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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Nov 21. 2017

우연히, 그곳에서...<72화>

[ 제72화 _ 바보처럼, 연기도 서툴러요... ]



[ 저벅 저벅... ]

프랑스 아를의 늦은 밤.
고요한 적막 속에서 세현의 뒤쪽으로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자신에게 닥친 사건의 충격으로 여전히 넋이 나가있던 세현은 바로 뒤로까지 다가온 그 소리를 인지하지 못했다.

[ 턱 ]

발자국 소리가 멈추더니 두툼하고 묵직한 누군가의 손이 세현의 어깨를 덮쳤다.



“아앗...!!”

“어째 너 이러고 있을 것 같더라니...!”

“아...아저씨...!!”

레스토랑 영업종료 후 바로 귀가한 줄로만 알았던 사장 아저씨.

계속해서 세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이미 사정을 다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가만히 옆으로 와 테이블의 의자를 빼 앉으며 입을 열었다.

“기사... 나도 봤다. 충격 많이 받았지? 너 상 받았다고 한 후엔 수상작이나 관련 기사들 꾸준히 찾아보고 있는 편이라..."

“아... 네... 아저씨, 진짜... 저 너무 억울한데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어요... 정말로 출판사에서 제가 아버지 아들이란 거 알아서 특혜를 봐줬다거나... 그런 거 아닌데..."

“나는 알지! 이 녀석아! 처음에 내가 물어다 준 정보 아니냐! 작가 하겠다는 부자를 연달아 옆에서 이러고 케어 하려니까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그래...”

누군가에게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었던 지, 좀처럼 볼 수 없던 기운 빠진 모습으로 세현은 아저씨에게 계속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즐겁고 좋은 환경에서 글이 써진 적이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글도 너무 잘 써졌고... 시기도 뭔가 딱 맞아 떨어진데다, 해인이 그림까지 더해져서... 정말 처음으로 자신있게 세상에 낼만한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처음에 어떤 놈이 그런 얘기를 퍼뜨렸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관계를 떠나서 혹시 널 엄청 시기하고 있는 세력이라면, 스토리가 그럴싸하긴 하더라."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인데... 그럴 싸 하다뇨...”

“음, 제 3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만들어 내기 제일 쉽고 적절한 스토리이긴 하지... 

[ 잘나가는 아버지를 둔 아들이, 같은 분야, 같은 조직에서 성공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데, 그 전에 은혜를 입었던 그 조직에서는 그걸 알고 그 아들에게 특혜를 부여한다 ]라...!"

세현은 가만히 사태를 되짚어 보았다.

“더군다나... 그 조직이 크면 클수록 그런 작은 의혹들은 붉어지게 마련이야. 그런데 이건 뭐 전 세계 규모로 사이즈를 키워놨으니... 누군지 불만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런 얘기 하나 못 만들어내겠니...? 말 그대로 소설 공모전인데 그런 조작 스토리 몇 개 만들어내는 거야 일도 아닐 테지...”

“그렇지만... 사실이 아닌 건 아닌 거잖아요!! 그런 불만 가진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당하는 사람은 그냥 손 빨고 있어야 하나 요!!?”

아저씨는 억울함에 목소리마저 파르르 떨리고 있는 세현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진정해. 세현아...! 내가 설마 너 열 받으라고 이런 거 다시 얘기하고 있겠니... 조금은 냉정해 지자고 이렇게 불편하지만 얘기하는 거야.”

“......”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가쁜 숨을 나지막이 몰아쉬고 있는 세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온 이래 본적이 없던 흥분한 세현의 모습.

“답답하고 억울할 거 안다. 지금은 아무리 침착하라고 이야기해도 진정이 되지 않을 테지만... 중요한 건 가능한 빨리 ‘소문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걸 밝히는 거야. 사람들이 그걸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기 전에... 출판사도 그렇고... 일단 의혹이 터져 나왔으니 어느 정도 타격은 감수해야겠지만 말야...”

세현은 저 멀리 해인이 있는 작업실 방향의, 어둠만이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꼭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아저씨도... 보셨겠지만... 만약이라도 제 글이 그런 식으로 불명예를 입게 되어버리면... 저도 저지만, 이제 막 세상에 나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해인이 한테까지도 피해가 갈까봐... 더 걱정이에요. 그렇게 멋있게 삽화를 넣어줬는데... 불똥이 튈 수도 있잖아요.”

