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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Oct 24. 2017

우연히, 그곳에서...<64화>

[ 제64화 _ 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

"뭐야, 이 나라는 수상자들이 좀 많네... 출판사 히트작하고 관련 있는 나라라고 의식적으로 더 뽑아 준 거 아냐?...”

수상자 발표일 당시, 또 다른 한국인 수상자 확인을 위해 TV를 시청하고 있던 기태는 명단에 프랑스 국적의 사람 수가 꽤 많았던 것을 떠올리며 괜한 부러움에 투덜댔다.

큰 행사처럼 떠들썩했던 한국에 비해, 조촐해 보이기까지 한 프랑스 내의 시상식.

아비뇽이란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의 프랑스 지부는 으리으리한 규모의 고딕양식을 한 지역 내 주변 건물들과는 다르게 꽤나 초라하게까지 보이는 모습이었다.

미세하게 금이 가 있는 벽면과 얼마의 세월동안 쌓이어 왔을지 모를 얼룩들, 건물을 감싸고 얼기설기 얽혀있는 수풀들. 여러모로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관이었다.

한국의 메인 수상식 후 그저 보충 자료로서 잠깐 노출되는 TV 단신보도였지만 기태는 여기서 그 또 한명의 한국인 수상자라는 사람을 꼭 확인하고자 했다.

"뭐야... 뭐하는 사람이길래 프랑스에 가 있는 거지?"

TV방송 역시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또 한명의 한국인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상, 수상자 분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현재 이곳 프랑스에 거주 중이라 피치 못하게 한국 수상식 참여를 하지 못한 한국의 작가 분이 계셔서 이곳에서 대신 수상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작’ 부문 수상자, 필명 ‘해세’를 쓰시는 작가님입니다.”

비교적 많았던 프랑스인들의 수상 및 소감이 슬쩍 슬썩 비추어 지고 드디어 무대 위로 올라온  한국인 수상자, 어색하게 정면을 주시하며 더듬더듬 소감을 이야기했다.

"먼저, 사정 때문에 고국에 있지 못한 점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큰 공모전에서 명단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말 꿈만 같습니다.

아직 신인인 저에게 이런 큰 기회를 주신 점,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더더욱 정진해서 상에 어울리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인이 낯선 나라 프랑스에서 또박 또박 한국어로 소감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기태는 오묘한 눈빛으로 잔뜩 긴장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수상자를 바라보았다.

제대로 갖춘 옷차림을 하고 뭔가 써온 듯한 글을 읊어대던 자그마한... 여성.

"...이번에 신인이 많이 뽑혔다더니 저렇게 젊은 여자였..."

"아...!"

짧은 소감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가려던 이 한국인 수상자 여성은 뭔가 해야 할 말을 잊었다는 듯 가던 발길을 돌려 단상의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저는 작품의 작가와 같이 작업했던 일러스트레이터이고요, 오늘 예정되어 있다가 피치 못한 사정으로 '해세' 작가님을 대신해서 수상하러 나왔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세계로 나가는 방송에서 '뭐야, 쟤' 가 나올법한 어리바리함을 선보이고 후다닥 퇴장하는 대리 수상인.

그녀는 바로 해인이었다.

"뭐야... 작가가 저 여자...가 아니었던 거야? 참나...배트맨이야, 슈퍼맨이야...누군 지 정체 참 교묘하게 잘도 숨기네..."

우수상을 수상했던 한국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뻔하디 뻔한 소감을, 아무 감동도 없이... 그것도 대리수상을 시키다니.

"누군지 참 성의도 없네. 이게 우수상과 가작의 차이인건가. 해세? 오냐...! 나중에 작품 나오는 거 지켜보겠어. 얼마나 잘난 작가길래 상 주는 자리에 코빼기도 안 비치는 지..."

일부러 방송까지 찾아보며 기다린 사실을 후회하며 기태는 이내 흥미를 잃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발표에서 수상까지, 이제는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된 듯한 공모전 과정을 반추하며, 기태는 자신의 집필 자리로 복귀해 현실 마감 임박의 원고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모니터로 연결되어있던 기태의 컴퓨터 한쪽 모니터 화면에는 언제 켜 놓았는지 덩그러니 인터넷 창 하나가 켜져 있었다.

무수한 소식들로 가득한 포털 싸이트 화면에서 무심결에 눈에 띈 프랑스 수상식 관련 기사.

이제는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니 별다른 호기심도 없건만 기태는 별 생각없이 그 기사를 클릭했다.

TV에서 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은 느낌으로 짤막한 기사 본문과 사진 한 장으로 이루어 진 구성.

