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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Nov 17. 2017

우연히, 그곳에서...<71화>

[ 제71화 _ 잔혹한 세상의 목소리, 겨우 참아왔었는데... ]

"뭐라고 하셨어요? 제 그림...이 어떻게 됐다고요?"

뒤에서 자그마하게 속삭이다 둘만의 대화를 해인에게 들켜버린 외국인 화가들. 그들은 몹시 당황하며 다급하게 변명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 아니예요...! 해인씨 그림이 빨리 팔려서 다행이라고요...! 덕분에 같이 그림 그릴 수 있게 됐으니까요...!"

회의를 진행하며 앞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카와모토의 인상 역시 한 순간에 굳어졌다. 안톤마저 뭔가 안절부절하며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 

"예...다행은 다행이죠... 처음 전시라 오래도록 안팔리면 어쩌나 고민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제대로 다 듣지는 못한 듯, 해인은 별다른 의심없이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근데,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긴 해요. 제 그림을 사가셨다는 분은 왜 정체를 숨기시는 거죠? 이런 경험들 다들 있으세요? 전 잘 몰라서..."

"간혹, 아... 없지는 않아요...음, 뭐랄까... 가능성이 보이는 그림을 사두었다가 나중에 화가가 뜨게 되면 가격이 올라가니까 수집...같은 거 해두시는 분도 계시거든요."

"하긴, 꼭 감상목적이라기 보다 '아트 재테크' 정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시다고 들었어요. 이 동네에 좀 유명한 분이 계신가 봐요? 그런 수집하는..."

"네...! 네...!! 맞아요, 아마 그럴 거예요! 자기가 발굴해 놓은 신인작가라고 생각해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비밀리에 모아두는...!!"

"아... 그런 거구나..."

순간적으로 받아친 이 이야기가 해인에겐 꽤 납득할만한 답변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수긍한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회의실 앞에 서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카와모토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척,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뭐 좀 전의 얘기 말인데요, 어찌됐든 그래서 새 루트를 한번 만들어 볼까 하니까 여러분들도 생각을 좀 해 두셨으면 하고 이렇게 얘기해 봤습니다. 바로 뭐 어쩌자는 건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해 주세요."

회의를 마무리하고 화가들 모두 작업 자리로 돌아가는 분위기, 카와모토가 다시 한마디 했다.

"아, 해인씨, 별건 아닌데요, 저희끼리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먼저 나가서 작업하고 계실래요? 저희도 금방 따라 나갈게요."

"아, 예...!!"

뭔가 할 말이라도 남은 듯 회의실에서 해인만을 먼저 내보낸 카와모토.

해인이 나가자 카와모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수다를 떨던 화가들을 노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 너네 미쳤냐?! 그 얘기 함부로 입에 담지 말랬지?!! 너희들도 덕보고 있으면서 뭐가 불만이야?!"

"아, 미안...그냥 우리끼리 얘기한다는 게 그만..."

"안톤한테 맡겨 놨으니까 니네들이 지금처럼 나불대지만 않으면 잘못 될 일 없어! 알았어? 앞으로 조심해!!"




 [ 해인씨 그림 팔렸어요! 축하해요!! ] 

얼마 전, 축하의 말을 전하며 해인에게 '정식화가'라는 자격을 멋대로 붙여주었던 카와모토.

엄밀히 그가 말하는 '정식화가'란, 실력으로 인정을 하겠다는 의미보다 정식으로 자신들 처럼 임대료를 지불해가며 그림을 그리라는 압박에 가까웠다.

"젠장, 더러워서 네놈들하고는 같이 못 있겠다!! 이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야? 중간에 누가 떼어먹고 그러고 있는 거지?"

...라며 끊임없는 갈등 끝에 결국 화실을 뛰쳐나가버리고 만 기존의 화가 한 명.

5명 계약에 임대료마저 나누어 내야 했던 남아있는 화가들로선 어떻게 해서든 서둘러 그 공백을 메워야만 했다.

“저 해인씨, 어디 다른 작업실 있는 거 아니면 여기서 그림 그려볼래요?”

수개월 전 해인을 작업실 인원으로 받아들이던 처음 순간부터 카와모토에게 해인은 늘 언제 빠질 지 모를 작업자 멤버의 대체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그 깔아놓은 덫에 들어온 해인을 간단명료하게 멤버로 끌어들이는 방법.

[ 갤러리에 그림을 전시해 팔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한 배를 탄 화가 ]라는, 

자기들 끼리 멋대로 정해놓은 법칙만 적용하면 되었다. 


