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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Nov 14. 2017

우연히, 그곳에서...<70화>

[ 제70화 _ 좋아,  이 코스프레 자연스러웠어...! ]


[ 부탁?? 뭔데? ]


좀처럼 부탁조로 이야기한 적이 없던 해인의 뭔가 힘 빠진 듯한 말투에 긴장한 세현.


[ 나...배가 좀 고픈데 레스토랑 메뉴에 있는 샌드위치 하나만 만들어 줄 수 있어? 임씨  일 끝나면 요 근처까지만 가지고 와줘... ]


그림 열심히 그리라고 의무감 좀 실어 줬더니, 끼니도 거르며 작업 중이라니.


[ 뭐? 밥도 안 먹고 그림 그리고 있단 말이야? 이런 미련 곰탱아!! ]


[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걸 뭐!! 바쁠 테니까 근무 끝나고 가져다 줘도 돼... ]


[ 언제 끝날 때까지 기다려? 지금도 많이 배고프단 거 아냐... 좀 기다려 봐 ]


입으로는 툴툴대면서도 바로 주방에 들어가 직접 재료들을 조합해 샌드위치를 만든 세현.


커피까지 세트로 해인에게 전달하려다 문득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언제 한번 그 작업실 들어가 보나 했었는데, 기회가 왔네...! 방문객 코스프레 하려면 빈손으로 가면 안 되겠지...’

  

세현은 주방에서 갓 구워져 나온 따끈한 빵을 몇 개 집어 같이 포장했다.


컵홀더에 커피까지 4잔을 더 준비해 나오는 길에 주인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헤이, 헤이...! 임작가님, 어디 나가시나?”


"흠흠... 어...!! 배달주문이 와서요. 요거... 요거 샌드위치랑 빵인데요, 이렇게... 가지고 가야 할 것 같아요. 다 제 가격 받아옵니다.”


"배달?! 우리가 무슨 짜장면 집이냐? 배달은 무슨...! 뭘 또 그렇게 잔뜩 싸가지고 나왔어? 누가 탕수육까지 시키디?"


"음, 어... 사정 상... 배달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진짜 요 바로 앞이에요!! 잠깐만 나갔다 들어오겠습니다! 한 10분? 이면 됩니다!!”


바로 앞이라는 말에 해인의 부탁임을 알아챈 주인아저씨는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어기적거리며 달려가는 세현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 해인씨, 배달 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시죠 ]


세현이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정도인 해인의 작업실.


배곯는 불쌍한 여자 친구를 위해 그마저도 시간을 단축시키려 달려온 세현은 금새 작업실에 도착했다.


낡은 건물에 좁은 문,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야 드러나는 허름한 작업실 출입문.


사람이 사는 주택보단 창고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뭔가 노크를 하기 어색해 문 앞에서 해인에게 문자를 보낸 세현.


“와, 가깝다 가깝다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


문을 열어준 해인.

세현을 기다린 건지 샌드위치를 기다린 건지, 환한 미소로 세현을 맞아주었다.


"근데, 근무 시간 아니야?"


"사랑하는 여친이 성공을 목전에 두고 쪽팔리게 배고파 죽어간다는데 근무가 문제요? 자, 이게 네거야. 꽉꽉 눌러 담았어. 불쌍하게 왜 밥도 안 챙겨먹으면서 이러고 있어? 앞으로 내가 도시락이라도 싸줘야겠다.”


“고마워...!! 어? 근데 이건 다른 거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세현은 해인에게 찡긋 눈으로 신호를 보낸 뒤 비로소 작업실 내부로 들어섰다.


“아이고...! 수고들 많으십니다. 저희 가게 자주들 오시는 분들이죠? 요 앞 레스토랑에서 왔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들에게 인사를 하는 세현.


전체 인원이 5명이라던 이 작업실 안에는 카와모토와 안톤 만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예, 안녕하세요. 해인씨 남자친구분이시죠? 아, 이번에 소설 공모전 수상하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이 작은 마을에서 이미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유명한 동양인 커플 세현과 해인.


게다가 TV에 방영된 수상식에서 해인을 보아서였는지, 이 작업실 사람들은 세현의 수상을 모두 알고 있는 듯 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해인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에 저도 그 덕 좀 본거 같습니다. 예, 뭐 오늘은 겸사겸사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이렇게 잠깐 찾아왔습니다. 그림 그리시느라 바쁘실 텐데,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아, 뭐 이런 걸...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세현은 쭉 둘러보다 비어있는 자리를 의식하며 화가들에게 물었다.


