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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Oct 03. 2017

우연히, 그곳에서...<58화>

[ 제58화 _ 공주님의 격려 전화 ]


전 세계 동시에 공개된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 공모전의 결과 발표.

변화를 끊임없이 갈구해 오며 그 누구보다도 좋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한국의 기태는 아마도 가장 먼저 이를 확인했다.

“어? 뭐야? 100명만 뽑는 거 아니었어? 이거 왜 120명까지 뽑아 놨어?”

명단을 얼핏 보기에도 정말 다양한 국적의 합격자들.

여러 과정을 거처 어렵게 올라온 작품들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공개하기 위해서는, 결국 참가한 모든 국가들의 언어로 재번역이 되어져야만 했다.

생각만으로도 말이 안 될 정도로 지난한 작업.

그 과정을 생각하면 이 반년간의 심사기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아무 곳에서나 시도할 수 없는, 대기획임에 분명했던 출판사의 도전.

기태는 눈을 부릅뜬 채, 뚫어져라 명단을 살폈다.

명단에는 합격자들이 국적별로 구분이 되어있었기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한 줄 한 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훑어가기 시작했다.




“음... 없네...”

아쉽게도, 명단에는 보이지 않는 이름,

‘HAN-KI TAE'

사실 이제까지도 무수하게 이런 류의 공모전에 낙방한 바 있던 기태로선 어느 정도 충격파에는 늘 대비할 수 있었다.

1차로 명단 내에 자신의 이름을 찾는 데에 실패한 기태는 그 후에야 공모전의 뒷사정 등이 담긴 공지 글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 당초 100분의 본상 수상자를 목표로 했던 선발기준이 불가피하게 변경되었음을 고지 드립니다. 본상 내역으로는 대상 한 작품과 최우수상 9작품, 우수상 20작품, 장려상 30작품, 가작 30작품 입선 30작품, 이렇게 총 120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여러 작가님들의 열화와 같은 참여에 힘입어, 기발한 아이템으로 도전해 주신 작가님들 덕에 심사하는 입장에서도 즐거운 과정이었음을 말씀드리며, 그 즐거움만큼이나 더 선별에 어려움을 겪어 이와 같은 변경을 결정하게 되었사오니 부디 많은 작가님들의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래, 전 세계의 작가들 대상이야... 쉬울 리가 없지... 얼마나 기를 쓰고들 제출 해댔을 거야...”

기태는 속으로 변명을 되뇌이며 자연스레 다른 한국인 수상자를 찾아보았다.

물론, 자신도 낙방한 마당에 다른 한국인 수상자는 아예 없었으면 하는 바람은 어쩔 수 없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문학의 강국 출신의 무수한 합격자들이 눈에 띄던 중, 시선이 집중된 본상 수상자 내, 단 두 명의 한국인.

더군다나 그 중 한 명은 전 세계 30명 안에 들어가는 우수상 안에 랭크되어 있었다.

출판사 측에서는 앞으로도 복잡한 과정이 남아있기라도 한 건지, 수상작의 열람은 시상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공지되어 있었다.

“와아... 전 세계에서 30명 안에 들었다는 거야...? 누구지...”

전체 120명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지만,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메인 이벤트에 가까운 우수상 수상자였다.

해당 작가의 정보는 필명으로 기재되어 있었기에 더욱 베일에 가려진 느낌이었다.

수상자를 향한 끝없는 부러움의 망상을 계속하며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수상자. ‘가작’ 부문에, 작가이름은 ‘해세’였다.

“음? 필명이 해세? 해세는 뭐야... 헤르만 해세 광팬인가? 본인 이름은 아닌 것 같은데... 아... 가작이라도 명단에 이름 올랐으니 좋겠다...아주...”

무의식이 내뱉는 말이었던지, 기태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다 불현듯 꿈에서 깨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함을 인지했다.

“후우...”

[ 부르르르~~~ ]

“앗, 깜짝이야. 뭐야 이 자식? 서...설마?”

막 수상자 명단을 확인하고 실망만 가득한 채 돌아서려는 찰나 걸려온 만식의 전화.

동기이자 같은 길을 가려던 친구임과 동시에 늘 라이벌이었던 녀석이 지금 이 타이밍에 전화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전화를 받는 것이 살짝 두려웠다.

“여...여보세요...?”

호기심은 두려움을 앞서고 말았다. 전화 너머로 무슨 이야기가 들려올지 그 짧은 시간에 다양한 상황을 예측해보며 기태는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

전화를 걸어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대편의 만식.

“......”

평소라면 무어라 상욕을 해대며 추궁할 만도 했지만 기태 역시 묵묵부답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봤냐?”

몇 시간이나 흐른 듯한 침묵을 깨고 만식은 기태에게 물었다.

“...봤다...”

“너...아니지?”

“...아니다, 이 새끼야... 됐냐?”

“...술이나 먹자... 나와라.”

