 투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세현아 잠깐, 얘기 좀 하자. 해인양도 여기 와서 앉아 봐요.”

“네? 해인이도 같이요? 무슨...”

아저씨를 맞은 편으로 나란히 앉은 세현과 해인. 
무슨 중요한 일이기에 이런 어색한 상황을...

“음... 내가 오늘 외출을 좀 하고 왔는데 말야... 어쩌다보니까 미리 얘기를 좀 듣고 왔다.”

“예? 얘기요? 무슨...”

레스토랑 아저씨는 잠시 뜸을 들인 채 세현과 해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희들 같이 공모전 냈던 작품, 필명 ‘hese’로 냈던 거  맞지? ‘헤르만 해세’도 아니고...누가 보면 서양인인 줄 알겠다!"

"네, 그 필명... 맞아요..."








"그래...! 너희들. 공모전 뽑힌 모양이더라.” 

“네 !!?? / 네!?!?!”

동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두 사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 꼬리는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갔다.  

세현은 옆자리에 앉은 해인에게 서서히 시선을 돌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다.

“저...정말인가요? 저희들 낸 작품이...”

“그래. 내가 알아보고 왔어.”

“하...하지만 아직 홈페이지며, 어떤 매체로도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가 없었는데...”

“내 이 바닥 짬밥 20년이야. 네 아버지 때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인맥들 많이 만들어 놨어. 
승부 조작 뭐 이런 건 못해도 결과 발표 하루 이틀 먼저 알아내는 것 정도야 껌이지.”

“그럼...진짜란 얘기네요!!!”

세현은 파르르 몸이 떨리며 옆자리의 테이블 밑으로 해인의 손을 꼭 잡았다. 

마주 잡은 손으로 해인의 떨림 역시 느껴졌다.

“어? 뭐야? ‘진짜네요!’ 가 끝이야? 막 둘이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그런 장면 보여줘야 어렵게 전해 준 사람 보람이 있는데...! 이게 보통 정보통인 줄 아니?! 자, 빨리 솔직한 심정을 몸으로 표현해봐!!”

멍한 충격에 잠시 정신이 나가있던 듯한 세현은 그제서야 제대로 정신을 차린 듯 해인을 부둥켜안고 등이며 머리를 마구 쓰다듬기 시작했다. 

얼떨떨한 해인 역시도 세현에게 안겨 있는 팔에 자신도 모르게 부쩍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한 차례 기쁨의 쓰나미가 몰려간 후, 이제는 냉정하게 사실 관계를 들어보고 싶은 단계를 맞이한 두 사람. 

억지로 흥분을 진정시키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희들 냈던 거 필명은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었나...”

“아니, 직접 들은 적은 없지. 근데 왜 내러 가는 날 아침 나한테 작품 보여줬었잖아. 그때 해인양 그림도 같이 봤었고... 소설 제목을 알고 있어서 보고 혹시나 했는데 ‘세’현하고 ‘해’인하고 둘이 내는 거니 역시나 했지... 풋, 좀 더 세련된 필명 생각할 시간이 없었나 봐?”

해인은 세현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그거 봐, 내가 촌스럽댔잖아... 멍청아...’

‘아냐, 모르고 들으면 '헤르만 해세’ 같다 잖아...’

‘쳇, 끼워 맞추기는... 작가란 사람이 상상력 빈곤하긴...’

“기뻐할 일은 기뻐할 일인데... 원래 정해졌던 인원보다 좀 더 뽑은 것 같더구나. 출판사에서.”

“더 뽑아요? 전체 100명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래, 처음엔 100명이었는데, 심사하다보니까 너무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3배수 뽑아놓고 거르고 거르고 하다 결국 추린 인원이 120명까지 늘어난 모양이더라고.” 

“전체 뽑는 인원이 120명으로 늘어난 셈이네요... 그럼 당연히 그 중에서도 순위는 매겨지겠죠?”

“순위라기 보단, 등급으로 나누어 일단 발표하겠지. 최우수, 우수... 뭐 이런 식으로...?”

“그럼 저희는...”

아저씨는 무언가 적어온 메모를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안경을 꺼내 쓰며 말했다.

“음... 너네는 말하자면 ‘가작’ 정도네. 일단 순위는 매겨서 등급으로 편입시키는 모양이더라. 일단 신인들이 이 명단 안에 들어갔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거야!”

“그렇죠!! 고맙습니다, 아저씨... 혹시 그것 때문에 일부러 오전에 아비뇽까지 다녀오신 거예요?”

“말했잖아, 인맥들 여기저기 많다고. 꼭 그거 때문은 아니고 간만에 얼굴 좀 볼까 하고 다녀온 거야. 암튼 축하한다!! 세현아, 해인양!!”

계속해서 아저씨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는 해인과 세현. 

특히 해인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의 고민조차 이 몇 분 안에 다 잊을 만큼 갑작스러운 소식에 완전히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자, 그럼... 시간을 좀 줄 테니까 둘이 얘기 좀 하고. 그리고 해인양 일도 하러 가야 할 테니. 지금은 안 되겠고, 오늘 좀 일찍 끝내줄 테니, 둘이 자축이나 해!”

센스도 넘치는 아저씨. 
분에 넘치는 좋은 소식을 미리 전달해 주고는 둘만의 시간까지 마련해 주었다.

“다... 해인이 덕분이야. 그것 봐, 그림 덕 본댔지? 내가...!!”

“에이... 원작이 글인데 글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거지. 축하해요 임씨...!!”

감격에 겨운 건지, 그저 서로 잡은 손을 계속 어루만지며 미소를 머금고는 있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





“호오...!”

며칠 뒤, 전 세계에 동시로 발표가 진행된 공모전의 합격자들. 

한국에서, 그 소식을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었을 기태는 발표자 명단이 나옴과 동시에 결과를 확인했다.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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