“음... 다른 화가 분들은 어디...가셨나 봅니다? 다섯분인 거 알고 다섯분 걸 준비를 해왔는데...”


“아, 카와모토랑 안톤은 잠시 볼 일 있다고 외출했습니다. 그 서 계신 앞자리 이젤 두 자리에요.”


다른 화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용한 해인을 힐끗 보니,


자기 그림에 눈을 떼지 못하며 입으로는 세현이 가져온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흡입 중이었다.


세현은 피식 웃으며 화가들에게 말했다.


“아, 제가 여긴 처음인데, 해인이한테는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요, 여러분들 그림 그리시는 거 하고 작업실 내부 좀 구경해도 될까요?”


“예, 그럼요...! 해인씨 손님이신데, 천천히 보세요.”


그제서야 입에 한 가득 샌드위치를 넣은 채 세현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해인.

 


세현은 입안 음식물들 때문에 알 수 없이 뭐라 웅얼거리는 해인에게 다가가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별일 아니라는 투로 작업실을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먼저 눈이 간 곳은 마침 자리를 비웠다는 카와모토의 자리.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끊이지 않았었기에  그의 작업공간에서라면 뭐라도 아영을 도울 증거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나무로 대충 만들어 놓은 듯한 이젤에 화판, 그리다 만 그림, 보조의자에 올려놓은 팔레트와 붓, 이젤에 결처 놓은, 물감이 잔뜩 묻은 앞치마.


혹시나 자신의 이름이나 다른 특이사항이라도 남겨놓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에,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려가며 카와모토의 자리를 탐색했다.


아쉽게도 정체를 밝혀 낼 증거품은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던 찰나,


[ 야마다라고 하는 자식이 있는데, 그 자식도 사기 맞았어. 근데 찾는 서양 놈도 크리스랑 한통 속 일 지 몰라...]


라고 하던, 언젠가 아영이 말했던 동업자라는 '야마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 공간 속 화가들 중에 야마다란 사람이 찾고 있다던 서양인도 같이 있을지 모른다...! 찾는다는 두 놈 중에 한 놈만 어떻게 알아내도 되는 상황인 거잖아?’


조금 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었던 화가들을 다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한 세현.


작업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곁눈질로 그들의 뒤 쪽으로 가 작업 중인 그림을 관찰하였다.


앞치마, 붓, 팔레트... 자리를 비운 카와모토의 집기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들의 소지품에서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뭔가라도 찾아내려 하였다.


의도했던 단서는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너무 오래 머무르기엔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해 어쩔 수 없지만 물러나려 하던 순간.


비어있는 ‘안톤’이라는 화가의 자리의 화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에 가려져 다 보여 지지는 않았지만, 화판의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한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


“오... 이분, 그림 아주... 괜찮네요...”


세현은 주변에 의심을 사지 않게 그림에 관심이 있는 척 안톤의 자리로 가까이 다가가 몰래 그림을 살짝 들어 사진이 붙은 화판을 휴대폰 사진기에 담았다.


불과 몇 초, 지켜보고 있던 해인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순식간에 진행된 작업이었다.


[ 임씨 지금 뭐했어? ]


세현의 증거 탐색 작업을 알지 못했던 해인은 같은 공간에 있던 세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 왜? 작업실 구경 중이잖아! 신경 끄시고 그림 그리세요! 이해인 화백님 ]


“화가님들, 구경 잘 했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수고하세요!!”


기대만큼 성과는 없었지만 어영부영 인사를 하고 해인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낸 뒤, 작업실에서 나온 세현.


레스토랑으로 향하며 채취한 증거사진을 확인해 보았다.




*




“음? 이거 누가...?”


작업실에서 잠시 외출했다던 카와모토와 안톤이 돌아와 자신들의 자리에 놓여있는 빵과 커피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왜 해인씨, 남자친구분 있잖아? 이번에 소설 공모전 상 받았다는 그 분. 그 분이 인사차 와서 우리 먹으라고 주시고 갔어.”


“아, 요 앞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그...”


세현과의 좋지 않은 추억 때문인지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 놓아두었던 빵을 옆쪽으로 휙 밀어버리는 카와모토.