팽팽하게도 이어졌던 확인사살.
오래간만에 만나서도 늘 티격대던 둘 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만큼 두 사람의 공감대는 일치했다.

바로 지금, 알콜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

“후... 또 여기야? 여긴 뭐 공식 회식장소냐? 어디 가족 분이 운영하시냐!?”

“조용히 해, 임마. 좋은 일에 자축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울하게 알콜 때려 넣으려는 건데, 어디면 어때? 먼저 불렀으면 장소는 정하고 부르던가...”

“그냥 보이는 데가 술집인거지, 데이트도 아니고 무슨 장소를 알아보래? 술이나 따라봐, 임마!”

만식과 기태는 그야말로 작정하고 술을 퍼부었다.

서로 얼마만큼의 각오로 공모전을 준비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 만큼은 기대가 컸었던 지, 따라오는 실망도 적지는 않았었는 듯.

얼마나 술이 들어간 상태였는지, 기태가 먼저 탄식과 함께 얘기를 시작했다.

“후우... 내가 뭐...! 될 거라고 기대는 안했었다!! 아니 사이즈가 말이 안 되잖아, 사이즈가!! 근데, 이런 데서 되는 애들은 뭐냐고! 도대체...”

“웃기고 있네, 기대를 안 하긴 뭘 안 해!? 그냥 솔직하게 부러워 죽겠다고 해! 얼마나 더 내공이 생겨야 이런 데 뽑혀서 잘 나가는 부류에 들어갈 수 있는 거야!? 하면서...”

"어떻게 써야 잘 쓴 글이다, 이렇게 쓰면 틀린 글이다... 배운 대로만 적용시키기엔 너무 변수가 많잖아? 이건 뭐 운 좋아야 올라갈 수 있는 거야 뭐야...”

공모전 낙방이라는 크나큰 공감대를 가지게 된 두 남자는 점점 더 자신들만 심각해지는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

“한국인 두 사람... 포함되어 있더라? 명단에...”

“게다가 한 명은 우수상... 와, 어떤 기분일까... 자기가 만든 작품이 세계대회에서 인정받았어, 그리고 인생이 달라질 게 훤히 보이는 지금 시기에...”

“흠......”

[ 부르르르르~~!! ]

“야, 너 전화 왔다, 전화나 받아! 완전 정신이 빠져가지곤..."

어딘가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전혀 신경도 쓰고 있지 못하던 기태는 만식의 다그침에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기태 선배님, 저 소현이예요. 잘 계셨어요...?”

만식아!! 네놈이 오매불망 기다리며 소설 소재로까지 썼다던 공주님께서 나한테 지금 전화 주셨다!!

라고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문득, 과히 기쁘지도 않은 지금 상황에, 이 전에 고백했다가 소위 ‘털렸다던’ 녀석에게 장난을 치면 상처가 될 거란 최소한의 양심으로 만식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통화를 진행해갔다.

“어, 어!! 웬일이야? 오래간만이네...!! 지난 번에도 신세 졌었는데...!!”

만식 역시 술이 꽤 올라와 정신이 살짝 혼미하기도 했지만, 뭔가 질겅질겅 씹어대며 지금 기태의 통화상대 따위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기태 선배님... 정말 아쉬워요... 기태 선배님 작품 심사했던 나라 심사위원하고 결이 좀 달라서 그런 걸 거예요..."

"음...뭐 그러면 뭐하니... 뭐가 이유가 됐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 걸...!"

기태 역시 약간은 취기가 섞인, 꼬인 듯한 발음으로 소현에게 이야기 하자 소현도 뭔가 눈치를 챘는지,

"아, 선배님 지금 술 드시고 계세요? 누구랑 같이 계신거면 나중에 연락..."

"아냐, 아냐 신경 쓰지 말고 얘기 해...!"

"예...뭐 다른 이야기라기보다 혹시 공모전 때문에 풀이 죽어계시진 않을까 해서..."

"음, 뭐 발표 난 날인데, 오늘 하루 정도는 슬퍼하고 해줘야 조금 덜 억울하지 않겠니? 그래도 챙겨 주니 고맙네, 소혀..."

기태가 소현의 이름을 말하려다 눈앞의 만식을 인식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만식은 뭔가 의심쩍은 눈초리로 기태에게 말했다.

"야! 너 지금 여자랑 통화하고 있는 거야? 누구야? 불러!! 여, 나오라 그래 봐...!"

다행히 듣지는 못한 듯,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중 취기가 더 올라간 듯한 만식이 객기를 부렸다.

"아니야!! 임마!! 방해하지 말고 기다려 멍청아!! 부르긴 뭘 불러...!“

전화기 너머의 소현도 약간은 익숙한 목소리를 인식한 걸까, 조심스럽게 기태에게 말했다.

“선배님, 혹시... 지금 만나신다는 친구 분...”

"아... 그냥... 고등학교 친구야, 좀 시끄럽게 하지? 미안... 잠깐만 나가서 받을께.”