“아이고, 이 남자 친구 분, 아주 멋이 뚝뚝 떨어지네... 이 와중에 여자 친구 잘못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거야...? 그럴 정신은 남은 거 보니까 생각했던 것만큼 정신이 빠져있지는 않은 모양이네...!”

“아... 그... 걱정이...되죠...!! 삽화 요청도 그렇고 다 제 쪽에서 먼저 했던 걸요... 근데 혹시나 나중에라도 특혜 의혹의 글 삽화가로 인식되어버리기라도 하면...”

아저씨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세현의 어깨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자기 주변 사람 먼저 챙길 정신은 있는 거 보니까 걱정했던 것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구나...! 그러니까 그게 사실이 아닌 걸 밝히면 그런 걱정도 필요 없는 거잖아! 냉정하게 행동하고 하루빨리 의혹 풀어버려, 힘들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건 고민하는 거 아냐...! 아, 그렇지... 너 여기서 해인양 기다리는 거지? 나 먼저 간다, 내일 보자...!”

“아, 예...예...!!”

언제 겪어보기라도 한 듯, 무덤덤하게 짧은 위로와 조언을 남기고 간 아저씨.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정말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모든 것이 무너질 정도의 큰일처럼 생각 됐었는데, 그 무심한 ‘아무렇지도 않음’이 그대로 전달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정신을 가다듬어 한참을 그저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던 장편소설의 퇴고작업을 시작하려는 순간. 어둠 속 저 멀리에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실루엣이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해인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대해야 할 지 잠시 고민하던 세현. 

“이해인 화백님, 오셨습니까...?”

“후우...정신없이 작업하느라 힘이 다 빠졌네... 늦으면 먼저 들어가지 왜...이 시간까지...”

“그렇게 말하면서 씰룩거리는 그 입 꼬리는 어쩔 겁니까? 오늘도 순조로운 작업...?”

“매일 그렇지 뭐... 글은 잘 되가? 작업 같이 하자 해놓곤, 언제 보여 줄 거야? 그 소설은...”

“아, 하하... 오래도 걸린다 참...그래도 대충 할 수는 없잖아...! 얼른 다 써서 보여줄게...”

일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맞이하는 데까지는 성공한 세현.

작업에만 열중하느라 다른 소식은 접하지 못했는지 아직까지 해인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내 힘들다면서 남자친구의 품으로 와 슬쩍 안기는 해인의 모습을 보니 아저씨 덕에 잠시 희미해졌던 걱정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너한테는... 절대로 피해주지 않을게...’

해인은 현재 작업 중인 그림의 이야기나 카와모토에게 들었던 이야기 등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세현에게 재잘거리고 있었다.

당연하게 평소만큼은 집중할 수 없었던 해인과의  수다. 

자신은 미소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어떤 얼굴로 해인을 바라보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세현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한 건 지, 해인은 평소처럼 세현의 품에 콕 붙어 다른 의문 없이 수다만 떨어댔다.

집으로 가는 길 20여분.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이 시간동안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던 두 사람. 

“오늘도 수고 많았어. 해인아... 그럼 푹 쉬고... 내일 또 봅시다!! 괜찮아...괜찮아...”

“당연하지! 응? 뭐가 괜찮아...?”

엉겁결에 속으로 되뇌이던 혼자만의 다짐을 입 밖으로 내어버린 세현. 해인의 반문에 그저 얼버무리기 바빴다. 

“아... 아니!! 잘 하고 있다고!! 얼른 그림 완성해야 내가 구매할 거 아닙니까!! 그럼 들어가...”

“아... 그래, 임씨도 오늘 고생했어... 잘 자고...!!”




*



사람이 매번 같은 상태일 수는 없겠지만, 
이 날 뭔가 조금 달랐다.

늘 능글능글하게 작업실에서 돌아오는 자신을 맞아주던 세현에게 무언가 미묘한 차이를 느꼈던 해인.

무수한 자신의 수다 속, 멍해 보이는 어색한 미소하며, 꼭 잡고 있던 손으로 느껴지던...
미세한 떨림.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지만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사정 때문이었는지.

해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저 평소와도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세현을 대했지만 궁금증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역시 공모전과 관련된 어떤 일이었을까? 공모전 수상자 발표 날부터 시상식, 수상작의 공개 일까지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던 관련 기사들.

