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too Oct 10. 2017

우연히, 그곳에서...<60화>

[ 제60화 _ 허튼 생각하면 죽을 줄 알아...!! ]


“야, 야마다! 지금 좀 만나야겠다. 어디에 있건 10분 안에 튀어 와라.”

“어, 아영씨...!! 왜? 왜? 나랑 사업 얘기 하는거야?"

“시끄럽고... 지난 번에 너 준비한다던 서류들까지 다 해서 저번에 만났던 카페로 와.”

“아...알았어!!! 금방 갈게...!!”

야마다의 동업 제의가 있은 후, 요구했던 부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음에도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아영. 

그 오래도 걸렸던 전 남친 크리스의 수사 작업에서, 예상도 하지 못했던 해인의 적극적인 협조 덕에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한 듯, 아영은 바로 다음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아, 아영씨!! 무슨 일이야! 이렇게 먼저 찾아주기도 하고...”

“여기 앉아봐, 할 얘기가 좀 있다.”

아영은 카페에서 야마다를 만나 언제나 처럼 지체 없이 본론부터 들어갔다.

늘 센 이미지였지만 이날은 뭔가 더 단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영을 보자마자 야마다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야마다. 일단 사업 얘기... 심사숙고를 해 봤는데... 일단 네 말대로 같이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남의 밑에서 돈 버는 건 외국인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주체적으로 사업장을 갖는다는 건 아무래도 좀 버겁다고 생각하던 차이기도 했고...”

초반부터 듣게 된 긍정적인 소식에 야마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그렇지?? 아무리 기운 넘치는 아영 씨라도 혼자 하긴 힘든 부분이 많을 거야...! 내가 도와...”

"그런데...!"

신이 나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떠들어대려는 야마다의 말을 끊는 아영.

"알지? 내가 얼마나 일본 사람을 못 믿게 됐는지?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너도 그렇게 믿음이 가진 않아..."

"아...알고 있어, 계속해서 찾고 있는 녀석 때문에 분노가 가시지 않은 거... 그래도 사람 자체를 못 믿어버리면 안 되는 거잖아... 알다시피 나도 그 부분은에선 비슷한 피해자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보자고 한 거야. 일단, 같이 어디 좀 가자.”

“가? 어...어딜?”

아영은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직 숨도 고르지 않은 야마다를 이끌어 역 바깥쪽으로 데리고 나갔다. 영문도 모르고 아영을 따른 야마다.

늘 오가는 큰 역 주변의 익숙한 풍경을 지나쳐 두 사람은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연락 드렸죠? 오늘 데리고 왔습니다. 이 사람...”

아영이 야마다를 데리고 들어온 곳은 몇 년간이고 신세를 졌던 창업지원센터였다.

“아, 아영씨가 말씀하셨던 분이시구나. 반가워요. 아영씨 전담으로 거의 몇 년간이나 시달리고 있는... 외국인 창업지원팀 기무라라고 합니다.” 

“아니, 실장님, 시달리다뇨! 언제는 얘기 듣는 거 막 재밌다고 하셔놓곤!!!”

“핫, 농담, 농담...!! 아무튼 반가워요.”

“아, 예 저 야마다 신스케 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영은 늘 일상의 고민과 함께, 멀고도 먼 일처럼 여겨졌던 창업에 대해 상담과 푸념을 늘어놓았던 이 곳에 야마다를 데려왔다.

동업에의 증인을 만들어 놓기 위함인지, 뭔가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을 데려왔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야마다는 거의 가족과도 같이 장난을 해대는 아영과 직원을 보고 부러움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자, 이 분은 나 일본 생활 초창기부터 창업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도움 주셨던 분인데, 내가 너 얘기를 좀 하고, 뭐 같이 들어야 될 말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 같이 온 거야, 불만 있냐?”

“아, 아니...!! 불만은 무슨...!!”

본격적으로 무슨 면접이라도 보듯 자신의 신분증명서와 경력 사항이 적힌 한 무리의 서류를 꺼내놓는 야마다. 

직원은 꼼꼼히 서류를 살펴보며 아영이 미리 부탁해 두었던 부분에 대한 확인을 했다.

범인이 취조를 받듯 잔뜩 쫄아 검증(?)을 마친 시점. 

“자, 아영씨, 야마다씨, 인제 같이 사업 시작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알려 드릴께요.”

본격적으로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센터의 직원. 아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설명을 들었다. 

