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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Oct 17. 2017

우연히, 그곳에서...<62화>

[ 제62화 _ 수상한 그놈... 누구냐,  너?? ]


‘참 대단도 하다... 이 자식...'

해인이 그림 작업을 하는 작업실의 수장이자, 여러 면에서 도움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기에 숱한 문제들에도 해인에게 아직 은인 대접을 받고 있는 카와모토.

이곳에 도착한 첫날, 해인의 지갑 도둑을 쫓아주던 첫 대면의 순간부터 세현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이곳에 와, 점점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실적을 쌓아가고 있는 현재의 해인에게는 필요악이라고 여겨야 할지, 여전히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카와모토 케이타. 
유럽 진출에 성공한, 여유 넘치는 동양 예술가처럼 보이고 싶었는 지는 몰라도, 드러날수록 그의 과거는 의심 투성이었다.

단순한 남자끼리의 적대감을 떠나 이제는 명백히 경계해야 할 대상임에 분명했다. 

세현은 그 구체적인 의심의 시작되었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



6개월여 전, 
카와모토와 작업실 사람들이 레스토랑에서 해인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밤.

처음부터 의도했던 일인지, 아니면 술에 취해 벌어진 충동적 행동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이해인 납치 사건'이 있을 뻔 하던 날이었다.

다행히 목격자였던 세현이 이런저런 이유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 카와모토에게는 얼른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인지 몰라도, 세현으로서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큰 사건이었다.

“처음부터 작업실로 해인씨 불러들인 이유가 이거였냐? 이런 목적이었냐고!!?”

“절대 아니야!! 아를 내에서 여러 번 마주치기도 하고, 정말 예술에 흥미 있는 사람 같이 보여 같이 하자 제안했던 거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던 해인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는 카와모토의 뒤를 밟아, 집까지 불쑥 쫓아왔던 세현. 그때부터 고민은 시작되었었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이 놈에게 해인을 한 시라도 빨리 떼어놓고 싶었지만, 분명히 지금 해인의 성장에는 필요한 녀석...

더군다나 그 때는 단지 해인에게 호감이 있었을 뿐, 사귀거나 하는 입장도 아니었기에 해인을 어떤 명분으로 도와줄 지 조차 애매한 상황이었다.

세현은 결국, 가까운 곳에서 지켜주겠다는 선택으로 지금까지 참아야만 했다.

당시 혹시나 일어날 지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강제로 카와모토의 폰 번호를 얻어내려던 과정, 잠깐 스치고 지나갔던 카와모토의 폰 배경화면 속 인물.

“뭐야? 이 새끼 완전 쓰레기구만? 여자 친구도 따로 있었잖아? 그런 놈이, 해인씨를...?!"

“아냐!! 임마!! 도...동생이다!!”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전혀 모르는 척 했었다.

당시 상황이 그런 것을 따져물을 정신이 아니기도 했지만, 찰나의 시간에 스친 사진 속 그 또렷한 인상의 여성은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들과 여기저기 흩어졌던 퍼즐 조각들이 점점 맞추어져 가, 이제는 슬슬 전체적인 형태가 드러나는 듯 했다.



**
 

늦은 밤. 
매일 같은 코스의 야밤 데이트를 마치고 세현은 해인을 집에 들여보내며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자, 내일이 프로 화가로서 처음 출근이지? 매일 가던 데니까, 긴장하지 말고...! 기왕 정식으로 하게 된 거... 같이 그리는 놈들한테 뽑아 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먹고 나오는 거야!! 알겠지?”

“응...!”

세현은 뭔가 경직되어 있는 듯한 해인을 힘껏 끌어안아주며 있는 힘껏 등을 문질러댔다. 

해인이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봐준 후, 세현은 가만히 이제까지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과거의 그 사건 이후, 카와모토의 행적을 쭉 예의주시하고 있던 세현.

이래저래 얽혀 있는 만큼, 직접 알아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여겨, 멀리서 부터 접근해 들어가는 방법을 택한 세현이 가장 먼저 향했던 곳은 갤러리였다. 

카와모토가 연관되어 작업실 내에서 트러블이 끊이지 않는다던 논란의 그곳.

갤러리에 전시했던 해인의 그림이 팔렸다는 연락을 받은 그 날, 세현은 사실 몰래 갤러리로 직접 조사를 떠났었다.

이 전에도 해인의 그림을 구경하러 들른 적이 있던 곳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다시 찾을 수 있던 그 곳.



***


세현은 갤러리로 들어가 우선 전시된 작품들을 살폈다.

해인에게 전해들은 대로 누군가가 구매해갔는 지 비어있었던 해인의 그림 자리.

“저... 여기 걸려있던 그림 어디 갔습니까?”

“예, 몇 시간 전에 어느 분이 사가셨습니다. 구매하시려고요? 한 발 늦으셨네요...!”

