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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Oct 27. 2017

우연히, 그곳에서...<65화>

[ 제65화 _ 좋은 날인데, 무조건 좋아야만 하는 날인데...!! ]


“응? 뭘 보여줘? 임씨도 여기 오래간만 아니야?"

“음... 애석하게도...! 트렁크 가득 풍선 이벤트 같은 건 아니네요. 실망했다면 죄송합니다.”

“뭐야...! 장난치지 말고!!”

해인의 손을 꼭 붙잡고 성큼성큼 다가가 마주한 출판사의 낡은 건물.

건물의 외부에서는 잠시 후에 있을 시상식 준비로 몹시 분주한 모습이었다.

세현은 이전에 공모전을 제출할 때 들렀었던 출판사의 복도 안으로 진입했다. 쭉 이어진 벽면을 따라 진열 되어 있는 출판사의 역사를 담은 듯한 사진들. 

출판사의 외관이라야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해인은 처음 와본 아비뇽 출판사의 내부 구경에 정신이 팔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성큼 성큼 해인을 리드하던 세현은 복도의 끝, 사무실 출입문 바로 옆쪽에 걸린 사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 이거...! 잠깐 봐주시죠, 화가님...!”

“에?”

작품을 제출하러 왔을 때, 문 앞에서 혼자 보고 감상에 젖었던, 아버지와 함께 이 출판사 앞에서 찍은 사진. 

세현의 아버지 소설가 임형우씨가 당시에는 꼬마였던 세현을 한 손으로 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오... 임형우 작가님? 그리고...옆에 이 꼬맹이 혹시 임씨...??”

“신기하지? 나도 저번에 와서 처음 봤어. 그 때...여기 다시 올 수 있기를 그렇게 바랬었는데, 이렇게 한 명 더 데리고 오게 될 줄은 몰랐네...!”

“어릴 때 여기 살았다더니, 뻥은 아니었군...풋...!! 가만, 이거 이 건물 앞에서 찍은 거잖아!?”

“어릴 때라, 기억도 잘 안 나지만...아무튼... 자, 얼른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도록!”

“아버님은 무슨...!!”

추억의 사진을 해인에게 보여주며 말장난을 하고 있는 사이, 이들의 대화가 소란스러웠던지 바로 옆 사무실 문에서 누군가 나와 두 사람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헤이, 헤이...! 이봐요, 오늘은 시상식 날이라 직원 이외의 사람들이 여기 안으로 들어오면 안돼요!!”

“아, 그래요?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저...오늘 시상식 참석하러 왔어요. 그럼 나가겠습니다.”

그려러니,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들어온 복도를 따라 걸어 나가기 시작한 두 사람.

이들을 저지 했던 출판사 직원은 뭔가 수상쩍은 표정으로 그들이 지켜보던 사진과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번갈아 보더니 소리쳤다.

“헤이, 헤이! 이봐요. 잠깐...!!”

출판사 내에서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듯 보이는, 덩치 큰 이 노인 직원은 나가려는 세현과 해인을 불러 세웠다.

“예? 왜 그러세요?”

“오...! 호... 혹시... 한국 작가... 임형우씨... 아드님? 근데, 여기...수상...을 하러 왔다고요??”

“아...”

해외에 나오면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소설의 영향력이 큰 지역에 오니 어쩔 수 없었던 듯, 세현은 외국인에게 조차 금새 ‘작가의 아들’임을 들켜버렸다.

늘 지나치며 보이던 사진 속의 모습과 닮아서 일까.

당당하게 상을 거머쥐어, 수상까지 하러 온 마당에, 소심하게 감출 것이 없다고 생각한 세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직원에게 이야기 했다.

“예. 제가 지금 이 근처에 살아서 한국 수상식에는 참석을 못했거든요. 프랑스 수상자들 수상 끝난 뒤에 이곳에서 받을 수 있게 사정 봐주시기로 하셨습니다만...”

“아, 정말 임형우씨 아드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소문이 돌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수상까지 하실 줄은...!"

직원은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사무실 사람들과 무언가 긴밀한 회의를 하는 모양이었다.

세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해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본인도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저, 잠시 이쪽으로 좀 와주시겠어요?”

5분 정도의 내부 이야기를 마치고 노인 직원은 두 사람을 사무실 안으로 불러 사원들에게 소개했다.

“임형우 작가님의 아드님입니다. 그리고 옆에 분은...?”

“제 여자 친구입니다. 출품한 작품에 일러스트를 그려주기도 했고요.”

