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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Nov 07. 2017

우연히, 그곳에서...<68화>

[ 제68화 _ 허접한 히어로, 멘트 꼬라지 봐라... ]



“우와... 아주 겁나 싸가지 없이 얘기하네, 이 년이...!!”

워낙에 출중한 미모 탓에, 어는 곳에서건 매달리는 다양한 부류의 남자들이 있어 왔지만, 이렇게 까지 철없는 애송이의 들이댐이라니, 아영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아영의 약 올림에 제대로 말려들기라도 한 듯,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여자고 뭐고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막말이 오가며 손찌검으로까지 이어지려던 찰나.

“아...아영씨!! 괜찮아??”

순간, 어딘 가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늘 지겨웠는데, 이 날 만큼은 좀 반갑게 들린다.

무턱대고 달려들던 남자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때 멋들어진 백마 탄 기사라도 나타나 이 악당 놈들을 무찔러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덜덜 떨면서 벽에 몸을 반 쯤 숨기고 있는 야마다였다.

‘후... 나 저런 놈이랑 같이 동업해야 되는 거야...? 아닌가, 이 상황에서 이름 불러준 것만으로도 야마다 저 놈한텐 큰 용기라고 봐야겠네...’

“뭐...뭐야. 넌? 이 여자 아는 사람이냐?”

남자의 뒤편에 있던 일본인 패거리들까지 모두 야마다에게 집중하게 된 상황.

야마다는 조심스럽게 숨겼던 몸을 드러내며 아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 아영씨... 여기서 뭐해...? 이 사람들 아, 아는 사람들이야?”

“흥, 그냥 날파리 껴서 파리채 휘두르고 있는 중이야. 야먀다, 너야말로 여기 웬일이야?
오늘 만나기로 하지도 않았는데...”

아영의 지인이 나타났다는 것에 살짝 움츠려 들었던 남자는 모습을 드러낸 비리비리한 야마다의 모습에 금새 코웃음을 쳤다.

“뭐? 날파리가 껴?  저건 또 뭐야, 남자친구냐? 참 안 그렇게 생겨서 취향도 참 독특하다... 하필 차고 넘치는 일본 남자 중에 저런 비리비리 한 오타쿠 같은 스타일이냐... "

“이 여자, 괴... 괴롭히지 마!!”

예상치도 못했는데 앞에서 빈정대고 있는 남자를 향해 소리친 야먀다.

언제부터 여기 와있었던 건지, 아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나 있는 건지.

무엇보다 더 놀란 것은 또박 또박 발음한 한국어 외침이었다는 것. 당연히 못 알아들을 줄 알고 앞에서 한국어로 비아냥대던 남자는 흠칫 놀랐다.

누구보다 더 놀란 건 아영.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 여자, 괴롭히지 말라고!!”

“어쭈, 한국말 할 줄 아네? 넌 뭐야, 아는 사이인 것 같긴 하다만, 진짜 이 여자 남자친구라도 되는 거냐?”

“나...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다!!”

“뭐?”

아영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저 자식 어디 멜로 드라마나 보면서 한국어 공불했나... 어디서 ‘소중한 사람’ 드립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온 말이었는지, 야마다 역시 괜히 초조해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하핫!! 뭐야, 지금? 드라마 찍는 거야? 자, 파리 취급당하고 있는 김에 어디 에프킬라 한번  뿌려 보시지, 그럼!!"

여전히 분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는 듯, 뒤늦게 나타난 야마다에게 까지 분풀이를 하려는 남자.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일본친구들까지 합세해 야마다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에요! 여기!!"  

야마다는 점점 가까워 오는 이 양아치 집단 쪽을 바라보며 소리 질렀다.

"응?! 뭐야, 이 자식, 도발하는 거야?"

야마다의 외침과 동시에 양아치의 뒤쪽 방향, 저 멀리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휘슬 소리.

경찰로 보이는 복장을 한 남자들 세 명이 야마다의 소리를 듣고 달려오고 있었다.

"어? 뭐야? 신고했나? 왜 경찰들이 이쪽으로 왜 오는 거야?"

"야, 몰라 일단 튀어!!"

"야, 우리는 뭐 잘못한 것도 없..."

"쳇, 몰라, 나 먼저 간다!!"

점점 가까워지는 경찰들에 뜨끔했는지 혼비백산 흩어져버린 양아치 패거리들.

경찰들은 제 풀에 도망치는 이 무리들을 쫓았다.

야마다는 다가온 경찰 한명과 사건 경위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아영 쪽으로 다가왔다.  

팔짱을 끼고 모든 것을 지켜보다가 눈을 가늘게 흘기며 야마다를 쳐다보는 아영.