그리 크지도 않게 게시 된 사진은 조금 전 대리수상을 했던 여성이 다른 프랑스 수상자들 틈에 긴장한 얼굴을 한 채 서 있는 장면이 포착된 내용이었다.   

“음, 이 여자가 수상작 일러스트... 를 그렸단 말이지? 좀 예쁘장하긴... 엇?!”

파파라치가 몰래 찍은 듯 그다지 선명하게 나오지도 않은 사진의 한 구석에 경직된 얼굴로 서있는 여인의 사진.

기태는 그 여인 옆에 선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였다.

“세...세현이...?? 얘...왜...여기에... 그...그 때 일본에 있다고 했었는데...”

단전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떨림에 마우스를 잡고 있는 기태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상을 버티어 내기에도 버거웠던 지, 잠시 동안 잊고 살았던 위대한 소설 [그들만의 세상] 작가의 아들.

벌써 몇년이나 전에 의도치 않게 라이벌 의식이 폭발하여 의절하다시피 한 친구였다.

“서...설마 세현이가 저... 작가라는 말은...아... 아니겠지...이제 글 쓴다고 이쪽 바닥 들어온 지 5년도 안 되는 저런 풋내기가 이렇게 큰 대회에서...”

누군가 명확한 사실을 이야기 해 줬으면... 바로 출판사의 소식통 소현을 찾으려던 기태는 그마저도 망설이며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였다.

문득 떠오르는 불길한 예감이 맞던, 아니던... 지금 이 타이밍에, 공모전 수상 관련 기사 안에서 세현의 얼굴을 확인한 것은 분명 좋지 않은 징조임에 분명했다.

안절부절하며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던 기태는 가만히 한 숨으로 크게 고르며, 해당 기사의 사진을 저장해 두었다.

“소현아, 바쁠 텐데...미안... 뭐... 한 가지 물어볼게 있는데...”

신경이 쓰이기 시작해 어떤 것에도 집중 할 수 없던 기태는 결국 소현에게 연락했다.

지난 번에도 아는 정보를 마구 들이대며 빼 갈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캐내어 갔었음을 경계해서 인지 조금은 경직된 목소리로 기태의 전화를 받은 소현.

“예...예... 선배님, 안녕하셨어요...”

“자꾸...귀찮게 해서 미안... 오늘까지만 딱 물어볼 거 물어보고 다음부턴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 이것 하나만 알려줬으면 하는데...”

소현의 경계어린 목소리를 바로 파악해서였을까, 기태는 일단 밑밥을 깔 듯, ‘마지막 부탁’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접근해 들어갔다.

“아니... 뭐 그런 게 아니라... 하도 요새 이래저래 회사 안팎으로 시달리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많아서... 그래요.”

“미안... 진짜 마지막이야... 이 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예...어떤 게 궁금하신데요... 저도... 알려드릴 수 있는 거라면 좋겠네요...”

“조금 전에 프랑스 수상식에서 상 받은 한국인 ‘해세’작가 말이야...”

“...”

“혹시... 임형우씨 아들... 이니?”

기태는 조금 전에 저장했던 이미지를 소현에게 보내주며 마치 알고 있는 답을 확인하려는 투로 조심스럽게 추궁해 들어갔다.

“...작가 신상에 관한 부분은 저희도 아는 게 없어요. 죄송해요. 사실 그 부분이 제일 조심스럽기도 하고... 신상 노출을 꺼리신다고 하는 작가 분들도 꽤 많이 계신데 혹시나 피해가 갈지도 모를 일이고요, 음... 일이 많이 바빠서 이만 끊을게요. 선배님.”

일방적으로 어딘가 적혀있는 듯한 매뉴얼대로의 멘트를 쏟아 낸 후 전화를 끊은 소현.

추측하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투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으면 하는... 성급함도 느껴지는.

“흐음... 왜 이렇게 조심스러운 거야... 이미 발표까지 다 났는 걸...”

기태는 소현에게 보낸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유심히 바라보았다.

안 보고 산지 벌써 몇 년이 흘렀건만 학창 시절부터 함께 해 오던 세현의 훈훈한 인상을 잊을 리는 없었다.

“가만...작품을 협업했던 일러스트레이터가 대리수상을 했다고? 그냥... 저 자리에 저 여자랑 같이 왔을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지? 그게 아니면 그 자리까지 가놓고 왜 대리 수상을 해달라고 해...”

어떻게든 부정에의 이유를 찾아가던 기태.
아니, 반드시 그럴 리가 없어야만 했다.
참고 견디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냉혹한 작가 세계...