“아, 예... 아쉽네요... 어떤 분이 사 가셨는지는... 알 수 없을까요? 그 분한테 사정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오, 정말 사고 싶으셨던 그림인가보네요...! ㅇㅇ작업실 신인 화가가 그린 걸로 알고 있는데, 인기가 좋네요...!! 근데, 어쩌죠. 그거 사 가셨던 분이 특히 신분을 숨겨달라고 작가 분한테도 누군지 안 알려 드렸어요.”

“아, 그러셨구나... 알겠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뭐...”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혹시나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을까 갤러리 직원에게 확인 차 질문을 했던 세현.

그 때까지 해인에게서 들었던 것과 다른 점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세현은 갤러리 직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은 후, 뭔가 다른 사실이라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평범한 손님 처럼 갤러리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그저 해인의 전시 그림만을 보러 이곳에 왔었기에, 그저 슬쩍 훑어보기만 했던 다른 화가들의 그림까지도 꼼꼼히 살폈다.

“음...?!”

그림들을 관찰하며 지나치던 중, 유독 눈에 들어온 그림. 

“저...질문이 있는데요. 이거 그린 화가는 누굽니까?”

“아, 그거요, 이쪽 구역은 모두 아까 말한 ㅇㅇ작업실 화가들 그림이에요. 그 작품은... 
카와모토 화가님이 그린 겁니다.”

“카와모토...”

세현이 발견한 카와모토의 그림. 
정확히, 그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림의 아래 쪽 모서리 부분의 사인이었다.

‘보통 사인은 모국어로 하거나 영어로 하거나 그러지 않나...카와모토는 일본인이니까... 모국어면...’

일본말도 잘 아는 세현이 보기에 그 사인은 ‘카와모토’를 나타내는 일본어 한자도, 영어도 아니었다. 

흘려 쓰인 형태지만 분명히 명확하게 보이는 영어 스펠링으로서의 형태.

갤러리 직원은 여러 그림에 흥미를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세현에게 그림 구매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잠정 고객으로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세현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이미 갤러리에는 두번째 방문이라 안면을 튼 바 있는 세현으로서는 넉살 좋게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척 하면서 직원과 친분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림에 대해 조예가 깊으시군요. 지난 번에도 방문해 주셨던 분이지요? 어떻게,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그림에 대해서 쥐뿔도 모른다. 모두 해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열했을 뿐.

“아, 예, 좋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직원이 차를 준비하러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세현은 단서를 남겨두려 카와모토 그림의 사인부분을 몰래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자기 작품에 아이덴티티를 남기는 사인 작업.
자신 역시도 글을 쓸 때에 그러했듯, 카와모토 역시 그림 그릴 땐 그 표식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직 그것이 아영에게 들었던 '크리스'인지는 명확치 않지만.

만약 맞다면... 완전한 허구의 이름은 아닌 셈이지만, 한때 애인이었다던 대상에게 왜 이름 대신 작가명을 알려주었을까.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현재 작업실 문제로 직접 엮여있는 해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되어버리는 것도, 아직 정확하지도 않은 사실을 잘못 전달해 그 냉정하던 아영이 흔들릴 수 있는 것도.



***



"안녕하세요. 새삼스럽지만, 오늘부터 화가 여러분들과 같이 그림 그리게 될 이해인입니다."

늘 이곳의 사무 일을 담당하고 어깨 넘어 그림을 배워오던 해인은, 정식 화가로서 다른 화가들처럼 필요한 비용을 모두 지불하고 작업실에 입성했다.

"짝짝짝...!"

카와모토와 안톤 그리고 두 명의 외국인 화가들은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해인을 반겼다.

"이쪽도 새삼스럽지만,  환영합니다! 이해인 화백님...!" 

"해인씨 오기 전에 사무 관련 일은 저희끼리 돌아가면서 담당했는데요, 그동안 해인씨가 체계를 잘 만들어 준 덕분에 그 시스템 이용해서 다시 예전처럼 하면 될 것 같아요."

역시 리더처럼 앞장서서 모두의 입장을 대변하는 멘트를 하는 카와모토. 

해인은 어제의 의혹으로 한동안 카와모토를 빤히 쳐다보다 세현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이내 고개를 털어댔다.

'그, 그래...그림만 생각하자, 그림만...!'


한바탕 환영인사를 마치고 해인은 작업 중이던 그림 앞에 앉았다.

'쳇, 지금 뭐 그리는 지 보지도 않고선 산다고 하긴...!!'


해인과의 밀당 끝에 현재 작업중인 그림이 완성되면 구매를 하겠노라 [예약]을 해두었던 세현.

해인이 현재 작업중인 그림은 그런 세현을 의식하기 전부터 꽤나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던 작품이었다.

최근의 여러 가지 사건들에 신경이 쓰여 그림의 진도가 나가지 않던 이유도 있었다.

