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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Nov 28. 2017

우연히, 그곳에서...<74화>

[ 제74화 _ 넌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비뇽의 [ 그들만의 세상 ] 출판사로 향하는 차 안,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려 세현에게 계속 말을 걸어보던 해인. 

그렇지만 침울해진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세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음... 사건 더 커지기 전에 먼저 나서야 겠지? 출판사에서 뭐라고 할지... 저번에 그 노인 직원하고 얘기해보려고..."

데이트 이외에도 벌써 네번째인 아비뇽 방문.

아비뇽으로 향하는 길은 늘 막힘없이 시원 시원하게 이어지곤 했다.

맑은 하늘에 바람마저 잔잔한 한가로운 낮 시간, 

평소 같으면 포근하게 여겨졌을, 평온하기 그지없는 차창 밖 풍경은 오히려 세현의 머릿속에 다른 잡생각들을 마구 떠오르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억지로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세현이었지만 줄어든 말수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은 숨길 수 없었다.

“임씨, 그... 다른 수상작들 좀 봤어? 괜찮은 거 없었어?”

해인은 일부러 화제를 돌려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음, 아직 다는 못 봤는데... 확실히 좋은 작품들 많더라. 해인이 넌 아직 안 봤어?”

“음, 읽으려고 읽으려고 하다가도 집에 오면 피곤해서 읽다가 늘 잠들어버려서... 다 읽은 작품이 아직 없네... 뭐 재미있는 거 있었으면 얘기 좀 해줄래?”

“그랬겠네... 그래도 무료열람 할 수 있는 시기에 봐두는 게 좋을 텐데... 내가 그림 그리라고 너무 닥달했었나...보자...! 뭐가 있었더라...아...!!”

이제는 완연한 이야기꾼에 글쟁이가 된 건지, '이야기'로 방향을 틀자마자 한결 밝은 표정으로 돌변한 세현. 

해인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세현이 들려주는 수상작 스토리를 경청했다.

그렇게 이야기와 함께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아비뇽.



긴 도로를 돌아 들어가는 아비뇽 진입로에 위치한 거대한 성벽은 이제 익숙하기까지 했다. 

한국과는 달리 이곳 출판사의 분위기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간혹 눈에 띄는 직원들은 빠른 걸음으로 뭔가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오면서 나눈 이야기 덕에 긴장이 조금 풀어졌었건만, 막상 눈앞에 문제의 출판사를 다시 마주하자 세현은 다시 몸이 경직되어옴을 느꼈다.

“후우...”


[ 짝!! ]

해인은 갑작스럽게 세현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아얏!! 뭐야 갑자기!!!”

“가만 보면 되게 소심해... 본인이 나서야겠다고 멋있는 척 다하고 여기까지 와서 한숨은 왜 쉬어!?”

“아...아냐, 긴장 안했어. 긴장은 왜...아야야... 맨날 등짝만 때려...”

"등짝 지겨우면 따귀로 옮겨드릴까...!?"

"에잇... 됐어요!!

해인은 우두커니 서서 등 부분을 혼자 어루만지고 있는 세현의 손을 거칠게 붙잡아 끌고 성큼성큼 출판사 안쪽으로 들어갔다.

건물내부로 진입해 이제는 복도 벽 끝에 걸린 세현 아버지 사진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바로 도착한 사무실.

[ 똑똑똑...! ]

불투명한 창문으로 슬쩍 비추는 형상으로 내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듯은 한데 굳게 닫혀있는 사무실 문. 

노크를 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계속되는 노크에도 사무실 사람들의 반응이 보이지 않자, 해인은 뭔가 자존심이라도 상한 듯 문을 있는 힘껏 열어제쳤다.  

[ 끼이익... 쾅!! ]

그대로 열린 문은 반대편 벽쪽에 부딪히며 굉음을 만들어 내었다.

덕분에 바쁘게 움직이던 직원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게 된 두 사람.

“에...임...형우씨 아드님...??!”

“그... 좀 부탁인데... 아드님 소리 말고 작가 명으로 좀 불러주시면 안됩니까?"