만식의 진상을 피하기 위함인지, 최소한의 예의로서 노출을 숨겨주고 싶었음인지,

기태는 술집 밖으로 나와 전화를 이어갔다.  

“암튼, 고맙네... 이렇게 신경도 써주고... 어떻게, 수상자 명단들 나왔는데, 요즘도 많이 바쁘니?”

“예, 뭐 거의 전쟁이죠, 요즘도... 이제 수상식을 각국별로 또 따로 진행해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아, 수상식은 그냥 나라별로 나누어서 하는 거야?”

“예, 그렇죠... 저희 출판사 지사들이 있는 나라들 위주로 했던 거니까, 각자 진행하되 같은 날에는 하게 될 것 같아요. 한국으로 죄다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명단도 같은 날에 공개 했던 것처럼...”

술 취한 방해자를 피해 밖으로 나왔겠다, 기태는 문득 알고 싶은 것들이 이것저것 생각나 조심스럽게 소현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네... 완전히 끝날 때 까진 정신없겠네... 그럼 수상자들은, 바로 그 출판사에서 책 낼 기회를 주는 거야?”

“음, 바로... 라고 얘기하긴 좀 그렇고... 아무래도 유리한 입장이 된 거죠. 일단... 공모전 합격자들 작품들 엮어서 몇 권으로 책이 출간이 될 것 같고요.

그 이후에 단독작으로 지원자들에 한해서 심사는 들어가야죠. 일러스트나 이런 쪽도 같이 공모를 한 셈이니 그런 쪽 콜라보레이션 문제도 있겠고... 아, 근데 나 이런 얘기 막 해도 되나 몰라...하핫... 같이 계신 친구 분한테도 얘기하시면 안돼요. 이건 회사 기밀이니까...”

소현은 남자친구 이외에도 무언가 비밀 이야기를 공유할 상대를 찾고 있었던 건지, 조금만 건드려 보아도 알고 싶은 정보들을 쏟아 낼 기세였다.

기태는 조심스럽게 가장 궁금했던 부분까지 파고 들어가 보고자 했다.

“하하, 걱정 마. 우리 후배님 덕분에 고급정보 듣는 건데, 나만 알고 있을 께. 그럼... 진짜로 좀 어려울 수도 있는 거 하나만 더 알려줄 수 있니?”

“음... 생각 좀 해보고요... 하핫, 뭔데요?”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덧 술은 말짱히 깨어있는 상태.

기태는 헛기침을 한 두 번 하고는 조심스럽게 소현에게 물었다.

“음... 명단에 보니까... 이번에 한국인 합격자들이 몇 명 보이던데... 그 사람들 정보는 혹시...모르니?
너무 좀 부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어떤 작품을 썼길래 이런 대회에서 상을 받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훗, 그거 궁금해 하실 줄 알았어요...! 진짜 유출 안 되게 조심해야 하는 정보인데...!! 음...작품이야 이쪽 관련자들은 다 알죠, 이미... 2명 밖에 없는 당선자들인데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으니까... 저도 봤어요. 은은하게 진행되면서도 뒤통수를 때리는... 큰 한방이 있어요. 얘기를 설명드릴 순 없고, 어쨌든 상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싶은 생각은 들었어요.”

“그렇구나... 나중에 공개되면 그때나 봐야지, 뭐... 근데, 어떤 사람들인지는 혹시 아니...?”

“음... 이게 너무 디테일하게 정보 드리면 안 되는 건데...”

기태는 점점 좁혀 들어오는 사실에 온 정신을 귀에 쏟으며 답을 이끌어 내려 했다.

“진짜로!! 아무한테도 얘기 안할게!!! 낙방해서 술이나 마시고 있는 이 불쌍한 선배 위해 거기까지만 좀 알려주라!! 어떤 사람들인지 너무 알고 싶어...!!!”

“그 분들 신상에 대한 정보는 저희도 잘 알 수가 없어요. 필명으로 지원하신 경우가 많아서...

근데 수상자들이 전체적으로 기성작가보다도 신인들 비중이 더 높은 편 같아요. 한국 분들 같은 경우에는... 아마도 한 분은 신인으로 알고 있고요. 그 전 정보가 전혀 없는 거 봐선...”

“신인? 신인이 많다고? 음... 그럼 가작 쪽에 뽑힌 사람이 신인...이겠지?”

“어느 쪽 이라고 까지도... 흠... 좀, 말씀드리기가 곤란하고요. 좀... 특이사항이 있기는 해요.”

“응??”

소현은 어느 정도 뜸을 들이다가 역시 조근조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 분이신데, 현재 거주지는 프랑스에 계시다는 분이세요. 왜 보면 그거 기재하는 란이 있었잖아요? 신청서 작성할 때... 국적하고, 현재 거주국... 이 후에 다른 변동이 없다면 그분은 프랑스 지부의 시상식에 참가하실 확률이 높겠죠?
프랑스에서 받는 한국인 수상자로...”

“프랑스??”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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