"니가 경찰한테 일렀냐? 누가 일본 놈 아니랄까봐... 꼰지르긴...!"

"뭐, 아까부터 숨어서 보고 있었는데 괴롭힘 당하고 있었던 거 맞잖아?! 내가 어쩌지 못하는 거면 공권력이라도 동원해야지 어떻게 해..."

"보고 있었다고? 그럼 진작에 좀 나타나던가! 뭐 경찰까지 부르고 그래? 내 선에서 해결할 저런 양아치들을...!“

"저쪽에서 막 친한 척 하길래 처음엔 그냥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 좀 지켜보다 아니구나 싶어서 신고 했지, 뭐..."

툴툴대면서도 이제 다 해결이 된 듯한 홀가분함에 몸을 툭툭 털어 보이는 아영.

"아영씨, 근데 정말 어디 다친 데 없는 거지? 여기 근처 인 거 보니까 저 놈들 아영씨 일하는 가게에 들어와서 행패 부리고 그런 거 아냐?"

"됐어! 알바 짬밥 10년에 내가 저런 애송이들한테 당할 소냐!? 그리고, 외모 출중한 사람들은 대쉬 들어올 때 깔 방법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 거야!!"

"뭔데?"

"넌 몰라도 돼!! 써먹을 일 없을테니...! 너...그나저나 한국말 언제부터 했어!? 원래부터 알았는데 나 속인거야?"

"아, 아냐...그냥 조금...아영씨 만나고 부터 공부했어, 필요할 것 같아서... 근데 아직 잘 몰라... 어렵더라고.”

아영은 야마다를 의심스럽게 훑어보며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하필이면 처음 듣는 한국말이 간지럽게 '소중한 사람'은 또 뭐야...어우...!! 간지러워 어어우...!!"

"어?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괜히 한국말은 공부해 가지고 혼잣말도 못하게 만들어... 근데, 왜 왔어?"

"아...어, 사업장 위치로 괜찮은 데 하나 봐둔 데가 있어서 괜찮으면 같이 갈까 하고. 여기서 별로 안 멀어."

"일인데 뭐, 가봐야지 어쩌겠어, 가 빨리."

이날따라 조금은 늠름해 보이는 야마다를 쫓아 따라가는 아영.

'한국어는 왜 공부하는 거야, 멍청한 게...'

같이 이동하며 조금 전의 일들을 떠올리다 숨어있던 야마다가 난입한 시점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풋 웃음이 터져 나왔다.




***




부정에 부정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후련하지 않은 답답한 마음에 기태는 집을 나섰다.

근황이 궁금했다면 본인에게 바로 연락해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전화기 너머로  

'너 혹시 공모전 수상자냐?'  

라는 질문 뒤에 나오게 될 그 어떤 결과도 사실은 받아들이기 두려웠다.

또 불안한 기운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항상 자신의 좋지 않던 예감은 맞아 떨어지지 않았던가.

이번만은 틀리기를, 틀리기를 기대하며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시간을 끌고 있는지 모른다.

‘왜 프랑스의 한국인 대리 수상 하는 자리에 그 녀석이 보였던 거지?’

‘대신 상을 받은 사람이 작품의 일러스트레이터랬잖아? 어차피 대리로 수상하는 거 였으면 한국의 누군가한테 받아달라 하면 될 걸, 왜 굳이 프랑스까지 연결 하려 했던 것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풀리지 않는 의문 투성이었다.

밖으로 나와 정처 없이 걷던 기태.
아마도 지금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무의식에 영향을 주었을까.

"아직 여기 사나..."

기억에 이끌려 기태가 와 있는 곳은 학창시절 그렇게도 자주 놀러갔었던 세현의 집 앞이었다.

물론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게 된 대학생의 어느 시점부터 발길이 뚝 끊기긴 했지만.

‘참 나... 지금 봐도 이렇게 큰데, 옛날에는 어떻게 보였을 까...’

기태는 세현의 집 대문 초인종 앞에 섰다.

'그냥 이거 누르고 근황을 확 물어봐? 아니지...여긴 안온 지 벌써 십년이 되어 가는데, 주인도 없는데 친구라고 불쑥 찾아가면... 그리고 세현이 할머님이 날 알아보실 리가 없잖아...’

그렇게 십여 분을 고민하던 기태는 결국 멀찌감치에서 집안을 힐끔힐끔 훔쳐만 보다 결국 그 방법을 포기했다.

"후... 어차피 사실이라면 나중에라도 알게 될 건데 그냥 전화를 해...? 끙... 아냐..."