"혹시 모르니까 안톤 너도 그림 꽁꽁 숨겨두고 있어. 알겠지?"

갤러리 전시에서 팔렸다는 해인의 그림. 
그 그림 역시 작전에 따라 이곳 화가들에 의해 구매되어 지금 어딘가에 숨겨 보관되어 지고 있었다. 




***




카페에서의 일을 마치고 구석자리의 테이블에 앉아 다시 집필 작업에 들어간 세현.

몇년간을 이어오며 이제는 마무리가 지어질 듯, 지어지지 않는 자신의 장편 소설을 재차 확인하며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아, 그렇지...!!”

세현은 문득 낮 시간에 해인의 작업실에서 남겨왔던 사진을 다시 꺼내어 확인해 보았다.

예상보다는 소득이 없는 듯 했던 염탐작전. 
그렇지만 선명하게 찍힌 사진 한 장의 획득은 분명히 어떤 의미로든 도움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래, 일단... 이걸 아영이 한테...”

사진을 전송하려 아영에게 연락을 하려던 순간, 세현의 폰으로 먼저 걸려온 아영의 전화.

“어라? 얘가 저 먼 나라에서 나랑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본데...!”

“여보세요? 세현이 너....”

평소 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세현에게 아영은 뭔가 급한 투로 말을 꺼내더니 이내 의아한 침묵을 보냈다. 

“아영 선배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안그래도 지금 막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아영은 잠시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세현이 너... 혹시 지금 떠도는 기사 봤어?”

“어? 무슨 기사?”

당연히 세현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친절하게도 자신이 확인했던 기사를 링크해 세현에게 보내 주었다.

“이게 뭔데?”

“이번 공모전 네 수상 관련해서...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녀석이 있는 모양이더라고...”

“소문...?”

세현은 아영이 보내준 링크로 기사의 헤드라인을 확인해보았다.

-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 전 세계적인 공모전 열어 임형우 작가에게 은혜보답? -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 세현은 열어보기도 전에 내용을 직감했다.

일단 이 날 알아낸 정보를 아영에게 전달하는 것이 
급선무라 여긴 세현은 아영이 보내 준 기사를 바로 읽지 않고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음,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긴한데 , 설마... 아무튼...조금 있다가 읽어볼게. 그건 그렇고 정말로 바로 너한테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말야...”

“어, 그래...? 나한테 왜? 무슨 소식이라도 있어?”

세현은 작업실에서 몰래 찍어온 사진을 바로 아영에게 보냈다.

“어쩌다가... 그 의심 간다는 해인이 작업실에 들어가 조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샅샅이 뒤지긴 했는데... 별로 건진 게 없네... 근데 같이 작업한다는 외국인 중에 한 명 화판에 사진을 붙여 놨길래 혹시나 하고 찍어 둔거야. 그 왜, 너 같이 하게 됐다던 야마다인지 하는 사람이 혹시 안다는 사람일지도 몰라서...”

“아. 그래, 뭐라고... 글씨도 써있네... 지미... 에릭...슨!!!?? 어!!!”

“왜? 왜? 찾는 사람 맞는 거야? 너도 아는 사람이야??” 

“얼굴은 모르는데, 이름 중에 ‘에릭슨’이 들어간다고 들었었거든... 풀 네임은 모른다고 답답하던 차였는데... 이름이 지미 에릭슨...인건가...”

기사내용 때문에 세현에게 연락을 했다가 뜻하지도 않은 증거물 전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아영. 

세현이 보내준 사진을 이곳저곳 유심히 뜯어보았다.

“아기랑...같이 찍은 사진이네... 자기 애인가... 그러고 보니 유부남...이라고 했었던 것도 같고...!
그럼 이게 아기 이름일 수도 있겠네... 아무튼 에릭슨이 들어간다니 이거, 야마다가 정말로 찾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세현은 문득 작업실에서 다른 화가들에게 빈자리를 물었을 때 카와모토와 ‘안톤’ 이라고 말했던 단어가 생각났다.  

“아...! '안톤'... 이랬다. 그 그림자리 주인! 에릭슨인지 뭔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안톤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었어...!! 이제 당사자한테 사진만 확인시켜주면 되는 거네!!”

“안톤...에릭슨...오케이!! 진짜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고마워 세현아... 아, 그리고...”

“응?”

