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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Oct 20. 2017

우연히, 그곳에서...<63화>

[ 제63화 _ "저는 무명작가입니다." ]


“뭐야? 임세현, 웬일로 이렇게 목소리를 깔아? 무슨 일 있어?”

해인과 아영, 이 두 여성에 관련한 일로 아직 정확하게 이렇다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숱하게 고민을 하던 세현은 어찌 되었건, 달라진 상황을 전달하려 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 아영아, 해인이 한테 이야기 했던 거 다 들었어. 그거 관련해서 전할 얘기가 좀 있어서...”

“에? 너한테 바로 얘기 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바로 어제 얘기했던 건데, 벌써 뭐 달라진 거라도.. 있는 거야?”

아영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동시에 약간떨림마저도 느껴졌다.

“아직... 뭐 확실한 게 아니라, 딱 잘라 얘기할 수는 없는데 말이지, 말해줬던 몇 가지 사실로 짐작 가는 사람이 마침 여기 있는 것 같아서... 괜히 헛다리 짚을 수도 있어서 일단 말 안하려고 했었는데...”

“아...”

세현은 잠시 주저하다가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아영에게 말했다.

“음... 그 전에... 얘기 할 게 하나 있는데...”

“어? 뭔데?”

“음... 아영이 네 부탁... 그거 해인이 말고 내가 해결 할 수 있게 해주면 안 될까?”

아영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는 투로 세현에게 물었다.

“응? 뭐, 누가 들어주던 나야 고맙긴 하지만...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어? 나야 그냥 친구라 편해서 해인이 한테 먼저 얘기했던 거긴 한데...”

“음... 지금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 짐작이 간다고 했던 대상이 해인이 주변에 있는 것 같은데... 좀 복잡하게 얽혀있어 해인이가 직접 알아보면 좀 위험해 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해인이 성격 너도 잘 알지?”

“아... 그래? 뭔가 주변에 엮여있는 상황인거야? 하긴, 해인이 계집애, 어리숙하긴 해도 뭐 하나 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구석이 있긴 하지...”

세현은 핵심적인 부분만을 추려 아영에게 조심스레 전달했다.

“확실한 건 아직 없지만, 일단은 거리가 좀 있는 내가 움직이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거든. 공모전 덕에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긴 때라 더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아.”

“후...이거 역시...괜히 너희들한테 부담 준 것 같다...”

“어허! 그런 말 하지 마! 해인이도 나도 멘토한테 받은 사랑을 갚을 수 있는 기회인데 뭔들 못 하겠니!?”

“멘토? 내가 니들 멘토야? 뭐 한 거 있다고...”

“그냥 열심히 사는 거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들 눈에는 대단해 보이는 겁니다! 선배님!!”

"열심히는 무슨..."

쑥스러움에 말하면서도 순간 작게나마 감동을 한 아영. 장난스럽게 세현의 말을 맞받아치려다가 울컥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킬 새랴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아영의 심정을 알고도 모른 채 해주는 건지, 세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지금처럼 너한테 직접 연락할게. 해인이한테도 일단 얘기하긴 했어.
걔 지금 네 부탁이라고 아주 의무감 철철 넘쳐가지고 ‘돌격개시!’하면서 눈을 부라리고 있어, 아주...! 내가 진정시키느라 아주 진땀 뺐다고...!”

"후훗, 고마워... 듬직하네! 내 친구들...!!”

겨우 감정을 추슬러 한마디를 꺼낸 아영에게 세현은 장난치듯이 얘기했다.

"고맙다는 말은 나중에 진짜로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들을게. 아차...! 너 사업시작 한다며? 그렇게 열심히 살더니 이제야 시작하는 거야? 일단 축하해!! 정신없겠네...준비하려면...!”

"응... 인제부터 시작이지. 뭘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영은 뭔가 홀가분해 진 기분으로 야마다의 이야기까지 세현에게 모두 말했다.