어렵사리 동업자로 받아들여진 듯한 기쁨에 야마다 역시 강의를 듣기라도 하듯, 센터직원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기록하며 경청했다.

노트에 빼곡하게 필기를 채워넣은 두 사람은 
한 시간여가 지나서야 센터를 나올 수 있었다.

“아영 씨, 암튼 고마워, 제안 받아들여줘서...”

“고마워할 거 없어. 난 그냥 나만 생각한 거니까, 너도 그냥 너만 생각해라. 딱히 네가 나한테 봉사할 이유는 없잖아? 너도 힘들게 돈 벌어서 사업 시작한다는 건데...”

검증을 위함이라지만 자신을 이런 곳까지도 같이 데려와 주어 아영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매몰찬 대답에 실망이라도 한 건지, 야마다는 다소 힘빠진 투로 대답했다. 

“그... 그래.”

아영은 야마다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거리를 두고 걷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늘 보자고 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응? 뭔데?”

“너... 맨날 나한테 타령해대던, 프랑스에 있는 내 친구들한테... 크리스 얘기 했어.”

“엇? 정말!!? 어떻게, 도와주겠데??”

왜인지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아영은 서서히 야마다 쪽을 돌아보았다.

“음... 뭐 적극적으로 도와 주려고는 하는데... 더 놀라운 건... 우리가 찾는 두 놈이 마침 그 친구들 사는 지역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거야...!"

“엉? 뭐야? 그걸 어떻게 알아?”

“뭐,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데, 내 친구도 미술 공부한다고 넘어간 친구거든. 근데 예술 관련 이런저런 정보 듣더니 대뜸 그러더라. 자기가 사는 동네 쪽일 수도 있겠다고...!"

"오... 이제 정말 잡는 날이 가까워지는 건가...!!
그것 봐!! 내가 말이라도 해두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했잖아!!"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주력을 다하고 있는 두 가지 일이 모두 잘되어가고 있건만, 알 수 없는 아영의 근심어린 표정을 읽고 야마다가 물었다.

"아영씨...근데 뭐 걱정되는 거라도 있어? 왜 표정이 그렇게 어두워?"

"내...내가 뭘...! 쓸 데 없이 사람 감정 읽는 척 하지 마! 암튼... 그 일도 그렇게 점점 진행되고 있다고 알고나 있어."

"근데, 아영씨...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엉?! "

야마다는 무언지 얘기하고 싶지 않아하는 듯한 아영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해 물었다.

"이건, 우리가 지금 같은 목표로 살고 있으니까 물어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뭔데?"

가끔씩 의외의 날카로운 면을 보여주었던 야마다.

이번엔 뭐가 또 궁금하단 건지, 점점 좁혀 들어오는 듯한 야마다의 압박에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영씨는... 크리스 잡아서 어떻게 할 생각인 거야?"

"에? 뭐... 뭘 어떻게 해!? 잡아 족치는 거지...!!”

"가끔, 아영씨 보면 막 입으로는 거칠게 막 잡아 죽일 것처럼 얘기하다가도,  또 어떤 때는... 막 엄청 그리워하고 있는 것도 같아..."

"무...무슨 헛소리야!! 그리워하는 게 말이 되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뻔히 알면서...!"

"그렇지... 생각해보면 말은 안 되는데, 왜 자꾸 그렇게 보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기면서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보는 아영. 

그를 잡으려고 무던히 애써 와, 잡게 되면 책망하고, 쥐어 패주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해 왔건만, 막상 현실적으로 뭘 할 수 있는지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 그러는 넌 에릭슨인가 하는 놈 잡아다 뭘 어쩔 생각인데?"

"그게... 나도 요새 좀 고민이야, 솔직히 그래서 물어봤던 것도 있고... 당연히 잡아서 삥땅친 내 돈 다 받아내야지! 하면서 계속 움직이고는 있잖아? 근데..."

"근데?"

"뭐랄 까... 쌓인 분노가 점점 옅어진다고 해야 하나... 복수...를 생각하니 감이 잘 안 와... 지금 사는 게 바쁜 것도 있고, 뭔가 잡아야 된다! 는 막연한 목표를 정해놓고 따라가고만 있단 생각도 들고..."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든 아영.
말을 썩 잘하는 녀석은 아니기에 귀에 쏙쏙 들어오게 표현은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지금 눈앞의 야마다가 얘기하려는 감정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더군다나 이 녀석이 찾고 있는 에릭슨이란 사람은 그저 사회생활 중에 만나 교류를 시작한 친구에 지나지 않거늘, 자신이 찾는 크리스는 몇 년간을 만나 온 ‘연인’ 이었다.