그 중 먼저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이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임세현’은 아니어야만 했기에.

“작가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줄 아니? 너는 안하는 게 좋아!! 얘기 만들어 낸단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그 좋은 금융회사를 다니던 세현이 작가가 되겠다며 나름의 수행여행을 준비하던 시기.

세현이 가장 먼저 상담을 요청했던 건, 친구이자 늘 작가를 꿈꾸며 작문을 게을리 하지 않던 기태였다.

세현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어떻게든 이 생활의 힘든 과정과 고행의 길임을 꼬집으며 이 세계로 들어오지 말 것을 강조했었다.

먼저 그 세계에 몸을 담고 있기도 했지만, 이 세계의 무서움을 자꾸만 설파했던 것은 딱히 꼰대마냥 선배노릇을 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학창시절에도 늘 세현에게 입버릇처럼 해대던 말.

‘넌 좋겠다. 위대한 작가의 아들이라서...’

기태는 세현이 누려왔던 성장과정의 환경이 늘 부럽고 두려웠다.

환경에서 체득했을지 모를, 감추어져 있을 것 같은 재능, 잠재력은 더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져 버리고 만다면... 억울함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하나만의 꿈을 꾸며 많은 것을 참아가며 지내온 자신의 인생이.

기태에게 있어 ‘친구’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같은 꿈을 지향하는 라이벌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






“아저씨,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거듭 축하하고! 갔다가 둘이 신나게 어디 가서 놀다와.”

“예, 감사합니다. 아저씨 덕분이에요.”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그건 그렇고...아비뇽 쪽 숙박정보 오늘은 안 필요하니?”

“숙박...? 아, 아니에요!! 갔다가 돌아올 거예요!!”

프랑스 아를의 수상식 날 오전.
카페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장난기어린 응원과 함께 세현에게 차를 빌려주었다.

고맙게도 출판사의 배려 덕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수상식에 한국인 수상자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된 세현은 그 자리에 꼭 해인도 데려가고자 했다.

“해인이 넌 꽃단장 안 해도 예쁜데 뭐 이렇게 예쁘게 하고 나왔어?”

“쳇, 혼자 가라니까, 왜 나는 같이 가자는 거야, 창피하게 시리...”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는 거지! 너 아니었으면 뽑히지도 못했을 건데, 같이 얼굴 보여주는 게 맞는 거지! 자 빨리 타기나 하셔!”

방송으로 나갈 것을 의식해서 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헤어스타일도 복장도 꽤나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하고 있는 해인의 손을 꼭 잡고 세현은 차로 이동했다. 몇 번이고 해인을 다시 보며 피식 웃는 세현.

“뭐야! 왜 웃어!! 죽을래?”

“아냐! 예뻐서 그러지...!! 그러고 보니까 너 치마 입은 거 나 처음 봐. 은근 되게 여성스럽다 너...!”

“그럼 여자가 여성스럽지, 남성스럽냐? 아이 씨, 나도 어색해 죽겠네, 아주...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지 마! 좀!“

“아니, 예쁘게 하고 나와서 남자친구가 예쁘다고 계속 쳐다보면 좋은 거 아냐? 수상한 남자가 막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임씨 눈빛이 지금 되게 수상쩍다...! 이거야 원, 치마 한번 둘렀더니 눈을 못 떼네, 아주... 빨리 가기나 해!”

주말 데이트로 프랑스의 곳곳을 둘러보던 해세 커플에게 이제 아비뇽 정도 거리의 지역은 익숙한 산책 정도였다.

해인은 차창을 열어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했다.

아비뇽으로 향하는 길은 이 전처럼 이동 차량이 그다지 많지 않아 한껏 차창 너머의 바람을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처음,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던 이 주변 풍경과 함께, 낯설기만 했던 옆에 이 남자는 지금 하루 중 눈 떠 제일 많이 이야기하고 만나는 익숙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에 해인도 자신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바람 다 맞으면 예쁘게 치장한 헤어스타일 망가지지 않겠어?”

한껏 분위기에 취해 평소 같은 행동을 하고 있던 해인을 보며 세현은 장난스레 말했다.

“아... 맞네...”

“아이구, 이 멍청아...”

한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아비뇽.
오래간만에 이곳에 들르자 연인이 되기 전 세현과 이곳에서 미술관이며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시작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같은 마음에 이제 ‘우리는 이런 사이다!‘ 라는 것을 이 도시에 과시라도 하고 싶었던 듯, 세현은 해인의 손을 꼭 붙잡고 직접 공모전 작품을 제출했었던 출판사 건물로 향했다.  

“해인아, 여기서 일단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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