"같은 피해를 입고, 같은 용의자를 쫓는 사람들끼리 동업을 하게 됐다라... 일본인하고... 다시 뭔가를 같이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운 결정했네...!"

"응,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이 자식 신상은 철저하게 알아뒀으니 이번은 괜찮겠지... 뭣보다 야마다라는 자식, 좀 오타쿠 같아서 그렇지, 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

아영이 세현과 함께 일을 하던 시기부터 늘 이야기 해왔던 사업에의 꿈.

피차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쓸데없는 다른 설명에 기운 뺄 필요 없는 세현과 사업 이야기, 과거의 이야기 등 마음 놓고 수다를 떨어댔다.

센척하지만 여린 한 여성과 어리바리하지만 의외로 센 여성. 세현은 주변의 이 두 여인 모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레 움직여 보기로 마음먹었다.






***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에서 개최한 전 세계 규모의 단편 소설 공모전...!! 대상자들의 시상이 거행되겠습니다!!"

출판사 직원인 소현에게 전해들은 대로 전 세계적으로 거행되기 시작한 수상식.

발표 당시 탈락의 아픔을 알코올로 풀 수밖에 없던 기태에게 지금 더 중요한 건, 이미 알려진 수상자들의 공개보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수상작들의 열람이었다.

어차피 수상은 물 건너 간 마당에,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작품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시라도 빠르게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걸출한 작품 후에 저희 출판사에서는 다각도로 해석되어 질 수 있는 작품을 공모코자, 자유로운 글의 형식을 추구했습니다.

응모자분들께서는 일러스트나 영상, 음악 등으로 컨텐츠를 첨부해주시는 등, 다양한 형태로 작품을 제작해주셨는데요. 기발하고 흥미로운 해석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분들 궁금해 하실 수상 작품들은 오늘 자정 이후부터 홈페이지에 공개 될 예정입니다.

전 세계의 다른 언어들이 뒤섞인 공모전인 만큼 정리에 시간이 걸린 점 양해 바라며, 작품 모음집은 단행본으로 다음 달 초에 출간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개회사와 함께 시작된 시상식. 수상식 실황은 전 세계 방송으로 생중계 되었고, 기태는 집에서 TV로 이를 시청하는 중 이었다.

“뭐? 영상? 음악? 그림까진 그렇다 쳐도 글 공모전 제출하는데 영상에, 음악까지 만든 놈들이 있단 말이야? 참... 열심히들 산다, 열심히들 살아...”

정작 기다렸던 작품공개를 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툴툴거리며 켜놓은 TV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다른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 기획실 1팀의 전소현이라고 합니다.”

“엉, 소현이??”

시상식은 개회사에 이어 출판사 내 공모전 기획자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TV너머로 들려온 ‘소현’이라는 이름.
기태는 다시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맞네...! 이 공모전...최초 기획자가 소현이라고 했었지... 와...세계적으로 나가는 방송일 텐데 인터뷰까지 하네...”

“[그들만의 세상]으로 전 세계에 무수한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저희 출판사에서는 그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차세대 작가 발굴에 힘써 왔습니다.

그러다 전 세계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장점을 이용해 국적, 성별, 나이 불문의 작가양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전작의 영향이 있기도 하지만, 이야기 하나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2차 3차 컨텐츠로의 발전과,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를 추구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재미있는 작품들이 제작 되어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는 제출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신 것 같아 뿌듯합니다."

기태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이야기하던 ‘학교후배’의 모습과는 달리 똑 부러진 커리어 우먼의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소현.

“오, 멋있네...! 소현이... 음? 가만... 소현이...라고 하면... 보고 싶어 할 사람이 있을 텐데...”

[ 부르르르르 ]

순간, 갑자기 기태의 핸드폰 진동이 울려댔다.
누구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만식이 이놈, TV보면서... 얼마나 애가 탈꼬...
제출했던 소설의 소재로 등장했던 짝사랑 여성이 직접 TV에 나와 그 공모전 소개를 하고 있는 모양이라니...”