받아들이기 싫었다.
당연히 분노의 감정, 배신의 감정이라면 자신이 더 클 수밖에 없어야 할 텐데, 

야마다가 말하는 ‘옅어가는 분노’의 감정이 이해가 되어 간다는 사실이... 

“다...당연히!!! 법적으로도, 도의적으로 책임을 물어야지!! 그럼 뭐야? 너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할 거면 왜 찾겠다고 이러는 건데? 진 빠지게...”

“어떻게... 할 지 보다도 일단은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더 강하다고 해야 하나...”

“그 자식들...잡는다고 얘기가 통할 수 있을 런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는 직접 낮짝 보면서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그날까지 안 멈출 거야!! 너 옆에서 자꾸 기운 빠지게 그런 말 할 거면 빠져!!”  

“아냐, 그...그냥 물어 본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잡아야지!! 돕겠다는 친구들하고 연락 좀 자주해! 이제부터!!! 아영씨가 나보다 진전이 훨씬 빠르겠네...!"

센터에서 나와 역까지 이동하는 사이, 많은 이야기를 나눈 아영과 야마다는 각자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역의 개찰구 앞에 다다랐다.

“너하고 이렇게까지 연이 이어질지는 몰랐다만... 아무튼... 잘 부탁한다. 센터에서 얘기하는 거 잘 받아 적었지? 이제 뭐 잡놈들 잡는 건 내 친구들 하기에 달린 거니까... 여기에 집중하자, 우리는...”

야마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이제 동업자인데 잘해보자는 의미로 악수나 한번 합시다.”

아영은 손을 내민 야마다를 흘겨보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야마다의 손을 잡아주었다.
미소를 짓는 야마다.

여전히 의심투성의 눈초리로 이내 손을 빼버린 아영은 냉정한 투로 야마다에게 말했다.

“우리는, 철저하게 비즈니스 파트너다, 너 중간에 딴 맘먹고 그러면 죽여 버린다. 예전에 나한테 했던 스토커 짓까지 문제 삼아 버릴 테니까, 알아서 똑바로 잘해. 알았냐?”

“아... 알았어 뭐...”

쭈뼛대며 반대편으로 향하는 야마다.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여겨서인 지, 

조금은 안심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인 지, 

아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았다.

 


***




“뭐? 일본인? 아영이 전 남자친구...??”

해인이 아영과 심각한 전화를 마친 후 옆에서 
꼬치꼬치 캐묻던 세현. 

해인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세현과도 공유해야할 정보란 생각에 들은 내용을 모두 이야기 했다.

“그냥 예술하러 프랑스 왔다고 하면 막연할 법도 한데, 고흐 얘기를 하더라고. 서양인 일행이 한명 더 있을지 모른다고 하고...”

“나한테는 어두운 과거 얘기 그렇게 자세하게는 안하더니... 흥, 그래... 그 아영이 전 남친이란 놈은 남의 돈 등쳐먹고 꼴에 예술 한다고 다른 나라로 튀었다 이거야? 그게 어떻게 이렇게 까지 이어지냐 근데... 자존심 상할 법도 하네, 아영이 성격에..."

"어떻게 해야 되지? 진짜 아영이가 이렇게 까지 부탁하는 건..."

“우리가 서둘러 봤자 단번에 해결될 일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하자. 이름이 뭐? 크리스? 외국 태생인가? 자기 여자 친구한테 가명을 알려줬을 리는...”

세현은 순간, 
해인의 작업실에서 같이 있는 카와모토가 언뜻 떠올랐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프랑스로 예술을 하러 왔다던 일본인과 서양인들이 어울려 있는 곳이라면... 

가장 가까운 곳의, 해인이 지금 있는 작업실일 수도 있는 생각. 

그렇지만 이제 막 상승세를 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해인에게 직접적으로 작업실 사람들을 의심하라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예술을 하러 온 서양인과 일본인이라... 고흐를 좋아하면 아를로 올 가능성이 큰거고... 이 작은 마을에서...동양인이라면...혹시 카와모토씨...?...”

고흐의 도시 아를. 
명백하게 ‘고흐’라는 화가가 거론된 만큼 해인 역시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혼잣말 중에 카와모토를 떠올렸다.

“아, 해인아!!”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히, 그곳에서...<59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