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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Nov 10. 2017

우연히, 그곳에서...<69화>

[ 제69화 _ 악마는 원래, 아무도 모르게 깨어나는 거야...! ]


“아 한국인 수상자 말이죠...! 역시, 될 사람은 되는 것 같아요."

“음... 그게 무슨 말이죠? 될 사람은 된다...라니..."

“필명을 쓴 것도 그렇고, 아직 밝히긴 조심스러워 하는 모양이지만, 기태 작가님은 잘 아시는 분이니 벌써 연락이 닿아 아시지 않나요? 세현 주임님 상 받으셨잖아요.”



















잔인하게, 그렇지만 너무도 간단히 몇 초만에 기태에 달팽이관에 정확하게 꽂히고만 사실 인증. 의심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을 정도로 명확해진 상황에 기태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잔꾀를 쓰고 어색함을 무릅써가며 소현의 남자친구에게 직접 전화까지 했건만, 결국 맞이한 사실이 불길한 예감의 확신이라는 잔인한 결과라니...

“그... 그게... 사실입니까? 그... 프랑스에서 수상했다는 수상자가 세현이...에요?”

기태의 반응에 순간 ‘아차’싶은 소현의 남자친구. 
늘 들어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여자친구의 회사 수다였기에 그저 가볍게 들어왔던 건 지,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아버리고 만 상황.

입밖으로 꺼내고 나니 뒤늦게 전화 상대인 기태 역시도 공모전 참가자 였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심지어는 공모전의 제출 날에 처음 기태를 만나 식사를 하며 응원을 했던 자신의 모습까지.


“아... 그... 그건, 제가 소현이 한테 듣기엔 앞으로 거기에서 공모전도 많이 개최할 예정이라니까, 작가님께도 반드시 기회가 오리라 믿습니다.  원래 ...쉽지 않은 거 잖아요.”

소현의 남자친구는 뒤늦게 사태를 수습하려 먹히지도 않을 변명을 늘어놓았다. 
누가 연인 아니랄까봐 변명소재까지도 같은 이 커플.

“어려운... 거죠... 이건 뭐 보통 어려운 게 아닐 텐데... 이제 글 쓴다고, 작가랍시고 세상 첫발 내민다는 녀석이 그걸 이뤘네요... 그것도 한 큐에...”

주절주절 자신이 뭐라 떠들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듯,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생각을 필터링 없이 입 밖으로 쏟아내고 있는 기태.

예상하지 못했던 시크한 반응에 소현의 남자친구도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음...아... 그... 처음... 들으신 건 가 봐요... 전 당연히 아시는 줄 알고... 세현 주임님은... 아무래도 유명 작가 밑에서 커온 환경 영향이 크지...않을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출판사 쪽에서도 조금이라도 의식은..."

기태에게 실언을 해버린 듯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 아무 근거도 없이 내뱉은 얘기들.

절망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기태는 그 멘트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음... 잠깐만요!! 좀 전에 수상자가 필명으로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고 하셨었죠?”

기태는 당연히 정답을 알 리 없는 소현의 남자친구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아, 신분 보호야 원래부터 공모전에 명시되어있던 사항...이지 않았었나요? 정체를 밝힌 다른 수상자도 있는 걸 보면, 그건 본인 선택...같은데요?”

“혹시...의도적으로 그랬던 건...”

“음...아 작가님, 뭐 제가 알고 있는 건 이 정도...까지 같고요. 저는 일이 좀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소현과의 통화와 비슷하게 소현의 남자친구 역시도 더 이상 일이 커져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서둘러 통화를 정리했다.
 

저 커플, 소현은 출판사의 기밀사항들을 자기 남자친구한테만 몰래 발설했음이 틀림없다. 

후에 저 남자가 그 사실을 타인에게 얘기한 것을 들켜버린다면 소현에게 꽤나 시달림을 당할 테지만, 그딴 건 지금 기태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기태의 이제까지의 불안감이 바로 앞의 현실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함에 소현의 남자친구와의 통화가 끝났지만 기태는 아직까지도 전화를 귀에 댄 그 자세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번 만큼은 알코올도, 같이 원통해 해줄 친구 만식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뇌에서는 억지로 참아낼 것을 명령했지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기태.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분명 질투, 시기...정도의 단어로 설명이 되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어디 백날을 해 봐라! 성공할 수 있겠나!!”

세현이 기태에게 ‘작가가 되고 싶어’라고 입장을 밝힌 순간부터, 조금은 우위에 서서 늘 세현에게 훈계조로 ‘포기’를 종용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던 기태.