불만 섞인 일본말로 뭔가 혼자 툴툴댔다.


카와모토는 자신의 그림자리로 돌아와 걸쳐 두었던 앞치마를 입으며 화가들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여러분들, 잠깐만 저 좀 보실래요?”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건지 작업실 전체 인원들을 대상으로 공지 사항이라도 있다는 듯,


카와모토와 화가들은 회의실이 있는 작은 방 공간 쪽으로 같이 이동했다.


“뭔데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음...우리 갤러리에 관련 된 이야기인데 말야...!”


“뭐야? 또 수수료? 거기 진짜...너무 악덕 아냐? 벌써 몇 번 째야?”


“그러게, 난 이제 이렇게 모이라고 하기만 하면 무섭다 무서워...!!”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않았건만, 갤러리 얘기 나오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들.


카와모토는 다 안다는 투로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알아, 알아 나도... 이번에 우리 임대료 체납됐던 것 때문에 잠깐 안좋은 소리가 있기는 했는데 어찌됐든 그건 해결은 됐는데 말야..."


"사정 안 봐주는구나 아주... 왜, 또 뭔 다른 얘기라도 있는거야?"


카와모토는 뭔가 어려운 결심이라도 한 듯 비장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계약 조건 자체가 작업실 임대료에 수수료였기는 한데, 지금 반응들 처럼, 너무 피곤하게 하지? 자기네 맘대로 막 말 바꾸고 그러는게... 그래서...안톤하고 생각을 좀 해봤는데... 그 쪽 모르게 우리끼리 따로 뭔가 만들어 보는 게 어떨 까 하고..."


"만들어? 작업실 옮기고 갤러리도 다른 데 알아보자 이거야?"


"아니, 작업실은 새로 구하기 너무 어려우니까 여기서 계속 있는 걸로 하고 수익을 위한 다른 창구를 만들어 볼까 하는 아이디어인데..."


무슨 이야기 인지 영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는 다른 화가들, 해인만은 조금 감이 오는 듯 질문을 했다.


"작업실, 갤러리는 지금처럼 그대로 사용하면서... 다른 곳에도 그림 판매를 해보자는 말씀이세요? 그럼...갤러리 측에서 좋아할 것 같지 않은데요..."


"알려지면 그렇긴 하겠죠, 맨날 수수료 인상에 너무 얄밉게 운영해 대니까 좀 괘씸하잖아요. 매번 자기네 이득만 보려고 하고..."


그제서야 다른 화가들도 거들기 시작했다.


"설마 갤러리에 전시할 그림들을 몰래 인터넷 같은 데에도 올리자는 말이야? 이거... 그러다 갤러리 쪽에서 알아버리기라도 하면 여기 쫓겨나는 거 아냐?"


"그러니까...다른 이름으로 그룹을 만들자는 거지, 내 생각인데... 해인씨가 있으니까 아마 화제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아직 갤러리에선 해인씨의 존재를 모를테니...!"


에!? 하며 깜짝 놀라는 표정의 화가들.

가장 놀란 건 옆에서 별 생각없이 듣고 있던 해인이었다.


"예?! 저요? 제가 왜요??"


"해인씨는 이제 세계적인 공모전 수상자의 삽화가로 이름이 알려질 거예요. 아마...! 그럼 같이 작업 중인 그룹의 그림들도 가치가 올라갈 수 있겠죠...!"


아직까지도 어리둥절한 해인.


반면, 이제서야 무슨 의미인지 완전히 파악이 된 두명의 외국인 화가들은 자기들끼리만 들릴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갤러리는 이제 약발 다 되어가 보이니까 이제 잘나가기 시작하는 해인씨 이용하자는 거로군... 하여튼 저 자식 잔머리는... ]  


[ 그룹이며 필명이며 다 갈아서... 완전 갈아타자는 거잖아...아직 이렇다 할 확신은 없으니까 이쪽도 완전히 손은 놓지 말자는 거고...]


옆에 있던 해인은 속삭이는 이들의 대화 중에 자신의 이름이 들리는 듯 해, 무의식적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 어떻게 하지..이번에도 같이 가야 되나... ]


[ 그만 둔 녀석 빠지자 마자 해인씨 잡아두려 그림 부터처리 하자고 그렇게 발악을 하더니.. ]


"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뭔가 수상한 낌새에 해인은 외국인 화가들의 속삭임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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