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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Oct 31. 2017

우연히 그곳에서...<66화>

[ 제66화 _ 에잇, 또 내가 나서야 돼?]


“ 카와모토, 우리 갤러리 계약조건 잘 기억하고 있는 거지?”


작은 동네 아를, 그 안에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장소에서 만난 갤러리 오너와 카와모토.


장소 내 조명만큼이나 어두운 표정과 무거운 공기로 심각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분위기였다.


갤러리 오너는 최근 술렁이기 시작한 카와모토 작업실 화가들의 동요와 교체 건에 대해서 카와모토에게 추궁을 해대는 중이었다.


“아니, 화가 5명이 같이 수수료에 꼬박꼬박 임대료 내고 있는데 뭘 가지고 자꾸 그러는 거야?”


“장소 제공에, 이리저리 찾을 필요 없이 갤러리까지 전담해 주고 있는데, 비용은 제 때에 딱딱 넣어 줘야지. 서로 좋자고 시작한 건데...!”


해인이 작업실 내 정식화가가 된다고 결정하기 전, 작업실을 떠났다는 한 사람의 부재로 인한 임대료 체납이 문제였던 모양.


“그래서 새로 온 화가한테 돈 받아서 오늘 이렇게 전달하러 온 거잖아.”


늘 무언가 수상쩍은 거래가 있는 듯 했던 카와모토와 갤러리의 관계.


그 사정은 몇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



“이 작품은 영 색감이 별로군 그래...”


“이건 주제 의식이 너무 옅어...”


누추한 행색으로 프랑스 아를의 한 갤러리에 찾아와 혼잣말로 뭔가 궁시렁 대던 카와모토.


당시 갤러리 오너는 혼자 찾아와 그림을 감상 중인 카와모토에게 다가가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해주려 하였다.


물론 고객 유치를 위한, 판매의 목적이었다.


“어떤 걸 말하려는 지는 알겠는데, 제 생각에는 더 강렬하게 색을 먹였어야 해요, 이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면 좀 더 과감하게 여백을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이 부분은...”


오너는 그림을 좋은 방향으로 해설해 판매로 이어보고자 했는데, 이 작품, 저 작품 꼬투리를 잡으며 직접적으로 그림의 불만을 늘어놓던 카와모토.


거만하게 목을 빳빳이 세우고 오너보다도 아는 척을 해대며 투덜대는 모양이라니.


갤러리 오너는 '뭐야, 이 자식...' 싶다가도 뭔가 미술작품을 대하는 순수한 열정은 보이는 듯, 오히려 그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림을 잘 아시나 보네요. 관련 지식도 많이 알고 계신 것 같고... 혹시... 뭐하시는 분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저요? 전 화가입니다. 곧 이 근처에 와서 그림도 그릴 예정이고요.”


“아, 화가셨군요. 동양 분 같은데... 여기 아를에 오셔서 그림을 그리시겠다고요? 왜죠?”


카와모토는 여전히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배우고 그려도, 참 끝이 없죠. 그림이란 거... 제 나라 일본이란 땅은 저의 배움에 있어 너무 좁습니다. 예술의 나라, 빠른 시일 안에 이 프랑스에 와서 이 공기를 느껴가며 그림을 그릴 겁니다.”


오랫동안 갤러리를 경영하던 오너 입장에서는 이런 넘치는 자신감으로 주워들은 지식만을 내세우는 부류들을 너무나도 많이 만나왔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없이 허세만 가득하고 실속 없이 입만 산 녀석들이 대부분.


분명 이 젊은 남자, 허세 넘치고 건방져 보이기까지 한 인상이었지만, 날카로운 눈빛, 확신 가득한 태도에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얼마 전부터 불어 닥치기 시작했던 이 지역 미술 갤러리 운영의 경영난을 타파할, 좋은 아이디어로서 이용할 수 있을 듯 해, 갤러리 오너는 카와모토에게 흥미를 가지고 더 접근했다.


“화가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요. 물론 처음 뵙는 분께 이런 제안... 좀 황당하실 순 있겠지만... 혹시 다시 이쪽 오시게 될 때 저희 쪽하고 같이 일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예? 일을 요? 무슨...?”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에 피어나는 화색을 애써 감추어 가며  카와모토가 되물었다.


갤러리 오너의 제안은 5명 정도가 팀으로 작가 그룹를 만들어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작업실과 갤러리 독점권을 갖도록 도와준다는 내용이었다.