“그냥 묻힐 수도 있는 기사가 될 건데... 괜히 알려줬나 싶기도 해... 좀 놀라서 바로 이렇게 연락을 해버렸네... 그 기사 내용 너무 걱정하지 마. 헛소리니까...”

“음, 알았어, 아영아. 고맙네...통 이런 거 안 보고 사는데 소식도 알려주고...!”

아영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나니 전달받은 기사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평소 같은 수다는 생략한 채 통화를 마무리 한 세현.

아영이 보내준 기사 링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떳떳해! 난...! 누가 뭐래도 난 내 힘으로 상 탄 거라고!!'

누구보다 당당했다. 
그렇지만 막연하게 누군가가 트집을 잡을 수도 있다는 걱정과 직접 수상을 만류하던 출판사의 부탁 등, 여러 가지 해프닝들이 동시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세현은 조심스레 기사를 열어 본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 갔다.



「전 세계를 아우르며 치루어 져 장대한 막을 내린 그들만의 세상 출판사의 공모전.
세계 일류로 올라섰던 출판사가 기획한 세계 문학인의 축제로 높게 평가되는 가운데 드리워진 어두운 의혹들...

당초에 수상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다던 공모계획. 이 후에 수상자는 120명으로 확대되어 청탁이나 다른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의혹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의혹의 정점에 있는 사실 한 가지는 한국인 수상자들 중 한 명이 출판사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그들만의 세상’의 고 임형우 작가의 아들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일각에서는 출판사가 작가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가족을 밀어주기 위해 수상인원까지 늘려가며 억지로 끼워넣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기사가 끝을 향할수록 세현의 떨림은 더 격해져 가는 듯 했다.

그렇게 기사의 끝 문장까지는 차마 읽지 못한 채 기사를 끌 수밖에 없었던 세현.

자립해보겠다고, 좋은 조건의 직장인을 포기하고 작가로서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집까지 나와 열심히 살아왔건만, 학창시절 그렇게나 미웠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다시금 자신에게 이런 좌절감을 안겨줄 줄이야...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글의 소재가 되어 주었던 카페의 노부부, 해인의 일러스트를 보고 같이 하자고 졸라대던 자신의 모습, 며칠 밤이 새도록 퇴고하고 또 퇴고하던 날들...

비교적 좋은 환경, 좋은 기분 아래에서 술술 써내려갔던 글에, 그대로 이어졌던 좋은 결과를 누군가 두고 볼 수만은 없던 걸까. 

결국은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거늘,

‘신인작가 지망생 주제에 유명 작가나 따라하겠다고 프랑스 아를씩이나 와서 집필 활동을 해? 복에 겨웠군...!’

‘잘 먹고 잘살던 도련님께서 일시적인 호기심 때문에 다 힘들다고 하는 작가를 시작했는데, 역시나 스타트 라인이 다르니까 금방 자리 잡을 수 있는 거였군...!'

‘그게 온전히 네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냐!’

...라고, 세현의 인생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의 말들이 귓가에 맴도는 듯 했다.  

그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들을 부정하려 힘들게 결정하고 걸어왔던 길이건만, 세상에 나가려 하는 문턱에 다다르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린 기분이었다.

“후우우...”

어느 때보다도 깊어진 세현의 한숨.
억울함에 가슴이 터져버릴 듯 해 마무리 중이던 소설 작업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하던 가게는 이미 영업시간이 종료되어 문을 닫고 단지 불을 밝혀주고 있는 것은 드문드문 위치한 가로등 뿐.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은 세현은 자신을 향해 빛을 뿜고 있는 노트북을 초점 없이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늘 혼자 집필을 하며 그림 작업을 마치고 온 해인과 즐거운 귀가길을 기다리던 지금의 대기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져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해인에게  빨리 와달라 독촉을 할 수도 없었다.

하염없이 기다림, 이 날따라 더한 어둠 속에 갇힌 듯한 세현은 더없이 외로웠다.

“아버지...”

무심결에 입 밖으로 내뱉어버린 통탄의 한 마디.

아버지가 집필을 하던 이 장소에서 칭얼대던 어린 꼬마였던 자신이, 이제는 아버지를 좇아 이곳에서 집필을 하고 있거늘... 

왜 늘 넘어서야만 하는 대상으로 괴로움을 주는 건지...

어딘가에 정신이라도 팔린 듯, 넋나간 표정으로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세현의 등 뒤쪽으로 

그렇지 않아도 적막한 아를의 밤의 고요를 방해하는 소음을 만들며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더 가깝게.

“저벅 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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