그럴 때마다 세현은 자신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별다른 불만 없이 기태의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었다.

그렇게 자신이 바라고 원하던 작가로서의 성공은 어떤 것인지. 열정만으로 살아 온 자신의 성공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호기심에 뒤따라온 주제에 벌써부터 자신을 따라 잡는 것 같은 친구를 지켜봐야 하는 심경이라니. 

축하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추호도 그럴 마음 없었다. 한참을 넋이 나가 있다가 냉정을 되찾은 듯한 기태의 눈빛.

[ 짝!! 짝!! ]

정신을 차리자고 , 이럴 수는 없다고,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자며 자신의 볼을 사정없이 때려댔다.

'그래, 이건 말도 안되는 거야...!'

여전히 이를 득득 갈며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한 기태.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그들만의 공모전' 이번 수상작들이 세상에 공개되는 날.

어마어마한 규모에, 번역 작업까지도 무려 1년여가 소요되었던 공모전의 마지막 단계였다.

출판사의 홈페이지는 마비가 올 만큼 많은 방문객들이 들끓고 수상자 발표일보다도 더한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조금의 웃음기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태의 표정.

누구보다도 먼저 홈페이지를 찾아 가장 먼저 확인한 작품은 "해세"라는 필명으로, 참가자 전원을 농락했다고 생각하는, 세현의 작품이었다.

조금의 웃음기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 날카로운 눈으로 문장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기태.

"흥, 이런 구태의연한 얘기가... 다른 신선한 소재의 이야기들을 제치고 올랐단 말야? 말도 안되지..!"

감동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그저 막무가내로 본문만 읽어 제낀 기태.

아니, 사실 처음부터 순수한 감상이 목적이라기 보다 꼬투리 잡기에 더 가까웠는 지 모른다.

"이런 게... 세계에서 몇 작품 안에 들만한 작품이라고? 웃기고들 있네...! 그래  이제 뭐 거의 확실해졌네...!"


(부르르르르!!)
 
"예, 여보세요?"

"예 연락주신 본인 되십니까? 직접 좀 만나뵙고 싶은데, 언제 시간 괜찮으십니까?"

"그래야죠, 한 시간 정도 뒤에 그 카페에서 뵙겠습니다."

자신이 투고 중인 잡지사 관련사람들, 혹은 그다지 원하지 않던 만식과 같은 친구들 이 아닌, 오래간만에 외부인을 만나는 자리.

기태는 신뢰감을 잃지 않게 평소의 후줄근한 옷차림을 벗어 던지고 제대로 외출복을 챙겨 입고는 약속 장소로 나아갔다.

조금 일찍 나왔다고 생각 했거늘 기태보다도 먼저 와 카페에서 진을 치고 있는 이 외부인들.

"일찍 오셨네요."

 "아,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  




프랑스 아를.
세현은 시상식 이후 계속해서 집필 중이던 장편소설을 잠시 뒤로 미루고 수상작들의 감상에 심취해 있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날고 기는 양반들은 많구나...내가 어떻게 상은 탔나 몰라... 역시 그림 덕인가 보다...!"

다양한 문화권의 다양한 소재, 그리고 상상 이상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는 중이었다.

"임세현이, 계속 딴짓 할거야!? 확 월급 깎아버릴까 보다!"

"앗, 죄... 죄송해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시간에도 차고 넘치는 100여개의 수상작들을  몰래 찾아보느라 일에 소홀했던 세현.

주인 아저씨는 오랜만에 보는 세현의 농땡이가 괘씸하다기보다 신기했다.

"뭘 이렇게 들여다 보고 있어? 완전 넋이 나가 가지고...가게에서 이상한 영상을 그러고 대놓고 볼 리는 없을 거고..."

주인 아저씨는 세현이 급하게 일에 투입되어 미처 닫지 못한 인터넷 창을 들여다 보며 투덜댔다.

"호오... 공모전 수상작들 공개가 된 모양이네...! 저 녀석은 하는 짓도 어떻게 지 애비랑 이렇게 똑같냐..."

자신의 친구였던 세현 아버지의 영향일까, 처음 공모전 정보를 세현에게 주었을 만큼 문학에도 관심이 많아보이던 아저씨 역시, 하나 둘 수상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흠... 해인양 그림... 확실히 강렬하긴 해..."

"제 글은요?"

"음, 글은 뭐...응?!"

저만치 떨어져 음식을 서빙하던 세현이 어느새 옆으로와 아저씨의 혼잣말에 대꾸를 했다.