“음... 다른 조건은요?”


“예, 뭐 일단, 외국 분께서 들어오셔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하는 불편을 덜어드린다는 차원인거고,


장소를 빌려드리는 만큼 시세만큼의 임대료와 함께 갤러리 제공 그림들의 수수료 정도를 저희가 갖게 되는 정도입니다.”


“화가 5명이요...? 음... 그런데 왜 갑자기 저한테 그런 제안을 하시는 지요...”


“예술하는 사람은 예술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죠, 말씀하실 때의 확신 같은 게 느껴졌달까요. 큰 꿈을 가지고 계신 분 같아, 서로 좋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은 겁니다.”


"작업실을...임대해 주신다고요, 그럼 이 갤러리 근처 어딘 가에 공간이 있다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사실 작업실로 따로 쓰던 공간이라기보다, 갤러리 작품 보관 창고 비슷하게 사용하던 곳인데 거기를 대여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갤러리의 창고라...


'어떻게든 돈 되는 장사를 하려고...'


라는 불순한 의도가 의심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에,


갤러리 오너의 노련한 표정관리에서 묻어나는 신뢰감이 느껴져서 였을 까.


카와모토는 막연하게 사전답사를 위해 들른 유럽에서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얻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2년 안에 프랑스 아를지역으로 5명의 화가가 팀을 모아올 수 있으면 성립된다는 조건.


카와모토는 조심스럽게 긍정의 답을 내놓은 후, 이러저런 세세한 계약 조건들을 상담하고는 바로 고국으로 돌아와 팀을 꾸릴 준비를 했다.


금전적으로도, 멤버 충원에 있어서도 뭔가 서두르지 않으면 기회가 없어질 것만 같은

초조함.


일단 일본으로 돌아온 카와모토는 꾸준히 멤버 보강을 위해 발 빠르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일본에 찾아온 한 유럽인과 친분을 쌓고, 그의 소개로 유럽각지에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 몇 명을 소개받은 카와모토.


이제는 초기자본을 준비하는 일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러기를 1년여.

한 가지 만을 바라보며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살아 조금은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시점이었을까.


카와모토는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끝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떨어뜨린 듯한 핸드폰을 줍게 되었다.


뭔가 바쁜 듯 서두르며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향하고 있는 한 젊은 여성이 발견하고 그녀의 것이라 판단해 그녀를 쫓았다.


카와모토는 여성을 불렀지만 여성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빠르게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잠시 뒤 주운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 카와모토는 근처까지 직접 온다는 말에 무심하게 그녀를 기다렸었다.





***





일본.

야마다와의 사업 진행을 위해 오고가는 사람들의 동선과 점포의 위치, 구조, 공사 및 인테리어까지 미리 꼼꼼히 준비하는 아영.


미리 터를 잡았다고 하는 한국인 운영 점포에도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쭉 해오던 많은 일들은 바쁜 사업 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줄일 수밖에 없었다.


"아영씨, 여기서 좀 더 일 해주면 안 돼? 급여도 직급도 올려 줄 수 있는데...!"


눈에 띄는 외모만큼이나 똑 부러지게 일을 잘 해오던 아영 덕에 가게 매출에 크게 기여했던 것인지,


아영이 일하던 가게들에서는 하나같이 아영을 쉽게 놔주지 못하는 듯 했다.


"아아...! 그래요, 매니져님...아니, 언니!! 몇 달 만 더 같이 일 해요...!!"


심지어는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 동생들마저 아영을 붙들고 있는 상황.


"아, 하핫...! 말씀은 감사한데 전부터 쭉 준비해오던 일 이라서요. 같이 하게 된 친구도 있고 해서..."


"그렇게 바쁜 거야? 보니까 아영씨 하던 다른 일들 많이 그만 둔 모양이던데..."


"그렇죠. 뭐... 아무리 몸이 부서져라 이일 저일 다 해보려고 해도 한계라는 게 있더라고요. 하루 주어지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예요, 요샌..."


"휴우...참 예전에 세현씨 있었을 때부터 두 사람 참 환상의 한국인 콤비라고 참 좋아했었는데, 이렇게 결국 아영씨까지 떠나는 구나... 그러고 보니 세현씨 하고는 연락해? 잘 있데?"


"예, 연락하죠...! 아, 세현이 작가 된 거 아세요?"