“아...예...!! [ 해세 ]...작가님이셨죠... 직접 이렇게 와주시다니...!!”

가게 아저씨의 말마따나 [덩치가 산만한] 노인 직원은 놀라면서도 기다렸다는 반가운 표정으로 세현과 해인을 맞아주었다.

안타깝게도 수상일 당시, 혹여나 출판사 측에 좋지 않은 말이 나돌까 두려워 본인 수상을 만류했었던 이 노인의 말이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

“결국엔...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노인직원은 세현과 해인을 자신들의 회의실과도 같은 공간으로 데리고 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테이블의 아래쪽으로 세현과 손을 맞잡고 있던 해인은 신호를 보내듯 손에 꽉 힘을 쥐며 세현에게 눈빛을 보냈다. 

“아? 음...이번에 벌어진 사건... 때문에 왔습니다. 결국... 저는 이 출판사와는 엮이지 말았어야 하는 건가요? 받은 상이 입선이건, 우수상이건 이렇게 시달려야 한다는 건... 좀 억울한데요...!!”

“저희도 이만큼까지 일이 커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아버님의 영향이 크다고 말씀드릴 수밖에는 없겠죠...”

“이렇게까지 의혹들이 넘쳐나니 오히려 제가 헷갈립니다. 정말로 여쭤보고 싶은데 정말 출판사 측에서 저를 임형우 작가 아들이라고 배려해 준건 아니죠?”

“맹세합니다. 아무것도 관련되지 않았습니다. 누구신지도 몰랐고요, 해세 작가님도 작품에 그만큼 자신이 있으셨던 거 아닙니까? 저희는 공정했습니다.”

세현과 해인, 그리고 출판사의 간부들은 서로의 사실 관계를 확인해가며 대처방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해세 작가님의 신상이 여러 가지로 노출되게 된 점은 저희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마침... 저희 쪽에서도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잘 오셨습니다.”

“예? 무슨 사실 말씀이신지...”

“작가님 과거에 일본에 계셨던 사실이 좀 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인데요, 그 부분에 관한 건 저희가 아는 게 전혀 없는 지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혹시나 기자들 공격해 들어오면 저희도 방어 준비를 해둬야 하니까요.”

세현은 자신의 사생활까지도 언급되어짐에 심히 불편함을 드러내며 약간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제 작품 심사가 일본으로 넘어간 것도 그렇고 제가 의도했던 일도 아닌데, 왜 제 과거에 대해 뭐하고 살았는지 다 밝히라는지 모르겠네요. 아버지가 작가 임형우면, 저는 선택권도 없는 겁니까?! 살던 데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살아라 이겁니까!!?”

해인은 이야기를 하며 더욱 이글대는 눈빛으로 바뀌어 분노를 폭발시키는 세현의 등을 어루만지며 진정시켰다. 마치

‘감정적으로 나가지 마...!! 진정해... 이래선 좋을 게 없어...’

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세현과 눈을 마주친 해인.

세현은 그 메시지를 읽기라도 한 것 마냥, 다시 숨을 고르며 올라오는 화를 참아 감정을 억눌렀다.

출판사의 노인직원 역시도 세현의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듯, 격하게 맞대응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네요... 이렇게 까지 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하고...!"

“저희로서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그래도 이렇게 그냥 물러서시면 대중들 앞에 다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대로면 출판사 이미지에도 엄청난 손상을 입은 것 아닙니까?”

“타격은 어쩔 수 없습니다만... 사실은 따로 모셔서 부탁을 드리려던 차였는데, 이렇게 직접 와주시니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몇 번이고 입장을 밝혔지만, 대중들은 싸늘합니다.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기자회견을 열어 본인이 직접 입장을 표명해 주시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현재로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이미지를 회복하는 방법, 역시 직접 나서는 방법 뿐인 건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세현은 정답을 알려달라 조르기라도 하듯, 해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해...! 지금은 그 방법 외에 다른 걸 생각할 수도 없을 것 같아. 더 늦어지면 안되는 거니까...!!"

“그...렇지?”