가끔씩 세현에게 푸념하듯 연락이 오긴 했지만 늘 퉁명스럽게 대했던 기태,

그나마 한참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수상여부를 물어보려 먼저 연락을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고민 때문에 마른 침을 꿀꺽 꿀꺽 삼키느라 목마름을 호소하던 기태는 결국 한참 만에 자리를 떠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를 구입했다.

"천 오백원입니다."  

"예, 아, 앗...!"

정신마저 놓고 있던 건지, 지갑을 꺼내다 그만 지갑을 떨어뜨리고 만 기태.

그 바람에 지갑에 꽂혀있던 카드며 명함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와 모두 바닥에 흩뿌려졌다.

"이런, 이런...!"    

서둘러 떨어진 것들을 주워 담았다.
내용물 중의 대부분은 받아놓기만 하고 꺼내 본적 없는 명함들이라 색이 바랠 정도로 낡아 있었다.

그 중 유독 눈에 띈, 아직 낡지 않은 빳빳함을 유지하고 있던 명함 한 장.

이름만 확인했을 때엔 얼핏 누군지 떠오르지도 않는 걸 보니, 그저 오며가며 스치는 인연 정도 였겠거니...하다가 회사명을 보고 깨달은 명함의 주인...!

"이...이거 소현이 남자친구였잖아, 세현이 다니던 회사 같이 다녔었다던.. 가만...혹시..."

이래도 될까 싶기도 하지만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소현이가 남자친구한텐 다 얘기하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세현이랑 아는 사이기도 하다니까 소식을 궁금해 했을 수도 있겠고...!'

떠오르는 잔머리에 이럴 때에는 망설임이 없는 기태. 당장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옮겼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아, 예...! 저번에 소현이랑 같이 해서 한번 뵈었었죠? 저 한기태라고 합니다."

"아, 한기태 작가님...!! 잘 지내셨어요? 어쩐 일로 이렇게 전화를 다 주셨어요?"

기억도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와는 달리 의외로 반갑게 맞아주는 전화기 너머 소현의 남자친구.

기태는 상대방의 우호적인 리액션에 더더욱 용기를 얻어, 뻔뻔하게도 바로 질문을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저...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전화 드렸습니다."

"예? 소현이가 아니라, 저한테요? 음... 대답해드리고 싶어도 제가 뭐 아는 게 있을 지..."

기왕에 엎질러진 물이었다.
기태는 잠시 뜸을 들이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음... 세현이 하고... 이 전에 같은 직장을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물론 지금도 다니시는 걸로 알고 있고...”

“아, 세현 주임님 말씀이군요. 예, 맞습니다. 그 때 말씀 드렸다 시피...”

“예, 제가 사정이 있어서 세현이 하고 직접 연락을 할 수가 없는데요, 혹시 이 후에 세현이 소식을 더 들으신 게 있나 하고 여쭤보려고 연락 드렸습니다.”

비밀이라거나 조심을 해야 한다거나 라는 말까지는 전달받지 못했던 건지, 소현의 남자친구는 별 대수롭지도 않다는 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태가 노리는 바 이기도 했다.

“뭐 저도 직접 전해들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회사 관두시고 작가수행을 떠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다른 동료 말로는 한국, 일본에서 계속 공부하다가... 프랑스로 간 것 같다고 얘기하던데요.”

“프랑스요? 왜 프랑스로 갔는지는...”

“하핫, 그거야 제가 알 수 없죠. 아무래도... 아버지 영향이 아닐까 하고 추측만 하죠. 근데 실제로 [그들만의 세상]이 집필할 때 같이 있다던 장소이지 않습니까. 무슨 의식 같은 의미일 수도 있고...”

계속해서 눈을 의심하려했지만 ‘세현이 지금 프랑스에 있다’면 인터넷 기사 속에서 발견했던 세현과 닮은 사람은 세현임이 명확해 졌다.  

“그리고... 혹시 소현이한테 이번 공모전에 대해 들은 바 없으신가요? 남자친구 분도 문학에 관심을 꽤 많으신 분 같아서...”
  
“아, 공모전이요? 뭐 최근에 소현이 만날 땐 그 공모전 얘기를 안 한 적이 없다고 해야 할 정도랄까요, 하하... 자부심이 대단해요...! 너무 많이 얘기하죠!”

“그렇겠죠, 연인이신데... 혹시 이번 한국인 수상자에 관한 것도 뭔가 얘기한 적이 있나요?”

기태는 ‘소현이가 이 얘긴 기밀이라고 안 해 주더라’ 라는 얘기는 쏙 빼놓은 채, 정말 알고 싶은 어린아이가 질문을 하듯 소현의 남자친구에게 미끼를 던졌다.

“아,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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