그나마 가장 좋은 조건 속에, 다른 일은 관두고 처음 세현과 함께 일했던 레스토랑에서만 일하고 있는 아영.


세현이 그만 둘 때에도 무척이나 아쉬워했던 레스토랑에서는 어떻게든 아영을 붙잡고 싶어 했지만 아영은 확고했다.


"이랏샤이마세!!"


아영이 퇴사를 한 달여 남겨 둔 어느 저녁,


세현 같은 훈남이 많다는 소문에 주로 여성들이 찾는 이 레스토랑에 흔치않게 젊은 남자 손님들이 들어왔다.


껄렁껄렁해 보이는 움직임과 스쳐지나갈 때에 살짝 풍기던 알코올 냄새로 어딘지 모를 불안감이 일던 분위기.


남자 손님들은 아르바이트생이 안내해준 자리에 앉아 가게 내의 이쪽저쪽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것 봐! 여기 괜찮은 애들 많이 온 댔잖아!! 이 근방에서 꽤 유명해!!"


"와, 진짜 손님들 3분의 2가 다 여자들이네...!"


"어떻게, 이번엔 네가 갈래?"


"뭘 또 나보고 가래!?"


주문도 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떠들어 대던 이 손님들.


여성들이 많이 찾기도 했지만 원래 레스토랑 분위기 자체가 각자 테이블에서 조근 조근 담소를 나누는 정도였기에


이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은 다른 손님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주문...결정하셨나요? 결정되시면 불러주세요."


남자 손님에게는 여자 직원이 주문을 받게 되어있는 것이 가게 내의 암묵적인 방침이었는지 시끄러운 이 남자손님들 앞에 선 신출내기 여자 아르바이트 생.


"여기 뭐가 맛있는데요? 처음이라 그러는데 메뉴 소개 좀 해줄래요?"


자기들끼리도 키득거리며 갖은 술수로 어리바리 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걸어보는 남자 손님들.


새내기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잔뜩 쫄은 상태로 늘 익혀온 메뉴 소개를 읊어댔다.


"저...저희는 파스타 전문점이라 다양한 종류의 소스와 면이 준비되어 있거든요 여기 보시면..."


물어 놓곤 듣는 둥 마는 둥, 껄렁대던 남자들은 누가 봐도 대충 정한 듯한 메뉴를 주문했다.


"후우...."


진땀을 빼며 주문받은 메뉴를 주방에 전달하러 온 새내기 아르바이트 생.


"됐어, 신경 쓰지 마. 메뉴 가져다만 주고 뒤에 혹시 뭐 이상한 행동하거든 내가 알아서 할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영은 여전히 쫄아 있는 새내기를 진정시켰다.


"오...오늘, 하필 점장님도 안계신데..."


"됐어, 이래 뵈도 알바 짬밥만 10년인데 저런 손님 많이 겪어봤어. 걱정 말고, 틈을 보이지 마 너도! 만만보이니까 더 그러는 거야, 저런 부류들은...!"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떠들어 대는 남자 손님들, 각자 개인적인 무용담을 늘어놓다가, 왜 이렇게 음식이 안 나오냐며 누구 들으라는 듯, 불만의 이야기마저도 대놓고 질러대기 시작했다.


"죄...죄송합니다. 곧 나갑니다..."


저자세로 대응하는 새내기 아르바이트생, 자그마하게 가게 내의 다른 손님들에게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심지어 짜증을 내며 가게를 나서는 손님들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흥, 저 핏덩이들, 자기네 집 안방 인냥 떠들어대는 군...!"


보다 못한 아영이 혼잣말을 하며 남자들로 테이블로 다가갔다.


"아, 언니...! 그러다 큰일이라도 당하시면 어떻게 해요, 제...제가 점장님한테 연락해 볼께요. 참으세요!!"


평소 올곧은 아영의 성격을 알던 주변 동료가 남자손님들에게 다가서려는 아영을 말렸다.


"아, 열차타고 몇 시간 걸리는 동네 간 양반한테 전화해서 뭘 어떻게 해? 저 남자들한테 전화 바꿔 줄거야? 우리 점장님이 좀 닥치래요! 하고? 걱정 마...! 나도 나갈 날 얼마 안남아 몸 사려야 되는걸 뭐..!"


동료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자 손님들 앞으로 다가간 아영.


레스토랑의 구석에서 일반 아르바이트생들과는 다른, 매니져 복장을 한 여성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자 남자들은 눈치를 보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저기,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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