해인과의 속삭이듯 짧은 대화에 확신을 얻은 세현은 직원이 제시한 기자회견이란 방법에 소심하게나마 긍정의 뜻을 전했다. 

직원은 반색하며 이 전에 직원들끼리의 회의에서 이미 정해놓았던 듯한 기자회견 날짜를 알려주었다.

“어려운 결정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실은 통할 거라고 믿습니다...!! 작가님에게도 저희에게도...!!” 

수긍은 했지만 여전히 시원치 않은 기분으로 사무실 문을 나서려는 찰나, 옆에 있던 여직원은 해인을 불러 세웠다.

“아, 저 잠깐만요, 저번에... 해세 작가님 작품... 일러스트 담당하셨던 분이라고 하셨죠?”

“네? 저요? 네... 그런데요...?”

“확인 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 잠시만 이쪽으로 와 주시겠어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직원을 따라간 해인.
혼자 그 여직원의 데스크로 이동해 어떤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용건을 마친 듯한 여직원을 뒤로하고 출판사 밖으로 나온 세현과 해인. 

“음? 뭐래? 출판사에서 해인이한테 무슨 볼일이지? 처음부터 부른 것도 아니면서 뭘 또 확인한데?”

“응? 아냐... 별거 아냐, 그냥 뭐 좀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

“뭐, 이상한 거 아니지? 너한테까지... 안 좋은 일 생기면 안 되는데...”

세현은 말없이 따라와 주어 어려운 결정의 순간마다 옆에서 힘을 주었던 해인의 어깨를 바짝 자신의 옆으로 당기며 양손으로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나저나 임씨 벌써 유명인 다 됐네...? 기자회견이라니...후훗”

“불명예스럽기 그지없는...기자회견입니다만...!! 그나저나 나 때문에 여기 같이 오느라 그림 못 그려서 어떻게 해? 얼른 돌아가자!!”

“괜찮아. 이번에 전시할 그림 다 그렸어...! 벌써 제출은 했고, 내일 부터 아마 사람들하고 갤러리 전시 시작할거 같아.”

“아, 그래? 그럼 다른 사람이 사가기 전에 내가 사야지...!! 에이, 거 살 사람 미리 예약까지 했다는데 왜 번거롭게 갤러리 전시는 하라고 그래?”

“작업실하고 갤러리하고 그렇게 계약이 되어 있다는데 어떻게 해...!! 뭐...가서 얼른 사든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험난한 여정을 앞두고 서로에게 약간의 여유가 허락된 이 시각. 

세현과 해인은 처음 이곳에서의 데이트를 떠올리며 손을 꼭 잡고 시내로 발길을 옮겼다.





***





“이건 아마... 엄청난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힌트...? 갑자기 무슨...”

이곳저곳의 사업장을 알아보다 잠시 정리를 위해 카페에 들른 일본의 아영과 야마다.

아영은 잠시 여유가 생긴 지금 야마다에게 세현에게 받은 사진을 공개할 생각이었다. 

“왜 프랑스에 가 있는 내 친구들이...지금도 우리 찾는 놈들 열심히 알아봐주고 있는데 말야...”

“아, 그거 사업 때문에 좀 놓고 있었네...무슨 진전이라도 있데?”

아영은 휴대폰에서 세현이 보내준 사진을 열어 야마다에게 건냈다.

“난 에릭슨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너 보여주라고 내 친구가 보내준 거야.”

“에...에릭슨... 설마 찾은거야!!!??”

야마다는 눈이 동그래지며 아영에게 넘겨받은 휴대폰 속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봐...지미...에릭슨... 이라고 씌여 있는 것 같던데... 혹시 그 놈 풀네임인지는 모르지...애하고 같이 있던데 그 사람 유부남 이랬으니까 가능성 있는 거 아냐?”

잠시 동안 사진을 응시하며 꼼짝도 않은 채 단지 눈동자만을 이리저리 굴려대는 야마다.

아영은 대답도 없이, 정지화면처럼 멈추어 있는 야마다를 빤히 쳐다보았다.

“야마다? 왜...? 잘못 짚었어? 에릭슨이라고 써있기까지해서 난 또...”

“아영씨...”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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