“아, 그러시군요. 그나저나 역시 작가님 아드님답게 좋은 문장력을 물려받으신 모양입니다. 출품하실 땐 필명으로 등록을 하셨나 보네요. 저희 쪽에서 아무런 정보가 없었는데...”

“예, 필명 ‘해세’로 등록 했었습니다. 근데...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자신이 작가의 아들이라 한들, 이건 대체 무슨 상황 이길래, 이렇게 사무실까지 불러내 이것저것 추궁해대는 건지, 

세현은 슬슬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저...오늘은 수상식에 참석하러 온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식의 인터뷰는 왜 하시는 겁니까? 수상자들이 다 해야 하는 절차 입니까? 더군다나 저는 한국인인데...”

세현의 뭔가 불편해 보이는 말투에서 직원들은 뭔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함이 느껴지기라도 했는 지, 곧 한국 쪽의 본사와 연락을 취하고는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을 소환했다.

“임형우 작가님 아드님이시라고요, 반갑습니다. 저는 프랑스 지부의 기획팀장으로 있는 이미연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불편한 눈초리의 세현. 
옆에서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아 안절부절하고 있는 해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필명으로... 접수해 주셨네요. 저희 쪽에선 전혀 몰랐습니다. 아드님이 이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셨으리라고는...”

“그게 문제가 됩니까? 임형우 작가의 아들이면... 수상이 불발되기라도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런 거 절대로 아닙니다. 모르게 지원해 주시고 실력으로 이 자리에 계신 걸요. 다만, 저희 쪽에서 부탁드려야 될 게... 하나 생긴 것 같아 그렇습니다.”

“뭐죠?”

불만 섞인 표정으로 질문을 하며 세현은 사무실 내의 직원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작가의 아들’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난 이후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달라진 눈빛들. 

소싯적부터 그렇게도 싫어해 피하고 싶었던 시선들이건만, 정작 글의 세계로 들어오니 더더욱 피할 수만은 없는 모양이었다.

“‘해세’작가님의 실력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거듭 말씀드리는 거지만, 작품으로만 선발 되신 겁니다. 다른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근데 임형우 작가의 아드님이시니... 저희로선 조심스러운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

“저희는 전혀 그럴 의도도 없고, 생각조차 한 적 없는 포인트이지만, 수상자 중에 ‘임형우 작가의 아들이 있다’ 라는 것이 외부로 퍼질 경우, 쓸데없는 의혹에 휘말릴 가능성이 없지 않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저희 출판사의 경우, 8할 이상이 임형우 작가 덕에 일어선 곳이라서요.”

돌아가시고 나서도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는 구나 싶어 순간 밖에 걸린 사진 속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진 세현.  

“저도 열심히 살았고, 제 힘으로 일어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필명으로 접수하고, 이렇게 상을 받게 된 건데, 뭐가 문제입니까? 그럼, 지금 저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세현이 격앙된 목소리로 한국인 직원을 다그쳤다. 해인은 더 흥분하려는 세현을 옆에서 계속 말리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수상이 취소되거나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건... 오늘 방송으로 나가는 시상식에서는 좀 정체를 숨겨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필명으로 수상하실 거고, 저희 쪽에서의 활동도 물론 보장될 수 있습니다. 

좀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이해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격앙된 세현의 앞에서 전 직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하고 있는 상황. 여전히 화는 가라앉지 않은 채  세현은 이 상황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좀처럼 동요할 줄 모르던 세현의 초조함에 떨리는 동공을 목격한 해인.

“저, 잠시만요, 저희끼리 잠깐 얘기 좀 하겠습니다.”

제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는 세현을 억지로 돌려세우며 해인이 말했다.

“임씨, 임씨...!! 흥분하지 마!! 출판사 측에서는 만에 하나를 대비하자는 거잖아...!!  저쪽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어떻게 해... 상 자체가 취소된다는 것도 아니고... 오늘만 나서지 말라는 거잖아. 

방송타면 얼굴이 세상에 다 퍼질 텐데... 한국에서 임씨 아는 사람들이 가만있겠어? 솔직히 오늘만 지나면 작가 얼굴 알릴 일이 얼마나 있겠냐고..."

“후우...미안해, 해인아... 좋은 날인데, 무조건 좋아야만 하는 날인데...”

“됐어, 그러게 작가 아들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지 뭐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오빠.”

“고마워 해인아...근데... 음... 오빠...좋다...앞으로도 그렇게 불러주라.”

“젠장, 말이 헛 나왔네. 알았지? 그럼 내가 대리로 상 받아올 테니까 뭐라고 얘기할지나 대충 적어 줘봐.”

가만히 생각하다 눈앞의 해인을 슥 올려다보고는 가볍게 볼을 꼬집는 세현.