"이 녀석아! 이런 거 공개 됐으면 얘기나 해줘야지! 멍하니 정신 빠져있길래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아, 하핫 이거 공개 된 지 얼마 안됐어요, 먼저 읽어보고 좋은 거 추천해 드리려고 했죠...!"

"쳇, 짜식이 능글능글해 가지고...! 나도 눈 있다!! 노친네 취급 말아!!"

"예, 헤헤...!"

잠깐 손님이 비는 타임. 
나란히 컴퓨터 모니터를 지켜보던 세현과 주인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래, 임세현 작가님. 수상자가 되셨는데, 이제 어떻게 되는거야?"

"헤헤, 뭐 일단 그 출판사에 출간할 수 있는 특권 같은 게 생긴 셈이라네요. 뭐 흥행여부야 작가 나름이겠죠. 거기서 낸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닐테고..."

"하이튼, 머리들 잘 돌아가...! 작가에 삽화가에 각종 아티스트들까지 콜라보 시킨 공모전이라니."

"그렇죠, 생각하는 스케일이 다른 것 같기는 해요. 이건 뭐 거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같아요.”

아저씨는 가만히 세현을 쳐다보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다시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출판사에서... 수상할 때 너보고 공개석상에 서지 말라고 부탁하디? 혹시...?”

“엣?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해인이랑 둘이 같이 올라가려고 했는데 그런 말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아버지랑 관련 된 수상자라 많이 조심스럽다고...”

“해인양이 대신 받는 거 보고 그려러니 했지. 내가 그랬잖아, 옛날에 너희 아버지 이거저거 알아봐 주느라 그 출판사 사람들 좀 안다고. 그 꼰대 아직도 있지? 언제 적 옛날 안경 끼고 불독처럼 볼따구 축 늘어진 덩치 산만한 노친네.“

“아...? 아...! 네 네!! 그...그분!!”

“그 양반 안 쫓겨나고 아직까지 거기서 비비고 있었으면 인젠 뭐 거의 편집장 정도 됐겠네, 하나도 안 변했겠지...!! 그 노친네가 그렇게 쓸데없이 걱정이 많아요, 뭐도 조심해야 된다, 뭐도 조심해야 된다... 하면서 네 아버지 때도 얼마나 귀찮게 한 줄 아니?”

“아... 그 분이 아버지 때도 계셨었구나...”

이곳에 오래 있었다고도 했지만 늘 예상치 못하게 쏟아져 나오는 주인 아저씨와 아버지의 에피소드. 

세현으로선 늘 새로운, 아버지의 소싯적 에피소드는 들을 때마다 흥미로웠다.

마치 과거의 하찮은 기억을 툭 던지듯 아무렇지 않게 얘기 해대던 아저씨가 세현에게 물었다.  

“그래, 넌 다음으로 뭐 생각하고 있는 글은 있니?”

“예... 몇 년 동안 쭉 준비해 오던... 장편 소설이 있기는 해요. 아직 완성은 안됐지만...”

“그래? 그럼, 해인양은? 이제 각자 갈 길 가는 건가?”

“아뇨! 앞으로도 같이 작업하자고 이야기 해두긴 했어요. 소설은 아직 보여줄 단계가 아니라 못 보여주고 있지만..."

아저씨는 켜져 있는 앞의 컴퓨터로 세현의 글을 열어 새삼 해인의 그림을 응시하며 세현에게 말했다.

“음... 잘됐네... 처음 볼 때부터 느꼈지만... 해인 양 그림은 참 독특하니 느낌이 좋아. 이제까지 잘 못 보던 스타일이기도 하고...”

“오, 아저씨 그림도 볼 줄 아시나 봐요!”

“떽! 그래도 내가 예술의 도시 아를에서 짬밥만 20년에, 여기저기 그림이 넘쳐나는데, 취향 하나 없겠니? 암튼! 유니크해. 괜찮게만 성장하면 잘 되겠어.”

여자친구의 칭찬에 세현은 마치 자신이 칭찬을 받기라도 한 듯 으쓱하며 괜스레 핸드폰 배경화면 속 해인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해인! 오늘도 늦지? ]

해인의 얘기가 나온 김에 바로 문자를 남긴 세현.

사실 그림에 전념하기로 한 이 후부터 해인은 시간 관념이 좀 없어진 듯 했다. 오롯이 하나에 집중을 하는 탓인지 스케쥴 관리까지 세현이 해주어야 할 판이었다.
 
[ 늦지...! 휴우... 아, 임씨, 나 부탁할 거 하나 있는데... ]

[ 응? ]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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