사실 해인은 한국을 떠나오던 순간부터 나라 돌아가는 어떤 뉴스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잠시 동안 물리적으로도 떨어져 있는 한국의 어떤 소식에도 영향을 받고 싶지 않음이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계획대로 그림만 그릴 수 있게 된 지금의 상황이라면 더더욱 집중에 방해가 될 수 있었기에 다른 소식들은 일부러 피하려 했다.


돌이켜보면 프랑스에서 있었던 시상식 날, 그저 세현의 난처한 상황을 돕기 위해 대리수상을 자처하기는 했었지만, 이 나라는 물론 한국에까지 자신의 얼굴이 팔리게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밀려드는 창피함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수상식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아...’

창피함에 찾아보고 싶지 않았던 기사들. 

그렇지만 갑자기 찾아온 듯한 세현의 변화에 혹시 단서가 될 만한 무언가를 알아보려 정말 오래간만에, 해인은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이미 공모전 관련 기사에는 반 이상이 임형우 작가의 아들의 부정 수상여부에 관련한 건이 도배가 되어있는 상황. 

해인의 대리수상 모습을 올린 기사도 간혹 눈에 띄었다.
 
“부정...? 수상...? 이게 무슨 말이야...”

다시금 사무 모드가 발동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 기사 저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한 해인. 

아직 사실여부가 정확치도 않거늘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은 세현을 포함한 출판사를 사기조직으로까지 만들어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말까지 서슴지 않는 대중들.

순간,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쓰던 세현의 표정이 떠올랐다. 

‘감정 숨기는 연기는 아직 서툴구나...임씨...’

해인은 아침에 실수로 살짝 열어놓았던 창문 틈으로 반대편에 닫힌 세현의 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끼이익...] 

낡은 소리를 내는 창문을 열면 어느새 알아차리고 나타나 주곤 했던 세현.

열린 틈 사이로 살짝 보이는, 지금은 굳게 닫혀 진 방 창문 속 세현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 지.

세현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게된 해인은 창문 속 세현에게 섣불리 먼저 연락 해 볼 수 없었다.




***
   




"여러 가지로 제보 감사드립니다. 이런 특종을 주시다니... 일단 다른 매체로는 소식 번져나가지 않도록 끝까지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여 있던 카페에서 서둘러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간 남자 무리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휴대폰과 카메라, 수첩이 들려 있었다. 

뭔가 뿌듯함 가득한 표정으로 발걸음도 가벼워 보이는 이들. 카페에서 나와 몰고 왔던 자신들의 승합차로 이동하며 쑥덕거렸다.

“우리로선 고맙긴 하지만... 저 친구는 낙방한 모양이지?”

“그러게 말야... 젊은 친구 같은데... 수상했다는 사람이랑 원한 관계라도 있나... 끌어내리면 대신 합격시켜준다고 누구한테 약속이라도 받은 건가 ...?"

“에헷! 시끄럽고, 얼른 기사나 정리해서 옮겨 적어! 우린 그냥 먼저 이거 터뜨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리 크지 않은, 한적한 곳에 위치했던 카페.

카페 전체를 전세 놓기라도 했었던 듯, 시끌벅적하던 이 무리들이 빠져나가자, 

카페 안은 오직 한 남자가 혼자 남아 덩그러니 테이블 위에 놓인 다 식은 커피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완전히 초점 없이 풀려버린 눈동자로...
창 너머로 바쁘게 떠나기 시작하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이 남자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혼잣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런 건 정당하게 불만을 얘기해야 되는 거야... 이건 누가 봐도 조작이었다고...!! 두고 봐...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진실이 드러날 테니까..."

그저 기자를 불러 기사거리를 던져 준 제보자.

혹시 조금의 영향력이라도 있는 저명 인사였다면 이런 인터뷰만으로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텐데...






[ 너희 아버지 소설 열혈 팬이야! 그 분 아들이 우리 학교에 있다고 들었는데,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

[ 우와, 너네 집 진짜 크다...!! 이 서재에 책들 좀 봐!! 넌 좋겠다, 아버지가 천재 작가라서...! ]

이상하게... 자신이 입으로 내뱉고 있는 내용이 귀로는 들리지 않는 건지, 머릿속에서는 정반대의 기억들을 소환해내고 있었다.

뭔가 부정이라도 하고 싶었던 듯, 그는 억지로 고개를 강하게 내 저어댔다.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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