자신의 당초의 계획대로 다른 일을 시작해 그림 작업을 병행하는 형태였다면, 세현의 말처럼 그림 능률은 떨어질 것이 분명했을 것.

"해인씨, 지금 그리는 그림 꽤 오래 걸리는데, 그만큼 정성을 들인다는 거겠죠? 완성해서 이번에도 같이 전시합시다!"

"예...꽤 오래 그렸죠...아, 저 근데 이 그림... 산다고 예약한 사람이 이미 있는데, 전시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예? 예약이요? 아니, 완성이 아직 되지도 않은 그림을 사겠다고 예약한 사람이 있어요? 그건..."

유독 그림 판매나 갤러리 애기만 나오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카와모토. 해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꾸 떠오르는 아영의 잔상과 세현의 당부 사이에서 고뇌 해가며.

“해인씨... 이제 우리 같이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는 같은 그룹이잖아요? 그림 같이 완성해서 같은 갤러리에 출품하자는 사항은 먼저 번 계약할 때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었는데...”

“에, 에...? 그런... 항목이 있었어요?”

같이 정식화가로 활동한다는 긍정의 뜻을 밝혔을 때, 바로 어디선가 계약서를 가져왔던 카와모토. 

동료로서 같이 임대료나 비품 비용 등을 감당하며 작업실을 사용한다는 내용으로만 받아들였거늘, 계약서 상에는 필요이상으로 뭔가 잡다한 사항들이 많았다.

어렵게 결심을 내린 차에, 다른 중요한 내용이 뭐 있겠냐 싶어 그냥 훑어보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해인.

친절하게 카와모토가 다시 보여준 계약서에는 카와모토가 얘기했던 사항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긴 했다.

“이 말은... 작업실에서 같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뿐이 아니라, 항상 이용해 오던 갤러리가 아닌 곳에는 출품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인가요?”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건만, 의외의 상황에서 날카로워 진 카와모토에게 어떤 작은 반감 같은 것이 생겨나서 였을 까, 해인은 또박또박 반박을 시작했다.

한 순간 싸늘한 표정으로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는 카와모토.

“아를에서 작업실을 얻기가 쉽지 않았어요. 해인씨도 어느 정도 알다시피 제가 좀 여기저기 힘을 써서 겨우 자그마하나마, 여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데, 그 과정에서 그 갤러리 분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었어요. 그래서 초반부터 약속을 했었죠. 그림 판매는 가능한 그 갤러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이제까지는 듣지 못했던 사실을 해인에게 일깨워주는 카와모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었다면 당연히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겠지만, 반년을 넘게 이곳의 사무를 봐오던 해인으로선 풀리지 않았던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카와모토씨가 혹시 그 ...”

평소에 중요한 사안에는 똑 부러지는 성격대로 반박을 하려던 해인은 순간,

‘괜히 이것저것 알아본다고 신경 쓰다가 해인이 한테 어떤 일이 생길 지 모르니까...!!’

라고 이야기 해주던 세현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분명... 뭔가 있어... 그래도 내가 여기서 지금 그런 말을 해 버리면...’

해인은 다시금 감정을 추슬러, 꺼내려던 말을 단속했다.

“아, 알겠습니다. 카와모토씨. 제가 계약서를 잘 확인을 못한 모양이에요. 이 그림도 일단 갤러리 통해서 판매하는 걸로 할게요. 그럼.”

그제서야 표정에 드러났던 경계심을 푸는 듯한 카와모토.

“음...예, 처음이니까 헷갈리실 수도 있죠, 그럼 각자 작업 열심히 진행하는 걸로 해요..."

본인이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리 없는 카와모토는 그렇게 사무적인 한 마디를 툭 던지고 바로 본인의 작업 구역으로 돌아갔다.

작디작은 이 사건 하나만으로 흐트러지는 듯한 집중력을 바로 잡으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해인. 

‘임씨가 말했던 게... 이런 거구나... 괜히 쓸데없는 거에 신경 쓰이니까 그림이 잘...에휴...이번에는 말 들어야겠다...'

다른 화가들 역시 약간은 기분 상한 듯한 카와모토의 눈치를 살피는 느낌이었다.
 
해인과 카와모토의 사소한 언쟁때문이었을까, 유난히도 냉랭한 분위기의 작업실. 해인은 그 상황을 애써 외면하며 한시라도 빨리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려 작업을 시작했다.

항상 작업실 내부에 틀어놓아 흐르고 있는 클래식 음악, 음악소리와 함께 가끔씩 도구를 만지는 소리 등이 백색 소음과도 같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해인은 얼른 자신의 그림 세계로 피신하고픈 생각에 개인 이어폰을 끼고 다른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시작했다.




*** 



"아영아, 지금 잠깐 얘기 할 시간 되니?"


"응? 뭐야? 세현이? 왜 이렇게 목소릴 깔고 난리야? 무슨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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