[ 야, 야!! 소현이...지금 나온다!! TV 보고 있냐!!? ]

아니나 다를까.  
잔뜩 흥분한 모습까지도 머금은 만식의 문자였다.

수상이라도 했다면 멋지게 무대에 올라 상 받으며 전 세계가 보는 TV 앞에서 소현에게 그간의 감정을 고백하는 호기라도 부려보았을 것을.

똥줄 타는 이 녀석의 심경이 이해는 가면서도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기태는 일단 만식의 문자에 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일전에 양해의 말씀을 드렸다 시피 수상자는 100명에서 12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상금과 상패. 그리고 공모전 제출 작품 이외의 다른 창작 작품에 한해 저희 쪽 출판사에서 책을 낼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방송은 전 세계에 공동으로 송출되는 개회식과 인터뷰 등의 사전 순서와 해당 국가별로 보여 지는 수상자들의 수상 및 수상 소감 등으로 진행되었다.

드디어 TV에 등장한 한국 수상자.
2명이라던 한국인 수상자 중 먼저 무대 위로 등장한 사람은 우수상을 받았다는 남자였다.  

기태는 숨을 죽이고 무대 위로 천천히 올라오는 그 남자를 지켜보았다. 기성작가라고 하지만 들어 본 적은 없는 이름.

외모로 풍겨지는 분위기만으론 기태보다 나이가 10살 이상은 많아 보이는, 다소 초췌한 행색을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전 세계 120명 안에, 그것도 무려 '우수상'을 거머쥔 어마어마한 공력의 소유자.

초췌한 인상 속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은 왠지 기태와도 조금은 닮아있는 듯 했다.

남자는 시상대에 올라 상패와 꽃다발 등을 건내 받은 후 수상소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어느 때보다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채 TV속의 이 남자를 지켜보는 기태.

남자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몇 번이고 헛기침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저는... 작가입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사명감 하나로...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버티어 왔고, 또 어쩌면 내일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릅니다.

뭐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글 쓰는 작가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지만, 보시다시피, 히트작 하나 없어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의 저는, 지금 세상의 잣대대로 반 백수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는 혼자 글을 쓰고 혼자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되겠지요. 들어줄 사람이 있고 반응해 줄 사람이 꼭 필요한... 말하자면 그들의 도움 없이는 완성되지 못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20여 년 동안,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 왔고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넘쳐나지만...

누구하나 선뜻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무명작가입니다.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는 기대만으로 버티어 오긴 했지만, 슬슬 지쳐가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불안한 생활에 안정되지 않은 미래에도 열정을 잃지 않고 버텨왔던 보답일까요. 출판사 분들께서 제게 동앗줄을 내려주신 기분입니다.

이제부턴, 내가 만든 이야기에 사람들이 조금은 귀를 기울여 주실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설레이기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라는 늘 되고 싶었던 직업을 확인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담백하게 자신의 일상과 소감을 이야기하던 이 남자의 눈가는 어느덧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렇지만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

소감을 들으며 기태 역시도 자신의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인지했다.

그가 말했던 일상, 세상의 잣대... 공감이 갈 수밖에 없는 그의 모든 얘기에 감동을 받았음은 물론이요, 너무도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그래, 저런 사람이라면...'

"또 다른 한국인 수상자분이 계신데요, 사정상 현재 한국을 떠나계셔서 계신 곳에서 수상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공모전 소식을 물으려 소현에게 전화했을 때 물어보았던 또 다른 수상자.

프랑스에 있다고 확인되었다던 그는 결국 한국의 시상식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야, 그 ‘해세’ 인지, 하는 놈 말이군... 어딜 가 있건, 상을 받았는데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 것 아냐? 거만하기 짝이 없군...”

괜한 반감이 생긴 듯, 아직 눈으로 확인하지도, 뭐라 이야기하는 지 소감도 듣지 못했건만, 왜 인지 모르게 꼬투리부터 잡고 싶은 다른 수상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기태는 수상식의 프랑스 지부 영상에서 ‘해세’라는 작가의 정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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