“하이구, 이뻐라...어디서 이런 걸 만났누...”

“아얏! 화장 번져! 놔!”

세현 조련에는 역시 해인인지, 해인의 몇 마디에 금새 화가 누그러진 듯한 세현. 

보다 침착해진 말투로 기다리던 직원들에게 이야기 했다.

“흠, 흠...! 뭐... 출판사 측 사정이 그러시다니 말씀하시는 데로 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 대신에 저랑 협업했던 이 친구가 받는 것도 의미가 있어보이기도 하네요. 식장에선 이 친구가 대신 수상하는 것으로 할게요.”

“예! 감사합니다. 해세 작가님!! 저희 쪽 사정을 고려해주셔서...!!”

“아! 그리고 말이죠...!!”

“네?!”

세현은 뒤에서 화장을 고치느라 정신이 없는 해인을 가리키며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이 친구...! 꼭 기억해 두세요..!! 앞으로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친구니까!! 이름은 이해인 이에요!!”

놀라서 화장품을 떨어뜨린 해인. 
세현의 등짝을 후려치며 다그치며 속삭였다.

“미쳤어??!! 뭐야 뭐!!! 어머, 어머...미쳤나봐!!”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해인에게로 몰리자 어색한 미소로 아무 일 없던 척 하는 해인.

“그러시겠죠. 소설과 함께 인정받은 일러스트를 그리신 분 일 텐데, 꼭 기억하겠습니다. 아무튼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끈 달아오른 창피함에 얼굴을 푹 숙이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는 해인. 세현은 그런 해인을 뒤따라갔다.

“아아아악!!”

사무실 바깥으로 한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출판사의 안쪽으로 이어진, 외부와 바로 연결된 그리 크지 않은 강당에는 무대 설치를 마친 모양이었다. 

예정시간이 되자 몰려들기 시작한 출판사 관계자들과 수상자들의 가족들 포함, 구경꾼들.

소규모로 복작 복작댔지만 그리 크지는 않은 규모에 모인 관객들의 수보다 많이 모여있는 듯한 기자들과 카메라들. 

세현의 손을 잡고 있던 해인의 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아... 괜히 대신 받겠다고 말했나봐...너무 떨린다...”

“내가 옆에 같이 있어주고는 싶은데...”   

세현은 미세하게 느껴지는 떨리는 잡은 손을 홱 끌어당겨 해인을 꼭 안아주었다.

“괜찮아, 떨지 말고...우리 오늘 좋은 일로 온 거라고... 고마워...!! 부탁할께."

10명 가까이 되는 프랑스 수상자들 옆에서 계속해서 대기하던 해인과 세현. 

그들의 수상과 소감이 끝난 후 긴장과 떨림을 안 은 채, 해인은 세현이 급하게 써준 멘트를 들고 무대 단상으로 올라갔다.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공격적으로 들이미는 카메라 렌즈들.

해인은 살짝 겁을 먹고 수상자 대기 열에서 해인을 기다리는 세현을 바라보았다. 한쪽 눈을 찡끗 감아 보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세현. 

해인은 한번 고개를 끄덕인 후, 세현이 써준 멘트를 차분하게 읽어갔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도 몰라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저 써온 종이만을 응시해가며 또박또박 낭독을 끝마친 해인은 급히 무대에서 내려오고자 했다.

‘아, 맞다...! 근데 이거... 너무 내가 작가 본인인 것 같은 멘트잖아...’

해인은 후다닥 다시 무대로 돌아와 사정 때문에 대리수상을 했다는 사실을 추가해서 말했다.

‘이 정도... 말하면 됐겠지...?’

이 짧은 순간에 기진맥진해 돌아온 해인과 하이 파이브를 나누는 세현.

“잘했어...!! 해인이... 수고했어, 수고했어...!! 어이구 예쁜 것...!! 자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출판사의 제안대로 수상의 모든 절차를 마친 해인과 세현은 아비뇽의 번화가로 나아갔다.



***




"어이, 카와모토. 정말로 전속 화가 한명 충원 된 거 맞는 거지? 처음에 약속했던 거랑 다르면 곤란해...!”

"에헤, 그렇다니까! 우리 작업실에서 사무 일보면서 남은 시간에 그림 그리던 아가씨, 내가 포섭했다고!! 계약서까지 썼으니까 이젠 같이 하는 거야.”

작업실과 쭉 함께 해 오던 갤러리의 담당자와 단 둘이 만나고 있는 카와모토.

들키면 안 되는 무슨 일이라도 꾸미고 있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아는 사람이 없는 지 조심하는 눈치였다.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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